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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나라로 간 소신
이낙진 지음 / 지식과감성# / 2018년 9월
평점 :

국민학교에 다니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을 꼽으라면 일기를 써서 상을 받은 일입니다. 당시는 저학년 때부터 저녁이면 일기를 쓰고, 아침이면 학교에 가서 선생님 책상에 예쁘게 올려두었지요. 그러면 선생님은 예쁜 글씨로 예쁜 말을 전해 주셨습니다. 짧지만 그 한 문장의 관심이 한없이 기뻤지요. 그런데 왜 그때는 남의 일기를 읽는 것이 그리 재미있었는지. 차마 친구들의 일기는 읽지 못하고 매번 동생의 일기를 훔쳐보곤 했지요.
<달나라로 간 소신>이 딱 그런 책입니다. 자서전도 소설도 아닌, 일기와 가장 많이 닮아 있는 글. 한국교육신문 편집국장으로 일하고 계신다는 이낙진 씨는 2007년 아이들을 위해 쉽게 풀어쓰는 족보 정도로 쓴 글을 11년이 지난 뒤에야 조금의 글을 덧붙여 책으로 만들었습니다. 자신의 어린 시절을 회상하고, 가족 일상, 부모님 등이 그 내용인데요. 족보에서 시작된 글이다 보니 가족의 중요성이 많이 느껴지는 글입니다. 또한 어른의 일기란 아이의 것과 달라 사뭇 지루하지 않을까 했는데 오히려 읽는 독자도 나이가 들어서인지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습니다.
이낙진 씨는 <남한산성>이 너무 재미있어서 아껴보았다고 하는데, 저는 저자의 <달나라로 간 소신>이 재미있어서 아쉬운 마음에 남은 책장의 두께를 가늠하기도 했네요.
그래도 그 시절이 좋았다. 나일론으로 만든 검은 반바지와 하얀 면 티셔츠 하나로 여름을 났다. 학교에 가거나 물놀이를 할 때, 잠을 잘 때도 오직 그것이면 충분했다.
저자의 나이는 저보다 한참이나 많습니다. 그래서 어린 시절의 추억이 저보다 조금 더 옛날로 가야 했는데요. 그럼에도 어린 날을 추억하는 아스라한 마음만은 저에게도 전해졌습니다.
"아이참, 저녁 반찬거리를 샀으면 남는 거라도 있지. 다시는 사나 봐라." 이 선생이 좋은 꿈을 꾸었다며 처음으로 산 로또가 꽝이 되자 못내 아쉬운 모양이다. … 인생역전을 바라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가끔 내게 1등의 행운이 올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상상을 하기도 한다.
같은 경험에 대한 이야기는 제 기억을 소환했고, 사람의 마음이란 비슷하구나 하며 미소 짓게 만들기도 했습니다.
하늘을 가릴 만큼 풍성한 나뭇잎들이 산길을 뒤덮고 있다. 때가 되면 모든 나무에서는 꽃이 피고, 잎이 자란다. 꽃은 향기롭고 화려하지만 오래가지 못한다. 잎은 꽃보다 예쁘다 할 수 없지만 봄에 나기 시작해 가을이 깊을 때까지 무성함을 유지하며 맑은 공기도 주고, 시원한 그늘도 선사한다.
가장 마음에 들었던 글인데요. 화려한 꽃보다는 잎이 제법 많은 구실을 한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게 했던 글. 살면서 생각보다 놓치는 것이 많음을 알게 해 주네요. 꽃놀이 가듯 잎놀이도 가야겠습니다.
올라갈 채비를 해야 할 것 같다. 어머니는 또 필요 이상으로 짐을 꾸리는 것 같다. 말린 고추를 기름에 튀겨낸 고추부각을 잘 먹는 것 같으면 해놓은 것을 다 싸준다. 부침개 몇 조각 집어먹으면 그것도 있는 대로 담는다.
어느 부모나 자식을 향한 마음은 같은가 봅니다. 어쩜 우리 어머님과 같으신지.
그저 나의 살던 고향과 툇마루가 있는 초가집, 함께 미역 감던 동무들, 만들기 숙제로 진달래나무뿌리를 캐던 그 시절이 잊히는 것이 아쉬웠다. 잊지 않는다고 해서 그것이 무슨 큰 의미가 있는 것은 아닐지라도 나는 그것을 잊지 않는 나를 기억한다. 가난하지만 추하지 않고, 공부가 크지 않지만 천하지 않고, 너그럽지는 못하더라도 협량치 않은 삶이 나의 바람이다. 장문을 마치며 에필로그에 대신한다. "아침 꽃을 저녁에 줍다."
마지막 문단이 이 책의 모든 것을 함축하고 있는 것 같아서 메모해봅니다. 대단치는 않더라도 그 시절이 잊히는 것이 아쉬웠다는 말이 참 공감이 되었어요.
<달나라로 간 소신>을 읽으며 처음 느낀 점은 정말 대단한 글솜씨라는 것이었는데요. 의식의 흐름대로 쓴 글이 아니라 앞뒤로 보고 또 보아 정성스레 적어, 모든 문장이 간결하고 호흡이 고른 글이었어요. 그래서 책을 읽으려 자리를 잡은 후 단번에 읽어 내려갔지요.
아름다운 장미는 사람들이 꺾어 꽃병에 두고 혼자 보다가 시들면 버리는데 들꽃은 누구 꺾어가지 않으니 함께 어우러져 장관을 이룬다고 한다. 세상 이치도 그와 다를 바 없는 것 같다.
moderato, retardando, a tempo라는 뜻에 어울리는 글들의 향연. 차례로 글을 따라가며 개인의 인생이면서도 그 세대의 이야기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덕분에 저희 가족의 과거와 현재에 대해서도 좀더 따뜻한 시선으로 돌아볼 수 있는 시간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