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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차와 장미의 나날
모리 마리 지음, 이지수 옮김 / 다산책방 / 2018년 10월
평점 :
절판

"모리 마리는 환상적이고 우아한 세계를 표현하는 데 뛰어난 재능을 보인 일본의 소설가이자 에세이스트다. 그러나 넘치는 문재(文才)와는 대조적으로 생활능력은 거의 없다시피 했고, 성격도 세상 물정 모르는 철부지에 가까웠다고 한다."
'홍차와 장미의 나날'이라는 에세이를 시작하기 전에 모리 마리(1903년생)에 대한 배경지식이 없는 사람들을 위해, 책의 앞부분에서는 위와 같이 모리 마리를 소개하고 있습니다.
모리 마리의 아버지 또한 도쿄대학 의학부를 졸업하고 독일로 유학까지 다녀온 당대의 엘리트이자 나쓰미 소세키와 함께 시대를 대표하는 작가였다고 합니다.
이만큼만 살펴봐도 대단한 집안이지만, 부유하기까지 해서 그야말로 공주 같은 유년시절을 보내지만 어찌 된 일인지 두 번의 실패한 결혼 뒤 혼자 살다가 1987년 심부전으로 사망하고 맙니다.
겉모습만 보면 재능있는 소설가로 부러운 인생을 살다가 인생 후반기에는 다소 쓸쓸해 보이는데요. 그런 모리 마리는 나름의 소확행이 있었으니 먹는 것에 굉장한 즐거움을 느꼈다고 합니다. 그래서 "맛있는 음식을 먹지 않으면 소설이 안 써진다"는 모리 마리의 음식에 대한 에세이를 모아서 한 권의 책으로 만들었으니, 그게 바로 "홍차와 장미의 나날"입니다.

제목과 표지가 너무 멋있어서 책을 받자마자 제목의 유래를 찾아보니 낭만적이게도 "술과 장미의 나날"이라는 영화 제목에서 빌려왔다고 하네요.
"보티첼리의 장미 찻잔은 연홍색 꽃잎에 푸른빛이 감도는 연두색 잎사귀가 달린 장미가 흩뿌려진 홍차 찻잔인데, 그 꽃이 옛날 이탈리아 미술관에서 본 보티첼리의 <비너스의 탄생>에서 하늘과 바다 위로 흩날리는 장미를 빼닮은 데다 잎사귀 색 역시 그 그림의 하늘이나 바다색처럼 푸르스름해서 그렇게 이름 붙인 찻잔이다." p266
글을 읽다 보면 요리법에 대한 내용이 많아서 일본 음식과 독일, 프랑스 음식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접할 수 있습니다. 유럽에서 남편과 함께 생활하며 맛본 음식과 일본 내의 서양요리집의 맛을 비교하거나 두 나라의 접객문화에 대한 비교를 하기도 합니다.

커피는 체질에 맞지 않아 홍차를 즐긴다는 그녀는 오믈렛에 빨간 토마토케첩이 싫다 하기도 하고, 어린아이처럼 코카콜라를 즐기기도 합니다. 이런 그녀도 제법 요리를 할 줄 알아서 특별히 자신만의 요리법도 꽤 가지고 있고 소개하기도 하는데요. 그중 그녀만의 크로켓 요리법은 따라 해보고 싶은 마음이 들 정도였어요.
이렇게 주변 지인들의 선입견에도 불구하고 그녀가 만든 요리를 한번 먹어본 사람은 누구나 그 오해를 풀 수 있었다고 스스로 밝히는데요. 어린 시절 온갖 맛있는 음식을 먹어봤기에 이런 것도 가능하지 않을까 생각해보기도 하지만, 아무래도 소질도 있어야 하지 않나는 생각도 드는군요.
마리 모리는 노년에 홀로 좁은 아파트에서 살며, 가난한 독신생활을 지냈지만 정신적으로 불행하지만은 않았던 것이 이런 그녀만의 확실한 작은 기쁨들 때문이 아니었을까 합니다. 이 책을 통해 그녀의 맛있는 음식에 대한 소확행을 느낄 수 있고, 더불어 빌헬름 2세를 쏙 빼닮았다던 아버지에 대한 넘치는 애정과 그녀의 일상을 엿볼 수 있었습니다.
매일매일 마음대로 되는 것 하나 없는 힘든 현실 속에서 모리 마리가 음식으로 기쁨을 느꼈다면, 우리는 어떤 소확생을 가졌는가를 곰곰이 생각하게 됩니다.
그나저나 산수유 익어가는 이 계절에 어찌이리 딱 맞춰서 수유열매 따먹는 표지의 예쁜 책이 나왔는지 모를 일이네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