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은을 마시다
비올레타 그레그 지음, 김은지 옮김 / iwbook / 201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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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은을 마시다


제목부터 차가운 느낌이 드는 이 책은


2017년 맨부커상 후보에 오른 비올레타 그레그의 장편소설입니다.

수은은 예로부터 동서양에서 잘 알려진 금속으로 실온에서 액체인 유일한 금속입니다. 널리 사용되지만 중독되면 미나마타병을 일으키기도 하지요.


서양에서는 연금술에 사용했고, 중국 진시황제는 불로장생을 위해 섭취하기도 한 수은이 책 제목으로 붙어서, 묘하고 독특한 느낌을 줍니다.


표지디자인도 온통 파란색의 도시모습인데요. 기대에 차서 읽기 시작했으나, 의외로 빨리 읽히지가 않더군요.


개인적으로 소설의 사건 전개에 흥미를 느끼는 편인데, 이 소설은 장면을 묘사하는 문장 속에 사건이 슬쩍 숨어있는 느낌이었거든요.


또 우리나라와 다른 문화로 인해 생소한 단어가 나와서 흐름이 끊기기도 했구요.


하지만 끝까지 읽고보니, 그제야 어떤 말을 하고 있는지 깨달았고, 이 책만의 매력을 찾을 수 있었답니다.




이 책의 주인공은 비올카입니다.


그녀의 아버지가 탈영으로 감옥에 가있는 사이 어머니는 홀로 딸을 출산하고 키우지요. 그러다가 비올카의 아버지가 돌아오면서 소설은 시작됩니다. 


비올카는 호기심많고 활발한 성격으로 그려지는데, 이 소설은 어린 소녀의 시선으로 1980대 즈음의 공산주의 폴란드 마을을 그려내고 있습니다. 


소문만 무성한 교황의 방문, 재봉사의 만남, 고철 줍기 등 다양한 에피소드 들이 펼쳐지는데, 어쩌보면 소설 빨간머리 앤이 생각나더군요. 앤이 그러하듯, 비올카 역시 성장하면서 그녀만의 에피소드를 만들어 냅니다. 


여자라서 그런지 여성만이 겪는 사건들이 눈에 띄었는데요.


"피를 많이 흘려서 죽을 수도 있어요?"라고 묻는 모습으로 첫 생리에 대한 두려움을 표현하고 있었고, 그로 인해 빈혈로 병원에 갔을때는 60살의 담당의사에게 성추행을 당하고 수은을 마십니다. 


비올카는 성추행당한 사실을 어머니에게 말하지 않는데, 이런 상황을 너무 담담하게 문장에 담고 있어 슬펐네요.


이후에도 사촌결혼식에서 30살 동네총각에게 성폭력을 당할 뻔 하기도 하는 등 유사사건이 펼쳐지는데요.


저자 비올레타 그레그의 자전적 성격이 강한 소설이라 알고 있었기에 직접 경험한 것인지 들은 것인지 궁금증이 생겼고, 한편으로는 저에게 그러하듯, 많은 여자들에게 위로를 건네는 부분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에서 가장 인상에 남았던 부분은, 비올카의 아버지에 대한 묘사부분이었는데요.


"여덟 살이 된 소년의 모습이 보였다. … 정오도 안 된 시간, 첫 잉어가 미끼를 물기도 전에 50세가 된 소년은 숨을 거두었다." (149쪽)라는 부분은 몇 번을 반복해서 읽었는지 모를정도로 인상깊었습니다.


한 사람의 인생을 고작 2장으로 표현하였지만, 여느 한권의 자서전보다 강렬하게 빛났던 부분이었고,


덕분에 첫번째 독서를 비올카의 입장에서 읽었다면, 두번째는 아버지의 입장에서 읽게 되어 이전에 비올카에 가려 잘보이지 않던 가족들의 인생이 더 흥미진진하고 애잔하게 마음에 와닿더군요.


"참 희한한 세상이야."

버스가 풀라스키 가로 들어서자 그가 갑자기 말했다.

"눈을 깜빡이기도 전에 나보고 늙었다고 하니까 말이야. 사실 속은 설익은 과일이나 마찬 가진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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