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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아무것도 아닐까 봐 - 도시 생활자의 마음 공황
박상아 지음 / 파우제 / 2018년 9월
평점 :
절판

이 책을 읽기 전에는 공황장애에 대해 깊이 있게 생각해 본 적이 없습니다. 뉴스에서 간간이 들릴 때에도 그런가 보다라고 생각했을 뿐 그 삶이 어떤지는 떠올려 본 적이 없는 것 같아요.
"누군가의 상식은 누군가의 편견.
어쩌면 정상은
편견이란 울타리의 안쪽"
(23쪽)
흔히 마음이 약해서 그런 것이라 여기며, '치료'라는 말보다는 '극복'이라는 말을 더 자연스럽게 쓰기도 하지요.
이렇게 우리 사회에서는 정신과 치료를 받는 것에 대한 큰 편견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아무리 친한 사이라도 '상담 한번 받아보는 것 어때?'라는 말을 결코 할 수 없는 분위기, 정신과에 방문한 적이 있다면 색안경을 끼고 피하려는 분위기가 분명히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아무것도 아닐까 봐'의 저자 박상아씨는 너무 솔직하게 자신의 공황장애를 밝히고 있어 놀라웠습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이렇게 용기 있는 사람들이 우리 사회의 편견을 없앨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시골에서 나고 자라 대학을 졸업한 박상아씨는 꿈과 현실 사이에서 현실을 선택하는 삶을 살기로 결정합니다. 그렇게 서울에서 아트디렉터로 사회에 첫발을 내디딘 저자는 요구를 들어주고, 평가를 받고, 부당함을 견뎌내는 직장생활을 합니다.
그럼에도 직장을 그만두지 못하는 이유를 우리는 너무 잘 압니다.
"삶에서 일을 드러내버린다면 나의 존재는 무엇으로 규정될까?" (54쪽)
그런 그녀가 "나를 향한 타인의 화를 견디는 것보다 힘든 것은, 내가 그런 취급을 받는다는 사실이 주는 자존감의 상실. 나잇값 못하고 꼴값하는 사람들의 비난. 상처는 더 굴욕적이다. 산다는 건 자존감의 상실이 잦다는 것"(84쪽)이라며,
'쓰레기봉투에 쓰레기를 눌러 담듯, 그 모든 감정들을 꾹꾹 눌러 담았다'고 합니다.
그래서 오히려 주변으로부터는 '꽤 괜찮은 사람'이라는 평가를 받기도 하지만 결국 '늘어난 니트의 보풀처럼 삐죽삐죽 튀어나오다 올이 모두 풀려버렸다'(59쪽)고 밝힙니다.
그렇게 스스로의 마음을 들여다보고 마음 써주지 못해 스스로에게 미안하다고 하는 저자는 공황장애를 치료하느라 회사를 다닌 날보다 병원에 다닌 날이 더 많은 것 같다고 하네요.
"예민한 것은 가시가 안으로 향해 있고, 까탈스러운 것은 가시가 밖으로 향해 있다. 이유 없는 까탈을 예민해서라고 착각하는 사람. 그런 사람의 말과 행동은 타인의 마음을 할퀴곤 한다."(82쪽)
그런 그녀는 "무언가 한다는 것이 주는 안정"과 "스스로의 비난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 일"로써 글을 쓰기 시작했답니다. 그리고 이렇게 멋진 책이 나왔습니다.
군더더기 없이 간결하고 마음을 울리는 문장들을 대하며 '시' 같다는 느낌을 받았는데요, 이 책을 통해 공황장애에 대한 이해를 깊이 있게 할 수 있었고, 그런 저자를 응원하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흔히 직업을 가지는 것으로 스스로를 증명하고, 존재의 의미를 찾으려고 합니다.
그래서 간혹 부당한 대우를 받아도, 뭔가 잘못된 것 같아도, 혹시 내가 잘못된 것은 아닐까 하는 마음에 선뜻 용기를 내지 못하는데요.
그렇게 살다가는 우리도 저자 박상아씨와 같이 힘든 시간을 견뎌야 될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저자는
"가끔은 멍하니 시간을 흘려보내는 것도 필요하다. 낭비되는 시간들은 마음이 소비되는 것을 막아준다."(162쪽)며, "세상의 속도가 아닌 마음의 속도를 따라서 천천히, 천천히" 자신의 마음을 보듬어 가며 살아가자고 합니다.
"행복은 꿈을 이룬다거나 하는 거창한 게 아니라 신호등이 연속적인 초록불일 때 느끼는 것처럼 일상의 사소한 기분 같은 것"이어서 어디에나 행복이 있다는 저자의 말에 무한 공감하며,
이제 그녀가 반려자와 함께 따뜻한 삶을 살아가길 빌어 봅니다.
이 책을 통해 저자가 그랬던 것처럼 불행한 마음의 씨앗을 키우고 있는 것은 아닌지 돌아보는 뜻깊은 시간이 되었고, 정신질환자에 대한 편견을 없앨 수 있는 시간이 되기도 했습니다.
누구나 이 책을 읽다 보면 행복은 특별한 것이 아니구나라는 것을 깨닫는 소중한 시간이 될 듯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