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빨주노초파람보
노엘라 지음 / 시루 / 2018년 7월
평점 :

"현실과 꿈은 같은 책의 페이지들과도 같은 것이다. 순차적으로 읽는 것은 현실이고, 여기저기 펼쳐 보는 일은 꿈과 같다."
쇼펜하우어의 글로 시작하는 <빨주노초파람보>의 첫인상은 '참 작고 가볍다'였습니다.
바이올리니스트가 쓴 첫 소설이라하여 호기심이 생겼고, 그래서 작가의 이력부터 자세히 살펴보았습니다.
그녀는 성공한 음악가였고, 음악과 미술을 아우르는 칼럼을 썼고, 2010년에 쓴 첫 번째 에세이 <그림이 들리고 음악이 보이는 순간>은 베스트셀러를 석권했더군요.
그리고 이번에 출간된 작가의 첫 소설 <빨주노초파람보>는 출간과 동시에 영화화가 확정되었답니다.

이렇게 작가가 음악가라는 사실과 음악가가 쓴 책은 어떤 내용일까에 대한 호기심으로 읽기 시작한 책은, 의외로 앞부분을 몇 번이나 반복해서 읽을 정도로 읽는 내내 꿈과 현실을 구분하기 힘들었습니다.
스스로의 상태를 의심하며 계속해서 읽어나간 소설은, 다행히 화자가 옮겨지면서 읽기에 진전을 보일 수 있었으나, 곧 거울 속과 거울 밖 경계의 모호함이 나왔고, 나중에는 시간의 앞뒤를 맞추기가 힘들기도 했습니다.
이쯤되니 이 모든 모호함은 의도된 것임을 알 수 있었지요.
그리고 줄곧 여러 등장인물의 시선으로 마치 각자의 이야기를 하고 있는 듯 하였으나, 마지막 부분에서 은하의 비밀이 밝혀지면서 모든 인물들의 갈등과 그 원인이 한번에 이해되기 시작했습니다.
책 속에서 인용되어지던 생텍쥐페리나 마그리드, 쇼펜하우어의 글들도 소설의 진실과 어우러져 한층 의미있게 다가오기 시작했고, 책의 초반에 나온 그리스 신화 비블리스 이야기가 이 책을 통틀어 가장 의미있는 이야기였음을 그제야 깨달았네요.
그리고 어쩌면 작가가 그리스 신화 비블리스 이야기를 듣고 이 책을 구상하게 된 것은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습니다.
역사를 되돌아보면 오히려 지배계층에서는 흔한 일이었으나, 현대 사회에서는 결코 있을 수 없는 일로 여겨지는, 은하의 사랑이 슬프면서도 안타까웠습니다.
책 속에 나오는 "사랑은 나의 안내로 그대가 그대에게로 돌아가는 것이다."라는 생텍쥐페리의 글귀가 하루 내내 머릿속에 맴도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