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은 모래
구소은 지음 / 바른북스 / 2018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두 종류의 시간이 있다.

하나는 흐르는 시간이고 다른 하나는 고이는 시간이다." (6쪽)


이 책은 정말 특이하게도

프롤로그와 에필로그가 순서대로 합쳐져서 결말이 된다.

책 속의 시간도 두 종류의 시간이 있어서

조선이라는 나라가 사라지고 나흘째부터 시작되는 정방향의 시간과, 현재에서 과거로 되돌아가고 있는 역방향의 시간이 소설의 마지막에서 만나고 있다.


그리고 프롤로그와 에필로그로 흘러가 두 시간은 화해하고 있다.


2013년 제1회 4.3평화문학상을 수상했다는 <검은 모래>라는 제목을 처음 보았을 때는 제주의 4.3사건이 소재인 줄로 알았다.

하지만 이 소설은 근현대를 살아온 제주 여인의 삶을 구월과 해금을 통해 보여주고 있다. 그리고 그들의 끊어지지 않는 한국인의 피는 켄과 미유를 통해 재일동포의 삶으로 재조명되고 있다.

그렇게 구월의 어머니가 구월을 낳으면서부터 시작되는 이야기는 현대의 일본을 살아가는 미유까지 이어져 그야말로 대서사시다. 그래서 한편의 영화로는 엄두도 낼 수 없고, 60부작 드라마쯤은 되어야 어울리지 않을까싶다.


우리는 일제시대부터의 우리역사를 이야기할 때, 조선이 국권을 상실하고, 일본의 수탈과 중국 상해까지 이어지는 독립운동, 그리고 인천상륙작전, 대한민국정부 수립, 4.19혁명, 6월 민주항쟁 등을 거쳐 현정권이전 정권까지를 논한다.

하지만 그 속에 빠진 역사가 있으니, 바로 제주도의 역사이다. 우리는 아무런 거리낌없이 육지의 역사만 논하고 있었고, 그래서 최근에 제주 4.3사건에 대해 재조명되었을 때 우리는 잃어버린 역사를 되찾은 것처럼 여기기도 했다. 그런 역사인식에 대해 이 책은 제주인의 역사에 한마디 더해서 일본에서의 한국인의 역사까지 보태고 있다.


제주 여인으로 일본으로 건너가서 일본에서 2차대전을 겪고, 한반도의 분단을 겪으면 그나마 한반도 사람들만큼은 아픔을 겪지 않았을 줄 알았던 내 생각은 잘못된 것이었다. 육지에 있어야만 아버지가 국군이 되고, 아들이 빨갱이가 될 수도 있다고 생각했던 것은 큰 오산이었던 것이다. 


일본에서 살아온 한국인이라는 지위는 자국민을 우선으로 챙기는 일본정부에 걸림돌 같은 존재여서, 세계를 속여가며 최소한의 인권과 자유까지도 빼앗아버렸다. 

저자는 오랜 조사를 통해서 역사를 자세히 알려주고 있는데, 그 가운데 제국주의에 물들어 있는 일본인의 한국인에 대한 생각, 조총련, 재일조선인의 북한귀국 등에 대해 새로이 알게 된 부분이 많았다. 


무엇보다 충격적이었던 사실은, 한국정부는 이런 재일한국인에 대해 어떤 조치도 취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집단 귀국을 골칫거리로 여겼다는 사실이다. 


"농촌 지역의 빈곤을 타파하기 위하여 해외이주촉진을 장려하고 … 국내의 실업자를 라틴아메리카에 수출할 생각을 하고 있었다." (229쪽)


게다가 미국이 그런 일본에 동조하여, 

"주일 미국 대사 맥아더 2세는 주일 오스트레일리아 대사에게 보낸 서신에서 다음과 같이 적었다.

'일본에 남아 있는 조선인은 수준이 낮고 수많은 공산주의자 및 범죄자가 포함되어 있다. 지금껏 일본 정부가 아무런 귀환 계획도 실시하지 않는 것은 매우 비현실적인 일이다.'" (230쪽)라고 했다.


"저희들 땅에서 조선인을 몰아내는 대청소에 미국을 표면으로 끌어들이고 싶었지만, 그 계획이 여의치 않자 일본 정부는 일본적십자와 조총련을 이용하기로 결정하였다. " (229쪽)


그리하여 이루어진 재일교포 북송사건의 놀랄 점은, 이 때 이주한 재일교포가 북한이 고향인 사람들이 아니라 대부분 남한이 고향인 사람이었다는 점이다. 더이상 일본에서 희망이 없다고 여긴 재일교포들이 남한에서조차 환대받지 못하고 의심스러우면서도 결국 안타까운 결정을 할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소설속에서 현대를 살아가는 일본 극우 민족주의자들의 아들은 

"(일본은) 세계 문명의 초일류를 이끄는 나라 중에 하나고. 한국은 식민지였던 나라야. 참 성가신 나라지. 우리가 너무 키워준 게 화근이라고 생각해." (201쪽)라고 말하고 있어서 화가 났고,


일본정부는 재일교포 3,4세에게까지 선거권도 부여하지 않는다는데, 무슨 의미인지 모르고 있다가 책을 다 읽고 나서 그 의미를 찾아보고서야 일본의 의도를 알 수 있었다. 


제주 여인의 삶이 무엇이 그리 특별하기에 소재로 사용되었을까? 역사가 그들의 삶을 고달프고 애달프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그들의 자손 미유는 그 아픔을 털어내고 행복한 인생의 역사를 기록하게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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