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호실로 가다 - 도리스 레싱 단편선
도리스 레싱 지음, 김승욱 옮김 / 문예출판사 / 2018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19호실로 가다>의 수전과 매슈는 성공한 지성인입니다. 수전은 광고회사에서 일했고, 매슈는 런던의 대형 신문사 차장급 기자였죠. 둘은 사랑했고, 주변의 부러움을 받으며 결혼합니다. 


둘다 좋은 아파트를 가졌으나 신혼집은 둘사이에 주종관계가 성립할 수 없도록 새 아파트를 마련합니다. 그리고 곧 아이들을 낳고, 크고 좋은 주택을 구입하여 행복하게 살게됩니다. 


어느날 매슈는 다른 여자와 잠자리를 가지게 되고, 수전은 그 사실을 알게 됩니다. 그 때부터 수전의 마음에는 알 수 없는 공허함이 시작됩니다. 





이 소설은 1960년대 런던을 배경으로 여성해방운동이 이슈가 되던 시대라고 합니다. 저는 이 소설을 어떤 편견없이 읽고 싶어 이런 시대적 배경 혹은 작가에 대한 사전 지식없이 일단 읽었습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21세기 대한민국에서 살고 있는 저는 1960년대 영국에 살고 있는 여주인공 수전에 공감하며, 여성의 삶에 대해 돌아보게 되더라구요. 


남성도 그러하겠지만, 어떤 면에서 여성의 삶은 결혼과 동시에 정말 큰 변화를 맞이하게 됩니다. 재능을 펼치고 자유롭게 살던 여성은 결혼을 하고, 출산을 하고, 엄마로서 아내로서 해야 하는 것들을 수행하며 살다보면, 가족의 그늘에서 자신은 사라지는 신기하고 우울한 경험을 하게 됩니다. 특히 수전처럼 일을 그만둔 여성들은 더 그렇지요.


그 상황에 남편이 바람을 핀다면, 더욱 나락으로 떨어지게 되지요. 그런데 수전에게 그런 상황이 펼쳐진 것입니다. 


이제 수전은 혼자만의 공간, 혼자만의 시간을 갈구하게 됩니다. 누구에게도 의무와 책임을 지지 않고, 누구에게도 상냥하지 않아도 되는, 온전히 자신만을 느낄 수 있는 공간과 시간을 욕망하게 되지요. 이런 수전의 마음에 공감하는 여성들이 많을 것이라 느꼈습니다.


물론 남편 매슈 입장에서는 당황스러울 것입니다. 누구보다 현명하고 지혜롭고 밝게 빛나는 여성과 결혼했으나, 자신의 한순간의 실수로 부인이 달라지니 말입니다. 차라리 부인이 바람을 피우는 것이라면 이해라도 되겠지만, 그렇지도 않으니 답답할 노릇이지요.


이 소설에서 특이한 점이라면 수전과 매슈의 성에 대한 생각이었습니다. 매슈는 바람을 피고, 그럼에도 가정을 유지합니다. 수전에게 남자가 있을 것이라 추측하며 함께 더블데이트를 하자고 제안하지요. 


이러한 장면에서 이런 결혼생활에 대한 관념은 이 둘만의 특징인지, 아니면 당시 시대상이 그런것인지 궁금하더라구요. 그래서 도리스 레싱이라는 작가와 그가 살아온 경험을 찾아보았습니다.


도리스 레싱은 1919년 영국인 부모에게서 태어나 식민지 원주민들의 삶을 목격하며 유년기를 보냈으며, 2번의 이혼을 겪고 1949년 런던에서 작품을 발표하기 시작합니다. 수많은 장편소설과, 단편소설을 출간한 그녀에게 2007년 노벨문학상이 주어졌고, 이 때 레싱은 "여성 고유의 경험을 서사시처럼 묘사하였다"라는 칭송을 받습니다. 


그러나 "레싱의 소설들을 흔히 말하는 페미니즘 작품으로 국한시키기에는 주제나 소재의 스펙트럼이 대단히 넓다. 레싱의 소설은 아프리카, 제1·2차 세계대전의 후유증, 성(性)의 전쟁, 붕괴되는 결혼제도·가정·모성, 계급사회, 문학을 포함한 예술의 문제, 노화, 공산주의 대 자본주의, 개인 대 사회 등 다양한 주제를 다루고, 사실주의적 표현뿐 아니라 판타지를 혼합했으며, 60여 년간의 집필활동 후반부에는 과학소설, 우화, 사변소설로까지 사색의 범위를 넓혔다."(337쪽)라고 이 책의 '작품해설'을 통해 민경숙교수가 설명하고 있습니다. 


레싱의 수많은 단편들 중에서도 이 책 <19호실로 가다>에는 19세기 영국의 남녀의 결혼생활이나 성에 대한 관념을 보여주는 작품들인 <최종 후보명단에서 하나 빼기>, <옥상 위의 여자>, <내가 마침내 심장을 잃은 사연>, <한 남자와 두 여자>, <남자와 남자사이> 등이 있고, <방>의 경우는 한 여자의 무의식 속 판타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두 도공>을 통해서는 남자주인공이 독특한 방법으로 문제에 봉착한 여주인공의 가정사를 해결하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목격자>에서는 퇴임을 앞둔 가난한 경리 브룩씨와 젊은 여자와 바람을 피우는 늙은 사장이 대조를 이루고, <20년>에서는 20년 전의 약속과 달리 서로 차선의 결혼을 하는 한쌍의 남녀를 보여줍니다. 


<영국 대 영국>의 경우 당시 영국의 계급 시스템적인 모습을 보여주고 있어서 우리의 70년대를 보는 듯 했습니다. 광산에서 일하는 노동자 아버지와 남동생을 두었지만, 명문대를 다니는 남자는 같은 영국이지만 서로 다른 사회(노동계층과 중산층 계층사이)를 경험하며 혼란을 겪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지요.



어떻게 보면 계급이 무너지고 급격히 산업화가 진행되며, 인종차별이나 성차별이 무너지며 여성의 권익이 향상되는 과도기적인 모습이 긍정적이지만, 또한 그 속에서 기존 사회질서가 무너지면서 혼란스러워하고 불안해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확고하고 올바른 가치관을 가지지 않는 한 그런 사회에서 가정이나 개인이 어떻게 어이없이 무너질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작품들이었고, 이러한 남녀관계의 문제들에 레싱은 '예의'가 하나의 해답이 될 수도 있다고 말하고 있었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