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촌을 걷는다 - 과거와 현재를 잇는 서울역사산책
유영호 지음 / 창해 / 2018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세상은 본 만큼 아는 것이 아니라

아는 만큼 보이는 법이다.


본래 남촌과 북촌이라는 말은 청계천을 기준으로 일제강점기부터 대중적으로 사용되기 시작했다고 한다. 북촌에는 조선인이 모여살았고, 남촌에는 일본인들이 모여 살면서 경제적, 민족적 경계가 명확해졌고, 이 책에서 말하려는 경복궁의 서쪽마을, 서촌은 엄밀히 '북촌'의 일부이다. 저자 유영호씨는 서촌의 한가운데를 관통하는 청계천의 상류, '백운동천'을 따라 걸으며 그 시대로 우리를 데려간다.  


<1장 광화문 일대>

백운동천은 창의문 위의 계곡에서 시작하여 경복궁역을 지나 세종문화회관 뒤쪽으로 흘러 청계광장의 소라탑에 다다른다. 그리고 여기서 청계천 지류 중 하나인 '중학천'과 만난다. 복개되어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이로인해 세종대로 사거리 일대는 집중호우라도 내리면 병목현상으로 물에 잠긴다고 한다. 

1952년 발표된 광화문 계획광장부지에 포함되어 있던, 지금의 조선일보 사옥과 동아일보 사옥, 경제논리로 인해 행정구역이 수평분할된 광화문 빌딩, 소유권이 수평분할된 프레스센터, 견지동 조계사와 수송동 백송, 성북동 교보단지의 비밀, 평양 만수대극장과 비교당하며 지어진 세종문화회관, 주시경 집터에 지어진 용비어천가 빌딩에 대한 흥미로운 이야기가 나온다. 


<2장 역사와 문화의 보물창고 서촌>

경복궁에서 왕이 행차하여 사직으로 들어가는 길이 지금의 지하철 3호선 경복궁역이 있는 길이 아님을 알 수 있고, 서울지방경찰청 터의 슬픈 역사도 알 수 있다. 고려시대에 만들어진 체부동의 '금천교'는 도로확장공사로 사라졌고, 추사 김정희가 자란 월성위궁 터에 있던 600년 된 백송은 1990년 태풍으로 쓰러지고 말았다. 이 터들은 외세에 의해 '동양척식회사'가 설립되는 등 변질되기도 한다. 삼청장을 통해 친일의 역사도 살펴보고, 콘크리트 대문인 영추문의 식민지 침탈의 역사도 알 수 있다. 

생명파 동인지 「시인부락」을 탄생시킨 보안여관, 남과 북, 중국으로 흩어진 독립운동가 김가진 가문, 천재시인 이상, 이상의 절친 구본웅과 주변인물들에 대해서도 알아본다. 


<3장 수많은 예술가들의 둥지 서촌>

친일파 시인 노천명, 엄귀비의 지원속에 탄생한 '진명여고', '숙명여고', '양정고교', 수묵화의 거장 이상범, 참여연대 건물, 김광규 시인, 일본인의 생활 편의를 위해 만들어진 '통인시장'에 대해 알 수 있다. 


<4장 도심의 살아 있는 박물관 서촌>

서촌 비밀의 정원이라 불리웠던 '종로구립 박노수미술관', 윤동주의 흔적,  윤동주의 동창생 문익환과 정일권, 겸재 정선의 '수성동 계곡', 단경왕후의 치마바위, 서양화가 이중섭이 마지막으로 살았던 집, 친일파 윤덕영의 '벽수산장', 수많은 궁궐의 여인들이 거쳐간 자수궁, 사회주의 독립운동가 이여성, 이여성의 동생 화가 이쾌대의 '군상Ⅳ', 앨리스 현, 매국 3관왕 이완용의 집, 낙랑구락부 멤버 김수임, 옥인동 대공분실, 박정희를 저격한 김재규의 집의 역사를 둘러본다. 


<5장 우리가 몰랐던 서촌>

이광수의 집, 신익희 가옥, 왕을 낳은 후궁들의 사당 '육상궁', 사도세자 어머니의 사당 '선희궁', 이회영, 김신조 일당의 청와대 습격사건 1·21사태, 인조반정의 역사 '창의문'에 대해 이야기한다. 


지도를 보며 그리 넓지 않은 지역이라 생각하며 읽기 시작했는데, 경복궁 옆이라는 위치 때문에 너무나도 많은 역사가 있었고, 정말 많은 역사적 인물이 거쳐간 장소였다. 


그 중에서도 가장 기억에 남는 이야기는 "광화문 계획광장과 언론권력의 한판 승부" 부분이었다. 1952년 3월 발표된 도시계획에서 세종대로 사거리는 계획광장 가운데 하나였으며, 반지름 150미터의 원형 계획광장 부지로 예정되었다. 서울시는 신규 건축허가를 전혀 내주지 않고 가건물만 허용하고 있었으나 서울 한복판의 토지소유자들이 강력히 반발했다. 박정희 군사정권이 들어서면서 정부와 기업의 이해관계가 공통분모를 찾으면서 대폭 축소 결정되었지만, 여전히 동아일보 사옥은 계획광장에 포함되어 있었다. 

서울시는 대통령의 결제를 받아 여의도 땅을 동아일보사에 3,689평을 2억원도 안되는 가격에 매각하고 사옥을 이전하기로 약속을 받았으나, 동아일보는 이를 어겼다. 동아일보는 1999년 광화문에 신사옥을 완공하고, 여의도에는 별관을 건설하여 2003년 포스코에 1,370억 원을 받고 매각해 버린다. 결국 동아일보사는 경제적 이득을 취하고 일반시민들만 권익 침해를 받았다. 

세종대로의 경우도 마찬가지여서 조선일보사로 인해 계획대로 도로는 이어지지 못하고 갑자기 2개 차선이 사라지게 되어 교통혼잡 비용이 크게 늘어났다.

역사속 박정희정권은 언제나 우리에게 무소불위의 권력자였으나 이들 언론사에는 휘둘리는 모습이 어이가 없었고, 이 언론사들의 권력이 그 때부터 현재까지 이어온 것인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저자 또한 "포도청이 있던 자리에 언론사가 들어서서인지, 마치 옛 포도청의 권력을 언론사가 대신 행사하는 듯한 느낌이 없지 않다." (22쪽)고 표현한다. 


다음으로 인상 깊었던 내용은 친일파에 대한 것들이었다. 수많은 독립운동가를 밝히고 있지만 그 중 숨겨진 친일파들의 행적과 그 후손들이 누리는 이익은 울분을 터트리게 만들었다. 특히 삼청장과 관련한 역사를 읽을 때는 부와 권력을 가진 자들이 숨기려고 하였으나 아직도 일부 진실이 전해지고 있다는 사실에 안도했고, 저자는 그 사실을 담담히 서술하고 있다.


"민영휘의 아버지 민두호는 명성황후의 친척오빠인데, '민 쇠갈고리'로 불릴만큼 소문난 탐관오리였다. 그런 아버지 밑에서 자라난 민영휘는 조선 말기와 일제강점기 때 조선 최고의 부자가 되었고, 그 후손들은 지금도 수많은 재산을 보유하고 있다. 삼청장은 그 가운데 소소한 일부일 뿐이다." 77쪽 


민영휘는 삼청장을 막내아들 민규식에게 물려주고, 2007년 친일반민족행위자 재산조사위원회는 민영휘 후손 명의의 재산을 국고로 환수했다고 한다. 2009년 한국자산관리공사가 이를 공매했고, 결국 중앙일보 홍석현 회장에게 낙찰되기에 이른다. 


"2011년 정부는 중앙일보 홍석현 회장 소유의 삼청장을 매입하는 과정에서 통의동 및 청운동 땅과 맞교환했다 삼청장의 경우 2009년 공매 당시 감정가 약 78억 6천만원이던 것을 홍 회장이 40억 1천만 원에 낙찰받은 것이고, 대체부지로 넘겨준 통의동과 청운동 땅의 감정가는 97억 원이었다. 시세는 그보다 차이가 더 컸다. 특히 통의동 땅은 경복궁역 바로 옆이라 훨씬 높게 거래되었다. 결과적으로 홍석현 회장은 2년 만에 53억여 원의 시세 차익을 본 셈이다. 이 과정에서 정부와 이면거래가 있었을 거라는 의혹이 제기되기도 했다. " 76쪽


홍석현의 부친 홍진기는 일제강점기에 판사를 지낸 친일파이고, 죽산 조봉암의 사형명령에 서명했고, 4.19시위자들에게 발포명령을 내리기도 했다고 한다. 그는 2009년 발간된 '친일파인명사전'에 올라 있다. 삼청장 하나에도 이렇게 질긴 친일의 역사를 옅볼 수 있는 우리 역사가 안타깝다.


손기정 선수의 귀국 일화는 더욱 슬프게 만들었는데, "올림픽 금메달리스트 였던 손기정 선수의 귀국 모습을 살펴보자. 마치 경찰에 체포되어 끌려가는 듯 하지 않는가." (120쪽)라고 표현한 사진에서 손기정 선수는 없고 범죄자만 보였다. 그렇게 손기정 선수는 환영받지도 못했고, 총독부는 그를 몰래 귀국시켜 그 날로부터 늘 감시해왔다고 한다. 


마지막으로 "독도 폭격사건과 독도 영유권"은 충격으로 몰아 넣었는데, 그럴지도 모른다고 짐작하던 것과 이렇게 공식적으로 책을 통해 보는 것은 너무나도 달랐다. 

"미 국무부의 대일강화조약 작성시 1~5차까지의 초안에는 독도가 한국령으로 기술되어 있었다. 그런데 일본의 로비를 받은 미국이 독도를 일본 영토에 포함시키려 했다. 하지만 뉴질랜드와 영국이 반대하자, 일본과 한국 어디에도 포함시키지 않은 채 독도를 아예 빼버렸다. 여기서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 독도는 일본령이라며 미국이 일본을 지지했다는 사실이다. 그들은 독도에 대해 한국령이라고 말한 적이 한번도 없었다. " 177쪽


이러한 글들을 통해 처음에는 가볍게 서울의 풍경을 즐기며 볼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던 독서는 전혀 생각도 못한 곳으로 흘러갔고,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많은 이야기가 서촌의 곳곳에 숨겨져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아이들과 함께 서울의 궁궐만 보러 갈 것이 아니라 서촌의 수많은 이야기를 담고 있는 <서촌을 걷는다>라는 이야기 보따리를 들고 서촌 나들이를 간다면 건물하나에도 많은 흥미로운 이야기를 주고 받게 될 것이고, 사라진 하천과 다리, 건물들을 아이들과 상상해 볼 수 있는 뜻깊은 시간이 될 듯하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