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궐의 우리 새
장석신 지음, 원병오 감수 / 눌와 / 200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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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마다 창덕궁이든 창경궁이든 종묘든 꼭 한 번은 꽃구경을 간다. 한두 시간은 줄곧 돌아다니고, 집에 돌아와서는 종묘에선 100평 남짓한 보랏빛 제비꽃 밭이, 창경궁에선 늙은 살구나무 꽃과 할미꽃, 함박꽃이, 창덕궁에선 매화가 볼만했다고 쓴다. 앵두꽃, 복사꽃, 조팝꽃이 좋았다고 쓴 해도 있다. 한데 새는 그런 적이 없다. 일 년에 한 번 보는 꽃들과 다르게 자주 보는 새들이었으니 그럴밖에. 꽃을 짓뭉개는 까치, 참새, 직박구리나 창덕궁 후원으로 넘어가는 숲에서 본 딱따구리, 창경궁 식물원 앞 연못에 둥둥 떠 있는 원앙이 전부였던 것이다. ‘보는 사람에게만 보인다’라거나 ‘보려는 사람에게만 보인다’라고 해야 할까. 궁궐에 이리 많은 새가 깃들이는 줄 몰랐다. 텃새뿐 아니라 여름새, 겨울새, 나그네새, 길잃은새에게도 ‘궁궐은 낙원’이라는 걸 알았다. 올해 다시 궁궐을 거닌다면 이번에는 새를 찾기 위해 눈으로 사방을 더듬거리겠지. 책에서 한번 보았다고 해서 깝작도요, 꺅도요, 힝둥새 들이 과연 내 눈에 쉬 띌까마는. 

<<궁궐의 우리 나무>> 자매편이라 할 좋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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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에이티브 블록
루 해리 지음, 고두현 옮김 / 토트 / 201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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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디어 블록>>의 자매편. ‘크리에이티브 블록Creative Block’이라고 되어 있기에 오로지 ‘창의력’과 관련된 책으로만 생각했다. 한데 읽어보니, <<아이디어 블록>>이 주로 글쓰기에 집중되어 있는 데 반해 <<크리에이티브 블록>>은 작가의 장벽은 물론 창의력(창조)의 장벽을 넘어서는 처방까지 아우르고 있다. ‘불꽃 튀게 하는 말’ ‘불꽃 튀게 하는 단어’ ‘불꽃 튀게 하는 장소’ 등을 따라가면 (저자의 말마따나)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당신에게서 창조의 샘이 흘러넘치게 하는 실마리를 찾아낼 것”이란다. 이번에도 나는, 창의력이 고갈되면 숟가락을 놔야 하는 현장 전문가들의 조언에 눈길이 더 쏠렸다. 드문드문 배치된 ‘전문가의 조언’이라는 꼭지다.

“글을 쓰다 벽에 부딪힌다면, 그것은 주인공을 잘못 설정했거나 구성 또는 스토리 전개에 문제가 있다는 사실을 나도 모르게 무의식적으로 알려주는 신호다.”
(…)
“그것은 내가 잘못된 방향으로 가고 있으니 차라리 멈추는 게 낫다고 내 마음이 내게 말하는 것과 같습니다. 그래서 내가 더 이상 쓸 수 없을 때까지 집필 속도가 점점 더 느려집니다. 이것은 거의 모든 작가들이 부딪히는 장벽의 형태입니다. 이런 때 나는 계속 글을 써야 한다는 충동에서 벗어나, 쓰고 있는 원고를 깊이 생각해 보거나 이전에 썼던 부분을 다시 다듬습니다.
깜깜한 곳에서 길을 더듬는 사람처럼 전에 썼던 글들을 수백 번 고쳐 읽고, 사소한 부분까지 교정하고 다시 쓰지요. 그러면서 조금씩 잘못된 부분들을 찾아내게 되죠. 그런 후에야 비로소 새로운 글을 쓸 수가 있습니다.”
―니콜라스 스파크스Nicholas Sparks / 소설가

“하지만 좋은 아이디어가 떠오르지 않거나, 어떤 주제에 대해 할 말이 전혀 생각나지 않거나, 혹은 절박할 때 나는 단어 사전을 읽습니다. 이것이 내가 사면초가에 놓였을 때 쓰는 방법입니다.
아무 생각 없이 아무 데나 펴 들고 동의어, 반대어, 파생어들을 읽습니다. 그곳은 수면 바로 아래 마법을 감추어 둔 연못과도 같아요. 나는 이 아둔한 방법을 일주일에 꼭 한 번은 사용합니다.”
―다이안 마이어Diane Meier / 마케팅 담당자

“아무런 아이디어도 떠오르지 않을 때면 나는 항상 일을 멈추고 책을 읽습니다.”라며 그는 “뒤쪽을 멀리 볼수록 앞을 더 멀리 볼 수 있다.”는 윈스턴 처칠의 말을 인용한다.
“이것은 특히 SF소설을 쓸 때 적용되는 방법입니다. 억지로 쓰기보다는 머릿속에 있는 그림을 조용히 묻어 두었다가 그것이 언젠가 기적을 일으키게 하십시오.”라고 그는 덧붙인다.
―그레고리 벤포드Gregory Benford / SF작가

창조의 벽에 대처하는 그의 첫 번째 방법은 그 문제를 철저하게 회피하는 것이다. “<전쟁을 즐겨라>로 대중의 주목을 받고 나서도 나는 적극적으로 일에 매달리지 않았습니다. 매주 원고 마감을 해야 하는 압박감에 시달리고 싶지 않아서였죠. 인터넷에서는 내가 원할 때마다 업데이트할 수 있습니다. 다른 사람의 스케줄에 맞추다 보면 평범한 작품을 쓰게 될까 두렵기도 했죠.” 하지만 그에게도 마감 시간은 있기 마련이고 아이디어가 항상 떠오르는 것도 아니다. “내게 특별한 공식이나 방법 같은 건 없습니다.”
―데이비드 리스David Rees / 만화가

“‘작가의 장벽’은 아직 인정받지 못한 작가들이 자신의 일을 실제보다 부풀려서 힘들게 생각하는 데서 비롯된 통념인 것 같습니다. 예전 한때 길에서 차에 치여 죽은 야생동물을 치우는 일을 한 적이 있죠. 그 일을 시작한 후 일주일 만에 나는 장벽에 부딪혔습니다. 그 일을 회피하려고 안간힘을 썼어요. 아프다는 핑계를 대고, 상사의 트럭에 토하고, 저녁마다 다른 일을 찾아 헤매고 다녔죠. (…) 그 이후로 내 머릿속에는 내가 작가로서 실패하면 다시 그 일을 해야 한다는 생각이 박혀 있습니다. 이런 자극제가 있기 때문에 나는 장벽을 허용할 수가 없는 것이죠.”
―필 걸리Phil Gulley / 수필가·목사·소설가

“내가 창조의 장벽을 겪게 되는 때는 마감 기한이 없을 경우죠.”라고 핑크는 말한다.
그럴 때 그는 어떻게 대처할까?
“한 가지 방법은 다른 작가들이 쓴 대본을 읽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면 최근 유행하는 포맷과 구성을 쉽게 파악할 수 있죠. 남의 대본을 읽으면서 ‘나라면 더 잘 쓸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뛰어나지 않은 작품을 읽음으로써 위안을 받는 거죠. 나를 압도하는 훌륭한 작품을 읽고 나면 글을 쓰기가 더 어려워질 뿐입니다.”
“또 다른 방법은, 하루에 반드시 두 페이지를 쓰기로 하는 것처럼 부담 없는 목표를 세우는 것입니다. 평상시라면 이런 방법이 불성실한 일이겠죠. 하지만 장벽에 부딪혔을 때는 ‘두 페이지나 썼다’고 스스로 만족할 수 있을 겁니다.”
―휴 핑크Hugh Fink / 텔레비전·코미디·작가

“내 경험으로는 영감은 보통 일을 하는 중에 떠오릅니다. 훌륭한 영감이 떠오른 뒤 매우 창조적인 작품을 완성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나머지 대부분은 작업을 해 나가면서 씨름하고, 기뻐하고, 좌절하는 동안 작품을 창조해 내는 평범한 사람들이죠.”
“당신 자신에게 관대해지세요.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내면에 있는 비판자와 완벽주의자가 너무 큰 소리를 내기 때문에 장벽에 부딪히게 됩니다. 당신이 써야 할 글은 앞으로도 많습니다. 오늘 쓰고 있는 글이 당신의 가장 훌륭한 작품이 되어야만 하는 건 아니죠. 그것은 당신이 오늘 쓴 글일 뿐입니다.”
―캐리 뉴커머Carrie Newcomer / 싱어 송 라이터

“그 문제를 무의식 속에 묻어 두고 무의식이 그 문제를 해결해 주기를 기다리는 겁니다. 어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계속 그 문제에 매몰되어 있으면 지나치게 의식의 틀에 갇히는 경우가 많습니다. 어떤 사람의 이름을 분명 알고는 있는데 기억해 내지 못하는 것과도 같죠. 그럴 때면 굳이 이름을 기억해 내려고 애쓰지 않는 게 좋은 방법일 수도 있습니다.”
―로버트 폴스Robert Falls / 뮤지컬 연출자

“창조의 장벽을 만들어내는 요인과, 창조력을 가장 많이 자극하는 요인은 같습니다. 그 요인은 다름 아닌 좌절감입니다. 좌절감으로부터 가장 훌륭한 작품이 나옵니다. 나는 이런 딜레마를 벗어날 수 있는 완벽한 방법을 생각해 냈습니다. 그 방법은 한 번도 실패한 적이 없습니다. 좋아하는 작가의 책을 꺼냅니다. 그는 까마득히 오래전 작가일 수도 있고, 내가 어린 시절에 좋아했던 작가일 수도 있고, 아니면 내가 작년에 즐겨 읽은 작품의 작가일 수도 있습니다. 그런 다음 나는 그 책의 몇 페이지를 베껴 씁니다. 그 페이지의 내용을 그대로 타이핑하는 거죠. 그러면서 나는 그 작가가 어떻게 그 글을 썼는지 알게 됩니다. 오류투성이인 인간이 어떻게 이런 문학적 거장이 될 수 있었는지 깨닫죠. 여러분도 이런 방법을 써보면, 그들 역시 피나는 노력을 했다는 걸 알게 될 것입니다”
“내가 즐겨 쓰는 두 번째 방법이 있습니다. 창조의 장벽에 부딪히면 나는 그 책과 관련된 자료를 조사합니다. 조사하는 동안, 의도적으로 그날 써야 할 내용을 머릿속에서 지워 버린 채 다른 재미있는 주제로 관심을 돌립니다. 50년 전 신문기사를 읽다가 금방 다른 기사를 읽는 식이죠. 한 시간 정도 그렇게 시간을 보냅니다. 그러고 나서 다시 하던 일로 돌아오면 새로운 기분과 활기를 찾을 수 있고 내가 다루는 글에 자극을 주게 됩니다.”
―프랭크 들레이니Frank Delaney / 저널리스트·베스트셀러·작가

“나를 힘들게 하는 것은 ‘작가의 장벽’이 아니라 오히려 ‘작가의 도피’입니다.”
―안나 그로스니클 하인즈Anna Grossnickle Hines / 동화작가


“모든 페이지에 당신이 그토록 바라던 아이디어와 그 아이디어를 행동으로 옮기는 구체적인 방법이 있다”고 자부하는 이 책에서 정확히 28페이지를 남겨둔 시점에 아주 생뚱맞은 ‘불꽃 튀게 하는 단어’가 등장한다. 딱 두 글자다.

“한국”

그다음 페이지에는 게양된 태극기 사진이 있다. 저자 루 해리는 미국인이다. 그의 이메일 workforlou@aol.com으로 물어볼까, 고민 중이다.

“이게 정말로 너희에게 ‘불꽃 튀게 하는 단어’냐? 어떤 점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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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디어 블록
제이슨 르쿨락 지음, 명로진 옮김 / 토트 / 201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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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글쓰기를 업으로 삼으려는 사람이든, 직업상 글쓰기를 피해 갈 수 없는 사람이든, 그리고 글쓰기가 업인 작가든 모두 글을 쓰다 보면 맞닥뜨릴 수밖에 없는 게 있다. 슬럼프, 달리 말하면 ‘작가의 장벽Writer’s Block’이다. <<아이디어 블록>>은 위 세 부류에 더해, 작가들의 세계와 글쓰기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고 자부한다면 어느 누구나 갖고 놀기에 딱 좋은 주사위다. 버스, 지하철, 공원, 카페, 술집, 화장실 할 것 없이 어디에서나 재미나게 읽기에 그만이다. 단, 대중교통이나 공공장소에서 이 책을 펼쳐 들었다간 독서가 아닌, 뭔가 다른 일을 하는 사람으로 오해받을 수 있다는 사실! 이게 저자이자 편집 기획자인 제이슨 르쿨락의 본래 의도인지 모를 일이나.
제이슨 르쿨락은 작가의 장벽 앞에서 괴로워하는 이들을 위해 세 가지의 처방을 내놓는다. 1) 글쓰기 도전 과제: 가능한 한 빨리 글쓰기로 돌아가고 싶다면 짧은 문장으로 된 과제들을 수행해보라는, 2) 불꽃 튀게 하는 말: 단어를 보는 순간, 상상력이 발동해서 글을 써보고 싶을 것이라는, 3) 집필 원칙: 전설적인 작가부터 현재 활발히 활동하는 작가들까지 그들의 글쓰기 전략, 또는 원칙을 한번 눈여겨보라는 것. 사진을 곁들인, ‘글쓰기 도전 과제’는 물론 ‘불꽃 튀게 하는 말’도 정체된 뇌의 공기를 환기시키는 데 아주 좋은 역할을 한다. 하지만 그보다도 내가 꽂힌 것은 ‘집필 원칙’이다. 흥미로웠던 꼭지들 중 몇 개만 추린다(책이, 태생이 그렇다 보니 페이지를 밝힐 방법이 없어 아쉽다).

세상에서 가장 짧은 이야기들
캘리포니아 샌 루이스 오비스포 시에서 발행하는 <뉴 타임즈>란 신문이 있다. 이 신문은 1987년부터 매년 ‘50단어로 된 이야기 공모전’을 후원한다. 이야기는 그야말로 50단어 이내여야 한다. 불가능하다고? 나도 그렇게 생각했지만 제프 위트모어가 지은 당선작을 보고 생각이 바뀌었다.

불륜 이야기
“조심해, 자기야. 그 권총 장전되어 있어.” 그는 침실로 들어오면서 말했다. 그녀는 침대 보드에 기댄 채 쉬고 있었다. “이걸로 자기 와이프를 쏘려고?” “내가 직접 하는 건 너무 위험하지. 전문 킬러를 쓸 생각이야.” “난 어때요?” 그는 낄낄거렸다. “귀엽다. 세상에 어떤 바보가 여자 킬러를 쓰겠어?” 그녀는 총을 들고 조준을 한 채 대답했다. “당신 와이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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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 데리요는 (…) 단어 선택과 문법, 문장 구조에 대해 꼼꼼히 신경을 쓰는 작가다. 데리요는 “한 번에 한 문장씩밖에 쓰지 못한다”고 말할 정도로 글을 쓰면서 세세한 것에 몰두한다.
그는 문학 잡지 ‘파리 리뷰’The Paris Reviews와 인터뷰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소설 <더 네임즈>The Names를 쓸 때 나는 새로운 방식으로 일했습니다. 문장 하나를 끝내고 나면―그게 3줄짜리라 해도―새로운 페이지에 새 문장을 쓰는 것입니다. 꽉 찬 페이지가 없게 말이죠. 이렇게 쓰다 보니 문장이 더 명확하게 보이더군요. 나중에 수정할 때도 훨씬 쉽고 효과적이었죠. 종이 위의 여백은 내가 쓴 부분을 좀 더 집중해서 볼 수 있게 해 주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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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어빙은 (…) ‘뉴욕타임스’ 기자가 그에게 어떤 식으로 소설을 쓰는지 물어봤을 때 그는 “마지막 문장을 제일 먼저 쓰곤 한다”고 답했다.
“나는 끝 부분을 먼저 쓰기 시작합니다. 작가란 쓰기 시작해야 비로소 무엇을 할지 알게 되죠. 아무리 머릿속으로만 알고 있어 봐야 소용없습니다. 어떻게 끝내야 할지 모른다면, 뭔가 써야겠다는 목적을 갖고 글을 시작할 수 있을까요?”
어빙에겐 이 방법이 신기하게도 잘 맞는 것 같다. 어떤 작가들은 이야기를 써 나가는 도중에 결말이 떠오른다고 말한다. 당신은 어떤가? 어빙의 방식이 당신에게 맞을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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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는 것에 대해서 써라?
초보 작가들이 가장 흔하게 듣는 말이 ‘아는 것에 대해 써라’다. 자신이 직접 겪은 일을 써야 진실하고 솔직한 작품, 즉 ‘살아 있는’ 작품이 나온다는 것이다. 그러나 애니 프루는 아는 것에 대해서만 쓰라고 하는 것은 ‘가장 구리고 한심한 조언’이라고 못 박는다.
“아는 것에 대해서만 쓴다면 작가는 발전하지 못한다. 다른 나라의 말이라든가, 다른 사람에 대한 흥미, 탐험과, 여행에 대한 욕망, 체험하려는 마음 같은 것들을 더 이상 담아낼 수 없게 된다. 우리 자신만이 가진 세계 속으로 점점 더 꼬여 들어가게 될 뿐이다. 아는 것이 아니라, 흥미를 느낄 만한 것에 대해 써야 한다.”
신시아 오지크는 애니 프루와 같은 의견이다.
“세상은 우리가 갇혀 있는 우물보다 훨씬 더 크고 넓고 복잡하다. 우리는 상상력을 자극하고 선동해야 한다.”
아일랜드 소설가 컬럼 맥캔은 이 문제에 대해 가장 균형 잡힌 의견을 내놓았다.
“당신이 모르는 것에 대해서 쓰면서 알고 있는 사실을 새롭게 발견하라. 당신이 알고 있는 것만 고집스레 쓸 수도 있다. 그러나 당신이 모르는 그 무엇과 맞서는 것을 통해, 당신은 자유를 향해 나아가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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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니 프루는 소설을 쓰기 전에 광범위한 조사를 한다. 퓰리처 상 수상작인 <시핑뉴스>를 비롯해 <포스트카드>, <아코디온 범죄>Accordion Crimes 등을 쓸 때도 마찬가지였다. 그렇다고 프루가 매일 도서관에서 시간을 보내는 것은 아니다.
“현장은 늘 책보다 중요하다.”
그녀는 ‘뉴욕 타임스’에 기고한 영감에 대한 글을 통해 이렇게 밝혔다.
“어떤 버섯에서 마라스키노 체리(오스트리아 산 야생 버찌에 설탕을 뿌린 것―옮긴이 주) 냄새가 나는가? 어떤 버섯에서 죽은 쥐 냄새가 나는가? 작가라면 이런 것도 구별할 줄 알아야 한다.”
애니 프루는 여행을 많이 하는 작가다. 도시의 골목길이나 시골의 오솔길도 마다 않는다. 헌책방이나 벼룩시장에도 자주 들른다. 이 모든 경험은 그녀에게 소중한 영감의 원천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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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 일기 쓰기
이사벨 아옌데부터 스폴딩 그레이, 클라이브 바커에 이르기까지 많은 작가들이 꿈에서 영감을 얻는다고 말한다. 잠재의식에서 소설 책 한 권이 쏟아져 나온다고 주장하는 작가들도 있다. 정말 행운아다.
<지킬 박사와 하이드 씨>를 쓴 로버트 스티븐슨은 이 소설을 3일 만에 썼다고 주장했다. 밤이면 생생한 꿈을 꾸고 아침에 일어나 글을 썼다는 것이다. 꿈속에서 소설의 전체 구조까지 암시받았다나.
그레이엄 그린은 연속극처럼 꿈을 꾼다고 했다. 몇 주 동안 계속 이어지는 꿈을 부분 부분 꾸었는데 나중에 다 이어 보니 한 편의 이야기가 됐다는 것이다.
에이미 탄의 말이 압권이다. “소설에 쓸 이야기 거리가 필요하면 그냥 자면 됩니다. 꿈에 나타나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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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즈의 신화
편집자인 나는, ‘머릿속에’ 소설이 있다고 말하는 사람들을 많이 만난다. 그들은 ‘곧 뮤즈가 와서 이야기를 쏟아 놓을 것’이라고 말한다. 이런 사람들이 책을 내면 내 손에 장을 지진다.
작가는 뮤즈 따위를 기다릴 시간이 없다. 진짜 작가들은 싫든 좋든 매일 쓰는 사람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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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프튼은 시나리오 작가를 하다 미스터리 소설가로 변신했다. 영화 제작자나 감독들이 이러쿵저러쿵 하는 소리를 듣기 싫었기 때문이다.
“사무실에 앉아서 스물여섯 살 먹은 친구들이 이렇게 써라. 저렇게 써라 하는 걸 참을 수가 없었죠.”
(…)
그래프튼은 슬럼프를 반기는 별난 작가다. 젊은 작가들에게 “작가의 장벽을 글을 더 잘 쓰기 위한 방편으로 삼으라”고 충고한다.
“슬럼프를 끔찍한 일로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물론 작가의 정신을 갉아먹고 힘 빠지게 하는 건 사실이죠. 하지만 정신적인 활동을 멈추고 조용히 물러나서 장벽이 주는 메시지가 뭔지 잘 살펴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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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에서 시작하기
이상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소설의 끝부분부터 쓰는 작가들이 의외로 많다. 캐서린 앤 포터는 말했다. “나는 이야기를 어떻게 끝낼지 모를 때는 아예 시작을 하지 않는다. 나는 항상 내 소설의 마지막 줄, 마지막 문장, 마지막 페이지를 먼저 써 놓는다.”
토니 모리슨도 마찬가지다.
“소설의 첫 페이지와 마지막 페이지를 제일 먼저 써 놓는다. 처음과 끝은 늘 깊은 관계를 맺고, 그 다음에 전개되는 부분에 영향을 미치게 되어 있다.”
끝부분을 먼저 써 놓으면, 작가는 인물의 성격과 이야기 전개에 대해 큰 고민 하나를 덜게 된다. 정해진 길을 따라 가면 되기 때문이다.

산을 오르는 길이 하나가 아니듯 글쓰기 노하우도 전 세계의 작가들만큼이나 그 가짓수가 많을 것이다. 이 책은 천 갈래 만 갈래나 되는 그 길 중 몇몇을 보여주고 있을 뿐이다. (과제를 풀어가며, 상상력을 틔워가는 중에) 작가의 장벽을 뛰어넘는 데 참고로 삼으라는 것. “이 책의 결론은 하나다. 무조건 써라. 당신의 능력을 의심하지 마라. 당신의 상상력을 과소평가하지 마라. 쓰지 않는 것에 대해 변명하지 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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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과사전의 한 항목에서 관련 항목으로 계속해서 옮겨가듯 반反/半계획적으로 이 책에서 저 책으로 읽어나가는 건 나름 괜찮은 독서방법이다. 책 읽을 시간은 넉넉하고 딱히 읽고 싶은 책이 없을 때 도서관에서 해보면 딱이다. 그간 출간된 걸 모르고 있다가 <<마이클 잭슨에서 데리다까지>>를 신간서가에서 발견하였다. 벤야민, 들뢰즈, 보드리야르, 데리다의 철학을 사진, 책, 영화, 미술, 건축, 광고, 패션 등과 엮어나가며 즐겁게 읽다가 문득 저자를 번역자로만 알아왔다는 데 생각이 미쳤다.

 

찾아보니 가장 가까운 서가에 <<시선은 권력이다>>가 꽂혀 있었다. 판옵티콘, 푸코 들은 건너뛰고 하다 보니 요즘 관심을 두고 있는 <눈 이야기> 장이 눈에 띄었다. 이 장에서는 너무나도 잘 알려진 오이디푸스, 성경, 바타유의 <눈 이야기>에 이어 <<모래 사나이>>가 다루어진다(프로이트는 <섬뜩함>이라는 논문에서 안구 상실에 대한 공포를 정신분석학적 관점에서 ‘거세 콤플렉스’로 설명하는데, ‘눈 모티브’를 갖고 있는 <<모래 사나이>>도 <오이디푸스 왕>과 같은 관점에서 분석한다).

 

E. T. A. 호프만. 검색해보니 마침 다른 층에 <<모래 사나이>>가 있었다. 작품에 대한 해설과 지은이에 대한 소개 글은 건너뛰고 바로 소설을 읽어 들어간다. 소설의 지배적인 요소는 ‘광기’와 ‘눈 모티브’다. 이 두 가지는 소설의 처음부터 끝까지 지속적으로 결합한다. 내면의 눈이 고장난 주인공 나타나엘은 끝끝내 자기 아닌 것을 바로보지 못하고 ‘광기’에 휘둘려서 파멸하고 만다.

    

1. <모래 사나이> 이야기
유모는 이렇게 대답해 주었어.
“어이구, 나타나엘. 넌 아직 그걸 모르고 있었어? 모래 사나이는 아주 나쁜 사람이지. 애들이 자러 가기 싫어하면 나타나서 애들 눈에 모래를 한 줌 뿌린단다. 그리고 눈알이 피투성이가 되어 튀어나오면 그것을 주워서 자루에 담아 자기 새끼들에게 먹이려고 반달로 돌아가지. 달에 있는 새끼들은 둥지에 앉아 올빼미처럼 구부러진 부리로 말 안 듣는 어린 애들의 눈을 콕콕 쪼아 먹는단다.”
그러자 내 머릿속에는 소름이 끼치도록 잔인한 모래 사나이의 형상이 떠올랐어. 그 뒤로 저녁에 뚜벅뚜벅 계단을 올라오는 소리가 들리면, 나는 무서움과 놀라움에 온몸을 떨었어. 어머니는 내가 눈물을 흘리며 “모래 사나이, 모래 사나이” 하고 떠듬떠듬 외치는 소리 말고 다른 말은 들을 수 없었어. 이어 난 곧 침실로 뛰어 들어갔지. 그리고 거의 밤새도록 모래 사나이의 무서운 환영에 시달렸어.(51~52쪽) 

2. 안경
그러나 코폴라는 방 안으로 쑥 들어와서 찡그린 큰 입으로 흉측한 웃음을 짓고는 긴 잿빛 눈썹 아래 작은 눈을 쏘는 듯이 번득이면서 쉰 목소리로 말했다.
“아하, 기압계가 필요 없어요? 기압계가 필요 없다구요! 멋진 눈도 갖고 왔어요. 멋진 눈 말이오!”
나타나엘은 깜짝 놀라 소리쳤다.
“엄청난 분이군요. 아니 당신이 어떻게 눈을 가지고 있어요? 눈, 눈알 말이오?”
그런데 그 순간 코폴라는 기압계를 옆으로 내려놓고 커다란 외투 주머니에 손을 넣어 작은 손잡이가 달린 안경과 보통 안경들을 꺼내 책상 위에 올려놓았다.
“자, 안경, 코에 걸치는 안경이오. 이것들이 내가 가져온 눈이오. 아름다운 눈이죠!”
그러면서 코폴라가 계속 안경을 꺼내놓자, 책상 위는 온통 이상한 빛을 띠면서 번쩍거리기 시작했다. 수천 개의 눈알이 경련을 하듯 실룩거리며 나타나엘을 쳐다보고 있었다. 그런데 나타나엘은 책상에서 눈을 돌릴 수 없었다. 코폴라는 더 많은 안경을 꺼내놓았고, 번쩍거리는 안경알들은 이글거리는 눈알처럼 점점 더 사납게 서로 뒤엉켜 튀어 오르며 피처럼 붉은 빛을 나타나엘의 가슴에 쏘아댔다. 나타나엘은 끔찍한 공포에 휩싸여 소리쳤다.
“그만해요, 그만! 이 무서운 인간아!”(91~92쪽) 

3. 망원경(올림피아를 보는)
나타나엘은 매우 깔끔하게 제작된, 호주머니에 넣고 다닐 수 있는 작은 휴대용 망원경 하나를 골라 들고서 한번 시험을 해보려고 창밖을 내다보았다. (…) 무심코 그는 스팔란차니 교수의 집 안을 들여다보았다. 올림피아는 평소와 마찬가지로 조그만 탁자 위에 두 팔을 올려놓고 두 손을 포갠 채 앉아 있었다. 이제야 나타나엘은 올림피아의 아름다운 얼굴을 볼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그녀의 두 눈은 이상하게도 경직되고 생기 없어 보였다. 하지만 나타나엘이 망원경을 통해 더욱 선명히 바라보자, 올림피아의 두 눈에는 젖은 달빛이 떠오르는 것 같았다. 그제야 시력이 생생히 살아나는 것 같았고, 그녀의 눈빛은 점점 더 생기 있게 불타올랐다. 나타나엘은 마술에 걸린 듯 창가에 기대어 천상의 아름다움을 지닌 올림피아를 마냥 바라보았다.(93~94쪽) 

4. 검은 눈구멍, 두 개의 눈알
나타나엘은 놀란 나머지 그 자리에 얼어붙은 듯이 서 있었다. 죽은 사람처럼 창백한 올림피아의 밀랍 얼굴에 눈 대신 검은 구멍만 나 있는 것을 그는 또렷이 보았던 것이다. 올림피아는 생명 없는 인형이었다.(110쪽)
그때 나타나엘은 바닥에 피투성이가 되어 뒹굴면서 그를 바라보는 두 개의 눈알을 보았다. 스팔란차니는 다치지 않은 손으로 두 눈알을 집어 나타나엘에게 던졌고, 눈알은 그의 가슴에 명중했다. 그 순간 광기의 맹렬히 불타는 발톱이 그를 움켜잡았고, 내면까지 파고들어 모든 감각과 생각을 갈기갈기 찢어놓았다.(111쪽) 

5. 망원경(클라라를 보는)
나타나엘은 기계적으로 옆주머니를 더듬었다. 그는 코폴라의 망원경을 꺼내서 옆을 바라보았다. 망원경 앞에는 클라라가 서 있었다. 갑자기 나타나엘의 맥박과 혈관이 경련을 일으키는 듯이 움찔했다. 그는 아주 창백한 얼굴로 클라라를 응시했다. 그러나 곧 이리저리 희번덕거리는 두 눈알 사이에서 불꽃이 뿜어져 나왔으며, 나타나엘은 마치 쫓기는 짐승처럼 사납게 울부짖었다. 그리고는 허공으로 뛰어오르면서 소름 끼치는 웃음소리와 더불어 날카로운 목소리로 외쳤다.
“나무인형아, 빙빙 돌아라. 나무인형아, 빙빙 돌아라.”
그리고는 나타나엘은 거센 힘으로 클라라를 붙잡더니 탑 아래로 내던지려 했다.(116~117쪽)

독일의 후기 낭만주의를 대표하는 작가 E. T. A. 호프만은 유능한 법률가에다 작곡가, 음악비평가, 극장의 음악장, 캐리커처 화가로도 이름을 날렸다고 한다. 그와 같은 다재다능함을 바탕으로 그는, 낮에는 법률고문관으로 일하고 밤에는 글을 쓰거나, 문학을 논하는 ‘세라피온의 밤’이라는 모임에 참석하는 이중생활을 열정적으로 하다 그만 마흔여섯에 죽고 말았다. 

<<모래 사나이>>는 아주 흥미로웠다. 그러니 이제 전작주의자처럼 <호두까기 인형>의 기초가 되었다는 호프만의 동화 <호두까기 인형과 생쥐 왕>으로 다시 링크를 걸어봐야 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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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방의 빛 - 시인이 말하는 호퍼
마크 스트랜드 지음, 박상미 옮김 / 한길아트 / 2007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공간과 인물이 낯익다(고 생각한다). 한데 인물에게서 생동감이 잘 느껴지지 않는다. 한 자세 그대로, 멈춘 시간을 홀로 견디고 있는 사람 같다. 마네킹처럼 보일 때조차 있다. 게다가 (낮이건 밤이건) 새벽빛이 감도는 듯 창백하다고 할 이 묘한 분위기는 대체 뭐란 말인가. 다시 낯설다.

호퍼의 그림을 볼 때마다 그렇게 느꼈다. 비로소 마크 스트랜드의 글에서 그 의문을 해소시킬 실마리를 찾았다.

호퍼의 그림은 짧고 고립된 순간의 표현이다. 이 순간은 방금 무슨 일이 있었는지 분위기를 전달하면서 앞으로 무슨 일이 일어날지를 암시한다. 내용보다는 분위기를 보여주고 증거보다는 실마리를 제시한다. 호퍼의 그림은 암시로 가득 차 있다. 그림이 연극적일수록 앞으로 무슨 일이 일어날까 궁금해지고, 그림이 현실에 가까울수록 전에 어떤 일이 있었는지 생각하게 된다. 여행에 대한 생각이 마음속에서 떠나지 않을 때, 그림은 우리를 더욱 끌어들인다.

‘고립된 순간’, 말하자면 시간의 한 켜만 보여준다는 것인데,

호퍼의 그림에는 기다림이 많다. 호퍼의 그림 속 사람들은 아무 할 일도 없는 것처럼 보인다. 배역配役으로부터 버림받은 등장인물처럼, 이제 기다림의 공간 속에 홀로 갇힌 존재들이다. 그들에게 특별히 가야 할 곳도, 미래도 없다.

그렇다면 그림 속 인물들은 ‘홀로 갇힌 존재들’일수밖에 없겠다.

호퍼의 그림에서 빛은 형태에 드리워지지 않는다. 그보다 그의 그림은 형태로 가장한 빛에 의해 구성된다. 그의 빛, 특히 실내의 빛은 그 흐름이 느껴지지 않는데도 신빙성이 있다. 모네의 빛과는 정반대이다. 모네의 빛은 사방으로 맹렬하게 퍼짐으로써 모든 것을 비물질적으로 만든다. (…)
호퍼의 빛이 물체에 달라붙어 있는 것같이 보이는 이유 중 하나는, 그가 인정하듯이 그의 그림들이 기록과 기억에 의해 그려진 것이기 때문이다. 사물과 사물이 어떻게 배치되어 있었는가에 대한 기억은 공기나 빛에 대한 기억보다 강하기 마련이다. 우리가 대개 실외보다는 실내를 더 잘 기억하는 것과 같은 이유이다.
빛을 포착하기 위해서는 밖에 나가서 그림을 그려야 하는데, 호퍼는 밖에서 유화작업을 하지 않았다. 호퍼처럼 천천히 작업하는 화가에게 빛은 너무 빨리 바뀌었던 것이다. 자세한 묘사가 사라지고 있는 그의 세계와 어울리는 빛을 표현하기 위해서 그는 상상력이 필요했고, 이러한 작업에는 작업실이 최적이었다. 그의 그림은 즉흥적이기보다는 조심스럽고 꼼꼼하게 계획된 것이다.
마찬가지로 그의 빛은 축하의 빛이라기보다는 기념의 빛이다. 호퍼의 빛이 기하학적인 견고성을 갖추게 된 것은 그가 빛이 흩어지지 않도록 빛에 어떤 생명을 주려고 노력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러한 빛은 오히려 빛이 저항하고 있는 대상을 떠올리게 할 뿐이다. 그에게 빛은 결국 어둠이라는 더욱 강한 세력의 휴지休止 상태에 지나지 않는다.


‘어둠이라는 더욱 강한 세력의 휴지休止 상태에 지나지 않는’, ‘형태로 가장한 빛에 의해 구성’되며 ‘기록과 기억에 의해 그려진’ ‘상상력’의 그림이라! 그래서 창백하게 느껴졌구나. 

여러 의문이 줄줄이 풀리니 왠지 후련하다. (호퍼에게 영향을 받았다고 하며) 미국의 계관시인이기도 한 마크 스트랜드의 탁월한 안목에 경의를 표한다. 한두 번 감탄한 게 아니었고, <빈방의 빛>에 대한 해석에는 찌릿할 정도였으니. 


1963년에 그려진 호퍼의 마지막 걸작인 이 그림은 우리가 없는 세상의 모습이다. 단순히 우리를 제외한 공간이 아닌, 우리를 비워낸 공간인 것이다. 세피아색 벽에 떨어진 노란색의 바랜 빛은 그 순간성의 마지막 장면場面을 상연하는 듯하니, 그만의 완벽한 서사도 이제 막을 내리고 있는 것이다.
 

호퍼의 그림에 대한 ‘스트랜드라는 시인의 특별한 시각을 담은 책’이라고 한 <옮긴이의 글>까지 마저 읽고, 책머리부터 다시 후루룩 그림들을 훑어본다. 여러 날 여러 번 보았는데도 역시 “호퍼의 그림은 무척 낯익은 장면들이지만, 볼수록 낯설고 심지어는 완전히 생소한 장면처럼 느껴진다.” 그래도 오래 들여다보는 그림이 있다. 


<바다 옆의 방>(19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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