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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에이티브 블록
루 해리 지음, 고두현 옮김 / 토트 / 2010년 2월
평점 :
품절
<<아이디어 블록>>의 자매편. ‘크리에이티브 블록Creative Block’이라고 되어 있기에 오로지 ‘창의력’과 관련된 책으로만 생각했다. 한데 읽어보니, <<아이디어 블록>>이 주로 글쓰기에 집중되어 있는 데 반해 <<크리에이티브 블록>>은 작가의 장벽은 물론 창의력(창조)의 장벽을 넘어서는 처방까지 아우르고 있다. ‘불꽃 튀게 하는 말’ ‘불꽃 튀게 하는 단어’ ‘불꽃 튀게 하는 장소’ 등을 따라가면 (저자의 말마따나)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당신에게서 창조의 샘이 흘러넘치게 하는 실마리를 찾아낼 것”이란다. 이번에도 나는, 창의력이 고갈되면 숟가락을 놔야 하는 현장 전문가들의 조언에 눈길이 더 쏠렸다. 드문드문 배치된 ‘전문가의 조언’이라는 꼭지다.
“글을 쓰다 벽에 부딪힌다면, 그것은 주인공을 잘못 설정했거나 구성 또는 스토리 전개에 문제가 있다는 사실을 나도 모르게 무의식적으로 알려주는 신호다.”
(…)
“그것은 내가 잘못된 방향으로 가고 있으니 차라리 멈추는 게 낫다고 내 마음이 내게 말하는 것과 같습니다. 그래서 내가 더 이상 쓸 수 없을 때까지 집필 속도가 점점 더 느려집니다. 이것은 거의 모든 작가들이 부딪히는 장벽의 형태입니다. 이런 때 나는 계속 글을 써야 한다는 충동에서 벗어나, 쓰고 있는 원고를 깊이 생각해 보거나 이전에 썼던 부분을 다시 다듬습니다.
깜깜한 곳에서 길을 더듬는 사람처럼 전에 썼던 글들을 수백 번 고쳐 읽고, 사소한 부분까지 교정하고 다시 쓰지요. 그러면서 조금씩 잘못된 부분들을 찾아내게 되죠. 그런 후에야 비로소 새로운 글을 쓸 수가 있습니다.”
―니콜라스 스파크스Nicholas Sparks / 소설가
“하지만 좋은 아이디어가 떠오르지 않거나, 어떤 주제에 대해 할 말이 전혀 생각나지 않거나, 혹은 절박할 때 나는 단어 사전을 읽습니다. 이것이 내가 사면초가에 놓였을 때 쓰는 방법입니다.
아무 생각 없이 아무 데나 펴 들고 동의어, 반대어, 파생어들을 읽습니다. 그곳은 수면 바로 아래 마법을 감추어 둔 연못과도 같아요. 나는 이 아둔한 방법을 일주일에 꼭 한 번은 사용합니다.”
―다이안 마이어Diane Meier / 마케팅 담당자
“아무런 아이디어도 떠오르지 않을 때면 나는 항상 일을 멈추고 책을 읽습니다.”라며 그는 “뒤쪽을 멀리 볼수록 앞을 더 멀리 볼 수 있다.”는 윈스턴 처칠의 말을 인용한다.
“이것은 특히 SF소설을 쓸 때 적용되는 방법입니다. 억지로 쓰기보다는 머릿속에 있는 그림을 조용히 묻어 두었다가 그것이 언젠가 기적을 일으키게 하십시오.”라고 그는 덧붙인다.
―그레고리 벤포드Gregory Benford / SF작가
창조의 벽에 대처하는 그의 첫 번째 방법은 그 문제를 철저하게 회피하는 것이다. “<전쟁을 즐겨라>로 대중의 주목을 받고 나서도 나는 적극적으로 일에 매달리지 않았습니다. 매주 원고 마감을 해야 하는 압박감에 시달리고 싶지 않아서였죠. 인터넷에서는 내가 원할 때마다 업데이트할 수 있습니다. 다른 사람의 스케줄에 맞추다 보면 평범한 작품을 쓰게 될까 두렵기도 했죠.” 하지만 그에게도 마감 시간은 있기 마련이고 아이디어가 항상 떠오르는 것도 아니다. “내게 특별한 공식이나 방법 같은 건 없습니다.”
―데이비드 리스David Rees / 만화가
“‘작가의 장벽’은 아직 인정받지 못한 작가들이 자신의 일을 실제보다 부풀려서 힘들게 생각하는 데서 비롯된 통념인 것 같습니다. 예전 한때 길에서 차에 치여 죽은 야생동물을 치우는 일을 한 적이 있죠. 그 일을 시작한 후 일주일 만에 나는 장벽에 부딪혔습니다. 그 일을 회피하려고 안간힘을 썼어요. 아프다는 핑계를 대고, 상사의 트럭에 토하고, 저녁마다 다른 일을 찾아 헤매고 다녔죠. (…) 그 이후로 내 머릿속에는 내가 작가로서 실패하면 다시 그 일을 해야 한다는 생각이 박혀 있습니다. 이런 자극제가 있기 때문에 나는 장벽을 허용할 수가 없는 것이죠.”
―필 걸리Phil Gulley / 수필가·목사·소설가
“내가 창조의 장벽을 겪게 되는 때는 마감 기한이 없을 경우죠.”라고 핑크는 말한다.
그럴 때 그는 어떻게 대처할까?
“한 가지 방법은 다른 작가들이 쓴 대본을 읽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면 최근 유행하는 포맷과 구성을 쉽게 파악할 수 있죠. 남의 대본을 읽으면서 ‘나라면 더 잘 쓸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뛰어나지 않은 작품을 읽음으로써 위안을 받는 거죠. 나를 압도하는 훌륭한 작품을 읽고 나면 글을 쓰기가 더 어려워질 뿐입니다.”
“또 다른 방법은, 하루에 반드시 두 페이지를 쓰기로 하는 것처럼 부담 없는 목표를 세우는 것입니다. 평상시라면 이런 방법이 불성실한 일이겠죠. 하지만 장벽에 부딪혔을 때는 ‘두 페이지나 썼다’고 스스로 만족할 수 있을 겁니다.”
―휴 핑크Hugh Fink / 텔레비전·코미디·작가
“내 경험으로는 영감은 보통 일을 하는 중에 떠오릅니다. 훌륭한 영감이 떠오른 뒤 매우 창조적인 작품을 완성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나머지 대부분은 작업을 해 나가면서 씨름하고, 기뻐하고, 좌절하는 동안 작품을 창조해 내는 평범한 사람들이죠.”
“당신 자신에게 관대해지세요.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내면에 있는 비판자와 완벽주의자가 너무 큰 소리를 내기 때문에 장벽에 부딪히게 됩니다. 당신이 써야 할 글은 앞으로도 많습니다. 오늘 쓰고 있는 글이 당신의 가장 훌륭한 작품이 되어야만 하는 건 아니죠. 그것은 당신이 오늘 쓴 글일 뿐입니다.”
―캐리 뉴커머Carrie Newcomer / 싱어 송 라이터
“그 문제를 무의식 속에 묻어 두고 무의식이 그 문제를 해결해 주기를 기다리는 겁니다. 어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계속 그 문제에 매몰되어 있으면 지나치게 의식의 틀에 갇히는 경우가 많습니다. 어떤 사람의 이름을 분명 알고는 있는데 기억해 내지 못하는 것과도 같죠. 그럴 때면 굳이 이름을 기억해 내려고 애쓰지 않는 게 좋은 방법일 수도 있습니다.”
―로버트 폴스Robert Falls / 뮤지컬 연출자
“창조의 장벽을 만들어내는 요인과, 창조력을 가장 많이 자극하는 요인은 같습니다. 그 요인은 다름 아닌 좌절감입니다. 좌절감으로부터 가장 훌륭한 작품이 나옵니다. 나는 이런 딜레마를 벗어날 수 있는 완벽한 방법을 생각해 냈습니다. 그 방법은 한 번도 실패한 적이 없습니다. 좋아하는 작가의 책을 꺼냅니다. 그는 까마득히 오래전 작가일 수도 있고, 내가 어린 시절에 좋아했던 작가일 수도 있고, 아니면 내가 작년에 즐겨 읽은 작품의 작가일 수도 있습니다. 그런 다음 나는 그 책의 몇 페이지를 베껴 씁니다. 그 페이지의 내용을 그대로 타이핑하는 거죠. 그러면서 나는 그 작가가 어떻게 그 글을 썼는지 알게 됩니다. 오류투성이인 인간이 어떻게 이런 문학적 거장이 될 수 있었는지 깨닫죠. 여러분도 이런 방법을 써보면, 그들 역시 피나는 노력을 했다는 걸 알게 될 것입니다”
“내가 즐겨 쓰는 두 번째 방법이 있습니다. 창조의 장벽에 부딪히면 나는 그 책과 관련된 자료를 조사합니다. 조사하는 동안, 의도적으로 그날 써야 할 내용을 머릿속에서 지워 버린 채 다른 재미있는 주제로 관심을 돌립니다. 50년 전 신문기사를 읽다가 금방 다른 기사를 읽는 식이죠. 한 시간 정도 그렇게 시간을 보냅니다. 그러고 나서 다시 하던 일로 돌아오면 새로운 기분과 활기를 찾을 수 있고 내가 다루는 글에 자극을 주게 됩니다.”
―프랭크 들레이니Frank Delaney / 저널리스트·베스트셀러·작가
“나를 힘들게 하는 것은 ‘작가의 장벽’이 아니라 오히려 ‘작가의 도피’입니다.”
―안나 그로스니클 하인즈Anna Grossnickle Hines / 동화작가
“모든 페이지에 당신이 그토록 바라던 아이디어와 그 아이디어를 행동으로 옮기는 구체적인 방법이 있다”고 자부하는 이 책에서 정확히 28페이지를 남겨둔 시점에 아주 생뚱맞은 ‘불꽃 튀게 하는 단어’가 등장한다. 딱 두 글자다.
“한국”
그다음 페이지에는 게양된 태극기 사진이 있다. 저자 루 해리는 미국인이다. 그의 이메일 workforlou@aol.com으로 물어볼까, 고민 중이다.
“이게 정말로 너희에게 ‘불꽃 튀게 하는 단어’냐? 어떤 점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