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디어 블록
제이슨 르쿨락 지음, 명로진 옮김 / 토트 / 2010년 2월
평점 :
절판



글쓰기를 업으로 삼으려는 사람이든, 직업상 글쓰기를 피해 갈 수 없는 사람이든, 그리고 글쓰기가 업인 작가든 모두 글을 쓰다 보면 맞닥뜨릴 수밖에 없는 게 있다. 슬럼프, 달리 말하면 ‘작가의 장벽Writer’s Block’이다. <<아이디어 블록>>은 위 세 부류에 더해, 작가들의 세계와 글쓰기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고 자부한다면 어느 누구나 갖고 놀기에 딱 좋은 주사위다. 버스, 지하철, 공원, 카페, 술집, 화장실 할 것 없이 어디에서나 재미나게 읽기에 그만이다. 단, 대중교통이나 공공장소에서 이 책을 펼쳐 들었다간 독서가 아닌, 뭔가 다른 일을 하는 사람으로 오해받을 수 있다는 사실! 이게 저자이자 편집 기획자인 제이슨 르쿨락의 본래 의도인지 모를 일이나.
제이슨 르쿨락은 작가의 장벽 앞에서 괴로워하는 이들을 위해 세 가지의 처방을 내놓는다. 1) 글쓰기 도전 과제: 가능한 한 빨리 글쓰기로 돌아가고 싶다면 짧은 문장으로 된 과제들을 수행해보라는, 2) 불꽃 튀게 하는 말: 단어를 보는 순간, 상상력이 발동해서 글을 써보고 싶을 것이라는, 3) 집필 원칙: 전설적인 작가부터 현재 활발히 활동하는 작가들까지 그들의 글쓰기 전략, 또는 원칙을 한번 눈여겨보라는 것. 사진을 곁들인, ‘글쓰기 도전 과제’는 물론 ‘불꽃 튀게 하는 말’도 정체된 뇌의 공기를 환기시키는 데 아주 좋은 역할을 한다. 하지만 그보다도 내가 꽂힌 것은 ‘집필 원칙’이다. 흥미로웠던 꼭지들 중 몇 개만 추린다(책이, 태생이 그렇다 보니 페이지를 밝힐 방법이 없어 아쉽다).

세상에서 가장 짧은 이야기들
캘리포니아 샌 루이스 오비스포 시에서 발행하는 <뉴 타임즈>란 신문이 있다. 이 신문은 1987년부터 매년 ‘50단어로 된 이야기 공모전’을 후원한다. 이야기는 그야말로 50단어 이내여야 한다. 불가능하다고? 나도 그렇게 생각했지만 제프 위트모어가 지은 당선작을 보고 생각이 바뀌었다.

불륜 이야기
“조심해, 자기야. 그 권총 장전되어 있어.” 그는 침실로 들어오면서 말했다. 그녀는 침대 보드에 기댄 채 쉬고 있었다. “이걸로 자기 와이프를 쏘려고?” “내가 직접 하는 건 너무 위험하지. 전문 킬러를 쓸 생각이야.” “난 어때요?” 그는 낄낄거렸다. “귀엽다. 세상에 어떤 바보가 여자 킬러를 쓰겠어?” 그녀는 총을 들고 조준을 한 채 대답했다. “당신 와이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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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 데리요는 (…) 단어 선택과 문법, 문장 구조에 대해 꼼꼼히 신경을 쓰는 작가다. 데리요는 “한 번에 한 문장씩밖에 쓰지 못한다”고 말할 정도로 글을 쓰면서 세세한 것에 몰두한다.
그는 문학 잡지 ‘파리 리뷰’The Paris Reviews와 인터뷰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소설 <더 네임즈>The Names를 쓸 때 나는 새로운 방식으로 일했습니다. 문장 하나를 끝내고 나면―그게 3줄짜리라 해도―새로운 페이지에 새 문장을 쓰는 것입니다. 꽉 찬 페이지가 없게 말이죠. 이렇게 쓰다 보니 문장이 더 명확하게 보이더군요. 나중에 수정할 때도 훨씬 쉽고 효과적이었죠. 종이 위의 여백은 내가 쓴 부분을 좀 더 집중해서 볼 수 있게 해 주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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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어빙은 (…) ‘뉴욕타임스’ 기자가 그에게 어떤 식으로 소설을 쓰는지 물어봤을 때 그는 “마지막 문장을 제일 먼저 쓰곤 한다”고 답했다.
“나는 끝 부분을 먼저 쓰기 시작합니다. 작가란 쓰기 시작해야 비로소 무엇을 할지 알게 되죠. 아무리 머릿속으로만 알고 있어 봐야 소용없습니다. 어떻게 끝내야 할지 모른다면, 뭔가 써야겠다는 목적을 갖고 글을 시작할 수 있을까요?”
어빙에겐 이 방법이 신기하게도 잘 맞는 것 같다. 어떤 작가들은 이야기를 써 나가는 도중에 결말이 떠오른다고 말한다. 당신은 어떤가? 어빙의 방식이 당신에게 맞을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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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는 것에 대해서 써라?
초보 작가들이 가장 흔하게 듣는 말이 ‘아는 것에 대해 써라’다. 자신이 직접 겪은 일을 써야 진실하고 솔직한 작품, 즉 ‘살아 있는’ 작품이 나온다는 것이다. 그러나 애니 프루는 아는 것에 대해서만 쓰라고 하는 것은 ‘가장 구리고 한심한 조언’이라고 못 박는다.
“아는 것에 대해서만 쓴다면 작가는 발전하지 못한다. 다른 나라의 말이라든가, 다른 사람에 대한 흥미, 탐험과, 여행에 대한 욕망, 체험하려는 마음 같은 것들을 더 이상 담아낼 수 없게 된다. 우리 자신만이 가진 세계 속으로 점점 더 꼬여 들어가게 될 뿐이다. 아는 것이 아니라, 흥미를 느낄 만한 것에 대해 써야 한다.”
신시아 오지크는 애니 프루와 같은 의견이다.
“세상은 우리가 갇혀 있는 우물보다 훨씬 더 크고 넓고 복잡하다. 우리는 상상력을 자극하고 선동해야 한다.”
아일랜드 소설가 컬럼 맥캔은 이 문제에 대해 가장 균형 잡힌 의견을 내놓았다.
“당신이 모르는 것에 대해서 쓰면서 알고 있는 사실을 새롭게 발견하라. 당신이 알고 있는 것만 고집스레 쓸 수도 있다. 그러나 당신이 모르는 그 무엇과 맞서는 것을 통해, 당신은 자유를 향해 나아가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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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니 프루는 소설을 쓰기 전에 광범위한 조사를 한다. 퓰리처 상 수상작인 <시핑뉴스>를 비롯해 <포스트카드>, <아코디온 범죄>Accordion Crimes 등을 쓸 때도 마찬가지였다. 그렇다고 프루가 매일 도서관에서 시간을 보내는 것은 아니다.
“현장은 늘 책보다 중요하다.”
그녀는 ‘뉴욕 타임스’에 기고한 영감에 대한 글을 통해 이렇게 밝혔다.
“어떤 버섯에서 마라스키노 체리(오스트리아 산 야생 버찌에 설탕을 뿌린 것―옮긴이 주) 냄새가 나는가? 어떤 버섯에서 죽은 쥐 냄새가 나는가? 작가라면 이런 것도 구별할 줄 알아야 한다.”
애니 프루는 여행을 많이 하는 작가다. 도시의 골목길이나 시골의 오솔길도 마다 않는다. 헌책방이나 벼룩시장에도 자주 들른다. 이 모든 경험은 그녀에게 소중한 영감의 원천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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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 일기 쓰기
이사벨 아옌데부터 스폴딩 그레이, 클라이브 바커에 이르기까지 많은 작가들이 꿈에서 영감을 얻는다고 말한다. 잠재의식에서 소설 책 한 권이 쏟아져 나온다고 주장하는 작가들도 있다. 정말 행운아다.
<지킬 박사와 하이드 씨>를 쓴 로버트 스티븐슨은 이 소설을 3일 만에 썼다고 주장했다. 밤이면 생생한 꿈을 꾸고 아침에 일어나 글을 썼다는 것이다. 꿈속에서 소설의 전체 구조까지 암시받았다나.
그레이엄 그린은 연속극처럼 꿈을 꾼다고 했다. 몇 주 동안 계속 이어지는 꿈을 부분 부분 꾸었는데 나중에 다 이어 보니 한 편의 이야기가 됐다는 것이다.
에이미 탄의 말이 압권이다. “소설에 쓸 이야기 거리가 필요하면 그냥 자면 됩니다. 꿈에 나타나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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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즈의 신화
편집자인 나는, ‘머릿속에’ 소설이 있다고 말하는 사람들을 많이 만난다. 그들은 ‘곧 뮤즈가 와서 이야기를 쏟아 놓을 것’이라고 말한다. 이런 사람들이 책을 내면 내 손에 장을 지진다.
작가는 뮤즈 따위를 기다릴 시간이 없다. 진짜 작가들은 싫든 좋든 매일 쓰는 사람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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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프튼은 시나리오 작가를 하다 미스터리 소설가로 변신했다. 영화 제작자나 감독들이 이러쿵저러쿵 하는 소리를 듣기 싫었기 때문이다.
“사무실에 앉아서 스물여섯 살 먹은 친구들이 이렇게 써라. 저렇게 써라 하는 걸 참을 수가 없었죠.”
(…)
그래프튼은 슬럼프를 반기는 별난 작가다. 젊은 작가들에게 “작가의 장벽을 글을 더 잘 쓰기 위한 방편으로 삼으라”고 충고한다.
“슬럼프를 끔찍한 일로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물론 작가의 정신을 갉아먹고 힘 빠지게 하는 건 사실이죠. 하지만 정신적인 활동을 멈추고 조용히 물러나서 장벽이 주는 메시지가 뭔지 잘 살펴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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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에서 시작하기
이상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소설의 끝부분부터 쓰는 작가들이 의외로 많다. 캐서린 앤 포터는 말했다. “나는 이야기를 어떻게 끝낼지 모를 때는 아예 시작을 하지 않는다. 나는 항상 내 소설의 마지막 줄, 마지막 문장, 마지막 페이지를 먼저 써 놓는다.”
토니 모리슨도 마찬가지다.
“소설의 첫 페이지와 마지막 페이지를 제일 먼저 써 놓는다. 처음과 끝은 늘 깊은 관계를 맺고, 그 다음에 전개되는 부분에 영향을 미치게 되어 있다.”
끝부분을 먼저 써 놓으면, 작가는 인물의 성격과 이야기 전개에 대해 큰 고민 하나를 덜게 된다. 정해진 길을 따라 가면 되기 때문이다.

산을 오르는 길이 하나가 아니듯 글쓰기 노하우도 전 세계의 작가들만큼이나 그 가짓수가 많을 것이다. 이 책은 천 갈래 만 갈래나 되는 그 길 중 몇몇을 보여주고 있을 뿐이다. (과제를 풀어가며, 상상력을 틔워가는 중에) 작가의 장벽을 뛰어넘는 데 참고로 삼으라는 것. “이 책의 결론은 하나다. 무조건 써라. 당신의 능력을 의심하지 마라. 당신의 상상력을 과소평가하지 마라. 쓰지 않는 것에 대해 변명하지 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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