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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의 소음
줄리언 반스 지음, 송은주 옮김 / 다산책방 / 2017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이 소설은 러시아의 작곡가 '드미트리 쇼스타코비치(Dmitrii Dmitrievich Shostakovich)'에 대한 이야기이다.
레닌에서 흐루쇼프로 이어진 시대와 독재, 억압, 타협, 예술, 삶 등의 낱말을 미리 염두에 두고 읽는다면 두려움을 한 스푼쯤 덜어낼 수 있을 것 같다. (다루고 있는 음악, 문학의 범위도 상당히 넓으므로 적당히 포기하면 편함♡ 꿀잼)
우리는 모두 저마다의 '초록안경'을 쓰고 있다.
각자의 꿈을 이루기 위해, 위대한 마법사 오즈를 만나러 가는 길. 생사를 가르는 모험을 거쳐 에메랄드 성에 닿으면 절대 벗을 수 없는 초록안경을 써야 한다. 모든 것이 초록이고, 초록이어야 하는 세상. '내가 가짜인 걸 들킬까봐 넘흐넘흐 무서워. 초록초록' 동화에서는 귀여웠던 두려움이 현실로 옮아오면 가끔 기형적인 모습으로 삶을 덮쳐 온다.
149-151p. "... 동의하십니까?"
"예, 개인적으로 그런 의견들에 동의합니다."
"... 동의하십니까?"
"예, 개인적으로 그런 조치에 동의합니다."
"... 동의하십니까?"
"예, 그런 견해에 개인적으로 동의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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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리언 반스가 되살려 놓은 한 인물의 절절한 공포는 나의 삶을 감사하게 만든다. '동의'를 강요 받지 않고 의견을 밝힐 수도 있는 세상. '시대의 소음'에 귀가 멀 지경은 아닌 세상. 이런저런 세상에서 독재를 글로, 역사로 마주하는 내가 얼마나 평안한지.. 깊이 느끼게 한다.
분명 이 시대에도 낮은 목소리로 끊임없이 읊조리는 시대의 소음이 있다. 그리고 그것은 영영 끊이지 않을 일일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다만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어제도 오늘도, 그리고 앞으로의 삶에서도.. 수시로 나의 초록안경을 고쳐 쓰는 일이다. 강제하지 않고, 물들이지 않고, 드러내기 보다 드러나기를 애쓰면서. 어우러지지 못해도 좋으니 함께인 삶을 유지하면서.. 내 안에서 울려오는 소음에 귀가 멀지 않도록 적절히 조절해나가면서. 그것이 내가 정한 나의 삶이요, 나의 길이면 마땅히 그리 해나가면서.
함께인 오늘을 사는 것.
나의 마지막 질문은 아직 오지 않았으니까.
226p. [겁쟁이가 되기도 쉽지 않았다. 겁쟁이가 되기보다는 영웅이 되기가 훨씬 더 쉬웠다. 영웅이 되려면 잠시 용감해지기만 하면 되었다 - 총을 꺼내고, 폭탄을 던지고, 기폭 장치를 누르고, 독재자를 없애고, 더불어 자기 자신도 없애는 그 순간 동안만. 그러나 겁쟁이가 된다는 것은 평생토록 이어지게 될 길에 발을 들이는 것이었다. 한순간도 쉴 수가 없었다. 스스로에게 변명을 하고, 머뭇거리고, 움츠러들고, 고무장화의 맛, 자신의 타락한, 비천한 상태를 새삼 깨닫게 될 다음 순간을 기다려야만 했다.]
이것이 [의심할 여지 없이 반스 소설 중 최고]라 말한다면, 얼른 <플로베르의 앵무새>를 집어 들어야 겠다. <아서와 조지>까지. 실존 인물을 바탕으로 한 작품이 더 있었는데, 전혀 몰랐던 인물의 삶도 이리 매력적으로 만들어주었으니♡ 벌써 콩닥콩닥 하는 마음을 막을 도리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