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일의 마음 - 아름다움에 대한 스물여섯 편의 에세이
이남호 지음 / 생각의나무 / 2007년 9월
평점 :
품절


by 이남호(2007, 생각의 나무)

 

" 반나절은 책을 읽고 반나절은 고요히 앉아 있다 "

 


책장을 열면 맨 처음 만나는 문구가 정말 아름다워서 숨이 멎는 듯하다.

"시름 많은 세상이여, 마음은 아름다움에 머무네"(世波亂苦海 心雲留美峰)

그리고 추사 김정희의 고택 주렴에 있다는 문구

"반나절은 책을 읽고 반나절은 고요히 앉아 있다"(半日讀書 半日坐定)

 


이 두 문장에 반해 버렸고, 책 내용과 문체도 모두 맘에 든다.

고요함을 지향하고, 영화를 사랑하지만 문학과는 비교할 수 없다고 생각하며, 나무와 산과 사찰과 시와 음악과 미술을 이야기한다.

 


신문과 뉴스와 세상살이는 접어 두고, 일요일의 마음... 백수의 마음, 한없이 자유로운 감성으로 밥벌이 이외의 것들을 이야기한다.

서정주 시인의 일요일은 이렇다. "일요일이 오거던 친구여 인제는 우리 눈 아조 다 깨여서 찾다 찾아 놓아둔 우리 아직 못 찾은 마지막 골목들을 찾아가볼까"

 


에드워드 호퍼와 잭슨 폴록, 반 고흐, 마티스, 김병종, 장욱진의 그림, 글렌 굴드의 피아노, 시벨리우스의 바이올린 협주곡, 헤르만헤세와 모라비아의 소설,

 박목월과 서정주와 정지용과 황동규의 시, 셀시우스 도서관, 지리산 도솔암, 선운사, 김도원의 삽화, 밀리언달러 베이비까지

아름다움을 주제로 한 26개의 에세이. 참 소중하다.

 


in books


활동의 삶은 근면하며, 명상의 삶은 조용하다. 활동의 삶은 대중 속에서 영위되며, 명상의 삶은 사막에서 영위된다.

활동의 삶은 이웃을 필요로 하게끔 되어 있지만, 명상의 삶은 하나님을 보게끔 되어 있다.(위그 드 생 빅토르) - p48

 


이 명랑성에 이르는 것이 나로서는, 그리고 다른 많은 사람으로서는 가장 고귀한 목표일세.....

자기만족도 아닌 최고의 인식과 사랑, 모든 현실의 긍정이네. 모든 심연을 자각하는 일이야.

성자와 기사의 미덕이지. 흩어놓을 수 없는 것이고, 나이가 들고 죽음이 가까워짐에 따라 더욱 밝아지는 것이야.

그것은 아름다움의 비밀이고 모든 예술의 본체이네.(유리알유희) - p104

 


"빠삐용"에서 관객이 본 감옥과 관객이 들었던 문 잠기는 소리는 단 하나이지만,

"신곡"에서 독자들이 본 탑의 감방과 문 잠기는 소리는 독자들마다 다 다르다.

언어는 보잘것 없는 기호에 불과하지만, 그것이 상상력의 도움을 받으면 세계보다 더 큰 것도 보여줄 수 있다.

한 편의 짧은 시가 우주를 담고 있다는 말도 이런 뜻에서 이해된다.

 나에게는 "신곡"의 문이 잠기는 소리가 '빠삐용"의 그것보다 훨씬 무시무시하게 느껴진다.

이것이 아무리 좋은 영화라도 영화가 문학을 대신할 수 없는 여러 이유 가운데 하나이다. - p125

 


문제에 대한 의식적인 생각을 버리고 정신을 딴 곳에 파는 것이 진짜 심사숙고의 방식인지 모른다.

술 마시고 웃음을 만들어내는 백씨 형제들의 심사숙고 방식을 알아챈 미당 선생의 눈이 높다. - p148

 


삶은 쓸쓸함과 쓸쓸하지 않음의 두 겹으로 되어 있고, 세상은 남자와 여자라는 두 겹으로 되어 있다.

남자와 여자가 만나 겹을 이루면 그것은 사랑이 된다.

그러나 사랑 속에는 수많은 두 겹이 있기에 언제나 한 겹이 되고자 하는 사랑을 좌절시킨다...

아, 사랑에는 이렇게 많은 두 겹이 있고, 그 두 겹 사이는 낭떠러지처럼 아득하기만 한 것인가!

이 소설은 사랑에 대한 가장 우울한 진단서 가운데 하나일 것이다.(이문열 "두겹의 노래") - p164

 


삶을 함부로 권태롭게 여겼다가 아무것도 아닌 삶(체칠리아라는 여자)에게 크게 혼나는 이야기가 바로 "권태"가 아닐까?

체칠리아는 우리 모두가 벗어날 수 없는 사랑의 이름이기도 하고 또 삶의 이름이기도 하다.(모빌리아 "권태") - p187

 


문학 속에는 온갖 슬픔이 있다... 우리는 문학 속에서, 예술 속에서 그러한 슬픔을 간접체험한다.

슬픔을 체험하는 것, 그것은 문학과 예술이 우리에게 주는 커다란 은혜 중 하나이다. - p194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
 
 
 
찬란 ㅣ 문학과지성 시인선 373
이병률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0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by 이병률(2010, 문학과 지성)

 

" 보이지 않는 것은 애써 덮은 것이리 "

 


어떤 블로거가 올린 문구를 보고 단박에 맘에 든 작가.

"생활에게"라는 시였는데, 보자마자 마음이 크게 울렸다.

 

시는 어렵다. 늘 동경의 대상이기도 하고...

어쩜 나는 시인을 가장 존경하는지도...

 

시를 잘 모르지만, 참 잘 쓴 시는 군더더기 없이 치명적으로 아름답다.

언어의 결정(結晶).

 

작가의 다른 책 "끌림", "바람의 사생활", "당신은 어딘가로 가려 한다" 도 위시리스트...

 


생활에게

 


일하러 나가면서 절반의 나를 집에 놔두고 간다

집에 있으면 해악이 없으며

민첩하지 않아도 되니

그것은 다행한 일

 


나는 집에 있으면서 절반의 나를 내보낸다

밭에 내보내기도 하고 비행기를 태우기도 하고

먼 데로 장가를 보내기도 한다

 


반죽만큼 절반을 뚝 떼어내 살다 보면

나는 어디에 있는 것이 아니라

어느 곳에도 없으며

 


그리하여 더군다나 아무것도 아니라면 좀 살 만하지 않을까

 


그 중에서도 살아갈 힘을 구하는 것은

당신도 아니고 누구도 아니며

 


바람도 아니고 불안도 아닌

그저 애를 쓰는 것뿐이어서

단지 그뿐이어서 무릎 삭는 줄도 모르는 건 아닌가

 


이러니 정작 내가 사는 일은 쥐나 쫓는 일이 아닌가 한다

절반으로 나눠 살기 어려울 때는

내가 하나가 아니라 차라리 둘이어서

 


하나를 구석지로 몰고 몰아

잔인하게 붙잡을 수도 있을 터이니

 


찬란

 


겨우내 아무 일 없던 화분에서 잎이 나니 찬란하다

흙이 감정을 참지 못하니 찬란하다

 


감자에서 난 싹을 화분에 옮겨 심으며

손끝에서 종이 넘기는 소리를 듣는 것도

오래도록 내 뼈에 방들이 우는 소리 재우는 일도

찬란이다

 


살고자 하는 일이 찬란이었으므로

의자에 먼지 앉는 일은 더 찬란이리

찬란하지 않으면 모두 뒤처지고

광장에서 멀어지리

 


지난밤 남쪽의 바다를 생각하던 중에

등을 켜려다 전구가 나갔고

검푸른 어둠이 굽이쳤으나

생각만으로 겨울을 불렀으니 찬란이다

 


실로 이기고 지는 깐깐한 생명들이 뿌리까지 피곤한 것도

햇빛의 가랑이 사이로 북회귀선과 남회귀선이 만나는 것도

무시무시한 찬란이다

 


찬란이 아니면 다 그만이다

죽음 앞에서 모든 목숨은

찬란의 끝에서 걸쇠를 건져 올려 마음에 걸 것이니

 


지금껏으로도 많이 살았다 싶은 것은 찬란을 배웠기 때문

그러고도 겨우 일 년을 조금 넘게 살았다는 기분이 드는 것도

다 찬란이다

 







있고 없고

 


혼자 보내서 어떡하나 했다

가는 것은 가는 것이나

가고 마는 것은 또 어쩌나 했다

 


안경을 걸치거나

눌러 쓴 글씨는

자국이라도 남겠지만

그러겠지만

 


지나는 것은 지나는 것이리

 


보이지 않는 것은 애써 덮은 것이리

 


있고 없고를 떠난 세상으로

또 오지 않을까 했다

 


찬란을 만들지 않을까 했다

슴슴한 눈발이라도

서랍 속으로 뜨겁게 서랍 속으로 내리지 않을까 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
 
 
 
무소유 - 양장본
법정스님 지음 / 범우사 / 1999년 8월
평점 :
절판


by 법정(1999, 무소유)

" 많이 갖는다는 건 많이 얽혀 있다는 것 "

 

몇 달 전인가, 시댁에 놀러 갔다가 무심히 집어서 우리집으로 가지고 왔다.

그 후로 법정 스님이 타계하고 유언에 따라 절판되어 더 "유명"하고 "떠들썩"해진 책.

사람들이 그 책을 구하고 싶어 난리라니,  

우연히 얻은 그 책과 나의 작은 인연에 책장을 열었다.


스님이 오래 전에 쓴 내용이라(유신 시절) 오늘의 상황과는 맞지 않지만

수묵담채화같은 맑은 기운이 마음을 편안하게 만드는 글들.

 


난초에 대한 사랑이 구속임을 깨닫고, 종내 그 사랑하던 난초를, 그 집착과 얽매임을

버리는 이야기가 역시 가장 인상적이다.

 


간디의 말이 좋아서 적어 놓는다.

"나는 가난한 탁발승이오. 내가 가진 거라고는  

물레와 교도소에서 쓰던 밥그릇과 염소젖 한 깡통,  

허름한 담요 여섯 장, 수건 그리고 대단치도 않은 평판, 이것뿐이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
 
 
 
채식주의자
한강 지음 / 창비 / 2007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10.5.15.

 

by 한강(2007, 창비)

 

" 누군가를 '알고 있다'라고 말할 수 있을까 "


하룻밤만에 읽어 버린 소설.

전혀 예상치 못한 내용이어서 당황스러웠다.

내가 좋아하는 스타일은 아니지만,

뭔가 내면을 강하게 자극해서 한 동안 허둥거리게 만드는 책이다.


채식주의자, 몽고반점, 나무불꽃 세 개의 이야기로 이루어진 연작소설.

영화로도 만들어졌다 하는데, 영화를 먼저 봤다면

분명 실망했을 것이라고 거의 확신할 수 있다.


줄거리 자체가 극적이고 비극적이고, 정상적이지 않지만

소설을 읽으면 그 모든 게 이해될 듯도 하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작가를 높이 평가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사람에게 '사랑'이란, '관심'이란,

마치 식물에게 햇빛과 물과 바람이 꼭 필요한 것과 같은 게 아닌가.

필수영양소를 공급받지 못한 사람은 육체와 내면이 모두 허위허위 말라가는 게 아닌가.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
 
 
 
1Q84 1 - 4月-6月 ㅣ 1Q84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양윤옥 옮김 / 문학동네 / 2009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10.5.15.

 

by 무라카이 하루키(2009, 문학동네)

 

" 현실이 아닌 또 다른 세계로 들어가기 "


이 책이 무척이나 읽고 싶었지만(사기는 싫고)

도서관에는 역시나 인기있는 소설인지라 매번 찾을 수가 없었다..

홈플러스 책 코너 옆에서 한 300쪽을 읽었더랬다.

야금야금 읽는 맛이 감질맛이 났었는데.

도서관에 벌써 낡아 버린 1권이 보이길래 냉큼 입수...

많은 분량임에도 쏙 빠져들게 하는 몽환적인 스토리의 힘이 있다.


하루키는 조지 오웰의 '1984'와 95년 옴진리교 사건을 모티브로 소설을 썼다고 한다.

아오야메, 덴고, 후카에리는 어릴 적의 트라우마로 괴로워하면서도 주어진 현실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고 그 속에서 표류한다. 사람의 연약함에 대해, 그 후로 흘러가는 인생의 모습에 대해 연민을 가지지 않을 수 없다.


아오야메는 비상계단을 내려오며, 덴고는 후카에리의 공기번데기를 각색하는 작은 계기를 통해 현실과는 또 다른 Parallel World로 이동해 버린다.

두 개의 달이 뜨는 세계로...


아오야메와 덴고의 이야기가 이중주처럼 울리며 파국을 향해 치닫는다.

리틀피플은 뭔가 섬뜩한 느낌까지 준다.


사실 2권은 언제 읽을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인터넷 검색을 하면서 줄거리를 알아 버렸다. ㅠ. 스포일러...


야나체크의 '신포니에타'는 검색으로 한 번 들어주는 센스...

체호프의 갈랴크인 이야기도 맘에 든다.


소설에 대한 평가는 내가 알 바 아니고 하루키는 감각적이고 매력적이고 재미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