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이제 니가 지겨워
배수아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0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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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대 초반 독신 여성인 유경. 그의 주위에는 잔소리꾼에다 수다쟁이인 어머니와 남의 이야기를 좋아하는 친지들, 쿨한 척을 하지만 사실은 남에게 관심을 쏟는 것을 귀찮아할뿐인 사촌, 육체관계를 위한 연애를 강요하는 상사, 기회주의적인 면을 부드러움으로 위장한 직장 동료가 포진해 있다. 이런 유경에게 힘을 실어주어야 할 친구들은 또 어떤가. 우아한 불평 투성이인 미라, 가볍고 질투심 많은 진숙, 철저한 손익관계를 따지는 서란, 멍청할정도로 이상주의자은 자연은 틈만 나면 서로를 감시하며 헐뜯기에 바쁘다. 찐득찐득하고 감정소모적인 인간 관계와 연애에 질려버린 유경은 급기야는 脫戀愛主義를 선언한다. 연애에서 늘 성공하려면 연애를 벗어나 있으라고 충고하는 유경. 그런데 그것은 정말로 연애에 <성공>한 것일까?

이는 일견 맞는 말로도 들린다. 사실 어떤 일이든 비껴나서 보면 가볍게 넘길 수 있으니까. 그러나 이런 방법은 문제를 회피했다는 소리를 면하기 어렵다. 스스로를 방어하기 위해 일부러 멀찍이 떨어져서 상처받지 않으려 애쓰는 모습은 안쓰러울 정도가 아닌가. 유경의 탈연애주의 주장이 자신의 약함을 인정하는 것 같아 독자로서 안타까웠다. 인간 관계에서 상처 받지 않기 위해, 그러면서 자신의 자리를 지키기위해 타인에게 냉소로 일관하는 사람들이 요 근래 많아졌기에 이 작품도 시대 상황을 잘 드러냈다고 볼 수 있으나 왠지 걱정되고 속이 상하는 것은 어쩐 일일까. 나는 아직도 축축한 관계를 원하나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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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대적이며 절대적인 지식의 백과사전
베르나르 베르베르 지음, 이세욱 옮김 / 열린책들 / 199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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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사람이 썼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내게 패배감을 불러일으키는 책. 잡학이라는 것은 바로 이런 것이 아닐까? ㄱ부터 ㅎ까지 여러 자질구레하고 자잘한 지식부터 거대 담론에 이르기까지를 총망라했다. 그렇다고 무겁거나 한 내용은 아니고 매우 흥미로운 지식으로 가득차있으니 잠깐의 시간 때우기 용으로 아주 좋은 책이다.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책을 읽어본 독자라면 이 책에도 금방 적응하게 되겠으나 그의 책을 처음 접하다면 초반에 조금 글이 생뚱맞다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그 어이없고 생뚱맞은 것이 그의 특징이라면 특징이니 그저 적응하는 수밖에. 무언가를 알고야 말겠다는 마음을 버리고 편안하게 읽으면 의외로 건지는 것이 있는 신기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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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행 2 - 하버드에서 화계사까지
현각 지음, 김홍희 사진 / 열림원 / 199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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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계무교라는 희안한 단어까지 만들어가며 나의 무교성을 주장하곤 하지만 사실 나는 불교에 상당히 가까운 편이다. 작년 연등행사에 우연히 참여했던 것을 계기로 더욱 불교에 마음을 빼앗겨 아무것이라도 좋으니 불교계 서적을 읽고야 말겠다는 마음으로 고른 책이 바로 이 "만행"이다. 저자가 외국인인데다 화려한 경력을 버리고 승복을 입었다는 사실 자체가 너무나 흥미로웠기에 선뜻 손이 갔고, 한 번 읽다보니 푹 빠져서 단번에 읽어버렸다. 저자는 독실한 기독교 신자 집안에서 태어났으나 해가 가면서 점차 "하나님" 자체가 아니라 그것을 섬기는 방식인 "기독교" 에 회의감을 느껴 기독교와 멀어지게 된다. 그러다가 만난 것이 "젠", 바로 불교이다. 숭산큰스님을 만나며 그는 드디어 불교가 다른 종교보다 '자아를 찾아가는 과정'에 충실하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고민 끝에 불교에 귀의한다. 저자의 탁월한 글솜씨와 영화같은 그의 삶은 독자를 불교의 세계로 한 발 더 이끌어준다. 기독교 신자에게는 미안한 얘기지만 나는 기독교의 교리를 비롯해 기독교적 신 자체에 대해 깊은 불신감을 품고있다. 유일신 사상으로 절대 다른 신을 인정하지 않는 그 폐쇄성과 배타성에는 이미 신물이 났고, 신(영생)이 아니면 죽음(지옥)뿐이라는 극단성에는 질려버렸다. 인간과 신을 분리하고 그저 그것에 매달리는 기독교보다 자기 안의 신성을 믿고 그것을 키워나가며 자신의 무한한 가능성을 펼치는 불교에 매력을 느끼는 것은 나 뿐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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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왕에게 키스를!
수잔 제인 길머 지음, 이진 옮김 / 한숲출판사 / 200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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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요새 흔히 나오는 페미니즘을 뒤집어 쓴 상업적 출판물 중 하나이다. 페미니즘은 상업화와 함께 대중화되며 그 본래의 모습을 잃었는데 이 과정에서 많은 사람들은 이 잘못된 페미니즘을 페미니즘의 본질로 오해하고 편견을 갖게 되었다. 이 책도 그 "잘못된 페미니즘"을 재생산하여 많은 사람으로 하여금 페미니즘이 편협한 학문이라는 인식을 갖게 하는 데 일조한다. PMS(Premenstrual Syndrome 월경전증후군)를 이용(?)하여 한껏 한풀이나 하자는 등의 저자의 의견은 일견 통쾌한 면도 없지는 않으나 결과적으로 또다른 성적 차별을 스스로 초래한다는 점에서 한계에 부딪힌다. 결국 이 책은 "스테이크를 흉내만 낸 햄버거" 처럼 겉은 그럴싸하나 속은 그저그런 정크푸드류이다. 이러한 책을 진리로 삼고 일상 생활에 페미니즘을 실천한다는 말을 하지는 말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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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여성학 강의 - 학술총서 22
한국여성연구소 엮음 / 동녘 / 199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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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미니스트라고 자부하고는 있지만 제대로 된 개론서 하나 읽어보지 않은 스스로가 부끄러워 작정하고 읽은 책이다. 행인지 불행인지 비슷한 시기에 시작한 스터디에서 교재(?)로 채택되었기에 각 파트마다 꽤나 심도있게 읽고 공부했다. 이 책은 세미나나 스터디에서 쓰기에 "딱"인 책이다. 사회문화적으로 산재해있는 여성 문제를 각장에서 조목조목 짚어주고 각 장의 분량도 비슷비슷할 뿐더러 단락이 끝날 때 마다 심화학습이 있어 학습용으로 그만이다. 또한 페미니즘 입문서답게 대부분 어렵지 않은 내용이고 주제도 다양해 그다지 질리는 기분도 느껴지지 않는 편이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빛나는 이 책의 진가는 역시 부드러우나 타협하지 않는 페미니즘 정신이다. 어디에도 경도되지 않은 채 감정적이지 않은 건조한 문체로 과장 없이 담담하게 여성의 현실을 이야기하는 텍스트를 만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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