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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제 니가 지겨워
배수아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00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30대 초반 독신 여성인 유경. 그의 주위에는 잔소리꾼에다 수다쟁이인 어머니와 남의 이야기를 좋아하는 친지들, 쿨한 척을 하지만 사실은 남에게 관심을 쏟는 것을 귀찮아할뿐인 사촌, 육체관계를 위한 연애를 강요하는 상사, 기회주의적인 면을 부드러움으로 위장한 직장 동료가 포진해 있다. 이런 유경에게 힘을 실어주어야 할 친구들은 또 어떤가. 우아한 불평 투성이인 미라, 가볍고 질투심 많은 진숙, 철저한 손익관계를 따지는 서란, 멍청할정도로 이상주의자은 자연은 틈만 나면 서로를 감시하며 헐뜯기에 바쁘다. 찐득찐득하고 감정소모적인 인간 관계와 연애에 질려버린 유경은 급기야는 脫戀愛主義를 선언한다. 연애에서 늘 성공하려면 연애를 벗어나 있으라고 충고하는 유경. 그런데 그것은 정말로 연애에 <성공>한 것일까?
이는 일견 맞는 말로도 들린다. 사실 어떤 일이든 비껴나서 보면 가볍게 넘길 수 있으니까. 그러나 이런 방법은 문제를 회피했다는 소리를 면하기 어렵다. 스스로를 방어하기 위해 일부러 멀찍이 떨어져서 상처받지 않으려 애쓰는 모습은 안쓰러울 정도가 아닌가. 유경의 탈연애주의 주장이 자신의 약함을 인정하는 것 같아 독자로서 안타까웠다. 인간 관계에서 상처 받지 않기 위해, 그러면서 자신의 자리를 지키기위해 타인에게 냉소로 일관하는 사람들이 요 근래 많아졌기에 이 작품도 시대 상황을 잘 드러냈다고 볼 수 있으나 왠지 걱정되고 속이 상하는 것은 어쩐 일일까. 나는 아직도 축축한 관계를 원하나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