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을 열고 가슴을 열고 - 관상 기도, 만남 들음 쉼
토머스 키팅 지음, 이청준 옮김 / 가톨릭출판사 / 20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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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마스 키딩 신부님께서 쓰신 <마음을 열고 가슴을 열고>라는 책을 소개합니다.

저는 재작년 1월부터 캐스리더스(가톨릭출판사 서평단) 활동을 하고 있는데 이번달 선정도서입니다.

3가지 책 중에서 선택권을 주셨는데 저는 이 책을 선택하였습니다.

이 책의 저자이신 토마스 키딩 신부님께서는 미국 트라피스트 수도회 사제로, 1961년에서 1981년까지 스펜서에 있는 요셉 수도원에서 수도원장으로 활동하셨습니다. 1975년 향심 기도 운동을 시작하셨고, 1984년 국제 관상지원단을 창설하셨습니다. 2018년 선종하셨습니다.

저서로 <침묵의 대화>, <내 안에 숨어 계신 하느님>, <그리스도의 신비>, <하느님과의 친밀>, <신앙의 위기, 사랑의 위기> 등이 있습니다.



너는 기도할 때 골방에 들어가 문을 닫은 다음, 숨어 계신 네 아버지께 기도하여라. 그러면 숨은 일도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너에게 갚아 주실 것이다. (마태 6,6)

그리스도의 영성은 전통적으로 세 가지 단계로 구분이 되는데 정화의 길, 조명의 길, 일치의 길이 그것입니다. 정화의 길과 일치의 길은 그리스도교 신비가들의 저서 속에 잘 묘사되어 있습니다.

향심기도는 내적 변화라는 목표에 투신하도록 우리를 인도합니다. 그리고 '골방 기도'로 이끄는 세 단계 중 첫 두 단계에 해당합니다. 골방 기도는 생각과 느낌과 특정 행위를 넘어서 하느님과 관계 맺는 것입니다.

향심기도 중에 우리가 취하는 유일한 주도적 행위는 우리 안의 하느님의 현존과 활동에 동의한다는 지향을 유지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생각과 느낌, 신체 감각에 빠져 있다는 것을 알아차리게 될 때 거룩한 상징으로 부드럽게 돌아감으로써 지향을 유지합니다.

이 책의 1장은 향심기도의 방법, 그리고 그 방법과 직결된 개념적 배경을 다룹니다. 2장에서는 향심기도 방법에 대한 폭넓은 배경을 제공하고자 그에 대한 영적, 역사적, 신학적 성찰들이 제시되어 있습니다.

이 책에서 설명하는 향심기도라는 용어는 관상 선물에 눈뜨게 하는 특정 방법에만 제한하여 사용되었습니다. 그리고 관상 기도라는 용어는 향심기도가 성령의 직접적 영감 아래 온전히 발달한 상태에 제한하여 사용되었습니다.

1장 숨어 계신 하느님과의 만남

향심기도에서 가장 기본적인 자세는 하느님께 동의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의 수련은 '인내'라는 말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깨어 기도하라." 하고 권고하셨습니다. 바로 이것이 우리가 향심기도 중에 하는 일입니다. 기도는 우리 안의 하느님 현존과 활동에 개방하고 동의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매 순간 하느님 현존을 누릴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안에 이를 방해하는 커다란 장애물이 있습니다. 그 장애물은 바로 우리의 세계관입니다. 우리의 관점은 그리스도의 마음, 그분의 관점으로 교체될 필요가 있습니다.

기도를 할 때 우리는 기도에 가장 도움이 되는 환경을 만들어야 합니다. 하루 중에 전화나 다른 예측 가능한 방해를 받지 않을 조용한 시간을 택해야 합니다. 그리고 홀로 기도하라고 말씀하시는 예수님의 충고를 받아들여야 합니다.

침묵에 들어가지 못하게 되었다고 해서 슬퍼하지 않고 그 생각을 받아들이려면 큰 인내가 필요합니다. 그저 다시 시작해야 합니다.

하느님께서는 온갖 방법을 동원하여, 즉 우리의 생각이나 기능을 통해서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그러나 하느님의 첫째 언어는 침묵임을 명심해야 합니다. 향심기도에서는 당신 자신을 침묵하도록 준비시켜야 합니다.

기도란 하느님을 변화시키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를 변화시키려고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더 빨리 그렇게 될수록 기도는 더 나아질 것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하느님께서 자신의 기도에 결코 대답하지 않으신다고 불평합니다. 왜 하느님께서 대답하셔야 할까요? 그분은 우리 기도에 대답하지 않으심으로써, 우리의 가장 큰 기도에 응답하고 계십니다. 그것은 변화되는 것입니다.

향심기도의 목적은 평화를 체험하는 것이 아니고, 하느님과의 영속적 일치 상태에 방해가 되는 무의식의 장애물을 비워 버리는 것입니다.

관상 기도가 아니라 관상 상태가 향심기도 수련의 목적입니다. 경험이 목적이 아니라 의식의 신비스러운 재구성을 통하여 오는 하느님에 대한 항구하고 지속적인 인식이 목적인 것입니다.

향심기도는 관상 기도에 이르기 위해 우리가 거쳐 가는 학교이며, 이것은 하느님께서 사람들을 당신과의 영속적인 일치로 이끌기 위해 통상적으로 사용하시는 수단입니다. 성령께서는 그들이 행하는 모든 일의 동기 혹은 영감이십니다.

향심기도에 대한 선입견과 오해가 있습니다.

  1. 향심기도는 긴장 이완 훈련이 아니다.

  2. 향심기도는 바오로 사도가 코린토 신자들에게 보낸 첫째 서간 12장에 나열한 은사들과 같은 것이 아니다.

  3. 향심기도는 초심리 현상이 아니다.

  4. 향심기도는 신비 현상이 아니다.

관상 기도의 핵심은 순수한 믿음의 길입니다. 그 외에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우리가 이 사실을 꼭 느낄 필요는 없지만, 그것에 다가가기 위해서는 우리 자신을 준비시켜야 합니다. 향심기도 수련이 그렇게 하는 한 가지 방법입니다.

관상 기도 준비로 하는 향심기도는 오늘날 새로 만들어 낸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향심기도는 관상 기도의 전통적 가르침을 다시 획득하는 수단이며, 이 가르침을 더욱 알리고 더욱 쉽게 접하도록 만드는 수단입니다. 새로운 점이라면 그것을 체계적인 방법으로 전달하려 노력한다는 것뿐입니다.

진정한 영성 수련의 목표는 육체와 정신과 영의 좋은 것들을 거부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들을 올바르게 이용하는 것입니다. 인간 본성의 어떠한 측면이나 인생의 어떠한 시기도 결코 거부해서는 안 되며, 오히려 이것들을 자아의식의 다음 단계에 통합해야 합니다. 이렇게 해서 인간 성장의 각 단계에 고유하게 존재하는 부분적 선성이 보전되고 그 한계점만 뒤로 합니다. 그러므로 하느님처럼 되는 길은 온전한 인간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규칙적으로 고독와 침묵의 시간을 가지면 영혼이 고요해지고, 내적 침묵이 자라나며, 자기 인식이 시작됩니다.

예수님께서는 스스로 보여 주신 것들을 제자들에게 길로 제시하셨습니다. 즉 모든 것과 모든 사람을 용서하고,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봉사하는 것입니다. 그분의 마지막 가르침은 "내가 너희를 사랑하였듯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여라." 입니다.


이 책의 부록으로 실린 향심기도 효과를 일상에 가져오는 수련들, 활동 중에 바치는 기도문, 주간 기도 모임, 향심기도 방법, 관상지원단도 신앙생활에 도움이 될 거라고 생각합니다.

하느님을 뵙고 그분의 목소리를 들으며 그분 안에서 쉬는 시간을 갖는 것은 중요합니다.

우리는 외적 관심을 의도적으로 놓아 버리고 우리 안의 하느님 현존과 활동에 동의해야 합니다.

규칙적인 수련을 통해 깨어서 받아들이는 태도가 안정적으로 유지된다면 우리는 점차 성령으로 기도할 준비를 갖추게 될 것입니다.


* 가톨릭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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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우구스티누스에게 삶의 길을 묻다 - 교회 역사상 가장 위대한 철학자이자 신학자
박승찬 지음 / 가톨릭출판사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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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재작년부터 캐스리더스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캐스리더스 5월 도서는 3가지 책 중에서 선택권을 주셨는데 저는 이 책을 선택했습니다.

박승찬 교수님의 강의를 엮은 <아우구스티누스에게 삶의 길을 묻다>입니다.



2017년에 나온 책의 개정판이라고 합니다.

이 책은 가톨릭평화방송에서 방영된 <그리스도교 최고의 스승, 아우구스티누스 성인을 만나다>의 강의 원고를 책의 형태에 맞게 구성한 것으로, '강의 개요 - 본강의 - 질의응답' 순으로 구성했습니다.

아우구스티누스는 1,600년 전 인물이지만, 급변하는 현대 사회와 비교될 수 있는 로마 제국 말기의 격변기를 살았던, 가장 영향력 있는 그리스도교 사상가입니다. 그는 중세의 거의 모든 학자에게 800년 동안 최고의 스승으로 존경받았습니다. 그렇지만 어린 시절부터 방황한 아우구스티누스는 명예욕, 성욕, 출세욕에 끊임없이 시달렸던, 우리의 모습과 너무도 닮은 '보통 사람'이였습니다.

이 책의 저자이신 박승찬 교구님께서는 이러한 삶을 보여준 아우구스티누스야말로 우리에게 행복이 무엇인지, 그리고 우리가 겪는 불행으로부터 치유될 수 있는 길을 알려 주는 멘토가 될 수 있으리라 생각하셨다고 합니다.

'인류 최고의 지성'으로 존경받았지만 우리와 똑같이 아파하며 고민했던 사람이였고 욕망 앞에 한없이 흔들린 자신을 고백하며 가슴을 쳤던 사람입니다.

그렇게 비틀거리면서도 결국 주님을 향해 나아갔던 사람, 1,600년 전의 현대인, 아우구스티노를 만나볼까요?

이 책은 1강부터 13강까지 수록이 되어 있습니다. 그 중 일부를 이야기 하고자 합니다.

왜 지금 '아우구스티누스'인가?

아우구스티누스는 그리스도교의 위대한 사상가이자 감정 전문가였지만 가슴이 따뜻한 보통 사람이였고 호불호가 극명하게 갈리는 인물이였습니다.

그 당시에도 요즘과 같이 인문학 열풍이 불었는데, 아우구스티누스는 실제로 인문학을 가장 사랑한 위대한 스승이기도 했습니다. 사실 아우구스티누스는 세속적인 욕심 때문에 인문학 교육에 임했지만, 이 인문학 교육이 나중에 그리스도교를 선포하는 데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됩니다.

그는 굉장히 많은 책을 썼는데 그중에서도 가장 유명한 책은 <고백론>(또는 <참회록>)입니다. 이 책은 우리나라에서만 무려 40번이나 번역이 되었습니다. 이 밖에도 <삼위일체론>과 <신국론>이 있습니다.

서구에서는 인간의 본성이나 하느님, 심지어 역사와 언어에 대한 많은 내용을 아우구스티누스에게서 영향을 받았습니다. 더욱 놀라운 것은 아우구스티누스의 사상이 현대 사회에서도 적용할 수 있는 값진 원리와 원칙을 제공한다는 사실입니다.

무엇보다 아우구스티누스는 단순히 이론적인 탐구에만 몰두했던 것이 아니라, 혼란스러운 시대에 자신의 소명을 다하려는 정직한 지성인이었습니다. 아우구스티누스와의 만남이 모든 근심과 걱정을 사라지게 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그가 마지막까지 우리와 같은 고민을 하면서 그 고민을 풀어 보고자 노력했던 인물이라는 점에서 우리에게 희망을 줍니다.

아우구스티누스는 어떤 시대를 살았는가?

아우구스티누스는 서로 다른 두 문화를 가진 부모님 밑에서 성장했고, 그중 어머니 모니카의 영향을 많이 받았습니다. 어머니 모니카는 가족들을 차분하게 그리스도교로 인도했습니다.

아우구스티누스는 집안 자체에서부터 이질적인 두 요소 즉, 아버지로 대표되는 그리스-로마 문화와 어머니로 대표되는 그리스도교가 충돌하는 긴장된 상태에서 성장했던 것입니다.

나는 누구인가?

자의식이 충만한 젊은이였던 아우구스티누스에게 공부는 지겨운 짐이였습니다. 그의 방황은 계속됐고 성경마저도 해답이 되지 못했습니다.

'나는 누구인가? 나는 왜 여기 있는가?'

거듭된 질문은 끝없는 번뇌를 낳았는데 집요한 물음의 마지막은 언제나 하나로 모아졌습니다.

하느님과 영혼, 하느님이 주신 '영혼'을 아는 일, 그것이 '나'를 아는 길이었고, '영혼'과 '육체'를 하나로 바라보는 시선이야말로 '인간'을 규명하는 이정표였습니다.

아우구스티누스가 가장 먼저 하느님을 체험했던 것은 바로 어머니 모니카를 통해서입니다. 눈물로 자신을 키워 준 어머니가 그에게 하느님을 체험하게 해 준 사람이었습니다.

우리는 이 책을 읽으면서 아우구스티누스와 함께 답을 찾을 수 있습니다.

'나는, 우리는 누구인가?'

공부는 왜 해야 하는가?

눈높이 학습, 학생에 대한 절대적 존중, 교사가 먼저 모범을 보이는 교육.

'현대 교육학'의 이상이 1,600년 전 '위대한 지성'에 의해 이미 제시되었습니다.

낙오자 없는 교실, 수준별 학습, 그리고 학생의 가능성을 일깨우는 노력!

아우구스티누스의 교육론은 마치 현대의 이상적 교육 이론을 마주하는 듯합니다.

그는 오늘날 우리에게 신랄하게 묻습니다.

우리는 과연 누구를 위해 가르치고 누구를 위해 배우는 걸까요?

하느님은 왜 '악'을 방치하는가?

'전지전능한 하느님이 창조하신 이 세상에 왜 이렇게 많은 악(惡)이 존재하는 걸까요?

만약에 '악'이 애초에 없었다면 갈등이 생기지 않았을 텐데 말이죠.

이 '악'은 어디서 생겨나는 것일까요? 왜 하느님은 악을 방치하실까요?

선과 악에 대한 문제는 아우구스티누스가 평생을 바쳐 다뤄 온 문제입니다.

그의 결론은 '결핍'이었습니다.

무(無)로부터 세상 만물을 지으신 하느님, 선함 그 자체이신 그분에게서 멀어질 때 '결핍'이 생기게 됩니다.

그리고 결핍의 자리에 악이 들어서게 됩니다.

아우구스티누스는 악의 정체를 그렇게 해석했습니다.

우리는 지금 행복한가?

요즘 사는 것이 행복한가요? 항상 행복할 수는 없겠죠.

하지만 때로는 항상 행복하면 그것을 행복이라 느낄 수 있을까요?

그렇다면 진짜 행복이란 무엇일까요?

그리고 어떻게 하면 우리는 때때로 행복하지 않고 항상 행복할 수 있을까요?

찰나의 행복이 아닌 진정한 행복은 어디에서 올까요?

아우구스티누스에게 '행복과 불행의 기준'은 명확했습니다.

영원한 진리, 지혜의 근원, 우주를 비추는 빛, 바로 '하느님'을 마음에 지니는 사람은 참으로 행복합니다.

행복을 찾기 위해 먼 길을 떠날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의 마음 깊이 행복의 참뜻을 일깨우는 스승이 계시기 때문입니다.

우리 안에 모신 빛나는 '내적 교사'이신 하느님께서 영원한 행복의 길로 우리를 이끄실 것입니다.

강의를 마치며

김승찬 교수님께서는 이 강의를 준비하고, 또 질문을 듣고 답하면서 많은 것을 배우셨다고 합니다. 한 번도 생각해 보지 못한 질문들도 있다 보니 충분한 답이 되지 못한 부분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 강의를 통해 아우구스티누스에게서 계속해서 생각하고 질문하는 태도를 배우셨다고 합니다.

아우구스티누스가 죽는 순간까지 질문을 놓지 않고 계속 고민했던 것처럼, 질문을 곱씹어 보면서 새로운 대답, 더 좋은 대답을 찾기 위해 노력하시겠다고 하십니다.

저는 아우구스티누스의 대표작인 <고백론>을 예전에 읽었는데 다시 읽어봐야겠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아우구스티누스가 어떤 마음으로 하느님을 섬기고 이웃을 섬기는지가 중요하다고 하셨는데 제 자신은 어떻게 하고 있는지 돌아보게 되었습니다.

하느님의 뜻에 따라 살고 하느님의 나라가 승리할 것이라는 희망을 잃지 않고 싶습니다.

인간이 저지르는 모든 악이 극복되고 결국에는 주님의 참된 정의와 평화가 도래하리라는 확신!

정의와 평화를 향한 아우구스티누스의 기도는 결코 멈추지 않았다고 합니다.

저 또한 그럴 수 있길 희망합니다.

* 가톨릭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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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에게 비는 하느님
루이 에블리 지음, 김수창 옮김 / 가톨릭출판사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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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재작년과 작년에 이어 올해에도 캐스리더스를 하게 되었어요.

(캐스리더스는 가톨릭출판사 서평단입니다.

재작년에 캐스리더스 3기, 작년에 캐스리더스 4기, 올해는 캐스리더스 5기입니다.)

캐스리더스 4월 도서는 루이 에블리 신부님께서 쓰신 <사람에게 비는 하느님>입니다.


3가지 책 중에서 선택권을 주셨는데 저는 이 책을 선택했습니다.


저는 처음에 이 책을 접했을 때 사람이 하느님께 비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사람에게 빈다는 내용의 제목을 보면서 의구심이 생겼습니다.

이 책을 읽으면서 혹시 지금까지 제가 해 온 기도가 잘못된 것은 아니였는지 되돌아보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머리말의 서두를 보면 우리가 "오소서, 성령님."이라고 기도를 하는데 우리가 이렇게 성령에게 호소하고 있지만, 사실은 성령이 우리에게 호소하고 있는 거라고 합니다. 이제 더 이상 반대로 기도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우리는 하느님을 찾을 필요가 없고 하느님을 찾아 헤매려는 노력이 오히려 우리를 하느님에게서 더 멀리 떨어지게 한다고 합니다. 우리는 다만 그분과 만날 기회를 제공하기만 하면 됩니다.


기도를 한다는 것은 하느님과 대화하는 것이고 그분의 음성에 귀 기울이는 것입니다. 하느님과의 만남이고 관계를 형성하는 것입니다.

"누구든지 청하는 이는 받고, 찾는 이는 얻고, 문을 두드리는 이에게는 열릴 것이다." (루카 11,10)

기도를 하다보면 자기가 이미 그전부터 하느님의 사랑을 받고 있으며, 자기가 구하던 것을 이미 얻었음을 알고, 문을 두드리기 전에 열려 있으며, 자기가 원하는 것이 항상 허락되고 있었음을 체험하기도 합니다.

그리스도가 부활하셨을 때 제자들이 발견한 것이 바로 그것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에게 기도를 가르쳐 주시고 우리 마음에 살고 계시며 언제나 우리에게 말씀을 걸어주십니다.

진정한 그리스도인의 기도는 자기 자신을 하느님에게 바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하느님은 우리 안에 머무십니다.

우리가 청하는 것을 하느님꼐서는 들어주시지만 우리의 성실성을 헤아린 후에 들어주신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기도해야 할까요?

우리는 예수님이 기도하신 것처럼 기도하면 됩니다. 내 뜻대로 이루어지도록 하느님을 설득하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이 훨씬 더 우리에게 좋은 것이 무엇인지 잘 아신다는 사실, 더욱이 그것을 우리가 받고자 하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이 주길 원하신다는 사실을 우리 자신에게 납득을 시켜야 합니다.

우리가 자신의 일만을 생각하기를 멈추고 그분이 말씀하시는 것에 귀를 기울이기 시작하면 그분이 주시고자 하는 것 말고는 구하지 않게 될 것입니다.


"나는 섬기는 사람으로 너희 가운데에 있다." (루카 22,27)

그리스도는 우리가 서로 사랑하기를 원하시며, 당신을 사랑하는 표시로 이웃을 사랑하기를 원하십니다.

우리가 무엇인가 이웃을 위한 일을 한다면 곧 하느님을 위한 것이기도 합니다. 이 두 가지는 서로 분리해서 생각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하느님만 신경을 쓴다면 이웃에게는 소홀해지게 됩니다.

하느님은 섬김을 받기 위해 이 세상에 오신 것이 아니라 섬기러 오셨습니다. 우리가 하느님에게 하는 진정한 봉사란 하느님에게 다시 한번 봉사를 받는 일입니다.

하느님의 진정한 '영광'은 우리의 존경을 받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사랑과 겸손의 선물을 우리 사이에 다시 현존하게 하는 것, 다시 보내 주시도록 하는 데 있다고 이 책은 이야기합니다.

기도는 하느님에게 무엇을 구하고자 청원하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이 우리에게 주고자 하는 것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우리가 말하는 것을 하느님에게 들어 달라고 하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이 우리를 위해 하시는 기도를 성취시켜 드리는 일인 것이다.

하느님에게 용서를 청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을 열고 하느님이 용서해 주시는 것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우리가 자신을 하느님에게 봉헌하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이 당신 스스로를 우리에게 내어 주시는 것을 기쁘게 영접해 드리는 것이다.


우리 마음에 살고 계신 하느님

기도는 자신의 요청, 제 뜻대로 하고 싶은 마음, 자신의 바람 등을 내려놓고 하느님이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계획에 동의하는 것입니다. 우리 안에 계시는 하느님이 기도하는 것에 주의를 기울이는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 자신이 하느님으로 가득 채워지는 동안 하느님 앞에 있기만 하면 됩니다.

디트리히 본회퍼는 "봉사하는 하느님만이, 괴로워하시는 하느님만이 인간을 구원할 수 있다." 라고 말합니다.

우리는 괴로운 상황에 마주하면 자신에게 부족한 것을 메우고, 자신의 소원을 들어줄 하느님을 원합니다. 자신이 가난하기 때문에 인간은 부유한 하느님을 상상하고 그것을 구합니다. 자신이 약하기 때문에 하느님은 강해야만 했습니다. 자기가 고통을 겪고 있으므로 하느님은 고통을 받지 않는 분이어야 하며, 평안하고 무정하고 불변해야 했습니다. 자신은 타인에게 의존하면서도 고독하기 때문에 하느님만은 타인에게 의존하지 않는 자로 상상합니다.

이와 같은 사고방식은 인간을 영원히 최악의 야망을 가진 이, 끊임없이 희생하는 이로 만듭니다.

그러나 그리스도교의 계시는 겸허하고 온유하며, 가난하고 자비에 넘친 하느님의 계시를 통해서 인간을 자유롭게 해 주고 구원을 가져다줍니다.

다시 한번 말하자면 기도는 하느님에게 말씀 드리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이 우리에게 하시는 말씀을 듣는 것입니다. 따라서 기도하는 것을 배운다는 것은 귀를 기울여 듣는 것을 배우는 것입니다.

하느님의 말씀을 경청하기 위해서는 하느님이 부여해 주시는 섬세한 감지력이 필요합니다.

"성령께서도 나약한 우리를 도와주십니다. 우리는 올바른 방식으로 기도할 줄 모르지만, 성령께서 몸소 말로 다 할 수 없이 탄식하시며 우리를 대신하여 간구해 주십니다." (로마 8,26)

하느님께서는 우리가 하느님에 대해 생각하고 기도하고 그분이 말씀하시는 것을 듣기 위해 귀를 기울이기를 기다리고 계십니다. 우리가 그렇게 함으로써 하느님은 우리 안에서 성장하십니다. 하느님이 우리 안에 계시기 때문에 우리는 자신의 인생을 노래하고 또한 기도해야 합니다.

"하느님에게서 난 이는 하느님의 말씀을 듣는다. 그러므로 너희가 그 말씀을 듣지 않는 것은, 너희가 하느님에게서 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 (요한 8,47)

사랑한다는 것은 말을 거는 것입니다. 하느님이 당신을 사랑하신다면 하느님은 당신에게 말씀하실 것입니다. 하느님이 나를 사랑하신다는 것을 확신하면 하느님이 나에게 말씀하신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우리가 언제든 하느님의 말씀을 들었다면 누구나가 들을 수 있도록 기쁜 소식을 모든 사람에게 전해 주어야 합니다.

기도한다는 것은 하느님이 성서를 통해 우리에게 하시는 말씀에 주의 깊게 귀를 기울이는 것이며, 우리가 생활에서 행하는 일들에 관해 하느님이 암시해 주시는 바를 듣는 것이기도 하다.

자신의 삶을 복음에 비추어 본다는 것

우리는 우리 자신의 삶을 복음에 비추어 보고 사랑으로 보듬어 주시는 하느님의 손길을 느낄 수가 있습니다.

우리는 하느님에게서 온 메시지에 주의를 기울이고 면밀하게 음미하며, 그것이 진실한 것인지 아닌지를 항상 확인해야 합니다. 어느 것이 하느님에게 온 것인지를 식별하는 기회이며 하느님에게서 온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을 가려내어야 합니다.

신앙은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이해하려는 것'입니다. 어떠한 의미가 있는지 우리는 성급한 판단을 내리지 않습니다. 그것은 스스로 겪은 경험을 통해 사물이 지니는 의미는 나중에 가서야만 알게 된다는 점을 배웠기 때문입니다.

성서에게 말한 것들은 모두가 당신의 일생에서 일어나는 일들이며, 당신의 인생에서 일어나는 일은 모두가 성서 안에서 예언되고 체험되어 있습니다.

만일 거기에 기록된 사건이 당신의 경험에 비추어 보아 이상하다고 여겨지면 그때는 조심해야 합니다. 성서를 읽는 방법이 옳지 못하다는 뜻이기 때문입니다. 하느님이나 예수님이 옛날에 하셨던 일이 현재 하시는 일과 다르다고 생각한다면, 당신의 인생은 가치 없는 허망한 것이 되고 말 것입니다.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모습을 보고 싶거든 이웃 사람의 모습을 보십시오. 그리고 그리스도가 변한 것을 보고자 한다면, 당신 자신이 변할 필요가 있음을 인정해야 합니다. 또 만일 당신이 그리스도를 받아들이고자 한다면, 당신 자신을 조금이라도 그분에게 내주어야만 합니다. 그리스도를 인식하기 위해서는 당신 자신이 그리스도처럼 보이기 시작해야 한다는 말입니다.

하느님은 우리의 사랑을 받기보다는 우리가 이웃을 사랑하는 것을 더욱 기뻐하십니다. 이웃을 사랑할 때 우리 안에서 그분의 모습을 볼 수 있게 되고, 또 그분 자신이 우리를 완전히 점유하셨음을 아실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무엇을 청하는 하느님은 우리에게 그것을 이록할 것을 부탁하십니다. 우리가 하느님에게 무엇을 받을 때에도, 하느님은 우리에게 의탁하시어 그것을 다른 사람에게 베풀어 주기를 바라십니다.

우리가 은총의 통로가 되지 않으면 은총은 이웃에게 도달하지 않습니다. 우리를 통하지 않고는 하느님은 하느님일 수 없고 우리 없이는 하느님은 이 세상을 구원하실 수 없으십니다.

이 책을 읽으면 그리스도인들이 하는 기도에 대해 더 깊이 생각해 볼 수 있다. 그리고 기도에 대해 우리가 오해하며 범하고 있는 모순을 깨달을 수 있다. 또한 가치관이 뒤바뀜을 느낄 것이고, 우리 교회의 전통 안에 얼마나 많은 비전통적인 것이 본래의 정통적 전통인 것처럼 위장되어 있는지 알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에서 저자가 말하는 것이 혁명적이라 생각하겠지만, 이런 정신이 바로 주님의 본뜻이라 생각할 때, 누구나 이 책을 읽고 자신의 신앙생활, 기도, 자신이 알고 있던 종교관을 정화해야 할 것이다.

<역자의 말> 중에서...

하느님과 더 가까워지고 싶고 어떻게 기도해야 할 것인지 고민하는 분들에게 이 책을 추천하고 싶습니다.

* 가톨릭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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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 부활 영원한 생명 바로 알기 - 현대인을 위한 종말론 강의
게르하르트 로핑크 지음, 김혁태 옮김 / 생활성서사 / 202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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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성서사 특별서펑단에 지원을 했는데 감사하게도 선정이 되서 이 책을 읽고 서평을 쓰게 되었습니다.

게르하르트 로핑크 신부님께서 쓰신 [죽음 부활 영원한 생명 바로 알기] 라는 신앙서적입니다.

이 책을 쓰신 게르하르트 로핑크 신부님께서는 독일 림부르크 교구 사제로 튀빙엔대학교 신약성서학 교수로 재직하였고, 현재 뮌헨 근처 시골에 머물면서 연구와 집필에 몰두하고 있습니다.

국내 출간된 저서로 [믿음의 재발견], [주님의 기도 바로 알기], [예수 마음 코칭], [예수는 어떤 공동체를 원했나?], [당신은 성서를 어떻게 이해하십니까?], [오늘날의 무신론은 무엇을 주장하는가?], [산상 설교는 누구에게?(그리스도교 윤리를 위하여)] 등이 있습니다.

게르하르트 로핑크 신부님은 이 책에서 죽음 그 이후를 부활과 영원한 생명에 초점을 두면서 심판, 연옥, 지옥, 천국, 피조물의 완성 등에 대해 과거의 신학적 언어를 되풀이하거나 정리하는 데 그치지 않고 현대인이 알아듣고 받아들일 수 있는 새로운 언어로 책임 있는 답변을 합니다.

이 책의 추천사를 쓰신 정순택 대주교님께서는 올바른 종말론 연구가 더욱 절실해진 이 시대에, 이 책의 출판이 더욱 반갑다고 하십니다.

자신이 믿는 바를 올바로 이해하고 싶은 오늘의 신앙인들이 이 책을 읽는다면 도움이 될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죽음 후의 삶(사후 세계)에 대해 궁금해합니다. 어떤 이들은 임사 체험을 하기도 합니다.

사실 죽음 후에 우리가 어떻게 되는지에 대해서는 직접 겪어보지 않고서는 확실히 알 수가 없습니다.

만약에 죽음 이후에 모든 것이 끝난다면 우리는 어떤 삶을 살게 될까요?

누구나에게 삶은 어디서든 계속 이어진다.

나의 아버지와 어머니는 내 안에서

나는 내가 이룬 모든 것 안에서.

그것이 나의 부활이다.

낙원은 나의 관심 밖이다.

이 글은 삶과 세상에 대한 죽은 이의 시각을 분명하게 드러냅니다. 이런 세계관을 우리는 어떻게 보아야 할까요?

인간에게는 자신의 후손 안에서 영원히 살고자하는 갈망이 있습니다.

하느님이 없다면, 우리가 이미 늘 고대하며 추구했던 바와의 만남이 없다면, '얼굴과 얼굴을 맞대는 바라봄'이 없다면, 우리 죽음은 다만 얼음처럼 차가운 얼굴 없는 무로의 소멸일 따름이다.

우주로 귀환한다?

우리는 물을 수 있고 물어야 한다. 죽음에서 우리에게 무엇이 일어나는가?

죽음 이후에 나의 삶은, 나의 자아는, 나의 의식은, 내 생각의 역사는 어떻게 되는가?

모든 것이 나와는 끝인가? 거대한 밤, 영원한 잠, 절대적 무가 오는가?

나라는 주체는 영원히 수멸하는가?

아니면 그리스도인들이 말하는, 너무 진부하지만 그렇다고 다른 말로 대체할 수 없는 '영원한 복락'이 오는가?

소멸하고 싶은 갈망

하느님과 관련된 모든 것을 비로소 제대로 이해할 수 있게 해 주는 것은 바로 신앙 체험입니다. 물론 이 신앙 체험에는 이성이 스며들어 있지 않으면 안 됩니다. 말하자면 신앙 체험은 이성 앞에서 자신을 정당화시킬 수 있어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이 책의 방법론입니다.

하느님께는 처음부터 이 세상이 아닌 다른 것이 중요하지 않았습니다. 따라서 부활의 '세상'은 다른 무엇이 아니라 우리가 지금 살고 있는 이 세상이 완성되고 치유되고 거룩한 모습으로 변화된 것입니다. 이 점을 소홀히 할 때, 예수님의 복음은 왜곡되고 변질됩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하느님 앞에서 걸은 그분의 온 역사를 종합하고 영광스럽게 변모시켜 역사 한 가운데서 선명하게 드러냅니다. 따라서 그분의 부활을 이스라엘을 향한 하느님의 가장 위대하고 근원적인 구원 행위로 찬송함이 마땅합니다.

예수님의 부활 사건은 근원적으로 들려 올라감도 순교자의 승천도 현양도 아닌, 죽은 이들 가운데서의 보활로 체험되었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그것은 아주 분명하게도, 예수님의 부활로써 이제 죽은 이들의 부활만이 아니라 세상이 본래 제 모습을 찾는 변모가, 모든 역사의 목표인 하느님의 '새 창조'가 이미 시작되었다는 체험이었다.

죽은 이들 가운데서 맏이

죽은 이들의 부활은 당연히 자연적이고 물리적인 사건이 아닙니다. 하지만 그것은 오롯한 은총의 사건인 세상 창조의 결과입니다. 무엇보다 그것은 죽은 이들 가운데서 일어나신 예수님 부활의 결과입니다. 그분은 모든 피조물의 원형이고 맏이이십니다.

하느님의 자비를 바라는 이는 늘 자기 자신의 죄의 역사를 들여다보아야 합니다. 자기 죄의 역사를 축출하거나 감추거나 미화해서는 안 됩니다. 그러지 않을 때만 우리는 하느님의 자비를 희망할 수 있습니다. 그러지 않을 때만 하느님의 자비가 값싼 자기 정당화를 전략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바로 그렇게 산다면, 하느님과의 최종적인 만남의 순간에 그분의 자비가 우리에게 심판으로 다가올 수 있을 것입니다. 물론 그 심판이야말로 우리 안의 모든 것을 설명해 주고 정화해 주고 치유해 줄 것입니다.

부활은 한 인간이 전인적으로 하느님 앞에 선다는 의미다. 자신에게 속한 모든 것, 자신의 모든 믿음과 희먕, 자신이 행한 모든 선, 자신이 자초한 모든 잘못, 자신의 삶 전체의 높이와 깊이를 다 지니고 하느님 앞에 서는 것이다.

시간의 상대성에 대해

우리는 죽음에서 그저 단순히 하느님을 만나는 게 아니라, 부활하고 계시며 동시에 이미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납니다. 우리의 죽음은 예수님과의 엄청난, 최종적인 만남을 의미합니다.

우리가 영원 속에서 하느님을 만나는 것은 인간이 되신 분 안에서 만나는 것과 결코 다르지 않습니다. 그리하여 우리는 언제나 그리고 영원히 한 인간의 마음속에서 하느님을 발견합니다.

지금이 바로 매우 은혜로운 때입니다. 지금이 바로 구원의 날입니다.

(2코린 6,2)

영원은 오늘, 지금, 여기서 시작됩니다.

이 책에는 성경과 그리스도 신앙 전통과 위대한 신학자들의 사유와 인간 이성을 통해 현대인에게 죽음과 부활, 영혼 불멸과 심판, 영원한 생명과 연옥-지옥, 그리고 피조물의 완성에 대한 책임 있는 답변이 적혀 있습니다.

무엇보다 사순과 부활 시기에 이 책을 읽는다면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과 자기 자신의 죽음과 부활 및 영원한 생명을 깊이 묵상하도록 이끌어 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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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마음의 주치의 - 상처 입은 영혼을 위한 예수님의 내적 치유법
안셀름 그륀 지음, 최용호 옮김 / 가톨릭출판사 / 202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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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스리더스 3월 도서는 3가지 책 중에서 선택권을 주셨는데 저는 고민 끝에 이 책을 선택했습니다.

안셀름 그륀 신부님께서 쓰신 <내 마음의 주치의>라는 책입니다.

책 제목도 끌렸지만 이 책을 처음 봤을 때 표지의 사진과 상처입은 영혼을 위한 예수님의 내적 치유법이라는 부제가 눈길을 끌었습니다.

무엇보다 저는 인류 최고의 영성 상담가이신 예수님 안에서 내 마음을 치유받는 시간을 갖고 싶은 생각이 들어서 이 책을 선택하게 되었습니다.

이 책의 저자이신 안셀름 그륀 신부님은 성 베네딕도회 수사 신부님이십니다.

현재는 피정 지도와 영성 지도, 강연과 저술을 주로 하고 계신다고 합니다. 지역과 종교를 뛰어넘어 많은 독자의 영혼에 깊은 울림을 주는 우리 시대 최고의 영성 작가이십니다. 이분의 글에는 독특한 향과 맛이 있고, 지친 마음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따뜻한 위로를 주는 매력이 있습니다.

저서로는 <숨어 있는 행복>, <숨어 있는 기쁨>, <결정이 두려운 나에게>, <지친 하루의 깨달음>, 안셀름 그륀 신부의 '작은 선물' 시리즈 등이 있습니다.

이 책이 어떤 심리 치료를 대신하는 것은 아닙니다.실제로 병든 사람들이 예수님을 찾아갔고, 그분과의 만남을 통해 건강해졌던 것처럼, 우리도 심리적 병을 앓을 때 전문적인 치료를 할 수 있는 의사나 심리 치료사가 필요합니다.

하지만 마음의 문제로 고통스러워하는 사람은 누구나 묵상을 통해 예수님을 만날 수 있고, 그로써 자기 안에 이미 있는 그분의 치유력을 느낄 수 있습니다. 치유 이야기를 묵상할 때 우리는 때때로 자신이 치유되는 경험을 하게 됩니다. 옛날 수도자들이 묵상을 '되새김질'이라고 표현했듯이, 우리가 예수님의 말씀을 마음에 '되새긴다', 그 말씀은 우리를 변화시킬 것입니다.

또한 우리가 예수님의 비유를 읽고, 그 뜻을 이해하려 애쓴다면, 자신에 대한 생각뿐만 아니라 하느님에 대한 생각도 바뀔 것입니다. 이처럼 우리에게 새롭게 선사된 시각을 통해 우리는 자신이 치유되고 한층 더 자유로워지며, 더 희망이 넘치고 강해졌다는 것을 느끼게 될 것입니다.

 

저자는 예수님의 치유 방식을 크게 세 가지로 보고, 각각의 방식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1장에서는 '대화 심리 치료'의 한 방법인 '비유'에 대해 살펴봅니다.

2장에서는 삶을 새롭게 바라보는 관점을 갖게 하는 예수님의 '말씀'들을 살펴봅니다.

3장에서는 성경에 나온 사례를 통해 예수님이 병든 이들에게 어떤 방식으로 다가가시는지 살펴봅니다.

1장의 예수님이 말씀하신 비유들과, 이어서 제2장에서 다루는 예수님의 말씀들을 통해 우리는 하느님에 관한 생각과 우리 자신의 삶을 숙고하게 됩니다. 그럼으로써 우리는 자기 자신과 건강한 관계를 맺을 수 있게 됩니다.

3장에서 다루는 예수님의 치유 이야기에서 우리가 처한 심리적 위기 상황이 무엇인지 살펴보고, 이를 예수님과의 만남에서 고찰할 수 있습니다.

안셀름 그륀 신부님께서는 이 책의 독자들이 성경을 읽고 묵상하는 가운데 자기 자신을 새롭게 만나고, 자신을 더 이해하며, 내적인 변화와 치유를 체험하기를 바란다고 하십니다.

이 책에 표시된 성경 말씀의 장과 절을 찾아 성경의 본문을 함께 읽는다면 내용을 이해하는데 있어서 도움이 될 것입니다. 그리고 이 책을 읽는 분들 중에서 영성 상담가들은 예수님의 치유 방법에서 영감을 얻고, 이를 통해 내담자들을 더 나은 방식으로 대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의 근본적인 치유법

 

타인과의 비교에서 벗어나라

(마태 20,1-16)

자신을 다른 사람들과 비교할수록 사람은 점점 더 만족할 수 없게 되고, 자신을 받아들이지 못하게 됩니다. 자신을 남과 비교하기만 하면 성공적인 삶을 살 수 없습니다.

우리는 자신을 다른 사람들과 비교하고, 그들을 부러운 눈초리로 바라보는 대신, 자신의 삶을 감사하는 마음으로 살아야 합니다. 그리하여 다른 사람들도 언젠가 생명에 이르는 길을 발견하게 된다면, 함께 기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자신을 개선하려고 노력하지 않는 사람은 발전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자기 자신 때문에 스스로 고통을 겪게 됩니다. 우리가 자신의 일을 재미있어 한다면, 스스로를 다른 사람들과 비교하지 않게 됩니다.

우리가 감사하는 마음으로 자신의 삶을 살아가고, 자신이 어떤 삶을 살아가든지 간에 다른 사람들이 성공적인 삶을 산다면 그것을 기뻐해 줄 수 있을 것입니다.

 

예수님의 말씀 치유법

 

인생의 길잡이가 되는 원칙

"아주 작은 일에 성실한 사람은 큰일에도 성실하고, 아주 작은 일에 불의한 사람은 큰일에도 불의하다." (루카 16,10)

예수님은 우리가 이 세상을 대하는 태도에서 영적인 삶도 결정된다는 것을 말씀하고자 하십니다. 물건이나 자신의 몸을 대하는 태도, 자신에게 맡겨진 일을 처리하는 과정 등 여러가지 일을 대하는 태도에서 우리는 자신이 영적인 삶을 살고 있는지 아닌지를 알 수 있다고 합니다. 예수님은 영적인 것과 세속적인 것을 따로 보지 않으시고, 한데 묶으십니다.

구분은 돈을 "불의한 재물","남의 것"이라고 지칭하셨습니다. 하느님은 우리가 불의한 재물을 성실하게 다룰 수 있을 때에만 우리에게 참된 재산을 맡기시고, 참된 재물을 주실 것입니다.

참된 재산과 재물은 영혼을 뜻하고, 궁극적으로는 하느님을 의미합니다. 따라서 우리의 영서은, 우리가 돈과 매일매일의 생계를 어떻게 다루는지에 달려 있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경건한 말과 생각 뒤로 숨는 것을 원하지 않으십니다. 그분은 우리가 끊임없이 지극히 평범한 일상의 현실과 대면하도록 만드십니다. 우리가 일상을 살아가는 모습에서 우리의 인간적인 면과 영적인 성숙함이 드러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은 축복의 말씀입니다. 그 말씀 안에서 우리는 하느님의 축복을 접합니다. 그런데 그분의 축복은 우리에게 자주 역설적인 방식으로 다가옵니다. 우리는 그저 달래 주시는 말씀이 아닌 예수님의 말씀에 몰두해야 합니다.

그 말씀은 우리가 하느님과 함께하고 하느님의 힘으로 살 수 있는 다른 차원의 삶으로 우리를 이끌어 줄 것입니다.

 

 

예수님의 행동 치유법

 

치유를 위해 직접 찾아온 사람들

'나병 환자를 고치시다' (마르 `1,40-45) : 자기 자신을 받아들이도록 만드는 치유

어떤 나병 환자가 자발적으로 예수님을 찾아왔습니다. 그는 자신이 나병을 앓고 있기 때문에 사람들에게 버림을 받았다고 느꼈고, 스스로 일어설 수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는 자신과 다른 사람들에게 거부당하는 악순환에서 벗어나고자 했습니다.

그는 치유와 관견된 모든 책임을 예수님께 떠넘겼습니다. 다시 말해 예수님이 자신을 깨끗하게 만드셔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병자를 고쳐 주셨지만, 병자가 생각했던 것과는 다른 방식으로 그 일을 행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먼저 나병 환자를 가엾게 여기시고 병자를 위해 당신의 마음을 여십니다. 그리고 그에게 손을 내밀어 그와의 관계를 받아들이십니다. 그리고 병자를 만지시며 당신의 한없는 사랑을 보여주십니다.

마지막으로 예수님은 병자에게 "내가 하고자 하니 깨끗하게 되어라."(마르 1,41)하고 말씀하시며 병자를 조건 없이 받아들이십니다. 그러나 그분은 치유에 관한 모든 책임을 떠안지는 않으셨고, 마법으로 나병을 쫓아내는 마술사의 역할도 맡지 않으셨습니다.

그분은 자유 안에서 병자를 만나셨고, 당신이 하실 수 있는 일을 하셨습니다. 그분은 병자를 도우셨고 그를 받아들이셨습니다. 그러나 그분은 이제 병자의 책임도 요구하십니다. "깨끗하게 되어라."라는 말씀은 결국 이러한 뜻을 지닙니다. "나는 너를 받아들인다. 이제는 네가 네 자신에게 동의하고 네 자신을 받아들여야 한다."

자기 자신을 받아들이기 어려워하는 사람에게는 다른 사람들에게 받아들여지는 경험이 필요합니다. 따라서 그는 먼저 다른 사람들에게 다가감으로써, 자기 자신과 다른 사람들에게 거부당하는 악순환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그리고 만남을 통해 자신도 무엇인가를 수행해야 합니다.

우리는 언제나 자신의 치유에 관여합니다. 그래서 우리에게는 다른 이들과의 대화나 만남이 필요합니다. 그런데 그것과 더불어 우리는 자신에게 있는 것들을 신뢰해야 합니다.

우리의 영혼은 궁극적으로 자신에게 무엇이 유익한지 알고 있습니다. 우리가 우리의 영혼과, 영혼에 있는 치유력을 인식할 때 우리는 용기를 내어 하늘을 우러러보게 됩니다. 그럴때 우리는 자기 자신도 다시 새롭게 볼 수 있게 됩니다.

 

우리는 예수님과의 만남을 통해 자기 자신을 인식할 뿐만 아니라, 하느님이 우리에게 선사하셨던 내적인 근원을 인식해야 합니다. 하느님은 이미 우리에게 자기 치유력과, 능력과 재능, 힘과 희망의 근원을 주셨기 때문입니다.


안셀름 그륀 신부님께서 이 책을 쓰신 주된 목적은 그분의 영으로 가득 찬 우리가 오늘날 그분이 모범을 보이셨던 대로 사람들을 돌보도록 이끄는 것이라고 합니다. 우리가 그렇게 변화할 때 예수님이 당신 제자들에게 기대하셨던 일이 일어날 것이라고 하십니다. , 병자들은 건강해지고, 죽은 이들은 살아나며, 나병 환자들은 깨끗해지고, 마귀들은 쫓겨나게 될 것입니다.

심리 상담이나 영성 상담을 통해 예수님의 뜻에 따라 다른 이를 돌보는 일을 하려는 사람은 누구나, 이 책에 제시된 예수님의 치유 방법에게 많은 가르침을 얻을 수 있을 것입니다.

상담자는 예수님의 비유와 말씀을 올바로 이해하고 해석하여 내담자들에게 예수님의 비유와 말씀을 들려줘야 합니다. 그리고 내담자들은 자신의 구체적인 문제와 관련하여 그분의 비유와 말씀에 관심을 기울일 것입니다.


이 책에 제시된 예수님의 치유 이야기를 묵상할 때 우리 안에 무언가가 변화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하느님 앞에서 자기 자신과 자신의 삶을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봄으로써, 우리는 죄와 고통, 실패 등 우리를 자주 괴롭히는 삶의 문제들을 전보다 어렵지 않게 대할 수 있을 것입니다.

신앙인들은 성경을 단순히 읽을거리로만 대하지 않고, 성경이 이야기하는 바를 미사 때 거행합니다. 그러면 미사 중에 성경 속에서 예수님과 병자들에게 일어났던 일이 오늘날 우리애게도 일어나는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우리는 영성체를 통해 예수님께 나아갈 수 있습니다. 우리는 그분의 말씀을 빵과 포도주의 형상으로 우리 안에 받아 모시고, 그 말씀과 하나가 될 수 있습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우리는 예수님의 말씀을 체험할 수 있습니다.


 

딸아,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평안히 가거라.

그리고 병에서 멋어나 건강해져라.

(마르 5,34)


저는 이 책에 제시된 예수님의 치유 이야기를 통해 위로를 받았습니다. 예수님께서 병자들을 치유해주신 것처럼 저의 내면의 상처와 아픔을 예수님께서 다 아시고 치유해 주실 거라는 희망을 갖게 되었습니다.

치유받기 위해서는 먼저 자신을 제대로 바라보고 솔직하게 털어놓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기도와 영성체를 통해 예수님을 만나고 필요에 따라 전문가인 의사나 심리 치료사의 도움을 받는다면 좋을 것 같습니다.

내적으로 치유받고자 하는 모든 이들에게 이 책이 이정표가 되고 힘이 될 거라고 생각합니다.

좋은 책을 보내주신 가톨릭출판사에 감사를 전하고 싶습니다.

 


*가톨릭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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