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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란시장
이경희 지음 / 강 / 202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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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모란시장의 의리는 네발 달린 생명을 어떤 방법으로 죽이고 취급하느냐에 달려있었다. 사람들은 쉽고 단순하게 생명의 서열을 얘기했다. (p.35)"


고향이 모란시장에서 가깝다. 어린 시절부터 모란시장에서 보신탕 거리를 산다는 말을 많이 돋고 지냈다. 그래서 모란이라는 말이 개와 관련된 말인 줄 알았다. 그게 꽃 이름이란 걸 나중에 알았지만 중년이 된 내게 아직도 모란-보신탕이라는 자동 연상 작용은 유효하다. 모란 시장은 그런 곳이다.
모란 시장은 욕망이 응축되다가 일순간 폭발하는 곳이다. 상설시장이라면 다소 분산이라도 될 텐데, 그 말로만 듣던 오일장이기에 4일 동안 쌓아둔 뭔가를 장날 쏟아낸다. 작가는 그렇게 모란 시장을 그려내고 있다. 그곳은 광기와 어리석음이 교차하는 곳이면서 우리 사는 세상의 복사본이다.

"사람들은 필요하거나 필요치 않은 물건까지 양손이 넘치도록 사들고도 시장에서 쉽게 벗어나지 못했다...기어이 미로에 갇히고도 벗어나길 원치 않는 사람들로 인해 오일장은 언제나 사월의 논바닥처럼 시끄러웠다. (p.8)"
​​
이 소설은 화자는 '삽교'라는 이름의 늙은 개다. 이름으로 짐작할 수 있듯이 삽교리에서 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리고 그 먼 거리를 자의로 이곳에 오지 않았다는 것도 충분히 알 수 있다. 모란 시장은 인간의 먹고 즐기기 위한 목적을 위해 그렇게 여기저기서 잡혀 오는 개들의 집합소이다. 그 개들은 억지로 이곳에 왔을 뿐 아니라 목숨을 지키는 것조차 맘대로 할 수 없다. 살아보려 발버둥 치다 그저 당할 뿐이다. 삽교는 정말 운 좋게 목숨을 건졌고 이 소설의 주인공이 되어 시간의 흐름에 다라 늙어가는 복을 누리고 있다. 이걸 복이라고 할 정도로 서글픈 전제를 깔고 진행되는 소설이다. 
등장인물 중 중심축에 시장 최고의 개도살전문가 경숙이 있다. 생활고에 찌들어 입성한 모란 시장에서 번영회장인 대도축산 박사장과의 결혼으로 문제를 타개해 보고자 하지만 빚덩이보다 잔혹한 박사장에게 갇혀 무고한 생명들을 거두는 일에 몰두한다. 경숙은 개들에겐 공포의 대상이고, 삽교의 눈에는 외모나 성격이 인격체라고 보기에 어려운 존재였다. 하지만 삽교가 자의로 이곳에 온 것이 아니듯, 경숙도 마찬가지였다. 시장은 그렇게 불쾌한 운명이 한 생명과 영혼을 억압하는 곳이다.  
그러다 경숙은 나름의 탈출구를 찾는다. 유일하게 시장의 정치경제 논리에서 독립한 능평꽃집이다. 꽃집 근처에 떨어진 장미 꽃잎이 그에겐 유일한 위안이다. 향기를 맡으며 오늘 하루 자신의 손에서 스러져간 작은 생명들에게 용서를 구한다. 그리고 인근 탄천에서 매일 꽃잎과 하천물로 몸을 씻어낸다. 일종의 종교의식과 닮아 있는 행사를 매일 치른다. 능평꽃집 사장은 그런 경숙을 이미 알아보고 장미를 일부러 뿌려 놓았다. 험악한 시장에서 새로운 생명이 싹트는 순간이다. 그렇지만 안타깝게도 경숙은 변치 않는 현실로 다시 돌아가야만 하는 매일을 반복한다. 
중요한 인물이 많이 등장하지만 능평꽃집과 경숙의 연대는 매우 중요한 구조라고 생각한다. 살리려는 자가 있다는 것은 죽이려는 자가 있다는 것이니까. 작가는 이 책을 통해 동물보호를 외칠 뿐 아니라 인간 보호도 함께 호소하고 있다. 인간이라는 존재는 동물들의 생존을 직접 결정할 수 있는 위상을 자랑한다. 인간 내외부의 개혁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동물보호는 요원한 일이기 때문이다. 
더 이상 개를 죽일 마음이 없어진 경숙은 드디어 전면적으로 거부의 움직임을 보인다. 무시무시한 박사장의 주먹과 악다구니 앞에서도 경숙은 작지만 따뜻한 그 생명을 품에 꼭 안는다. 자기가 죽을 수도 있지만 박사장 앞에서 개들을 풀어준다. 그리고 박사장에 죽음과 다름없는 폭력을 당한다. 인간과 동물이 충분히 공존할 수 있지만 시장에선 불가능하다. 누구라도 대신 죽어야 하는 구조를 갖고 있는 것이다. 이런저런 죄악이 가득한 세상 속에 속죄제물이 필요하다는 지극히 논리적인 구조이다. 하지만 결과는 늘 같다. 동물이 죽임을 당하고 사람은 먹는다. 하지만 경숙의 희생으로 인해 작은 가능성이 생겼다는 데서 위안이 들었다.
이 소설에선 '품'이라는 단어가 자주 등장한다. 삽교를 키우는 명진은 심각한 정신질환자이다. 그는 약 없이 정상인 비슷한 생활을 하지 못한다. 그가 유일하게 의존하는 존재가 바로 삽교이다. 삽교를 늘 품에 꼭 안아주지만, 사실 안긴 것은 삽교가 아니라 명진이라고 느껴졌다. 그런 부족한 명진의 품이라도 서로의 온기라도 공유할 수 있어서 삽교도 좋다. 둘의 조합은 바로 시장에서 유일하게 공존이 가능한 명진의 집, 모란시장에서 가장 높은 대도빌딩이다. 시장에서 동물을 사랑하는 사람은 정상이 아니라는 역설도 함께 담고 있다. 하지만 정상이 아닌 사람의 품은 안아줄 수 있는 힘이 있다. 힘없는 동물들에겐 그곳이 차라리 천국이다. 

소설 초반에 나오는 삽교의 고양이 친구 송이의 한마디가 기억에 있다. "너는 아직도 사람에 대한 희망이 있구나." 삽교는 잡혀 죽지 않았다. 그리고 송이의 질문에 대한 답을 스스로 찾았다. 삽교의 자연사는 희망을 함축적으로 보여주는 결말이 아닐까. 결국 돕는 손길과 더불어 살아가는 존재들 간에 가질 수 있는 최소한의 연대가 우리에겐 필요하다. 
송이를 포함한 몇몇 동물들은 위험한 시장에 있느니 자유를 찾아 탈출을 감행한다. 하지만 자유의 결과는 죽음이다. 사람에 죽으나 굶어 죽으나 죽는 건 매한가지지만 그 결과가 죽음 한 가지라는 것은 얼마나 우리 주변의 생명들이 태생적인 위험에 처해 있는지 단적으로 보여주는 내용이다. 가능하면 죽는 걸 피하면 좋겠지만 최대한 주어진 생명에 대해 최선을 다해 살 수 있는 권리가 누구에게나 필요하단 걸 강조하는 대목이기도 했다. 가슴이 먹먹해졌다.
"부러웠다! 그들의 연대가, 그들의 강인함이 부러워 화가 났다. 우리도 연대하면 그들처럼 강해질 수 있었을 텐데, 그랬으면 우리도 대도축산 같은 곳에서 희생당하지 않고 살 수도 있었을 텐데. 우리도 우리만의 세상을 만들었더라면 뿔뿔이 흩어져 살다가 생을 마감하지는 않았을 것이었다. (p.228)"

판타지적인 이야기가 등장해 몰입감을 더해 준다. 수산업체에서 나오는 대구 머리를 구워파는 고씨 할머니와 손자로 추정되며 말 못 하는 '코'. 시장에서 삽교에게 호의적인 극소수 사람 중 하나인 그들은 말없이 장사하고 저녁이 되면 어디론가 사라진다. 어디로 갔는지 아무도 모르고 관심도 없다. 

삽교가 지하세계에서 활동하는 그들을 발견했다. 무수한 쥐 떼들과 함께. 그곳에서 '코'는 시장에서의 바보가 아니었다. 쥐들도 동물이 아닌 마치 사람같은 행동을 하며 코의 선동에 일사불란한 모습을 보여준다. 

쥐라는 존재의 번식력, 생명력은 기본적으로 공포심과 불쾌감을 준다. 한 마리가 뛰거나 찍찍대는 소리만 들어도 불안함이 증폭된다. 어디선가 분명 모여있을 것 같기 때문이다. 보고 들리는 것만이 전부가 아닌, 그것이 쥐라는 존재가 부여하는 상상력이다. 

소설 말미에 고씨 할머니, 코와 쥐 떼는 탄천 물살을 가르며 모란시장을 향해 돌격한다. 철옹성 같은 그곳으로. 더 많은 것을 가지려 하는 존재들로 가득 찬 그곳으로. 삽교가 본 이 장면은 분명 환상일 테지만 상징을 빌려서라도 작가가 이루려 한 꿈이 나타나 있다. 독점하려고 하는 자들이 있다면 균형을 맞추려는 자들이 있어야 한다. 독점의 반대는 다시 빼앗는 것이 아니다. 상식적 범위에서의 분배이고 공존이다.

동물의 생명을 맘대로 취할 수 있는 권한은 언제, 누구에게서 주어졌는가? 각자 나름의 출처를 가지고 신빙성 있는 주장을 할 수 있는 문제이다. 여러 답이 있다는 것은 어찌 보면 좋아 보이지만 그 답에 따라 언제든지 여러 모양으로 처분 당할 수 있는 동물의 입장에선 달가운 상황이 아닐 것이다. 그렇다. 질문 자체가 잘못된 것이다. 

동물마다 주어진 운명이 다르다고 할 것인가? 고기용으로 태어난 존재가 있고 반려동물로 태어난 존재가 정해져 있는가? 그렇지 않다고 조심스럽게 말하고 싶다. '가능하다면' 함께 더불어 살아갔으면 좋겠다. 그리고 곤경에 처한 동물이 있다면 돕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으면 좋겠다. 나와 전혀 상관없는 일이라고 고개를 돌리지만 않았으면 좋겠다. 생명은 모두에게 단 한 개만 주어진 것이다. 주어진 것은 선물이고 선물은 소중하고 감사한 것이다. 
사람에게 희망을 찾는 것은 다소 힘들지 않을까? 우리에겐 긍정적인 방향으로의 연대가 필요하다. 현실적인 문제로 연대를 이룰 순 없더라도 연대를 이루고자 하는 방향의 마음을 우리 모두가 갖게 되길 소망한다. 오늘도 출근하면서 주차장에서 만난 길냥이와 반갑게 인사했다. '이따가 또 건강하게 만나자!' 
작가가 흥미로운 인물과 문학적 장치를 많이 뒀지만 나는 내가 개인적으로 받은 메시지 중심으로 이야기를 해보고 싶었다. 작가의 다각도의 이야기 전개를 통해 각자 느낄 수 있는 부분이 다양하고 풍성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많은 분들이 읽고 나름의 방법으로 연대를 이루어 좀 더 따뜻한 세상이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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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샷 : 불가능을 가능으로 만든 화이자의 대담한 전략
앨버트 불라 지음, 이진원 옮김 / 인플루엔셜(주) / 202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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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샷Moonshot은 문제 해결을 위한 대규모 프로젝트를 의미한다. 여기선 코로나19에 대해 고군분투하는 화이자와 CEO 앨버트 불라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이 책을 읽기 전에 소망하는 바가 있었다. 부디 화이자 용비어천가가 되지 않길. 독자가 의미 있게 읽고 세상을 긍정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데 도움을 주길. 걱정한 바와 달리 다행히도 후자의 방향을 타고 진행된다.

2019년 12월 31일, 최초로 발견된 코로나19바이러스는 세상을 바꿔버렸다. 수 세기에 걸쳐 영화나 소설 등을 통해 예견된 것처럼. 화이자는 CEO 앨버트 불라를 필두로 발 빠르게 움직이기 시작한다.

백신학자는 생명과학계에서 특별한 종족이다. 의사와 생명과학자와는 달리 백신 자체를 연구하기 위해 이 분야로 뛰어들었고, 사람들을 보호하는 일에 극도로 헌신적이다. 백신 개발에는 치료제를 개발할 때와는 완전히 다른 사고방식이 요구된다. (p.60)

바이러스의 침입을 사전에 차단하느냐, 병이 걸렸을 때 빠르게 치료를 하느냐. 본래 화이자는 코로나 발생 때만 해도 치료제 개발에 집중하고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엄청난 확산세의 속도를 감지하고 백신 개발로 선회했다. 이건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기업 입장에서는 회사의 명운을 건 모험이었다. 일반인들은 백신 개발은 전염병에 대해 몇 번 테스트해보고 출시되는 것으로 알고 있을 수 있다. 그렇게 생각했다면 미안한 마음이 들어야겠다. 백신 개발은 상당히 장기간에 걸친 프로젝트이며 성공률도 높지 않다. 에이즈 백신이 아직도 나오지 않은 것이 증거가 될 수 있겠다.

화이자가 가지게 된 전 세계적인 명성 뒤에는 생명을 건 의사결정과 격무가 있었음을 알게 됐다. 어느 기업이나 마찬가지겠지만 말이다.

그는 내게 "당신은 결코 만족하는 법이 없군요. 지금 불가능한 요구를 하고 계신 겁니다."
그의 말은 모두 사실이었다, 우리는 이미 이번 여정을 시작했을 때 꿈꾼 것보다 더 많은 일을 해냈다.
그런데도 나는 절대 만족하지 않았다. 계속 더 많은 것을 요구했다. 우리는 드림팀이었다.
경이적인 능력을 가진 사람들로 구성되었기에 해낼 수 있다고 믿었다. (p.149)

이 책의 작가이면서 CEO는 앨버트는 때로는 불도저 같은 성격(지중해 출신인 것도 한몫했지만)으로 인해 팀원들에게 실망감을 안겨줘 후회한다고도 소회했다. 그럼에도 단기간에 이렇게 많은 것을 이룰 수 있었던 데는 분명한 신뢰가 있었다. 그것은 다름 아닌 경영진과 현장과의 쌍방향 신뢰였을 것이다. 그리고 더 중요한 것은 기업문화의 전환이었다.

화이자가 백신 개발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가장 중점에 둔 사항은 '기쁨'이었다고 생각한다. 먼저 직원의 기쁨, 그리고 화이자의 서비스를 받아 더 나은 삶으로 나아갈 사람들의 기쁨 말이다. 이런 문화의 바람은 백신의 공급의 평등 정신으로 이어진다. 백신 사용 승인이 나자마자 백신을 예약한 곳은 당연히 고소득 국가였다. 저소득 국가는 그들에게 영향을 미치는 다른 국가, 기업 등의 영향력에서 자유롭지 않아 화이자 백신을 주문할 수도 없는 구조적 문제에 봉착한다. 앨버트는 이런 사회, 정치적 장벽과도 맞서야 했다. 이 부분이 상당히 감명 깊었다.

나라의 소득수준에 맞춰 백신 가격을 3단계에 걸쳐 차등 책정해서 모든 사람들이 상대적인 기준 속에서 부담 없이 백신의 혜택을 누릴 수 있는 장치를 만들었지만 그 마저도 맘대로 되지 않았다. 가장 어려운 충돌은 아이러니하게 미국 정부와의 갈등이었다. 1차 주문량인 1억 개가 소진되자 2차로 1억 개를 추가 주문했으나 화이자는 다른 저소득 국가에 이미 공급계획을 잡았던 상황이다. 하지만 미국 정부는 미국 회사가 자국에 먼저 백신을 공급하라며 다른 나라에 갈 물량을 미국으로 돌리라고 압박한다. 화이자 생산부가 기적을 일으키지 않았으면 어떤 악화일로를 걸었을지 상상이 가지 않는다.

이처럼 화이자는 우리가 보지 못하는 곳에서 분투했다. 백신을 맞고 알 수 없는 이유로 고통을 겪었을 사람들도 많아 화이자 이름만 들어도 치를 떠는 분들도 많을 것이다. 하지만 기업이라는 시각으로 본다면 화이자가 보여준 단기간의 초고속 프로젝트를 이렇게 완성하고 지금도 진행 중이라는 것에 경의를 표한다. 앞서 말 한 것처럼 이 책이 화이자 용비어천가가 되지 않은 것이 다행인데 나의 감상문이 그렇게 돼 가고 있는 것이 신기할 따름이다. 지금도 인류의 건강을 위해 힘쓰는 많은 분들께 감사를 표할 뿐이다. 처절하고 앞이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도 앞서 싸워 주셔서 또한 감사합니다. 우리는 승리할 것입니다. "Science will w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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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나지 못한 말들 - 너무 늦게 깨달은 소중한 것들에 대하여
이림 지음 / 심플라이프 / 202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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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줄 요약 : '있을 때 잘해'라는 충고의 과격하고 슬픈 변주.

책을 읽다가 몇 번이나 덮었는지 모른다.

단지 서평단 임무를 수행해야 한다는 책임감만으로는 감당하기 힘들었다. 누구나 부모는 보내야 하고 나도 보내봤기에 버틸 수 있다 생각했지만 어림없다며 문장으로 후려치는 통에 참 아팠다.

그러다 문득 생각이 들었다.
작가는 어떤 마음으로 이 글을 쓰고 있었을까?

단지 읽기만 하는 내가 이 정도로 힘든데 작가는 쓰면서 몇 번이나 파일을 종료하고 컴퓨터를 껐다가 켰을까?

그럼에도 책이 내 손안에 있다. 어떻게든 써냈다는 거고 어떻게든 살아 냈다는 거다. 지금은 만날 수 없는 부모에 대한 그리움, 연민, 분노, 증오, 애정 등 공존하기 어려운 감정들을 한데 섞어 어떻게든 이뤄 냈다. 살아내줘서, 써줘서 고마웠다. 

알코올 중독자 아버지, 고 1때 돌아가신 어머니, 남편과의 불화, 끝내는 이혼, 아버지와 다르게 살고 싶었지만 결국 자신도 알코올 의존... 기구한 삶의 연속보다 더 아픈 건 따로 있었다. 책에도 나온 표현이지만 비탈길을 굴러 내려가는 공처럼 잡을 수 없는 아버지와 나의 인생. 그까짓 중력이 뭐라고 극복해 내지 못하는 나의 유약함이다. 

"딸"이라고 녹음된 어머니의 핸드폰, 신문사 편집 기사인 딸 이름을 찾으려 구독한 신문 뭉치로 대변되는 부모님의 물건이 있다. 작가는 물건을 매개로 애증의 부모와 소통하고 있다. 버리지 말았어야 했을 물건이었지만 어쨌든 버려냄으로써 또 한 번 살아낸다. 나 역시 작가를 응원하면서 동시에 나를 응원하는 마음이 있었던 것 같다.

알코올 중독 유전자가 있다는, 그래서 술독에 빠진 아버지를 구하기는커녕 자신조차 빠져가는 장면이 기억에 남는다. 톨스토이의 '불행한 가정은 그 이유가 다 다르다'라는 말과는 달리 술 때문에 무너져 가는 또 하나의 가정이 여기 있었다. 나도 비슷한 아버지가 있었기에 그렇게 살지 않으려는 일념으로 삶을 붙잡고 있다. 작가도 나처럼 지금 이 순간도 싸우고 있을 것이다. 함께 해줘서 고맙고 나도 작가와 함께 싸울것이다.

나는 출근해서 일하다 문득 지금쯤 아이들이 뭘 하고 있을지 궁금할 때가 있다. 그럴 때면 이젠 세상에 없는 아빠를 생각한다. 

우리 아빠도 그랬을까? 이제야 물어보고 싶은 마음이 든다. 나도 그랬어라고 하면 거짓말 아니냐고 몰아 붙이고 싶고 그렇지는 않았다고 하면 완전 나빴네 하고 핀잔을 주고 싶다. 상상 속에서라도 이제는 볼 수 없는 아빠와 웃으며 대화해 본다. 

책을 읽으며 정말 많이 울었다. 작가의 말처럼 너무 보고 싶어서. 아빠는 이제 볼 수 없어서 보고 싶고, 엄마는 언제든 볼 수 있어서 보고 싶다. 나도 후회하겠지. 만날 수 없을 때 더 후회하겠지. 우리는 모두 후회할 준비가 되어 있는 것 같다. 그게 당연하다고 생각하니 조금은 마음이 괜찮아진다. 그래서 이 책에, 그리고 작가에게 감사하다. 

(무슨 말을 써놨는지 잘 정리가 안된다. 이런 혼란스런 서평의 흐름이 바로 '만날 수 없는 말들'의 속성을 보여 주는 것 같다. 어렵사리 감상을 마무리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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링 마 지음, 양미래 옮김 / 황금가지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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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선 열병이 전 세계를 덮친다. 확진자는 그의 삶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루틴을 끝없이 반복하며 죽음에 이르게 된다. 중국 이민자인 캔디스 첸의 눈으로 이야기는 전개된다. 급격하게 쇠락해가는 뉴욕, 그리고 세계 여기저기에서 들려오는 동일한 패턴의 소식을 통해 멸망해가는 세계를 그리고 있는 소설이다.

 현재와 과거, 그리고 더 과거로 시점이 이동하는 형식으로 스토리가 펼쳐진다. 왜 캔디스가 콜로니에 합류했는지, 어쩌다 미국에 거주하게 됐는지 플래시백을 통해 꼼꼼하게 설명해 준다. 그렇다고 그 설명이 과하다기 보다 내용 전개를 풍성하게 해준다는 느낌이 더 들었다. 작가의 독자를 향한 치밀한 배려심을 느낄 수 있었다.

 단절이라는 간단 명료한 제목을 통해 작가가 무엇을 드러내려 했을까? 치명적인 바이러스는 사람, 공동체, 국가 간을 단절시킨다. 우리가 이미 경험하고 있는 현상이다. 하지만 작가는 단절 그 이상의 것을 이야기하고 싶었다고 생각한다.

 늘 회사 입구에서 날 반겨주던 살가운 관리담당자가 어느 날 없다면? 내 옆에서 모니터를 바라보며 자판을 치던 동료가 없다면? 회사 대표가 새로운 계약서를 내밀며 소수 정예로 TF 팀을 꾸린다고 한다면? 화사엔 작동하는지도 모를 CCTV와 나만 남았다면? 이 모든 것이 세상이 비정상적으로 돌아가고 있다는 명확한 증거인데도 캔디스는 관성에 이끌려 계속 출근한다. 엘리베이터가 고장 나 추락의 위험성을 느꼈는데도, 911도 출동하지 못한다는 상황이 발생했지만 30층을 넘는 계단을 매일 같이 걸어 올라가 출근한다.

 나라면 어땠을까? 극한의 상황이 소설 속에 펼쳐지고 있지만 큰 이질감은 느끼지 못했다. 나도 그렇게 계속 출근하지 않았을까? 집 밖은 위험하지만 회사만큼은 나를 안전하게 지켜주지 않을까? 지금까지 그랬던 것처럼 말이다.

 루틴이라는 게 정말 무섭다. 요즘 많은 사람들이 없던 루틴까지 만들어 기적을 낳아보겠다는 움직임이 많다, 운동, 독서 등 좋은 것이 습관화가 되면 더 이상 그것을 반복하는 데 에너지를 쏟지 않아도 유지할 수 있다는 이론도 있다. 좋은 결과가 있었다고 SNS에 무수한 간증자들이 넘쳐난다. 이 소설에서는 선 열병에 걸린 사람들이 자신의 루틴을 계속 반복한다. 하지만 삶을 영위하는데 필수인 식사, 수면, 목욕 등의 행위는 일절 하지 않고 소위 '일'이라고 하는 것에만 집중한다.

 작가는 바로 여기서 현대인을 습격하고 있는 결핍에 집중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루틴 반복은 뭔가 하고 있다는 성취감으로 우릴 채워주는 것 같지만 그것이 예기치 않게 중단됐을 때 찾아오는 불안감으로 이전에 채웠던 뿌듯함을 상쇄시킬 수 있다. 그리고 루틴을 꾸준히 지켰지만 SNS의 간증자들과 같은 성과가 나오지 않았을 때는 박탈감까지 떠안을 수도 있다. 이 얼마나 소모적인 비극인가.

 캔디스는 몇 명 남지 않은 회사에서 이와 같은 불안감을 느낀다. 할 일이 없어졌기 때문에 찾아온 상황이라고 캔디스를 통해 말하고 있다. 어렵게 정착한 뉴욕이라는 세계의 중심에서 일하고 있다는 자부심은 일을 향한 강력한 강박과 집착을 불러일으킨다. 그것도 모자라 일과 자기 자신을 일치시킨다. 선 열병으로 인해 멸망하고 있는 세상 속에서 캔디스는 점차 자기 자신을 잃어가고 있다.

 장류진의 '일의 기쁨과 슬픔', '달까지 가자' 등의 직장 소설은 솔직하고 디테일하게 일과 나의 관계를 정의하고 있다. 표현과 배경의 결은 확연하게 대비되지만, 링 마의 소설에서도 '일'이라는 내 전부와도 같은 루틴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게 만든다. 일이 나인지, 내가 일인지, 내가 나인지. 가장 위험한 단절은 바로 이 지점에서 이루어진다. 바로 나와 나의 단절이다.

  캔디스는 새로운 생명을 잉태한다. 당연히 원치 않았던 임신이었겠지만 무조건 낳겠다는 결심을 한다. 그 새로운 생명이 무사히 빛을 보았는지 결말에 표현되지는 않았다. 그 아기가 처음으로 볼 빛은 희망의 빛이 되길 간절히 바랄 뿐이다. 작가는 아마도 이 생명을 희망이라는 메타포로 활용하고 싶었던 것 같다. 읽으면서 한없이 슬프고 무력해지다가 마지막에 잃었던 힘을 보충한 기분이 들었다.. 이것이 독서의 매력이 아닐까?

 전염병에 의해 멸망하는 세상을 그렸기 때문에 코로나19로 급변하는 우리의 현재와 많이 닮았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 이야기가 더 허구적으로 느껴졌다. 소설이니까 당연히 픽션임에도 불구하고 허구적이라고 느껴진다는 느낌은 이 소설이 처음부터 끝까지 사실은 메타포의 향연이라는 생각으로 이어진다. 그래서 작가는 몇 가지의 평행 구조를 만들어놓고 끝없이 직유 및 은유하며 멈춤 없는 전개를 펼치고 있다.

그 몇 가지 구조는 다음과 같다.

1. 국가의 단절
세계를 이끌어가는 연방 국가 미국은 마치 유럽 식민지 시절 이전 시절보다 후퇴한 듯한 모습을 보여준다. 캔디스가  머무는 뉴욕을 쑥대밭으로 만들어놓으니 다른 주, 도시들은 보여줄 필요도 없게 된다. 인디언이라 불리는 미국 원주민들은 땅의 경계 없이 근본적인 평화를 추구하고 있었다. 선 열병으로 인해 망가진 뉴욕(호은 미국)은 과거의 상태에서 평화라는 요소만 빠진 모습을 하고 있다. 나 자신을 스스로 지킬 수 없는 위협적인 공간이다.

밥을 리더로 상점이나 주택을 습격하여 목숨을 부지하는 콜로니가 쇠락한 뉴욕의 축소판을 보여준다. 다만 그들은 아직 열병에 감염되지 않은 상태로 의지와 이동 능력을 가진 능동적인 조직이다. 그들은 습격을 할 때마다 신에게 기도하는 등 일종의 의식을 가진다. 그렇게 하면 자신들의 마음을 공격하는 죄책감이라는 징후로부터 자유로워지기라도 하듯. 규칙이 있고 명백한 리더가 있지만 뭔가 석연찮다. 스스로 통제 능력을 잃은 뉴욕이나 뒤틀린 세계의 표상인 밥 일행이나 매한가지의 단절, 절망이라는 은유를 강하게 보여주고 있다.

2. 가족의 단절
캔디스는 자의로 미국에 자리 잡지 않았다. 많은 이민자 2세가 그랬듯이 부모의 뜻과 의지의 연속선상에서 그렇게 됐다. 하지만 가족을 이끌어가던 캔디스의 아버지와 어머니 사이에서도 단절 현상이 일어난다. 미국만이 살 길이라는 아버지와 중국으로 돌아가는 것이 답이라는 어머니 사이에서 캔디스는 그저 시간과 상황의 흐름에 몸을 맡겼다. 흘러 흘러서 결국 누구보다 뉴욕에 강하게 매몰된 화석 같은 존재가 되어 버린다. 살아있는 화석이라고 불리는 실러캔스가 아프리카 앞바다에서 발견됐을 때의 충격과 반가움의 교차는 NY고스트 블로그를 통해 캔디스가 망가진 뉴욕을 전 세계에 알리는 소설 말미에도 동일하게 표출된다.

 캔디스의 부모는 시대의 흐름 속에서 강하게 충돌한다. 가족이라는 가장 기본적 형태의 공동체에서 어린아이를 둔 두 어른의 갈등은 자연스럽게 각종 단절로 연결된다. 캔디스의 가족도 그런 보편적인 과정을 따라 삶의 파도에 몸을 맡긴다. 중국 이민자 가족으로서 미국이라는 복잡 미묘한 사회 속에서 살아남는 과정을 꽤 적지 않은 분량으로 서술하고 있다. 사회에서의 유리를 온몸으로 막아내며, 여러 커뮤니티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장치를 마련하며 그렇게 처절한 삶의 모습을 보여준다. 캔디스도 결국 혼자되었을 때 부모들과 같은 선택을 반복한다. 열병이 창궐한 상황에서도 말이다.

3. 기업, 개인의 단절
 스펙트라는 캔디스가 일하는 출판 중개 업체이다. 타임스스퀘어에 위치한 어느 정도 규모가 있는 회사다. 기업이란 조직은 크면 클수록 변화를 두려워한다. 현재 자신에게 주어진 위치와 힘을 유지하는 것이 좋기 때문이다. 하지만 소설에선 그 어떤 강한 조직도 무너질 수밖에 없는 상황을 설정한다. 결국 스펙트라는 구조조정을 꾀하고 있으며 소수의 희생제물만 남기고 움직인다. 하지만 건물은 그대로 둔다. 그 안에 끝까지 남은 것은 캔디스다. 기업은 거절할 수 없는 제안을 새로운 근로계약서로 제시하며 그 약속도 끝까지 이행함으로써 캔디스의 희생을 이끌어낸다. 움직이지만 움직이지 않은 것처럼, 그렇게 기업은 진화의 루틴을 반복하며 멸망한다.

 조너선은 능동적으로 움직인다. 그리고 캔디스에게도 몇 번이나 같이 떠나자고 한다. 이 소설 속에서 유일하게 현실성이 결여됐으면서도 결과적으로 가장 좋은 선택을 한 것 같다. 어차피 다 죽을 운명인데 움직이지 않고 후회하기보단 나은 것이니까. 그리고 루틴에서 자유로운 것은 역시 조너선밖에 안 보인다. 위태한 외줄을 타고 비틀거리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의 방에 차곡차곡 개어진 옷가지들처럼 안정적이다.

서두에도 말했지만 작가가 단절이라는 제목을 붙였지만 사전적 의미와는 다른 본질의 단절을 말하고 있다. 대조적으로 짝 지어지는 몇 가지 구조는 결국 인간 개인 내적으로 응집해야 한다는 주제의식이 드러나는 것으로 보인다. 그렇게 되지 않으면 생명력을 상실한, 무기 물질과도 같은 루틴의 반복으로 멸망의 길을 갈 것이다. 뉴욕처럼, 스펙트라처럼, 콜로니처럼 말이다. 나를 잃지 않는 길이 단절을 막는 것이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지원 받아 작성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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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 진
이동은.정이용 지음 / 창비 / 202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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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가장 무서운 것이 무엇인가?" 

 

이 질문에 대한 답을 무겁고 슬프게 보여주는 만화이다. 

 

20대의 진아는 부모를 잃고 고3 여동생 학업을 뒷바라지하기 위해 낮엔 특수청소, 밤엔 대리운전을 한다.
40대 수진은 식당에서 일하며 20대 아들과 산다. 50줄을 앞두고 가까이 지내던 임소장의 아이를 갖고 만다.

 

삶은 소중하다. 삶의 모습에 따라 때로는 행복하고 마냥 즐거울 수도 있다. 하지만 누군가에겐 가장 무서운 것이 삶이 될 수도 있음을 보여준다. 삶이 내 목숨을 벼랑 바로 앞까지 몰아붙인다는 게 어떤 느낌일까? 진아는 하루하루 그런 삶을 살아간다. 누가 손가락 하나로 툭 치기만 해도 마감될 것 같은, 그 결과가 하나도 이상해 보이지 않는 위태로움이 뭔지 보여준다. 벌건 컬러로 표현된 진아 파트의 그림은 의도된 그대로의 감정을 품게 도와준다.

 

 

 

반면 수진의 일러스트 컬러는 현실의 느낌이다. 진아의 주변엔 죽음이 산적해 있지만 수진에게는 생명이 자꾸 생겨난다. 다만 완벽히 환영받지 못할 뿐이지만. 생명의 잉태라는 고귀한 것을 갖고 삶은 계속 장난을 쳐온다. 임소장의 답답한 언행들이 그것을 상징하는 것으로 느껴진다. 그나마 멀쩡(?) 해 보이는 수진의 아들조차 삶의 긴장을 늦추지 못하게 한다. 진아보단 나아 보이지만 둘 다 삶의 공격을 한 몸으로 받고 견뎌내고 있어 보는 이로 하여금 긴장을 늦추지 않게 한다. 다른 형태의 '내 이야기'라는 생각도 같이 들기 때문에.

 

📚 "모르겠다.
누구는 그냥 살라 하고
누구는 대비하라 하고
대비하면서 하루하루 그냥 살면
끝인가...?
사는 의미는 뭔지 모르겠고
산 만큼의 세월은 더 남아 있는데
그 세월은 무엇으로 더 채워야 하나."(P.158-9) 

 

만화는 늘 즐거운 것이었다. 가볍고 익살스럽게 존재하여 어린 시절의 추억을 되살려주는 주 콘텐츠다. 만화라는 수단이 진지하고 묵직한 주제를 전달할 수 있다는 것을 경험한 건 얼마 되지 않았다. 강풀의 '26년', 윤태호의 '인천상륙작전'등이 그러했다. '진진'은 개인의 삶을 그렸지만 앞서 말한 작품들처럼 역사를 그렸다. 지금보다도 십 수 년 정도 지나서 보면 아마 2020년의 아픔과 외로운 정서가 많이 생각날 것 같다.

그 정서를 함께 추억하며 쓴웃음이라도 지어보려면,
이 세상의 모든 진아, 수진들. 다 살아있어라. 
 

 

 

 

삶은 그냥 흘려보내는 시간의 물리적 흐름이 아니라 조건 없이 주어진 선물이면서 필사적으로 싸워 살아내야 할 대상이다. 성의 없는 말처럼 느껴질지 모르겠지만 같이 힘내자. 2020년이 덜 고통스럽게 기억되려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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