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 진
이동은.정이용 지음 / 창비 / 202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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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가장 무서운 것이 무엇인가?" 

 

이 질문에 대한 답을 무겁고 슬프게 보여주는 만화이다. 

 

20대의 진아는 부모를 잃고 고3 여동생 학업을 뒷바라지하기 위해 낮엔 특수청소, 밤엔 대리운전을 한다.
40대 수진은 식당에서 일하며 20대 아들과 산다. 50줄을 앞두고 가까이 지내던 임소장의 아이를 갖고 만다.

 

삶은 소중하다. 삶의 모습에 따라 때로는 행복하고 마냥 즐거울 수도 있다. 하지만 누군가에겐 가장 무서운 것이 삶이 될 수도 있음을 보여준다. 삶이 내 목숨을 벼랑 바로 앞까지 몰아붙인다는 게 어떤 느낌일까? 진아는 하루하루 그런 삶을 살아간다. 누가 손가락 하나로 툭 치기만 해도 마감될 것 같은, 그 결과가 하나도 이상해 보이지 않는 위태로움이 뭔지 보여준다. 벌건 컬러로 표현된 진아 파트의 그림은 의도된 그대로의 감정을 품게 도와준다.

 

 

 

반면 수진의 일러스트 컬러는 현실의 느낌이다. 진아의 주변엔 죽음이 산적해 있지만 수진에게는 생명이 자꾸 생겨난다. 다만 완벽히 환영받지 못할 뿐이지만. 생명의 잉태라는 고귀한 것을 갖고 삶은 계속 장난을 쳐온다. 임소장의 답답한 언행들이 그것을 상징하는 것으로 느껴진다. 그나마 멀쩡(?) 해 보이는 수진의 아들조차 삶의 긴장을 늦추지 못하게 한다. 진아보단 나아 보이지만 둘 다 삶의 공격을 한 몸으로 받고 견뎌내고 있어 보는 이로 하여금 긴장을 늦추지 않게 한다. 다른 형태의 '내 이야기'라는 생각도 같이 들기 때문에.

 

📚 "모르겠다.
누구는 그냥 살라 하고
누구는 대비하라 하고
대비하면서 하루하루 그냥 살면
끝인가...?
사는 의미는 뭔지 모르겠고
산 만큼의 세월은 더 남아 있는데
그 세월은 무엇으로 더 채워야 하나."(P.158-9) 

 

만화는 늘 즐거운 것이었다. 가볍고 익살스럽게 존재하여 어린 시절의 추억을 되살려주는 주 콘텐츠다. 만화라는 수단이 진지하고 묵직한 주제를 전달할 수 있다는 것을 경험한 건 얼마 되지 않았다. 강풀의 '26년', 윤태호의 '인천상륙작전'등이 그러했다. '진진'은 개인의 삶을 그렸지만 앞서 말한 작품들처럼 역사를 그렸다. 지금보다도 십 수 년 정도 지나서 보면 아마 2020년의 아픔과 외로운 정서가 많이 생각날 것 같다.

그 정서를 함께 추억하며 쓴웃음이라도 지어보려면,
이 세상의 모든 진아, 수진들. 다 살아있어라. 
 

 

 

 

삶은 그냥 흘려보내는 시간의 물리적 흐름이 아니라 조건 없이 주어진 선물이면서 필사적으로 싸워 살아내야 할 대상이다. 성의 없는 말처럼 느껴질지 모르겠지만 같이 힘내자. 2020년이 덜 고통스럽게 기억되려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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