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묵의 서 - 250년 동안 끊임없이 재해석되는 침묵론의 대표 고전 arte(아르테) 에쎄 시리즈 3
조제프 앙투안 투생 디누아르 지음, 성귀수 옮김 / arte(아르테) / 202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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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이기에 누군가의 추천으로 20대 때 한 번 읽은 적이 있는데 당시에는 너무 종교적인 내용이 많아 기독교 서적으로 오해했다. 아무 정보 없이 읽은 거라 시대상을 이해하지 못해서 그냥 그렇구나 하고 덮었는데 이번 기회에 다시 읽어보았다. ​


디자인도 세련되게 바뀌었지만 내용과 번역이 훨씬 현대적으로 매끄럽게 되어있어 매우 읽기 쉬웠고 난해한 부분도 거의 없었다. 난해하다고 느꼈다면 그건 내가 종교가 없기 때문에 18세기 당시 기독교 문화를 깊이 있게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이지 번역과 내용의 문제는 아닌 듯하다. 

<침묵의 서>는 침묵을 단순히 말을 하지 않는다는 것을 넘어서 생각과 마음, 세상을 더 깊이 이해하는 강력한 도구로 소개하며 정리한다. 다양한 종류의 침묵이 존재하고 침묵을 다스리는 방법으로 언어와 글쓰기에 대해 언급한다.

250년이 지난 고전임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세상은 시끄럽고 그 속에서 적절한 때에 지혜롭게 침묵하며 내면의 자아를 다스리는 침묵의 가치를 설명한다. 인간은 시대가 변해도 세상의 소음에서 자유롭고 싶어 하는 욕구가 존재하며 침묵하지 못해 헛되고 잘못된 말들은 언제나 문제를 일으킨다는 것을 알려주며 고전이지만 자기계발서 같은 고전이다. 


<침묵의 서>는 명확하다. 언어와 글의 침묵을 다스려라는 직관적인 주제에 걸맞게 두 가지 챕터로 구성되어 있다.

언어로 표현할 수 있는 침묵의 종류와 기술, 나아가 자신을 표현하는 글쓰기를 통해 지나치지도 넘치지도 않는 언어들을 침묵하는 방법에 대해 설명한다. 



입 다물기, 교활한 침묵


침묵의 종류가 이렇게 다양한 지 몰랐다.

<침묵의 서>에서는 열 가지 침묵에 대해 설명한다.


1. 신중한 침묵이 있고,


2. 교활한 침묵이 있다.


3. 아부형 침묵이 있고,


4. 조롱형 침묵이 있다.


5. 감각적인 침묵이 있고,


6. 아둔한 침묵이 있다.


7. 동조의 침묵이 있고,


8. 무시의 침묵이 있다.


9. 정치적 침묵이 있다.


10. 신경질적이고 변덕스러운 침묵이 있다.


나는 수동형 공격성이 매우 강하다. 타인에게 공격을 받는다고 느끼면 상대방을 당황시키거나 일부러 답답하라고 악의적인 목적을 가지고 침묵을 무기로 사용하는 때가 많은데, 이 중에 해당되는 것은 교활한 침묵이다. 

저자는 정확히 꼬집는다. 편협하고, 의심이 많고, 남을 도발하거나, 앙심을 품기 쉬운 사람이 즐겨 활용하는 교활한 침묵이라고. 

그렇다면 교활한 침묵의 자세를 지양하면서 어떤 침묵을 지향해야 할까 살펴보니, 가장 마음에 드는 것은 다섯 번째 감각적인 침묵이었다. 

인간은 약 6%의 언어, 나머지 94%의 비언어적인 요소로 타인과 대화한다. 표정과 몸짓, 눈빛 등의 비언어적인 것들을 사용하면서 감정을 자연스럽게 드러내는 감각적인 침묵. 이 침묵을 자주 사용하는 것이 좋겠다.  


나이가 들면, 지갑은 열고 입은 닫아야 한다더니


250년 전에도 꼰대는 존재했구나 싶은 내용들이 열거되어 웃었다.

나이가 들면 지갑은 열고 입은 닫아야 한다더니, 200년 전에도 그런 덕목이 필요했나 보다. 무엇보다 저자가 이 부분에서 화가 많이 난 걸 보니 꼰대들에게 많이 당했나 보다. 

'그저 나이로만 자신의 가치를 셈하려는 오류, 지긋한 나이에 자기 혀 하나 제대로 조절하지 못하는 사람, 타락한 의중을 노출하는 사람, 늙어가면서 자기도 모르게 말하기를 지나치게 밝히는 사람.' 

표현들이 하나같이 화가 잔뜩 묻어 있다. 경험에서 나온 바이브 같은 느낌..

확실히 나이가 들면서 자신도 모르게 점점 말이 많아지는 경우가 많다. 핵심만을 말하던 사람이 나이가 들수록 미사여구가 길어지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는 것을 볼 때 가끔 기분이 이상해진다. 아, 저 사람도 나이가 들었구나 하는. 

그 정도면 그래도 괜찮지만 자꾸만 충고하려 하거나 타인의 말을 끝까지 경청하지 못하고 중간에 끊어버려 자신의 언어부터 일단 내뱉는 충동을 이기지 못하는 사람도 왕왕 만날 수 있다. 

적절한 침묵을 유지하기, 오히려 나이가 들수록 꼭 필요한 삶의 기술이 아닐까 싶다. 


좋은 글을 쓰는 것은 꿀벌과도 같다


말을 하기 위해 말을 하는 사람들이 있듯이, 글을 쓰기 위해 글을 쓰는 사람들이 있다. 

아무 의미도 교훈도, 재미도 없는 글을 그저 쏟아내는 과도한 글쓰기. 

글쓰기에서조차도 적절한 침묵을 필요하다. 미주알고주알 횡설수설 아무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 내용을 갈기는 그런 책은 독자나 작가나 피차 도움이 되지 않는다.

좋은 글을 쓰는 이는 꿀벌 가도 같다고 저자는 말한다. 자신은 물론 모두에게 유익한, 매우 섬세하고 소중한 작업이라는 것. 

언어란 말로도 글로도 표현될 때는 신중하고 적절하게 덜어내야 한다는 것. 어쩌면 너무나도 당연한 말이지만 여전히 나를 포함해 많은 이들이 지키지 못하는 것들이다. 


책은 쉽게 읽히지만 대부분 혼나는 내용이다. 

여러 번 혼나고 반성했다. 구석에 가서 손들고 있어야 할 듯..


그렇지만 왜 침묵론의 대표 고전인지는 알 수 있다. 하지 말아야 할 것은 하지 말아야 한다고 명료하고 단호하게 말하는 박력에, 지난날의 잘못된 공격성 침묵 혹은 하지 말아야 할 말을 한 말실수의 과오에 대해 반성해 보는 시간이 되었다.


'이 리뷰는 컬처블룸을 통해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 받아, 직접 읽고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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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의 쓸모 - 나를 더 나은 사람으로 만드는 인생 그림
윤지원 지음 / 유노책주 / 202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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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은 때론 난해하고 어려울 때가 많다. 미술 관련 글을 쓰고, 전시회에 다닌다고 하면 나는 미알못이라서 그런 거 모른다는 반응이 90% 이상이다.

하지만 주변을 둘러보면 우리가 사용하는 모든 것은 디자인, 미술이다. 모른다고 하기엔 각각의 취향과 선호하는 색들이 있고 훌륭한 안목과 취향을 지닌 사람이 많다. 미술사적 맥락에 압도되어 위축되는 말일 것이다. 

<그림의 쓸모>는 예술이란 삶과 동떨어진 것이 아니라 결국 예술도 한 인간이 자신의 감정과 생각, 인생을 표현한 결과물일 뿐이며 이것은 우리의 삶과도 연결된다고 말한다. 사회적 동물인 인간은 타인의 삶을 이해하고 조금이나마 공감하며 마음의 확장을 일으킬 때, 그때 인생은 조금 더 넉넉해진다. 예술가들의 색채와 고뇌의 인생을 살펴보며 오히려 나를 더 살펴보는 시간이 된다는 것을 저자는 강조한다.  


​화가의 대표작과 관련된 이야기를 나누며 그림이 어떤 힘을 주는지, 어떤 상황에서 이 그림이 필요한지를 이야기한다. 단지 글을 읽고 마치는 것이 아니라 생각해 볼 만한 질문들을 덧붙여 조금 더 삶에 밀접하게 예술가들의 생애와 우리의 삶을 연결 짓는다. 


불확실함에 직면하기, 카스파르 프리드리히


프리드리히의 <안개 바다 위의 방랑자>는 볼 때마다 배경이 헷갈린다. 파도가 휘몰아치는 바다인 것 같기도 하고, 절벽 위인 것 같기도 하다. 제목에 안개 바다라는 설명이 있어서 이것이 안개구나, 그럼 바다는 아니겠구나, 그리고 안개가 끼는 시간이면 새벽이겠다는 추측으로 이어진다. 

안개는 유동적이다. 불확실한 상황과 마음들은 계속 안개처럼 나타났다가 사라졌다가를 반복하며 삶을 흔든다. 반면의 바위는 견고하다. 그 위에 서 있는 방랑자의 자세도 반듯하고 견고하다. 뒷모습이라 표정은 보이지 않지만 굳이 표정을 확인하지 않아도 느낄 수 있다. 내면의 심지가 단단한 사람이라는 것을. 

​뒷모습은 때론 앞모습보다 더 많은 것을 말해준다. 축 처진 어깨의 뒷모습은 우울한 표정을 보는 것보다 더 우울하고 안쓰럽듯이, 프리드리히는 뒷모습을 보여주며 관람자로 하여금 시선을 따라가며 상상하게 만든다. 

이러한 구도를 '뤼켄피규어'라고 하는데, 프리드리히의 작품에서 자주 등장하는 구도다. 관람자가 상상하게끔 하여 자신과 그림 속 인물을 동일시하게 만들어 초대한다. 단시 수동적인 그림 감상자가 아니라, 거대한 자연 앞에서 느껴지는 두려움과 경외를 함께 느낄 수 있는 능동적인 역할을 부여한다. 

불확실한 안개 앞 견고한 자세로 서서 그것을 바라보는, 미지의 세계 앞에 주눅 들지 않고 정면으로 응시하는 힘. 낭만주의의 화가 프리드리히가 그린 그림은 이런 강렬한 메시지를 전달한다.

때로는 높은 곳에 올라 삶을 조망하고, 불확실한 안개를 응시해 보며 흔들리지 않고 나의 존재에 대한 의미를 성찰하기. 이러한 성찰들이 나를 조금 더 쓸모 있는 사람으로 만들어주지 않을까.


 

추락하는 별도 빛난다, 앙리 마티스


앙리 마티스의 <이카루스>는 다른 이카루스와는 사뭇 다른 분위기이다. 추락이기라기보다는 별들과 함께 춤추는 사람 같다. 오만함에 대한 경고라기엔 경쾌하고 단순한 형태는 시선을 더욱 잡아둔다. 

앙리 마티스는 나이가 들어 류머티즘 관절염에 걸려 그림을 더 이상 그릴 수 없게 되자 종이를 오려 붙이는 단순한 표현으로 작품을 만들었다. 

붓을 들지 못하는 슬픔이 드러나는, 꺾인 열망이 아닌 새로운 시도로서의 예술은 이전보다 더욱 자유롭다. 추락하는 별도 빛나듯이 마티스의 이카루스는 추락 중이면서도 심장이 붉게 타오른다. 

단순화된 작업은 일상에서 불필요한 것들을 덜어내고 진정으로 중요한 것만 남겼다. 추락이 아닌 비상의 관점만을 포착함으로 여기가 마지막일 것 같았던 구간을 전환시켰다. 

나의 한계는 여기까지인가 보다, 나는 지금 내려가고 있다는 알 수 없는 패배감을 느낄 때가 많다. 마티스의 <이카루스>는 불필요한 요소를 덜어내고 다시 날아오르면 된다고 말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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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처받은 사람을 위한 미술관 - 명화가 건네는 위로의 말들
추명희 지음 / 책들의정원 / 202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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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분석 심리학에 따르면 인간에게는 자신을 지키기 위한 무의식적 '방어기제'가 있다고 한다. 

부정, 억압, 반동형성, 전이, 투사 등 듣기만 해도 부정적인 어감을 자랑하는 말 그대로 방어적인 기제도 있지만 그 와중에 승화라는 것이 있다. 

승화란 본인의 부정적 특성과 욕구를 사회적으로 용인되는 선에서 해결하는 것으로 대표적인 예가 예술로서의 발현이다. 가장 바람직한 방어기제 중 하나로 미술치료 이론의 거의 핵심이라고 볼 수 있다. 

예술가들의 생애를 들여다보는 것은, 그들의 아픔과 고독, 상처를 굳이 굳이 찾아보는 것은 어쩌면 그 승화의 기록을 살펴보는 일일지도 모른다. 

자신의 삶 속으로 기꺼이 고통을 끌어안은 17인의 예술가, 상처는 어떻게 작품이 되었는지, 어떤 고독과 아픔이 예술로 승화되었는지 이번 책을 통해 마주할 수 있다. 아픔을 녹아든 그림이 명작이 되듯, 상처를 견대낸 삶은 작품이 된다. 


재벌집 막내아들에서 나온 그림, 프란시스코 고야


드라마 '재벌집 막내아들'에서 극중 흐름상 경고의 의미로 나온 그림이다. (제목을 진짜 못 외우겠네, 지금까지 부잣집 막내아들인 줄 알았다)


​<자식을 잡아먹는 사투르누스>, 프란시스코 고야. 

자신의 아들에게 권좌를 빼앗긴다는 신탁을 받은 사투르누스는 자신의 아이가 태어나면 자식을 잡아먹었다고 한다. 많은 화가들은 아이를 잡아먹는다는 그림을 그릴 때 위협적인 포즈만 취하지 이렇게까지 적나라하게 자식을 뜯어먹는 광기의 모습을 그리지는 않았다. 이 사람은 어떤 인생을 살아온 것일까. 


스페인 화가였던 고야는 전쟁을 직접 여러 번 겪으면서 스페인 편에 붙었다, 프랑스 편에 붙었다가를 반복하며 살아남은 화가다. 보통 침략을 당하면 왕가에 있던 사람을 모두 죽이기 마련이건만, 고야는 실력과 아첨으로 살아남았다. 

젊은 시절부터 욕망 하나로 스페인 궁정 화가로 가장 잘 나갔지만, 지옥 같던 전쟁을 겪으면서 보았던 인간의 잔인한 군상과 살아남기 위해 떨었던 아부. 이런 것들이 인간의 영혼을 온전하고 평온하게 두지는 않았을 것이다.

고야는 부와 명예 모두 지녔지만 결국 귀가 멀게 되며 점점 은둔 생활을 하며 집에 '검은 그림' 연작 시리즈를 미친 사람처럼 그리다 생을 마감했다. <자식을 잡아먹는 사투르누스>도 이 검은 그림 연작 중 하나다. 

<모래 늪의 개> 또한 검은 그림 연작 중 하나로 모래 늪에 빠져 죽음을 앞둔 개의 모습을 그렸다. 발버둥 치는 것은 오래전에 포기했을 터이고 곧 모래바람이 닥치며 모래 속으로 깊이 침전할 터이다. 두려움보다는 허공을 응시하는 개의 눈빛이 어렴풋이 보인다. 이 작은 개는 곧 고야 자신이 아닐까. 

쓸쓸함과 고독, 두려움 그 사이에서 죽음을 앞둔 이는 무엇을 보고 무엇을 듣고 무엇을 생각하고 있을까. 

공경 받고 성공한 인생 한 번 살아보겠다고 전쟁도 하나의 소재로 삼아보았지만 마지막 순간에는 공허한 마음만이 고개를 들었을 것이다. 


먼지 한 톨도 반짝거린다, 요하네스 베르메르 


요하네스 베르메르에 대해서는 잘 알려진 바가 없다.

그림도 37점 정도밖에 없고, 생애도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이만큼 사랑받는 화가도 또 없다. 

무엇보다 베르메르의 그림 속에는 귀족이나 왕족, 신이 없다. 일을 하고 있는 하녀나 악기를 연주하고 편지를 보는 여인 등 당시 네덜란드의 일상 속의 여성들만이 자신의 일을 묵묵히 하고 있는 모습을 보여준다. 

소박하고 평범한 일상, 부끄럽지만 나는 이전에 그런 일상을 따분하다고 생각했다. 별 가치 없는 일이라고 생각하기도 했다. 하루하루를 소박하고 주어진 일을 착실히 하는 것은 재미가 없는 일이라고 생각했었다. 

반드시 뭐가 되어야만 멋진 삶이라고 생각해 마음만 앞서가다 다치기 일쑤였고, 그렇게 넘어지면 스스로를 루저라고 여겼다. 

아름다움과 빛나는 것이란 거창한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 날마다 마주하는 단순하고 소박한 일상을 충실히 살아가는 것임을 그런 일생이 숭고한 삶임을 베르메르의 그림은 알려준다. 

베르메르 자체도 그런 사람이었던 듯하다. 고요하고 소박하고 하루하루를 그림으로 성실히 채웠던 사람. 다른 화가들처럼 막장 스토리를 얹지도 않았고 전쟁을 겪지도 않았지만 일상이 주는 아름다움을 알고 있었던 사람이 아니었을까. 

생전에는 빵값이 외상으로 밀렸고 작업 속도도 더뎌 큰 인기와 부를 누리지는 못했던 화가로, 죽고 나서도 오랜 시간 동안 이름이 알려지지는 않았다. 

진주 귀고리의 세부 묘사 대문이 아니라 소녀가 마치 진주처럼 내면의 광채로 빛나기 때문에 이 그림이 특별해졌다고 한다. 

먼지 한 톨에서도 반짝이는 햇빛을 알아보는 것, 일상의 아름다움을 고요히 마주하는 눈빛, 그것이야말로 살아가면서 나의 영혼을 시들지 않게 지키는 방어기제가 아닐까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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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을 그린 화가들
이창용 지음 / 단꿈아이 / 202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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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명한 7인의 화가들의 일생과 그들의 러브 스토리를 담았고, 때로는 불꽃같던 때로는 지난했던 때로는 곡진했던 사랑의 흔적들이 어떤 방식으로 작품에 남아있는지를 친절하고 쉽게 설명해 주는 책이다. 

어떤 사랑은 꿈처럼 펼쳐지나 어떤 사랑은 참으로 부질없고 어떤 사랑은 참 구질구질하다. 

인간의 가장 큰 관심사이자 행복인 사랑. 화가들이 겪었던 사랑의 아픔, 어려움, 외로움, 황홀함 등을 그림으로 보다 보면 이들도 우리와 다를 것 없는 사람이었구나를 느끼게 된다.

작품 안에서 함께 울고, 웃고, 때론 나쁜놈이라고 욕하고, 대리 설렘을 느끼며 조금 더 예술에 다가갈 수 있도록 인도해 주는 책이다. 



바티칸의 황태자, 라파엘로 산치오


신이 인간을 만들 때 재능을 실수로 몰빵하는 이 으아ㅏㅏ아ㅏㅏ 짤을 본 적이 있을 것이다. 

라파엘로 산치오가 딱 이런 신의 실수로 만들어진 모든 것을 가진 남자였다.

잘생긴 외모는 물론, 다빈치/미켈란젤로와 르네상스 3대 천재로 불리는 천부적인 능력, 스마트함, 심지어 옷도 잘 입는, 인성까지 완벽한 비현실적인 만능캐. 

바티칸의 귀공자, 바티칸의 황태자로 불리는 완벽한 이 남자 라파엘로가 사랑에 빠진 여성은 마르게리타 루티라는 제빵사의 딸이었다. 

바티칸에서 잘나가는 잘생긴 청년에게 제빵사라는 직업의 딸은 가당치도 않았다. 주위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은밀한 연애를 이어왔던 두 사람, 라파엘로가 연인 마르게리타를 얼마나 사랑했는지는 그녀를 만나고 나서의 성모 마리아 작품에서 나타난다.

따뜻한 살결의 표현뿐 아니라 따스한 숨결, 온화한 표정, 다정한 눈빛은 예수의 어머니 그 이상의 사랑스러움이었다.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가 성인으로서 사랑받는 이유는 성령으로 잉태했던 기록만이 전부가 아니다. 모든 것을 자비롭게 받아들이는 만인의 어머니, 곡진히 자신의 어려움을 호소하는 신자들을 인자하게 받아들이고 하느님에게 전달하는 자로서 많은 이들에게 여전히 사랑받고 있다.

라파엘로가 성모 마리아의 얼굴에 그린 마르게리타는 가장 그 성격에 적합한 아름다운 성모 마리아로 재탄생하였다. 

그러나 천재는 단명한다고 했던가, 라파엘로는 고열로 시달리다 이른 나이에 세상을 떠나고 마르게리타 역시 라파엘로를 잃은 슬픔으로 수녀원에 들어가 살다가 2년 후 생을 마감한다. 

두 사람의 러브스토리는 매우 안타깝지만 아름다움은 그림에 고스란히 남았다. 앵그르, 터너 등의 그림에서 새로이 탄생한 마르게리타는 아직까지도 그 아름다움을 영원히 그림 속에서 뽐내고 있다. 


또 나만 진심이었지, 에드바르 뭉크


뭉크는 표현주의 화가다.

표현주의란 자신의 생각이나 감정을 표출하는 것으로 표현주의 화가들의 그림을 보면 직관적인 감정이나 기분을 느낄 수 있다. 에곤 실레 또한 표현주의 화가다.

뭉크는 참으로 독특한 사람이다.

평생 죽음에 대한 공포에 시달리면서 에곤 실레를 젊은 나이로 죽음에 이르게 한 스페인 독감에서도 살아남고, 사랑하는 여성에게 차이거나 싸우는 등 관계를 파탄 내고 평생을 광기에 시달리는 조현병 증세와 우울증, 알코올 중독까지 있었는데도 80살이 넘는 나이까지 정정하게 살았다.

센치하고 잘생긴 청년에게 유부녀 밀리와의 밀회는 잊을 수 없는 정열적인 사랑이었을 것이다. 첫사랑의 짜릿함과 순수함이 가득했던 뭉크와는 달리 밀리는 뭉크에게 오랜 흥미를 느끼지 못했다. 

밀리를 어떻게든 우연히라도 마주치기 위해 밤의 길거리를 정처 없이 돌아다니던 뭉크의 그림(2번째 사진)을 보면 누가 뭉크인지 단번에 알아볼 수 있다. 

두 번째 사랑이 찾아왔지만 그녀 또한 당시 최고 인기녀였기에 뭉크에게 큰 관심은 없었을뿐더러 뭉크의 친구와 사귀는 등 뭉크는 또 한 번 가슴에 상처를 입는다.

그래도 여기까지는 다행이다.

세 번째 사랑, 툴라와는 어찌저찌 결혼까지 약속했지만 뭉크는 결혼이라는 제도가 두려워 자꾸만 결혼을 미룬다. 결국 참다못한 툴라는 거짓 자살 소동을 벌여 뭉크가 자신에게 오도록 했고 두 사람은 큰 싸움 끝에 파국을 맞는다. 누가 쏜 것인지 권총의 총알이 발사되었고(뭉크는 술에 취한 자신이 쏜 것 같다고 일기에 썼다) 총알은 뭉크의 손가락 한 마디를 날렸다.

이후 여성은 자신을 죽이는 자, 자신의 인생을 망치는 자로 더욱 굳혀졌다. 나만 진심이었지 또. 죽는 날까지 뭉크는 독신으로 살았다.

유년 시절, 어머니와 누이의 이른 죽음으로 자신만이 살아남았다는 죄책감과 더불어 만나는 여성은 유부녀, 양다리, 그것도 아니면 파국을 초래하는 여성들까지 뭉크에겐 모든 것이 상처였다.

그러나 뭉크에겐 미안하지만 그의 그림은 상처에서 피어난 고스란한 감정이 들어가 있어 보는 우리에게 어떤 감정인지를 전달해 주고 공감케 한다. 


도슨트라는 직업에 어울리게 직접 이야기해 주듯 한 필체와 적절하게 짜인 화가 7인의 스토리텔링은 막장드라마처럼 때론 재밌고 때론 서글프다. 

어떤 러브스토리에서는 설렘을 느끼고 어떤 스토리에서는 나도 연애 때 했던 찌질한 모습이 보여 뜨끔하다. 

가볍고 즐겁게 읽을 수 있는 미술 교양서를 찾는다면, 너무 많은 화가들이 나오는 책이 조금 어지럽다면 7인의 유명 화가 이야기를 만나나 보는 것을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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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망을 그린 화가, 에곤 실레
에스터 셀스던.지넷 츠빙겐베르거 지음, 이상미 옮김 / 한경arte / 202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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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열린 전시 <비엔나 1900, 꿈꾸는 예술가들 - 구스타프 클림트부터 에곤 실레까지>를 기념하기 위해 출간된 책으로 에곤 실레의 생애와 작품에 집중 조명한다.


​실레의 성장 배경부터 실레가 가진 무의식적 욕망의 투사, 누드에 대한 실레의 생각 등 퇴폐적인 미술로 오해받기 쉬운 실레 작품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제시한다. 


실레의 중요 작품들에 대한 설명도 고화질의 그림과 함께 톺아주어 작품의 이해도를 높인다. 


​분명 야한데, 이상하게 안 야하다


에곤 실레라고 하면 퇴폐적이다, 야하다, 포르노 같다는 말들이 따라온다. 

그런데 이상한 점은 분명히 야한데 이상하게 불쾌하기만 하고 안 야하다. 

성적인 충동이 가득한 관음적인 그림들, 분명 미성년자가 보기엔 부적절한 주제가 맞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에로틱한 육체는 잠시일 뿐, 욕망이 혐오와 매혹의 메커니즘 사이 그 어딘가에 있다는 것을 눈치챌 수 있다. 

실레는 사실상 여성적 아름다움을 강조하지 않는다. 풍만하고 부드러운 살결을 그려 관능적인 포즈를 취하는 여성이 아니라 깡마른 육체에 가슴이나 중요 부위만 지나치게 붉게 칠해져 있어 오히려 살결에 대한 거부반응을 일으킨다. 

실레의 누드는 단순히 그림을 넘어서 영혼의 내면과 연민을 불러일으킨다. 무슨 말인지 잘 모르겠다면, 직접 봐야 알 수 있다. 실레만큼 직접 보지 않고 논할 수 있는 오해가 가득한 화가가 있을까. 

실레는 자기 자신도 누드로 표현했다. 심리적 누드의 모습은 인간의 욕망, 고통, 고뇌 등이 오히려 걸쳐져 있는 것이 없기에 더욱 고통스럽게 다가온다. 수많은 자화상을 남겼지만 누드로 표현된 자화상에서 드러나는 고통은 그가 삶을 어떻게 대하는지 알 수 있다. 


꽈리 열매가 있는 자화상


다자이 오사무의 <인간실격>의 표지로 많이 알려져 있는 이 그림은 실레의 연필 선과 색채감, 구도 등을 도드라지게 볼 수 있다.


부끄럼 많은 생애를 보냈습니다.


인간 실격의 내용처럼 실레 또한 헌신했던 연인을 버리고 신분 상승을 위해 결혼했지만 몇 년도 채 되지 않아 임신한 아내를 스페인 독감으로 잃는다. 아내가 사망한 사흘 뒤 실레도 독감으로 생을 마감한다. 실레의 나이는 고작 28살이었다. 


도전적인 시선, 도발적인 포즈, 유혹하는 듯한 붉은색의 꽈리 열매. 그러나 정면으로 눈을 마주치지 않고 허약해 보이는 몸짓에서는 고독한 인간으로서의 연약함까지 드러난다. 


어머니와 두 아이


실레가 경제적으로 안정된 높은 신분의 여성과 결혼하여 가정을 꾸리고 싶어 했던 욕망이 강했던 것은 어머니와의 골 깊은 갈등 때문이라고 추측된다.


<어머니와 두 아이>는 세 개의 연작으로 앞의 두 작품과 확연히 달라진 그림을 볼 수 있다. 

이전의 그림은 어머니는 거의 해골이 다름없고, 아이들 또한 어머니의 품에 안겨있다는 느낌이 없다. 모성이라고는 느낄 수 없는 사자(死者)들 같다. 


​실레가 태어나기 전 아버지의 매독으로 인해 어머니는 이미 여러 명의 아이를 잃었다. 어렵게 얻은 아들이었으나 남편에 대한 원망은 아들에게도 투사되었기에 어머니는 실레에게 살갑지 않은 어머니였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둘의 갈등은 더욱 깊어졌으며, 어머니의 원망을 항상 들어야 하는 실레에게 어머니란 자식을 움켜쥐는 사람이었다. 

에디트와 결혼 후에야 어머니에 대한 깊은 감정이 점차 사그라지면서 실레의 그림에서 어머니는 점차 얼굴에 생기를 찾는다. 


​가정적인 가치보다는 죽음과 모성이라는 우화적 주제에 집중하며 인간의 삶과 죽음에 대한 병치에 대한 탐구로 변한다. 여전히 어머니의 얼굴은 굳어 있으나 이전 연작에 비해서 부드러운 연민이 서려있다. 


​전시를 다 보고 나서 책을 봐서, 보기 전에 읽었으면 더 좋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또 본 작품들이 나와서 찍은 사진들과 비교하는 재미도 있었다.

무엇보다 이번 책과 전시를 통해 처음 실제로 접한 에곤 실레의 작품에 많이 매료되었다. 퇴폐적이라고만 생각했던 실레의 작품을 직접 만나고 그의 생애와 욕망을 들여다보니 실레가 했던 말이 이해가 간다.


​나는 창조자이자 창조물입니다. 나는 예술 속에서 나 자신을 발견합니다.

에곤 실레


이 리뷰는 컬처블룸을 통해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 받아, 직접 읽고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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