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 없는 것들의 밤
정보라 지음 / 현대문학 / 202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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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았습니다.


〈부커상〉 〈로커스상〉 〈어슐러 K. 르 귄상〉 최종 후보로 올랐던 《저주 토끼》의 정보라 작가가 선보이는 디스토피아 SF 소설로  『밤이 오면 우리는』과 『현대문학』 2024년 12월호, 2026년 3월호에 수록된 두 편의 중편소설을 엮은 연작소설집이다.​


기계에 의해 지배당한 미래 세계에서 사투하는 흡혈인, 인조인간, 인간, 로봇 등의 다양한 존재가 등장하는 소설로 도구화된 여성, 사회의 폭력적인 규범을 받아들일 수 없는 소수자들, 존재하지만 이름도 형태도 없는 귀신같이 자신의 자리에 설 수 없는 소외된 자들이 함께 하는 미래는 희망적일 수 있는가를 묻는다. ​


어느 날 너무 발전한 AI가 인류 자체가 이 지구에 해롭다고 판단하여 인류를 말살해 버리기로 결심했다는 괴담의 이야기처럼 출발한 섬찟한 이야기에서 출발하여 인간의 조건, 인간과 비인간의 경계, 우리가 외면하지 말아야 할 현실적인 질문으로 돌아온다. 


<밤이 오면 우리는>은 연작의 세계관을 가장 먼저 잘 설명해 준다. 인간은 핵무기(인공태양)를 발명하고 그것을 비이성적인 방식으로 통제하지 못하게 안전장치를 마련하는데 문제는 이 기계가 판단하기에 인간이 지구에 가장 위협적인 존재이므로 인간을 말살하기 시작한다. 4차 산업혁명이라는 단어가 폭발적으로 나오면서 제기된 괴담 같은 이야기가 현실이 된 배경에서 소설은 출발한다. 


기계가 인간을 멸하기 시작하면서 가장 생존에 위협이 되고 무서워야 해야 할 존재가 되었지만 언제나 그렇듯 그 안에서도 가장 무서운 것은 인간이다. 인간을 밀고하고 잡아 죽이는 인간 사냥꾼들이 생겨난다. 인간이길 포기한 존재, 탈인간적인 존재. 


또한 독특한 인간도 기계도 아닌 존재가 등장하는데 그것은 1인칭 화자 '나', 흡혈귀다. 이게 상당히 소설에서 독특한 설정이다. 그러니까 사람 죽여 기계, 인간 사냥꾼 vs. 멸망당하는 인류 vs. 흡혈귀(?) + 나 로봇 아니에요라고 주장하는 인조인간까지 이런 구도가 되는 것. 디스포티아 SF소설에 흡혈귀의 등장이라.. 그러니까 인간도 아닌 기계도 아닌 제3의 괴물 같은 존재, 한때는 인간이었기에 인간의 마음과 인간의 조건을 알고는 있지만 인간을 잡아먹는 존재. 생뚱맞지만 흡혈귀라는 비인간적인 존재가 탄생함으로써 이들은 정확하게 인간의 조건과 기준을 알고 있다. 


흡혈귀들은 인간의 피 냄새를 맡고 인간을 사냥해 피를 마신다. 그 앞에 나타난 것은 인조인간, 인간의 형상을 하고 있지만 그 안에는 인공 피, 인공물로 채워져 있어 인간의 냄새를 풍기지 않는다. 


​생긴 것이 너무 흡사해 인간인가 아닌가를 확인하기 위해 앙 하고 물었다가 토악질만 하게 된 기계들이 인공태양을 가동하는 것을 막기 위해 탈출한 인조인간 '빌리'를 만나면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유독 소설에는 인간의 체취, 냄새 이야기가 자주 등장한다. 인간의 몸에 흐르는 피는 흡혈귀의 관점을 통해 자연스럽게 등장하며 기계에는 흐를 수 없는 인간의 조건 '피'에 대해 이야기한다. 쫓기는 인간은 기계의 감시를 피해 어쩔 수 없이 은신하는 지하 하수구 같은 곳을 지나다니게 되고 생존이 걸린 삶에서 청결하게 다닐 수 없기에 체취, 악취, 인간의 냄새가 난다. 이를 더럽다고 표현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은 인간의 그 냄새를 맡고 존재와 부재를 알아차린다. 냄새란 참을 수 없는 악취일지라도 기계, 흡혈귀, 인조인간에게는 날 수 없는 인간의 조건이다. 울고 싶은 마음이 들어도 울 수 없는 흡혈귀에게 인간의 조건이란 상황에 맞는 액체가 몸에서 흘러나오는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을 한다. 눈물, 피, 땀, 오물 등. 


​그러나 이 냄새와 액체를 가진 인간의 조건을 충족하는 인간일지라도 인간이길 포기한 탈인간, 사냥당할까 두려워하는 흡혈귀, 눈물까지 흘리며 자신이 인간이라고 생각하는 인조인간까지 인간 - 비인간 - 탈인간의 경계는 흐릿하다. 인간의 조건을 가지고 있다고 해서 모두가 인간인가? 인간의 조건을 가지고 있지는 않지만 자신이 인간이라고 생각하며 인간을 돕기 위한 인조는 그렇다면 매몰차게 인간이라고 볼 수 없는가? 한때 사람이었던 존재는 이제 그저 괴물인가? 


미친 여자, 귀신, 우는 로봇, 이름 없는 것들


중간의 <예언자>는 1부의 프리퀄의 이야기로 학교에서 학생들의 교육을 통제하고 인간의 노동을 제한하며 여성들은 출산에 무자비하게 이용당하는 세계를 그린다. 

​마지막 3부 <우리는 모두 악마에게서 왔다>는 1부와 연결되는 이야기로 인조인간과 흡혈귀인 '나'가 관리 본부를 들어간다. 


1, 2, 3부에는 이름 없는 것들 즉, 자신의 이름으로 살 수 없거나 혐오나 차별의 대상이 되는 자신의 자리가 없는 것들에 대한 이야기가 지속적으로 등장한다. 흡혈귀가 어떻게 갑자기 탄생했는가에서는 '화장실의 미친 여자'라 불리는 화장실에 숨어서 남성들만 잔인하게 살해하는 여자 이야기가 등장한다. 어디서 많이 들어본 것 같은데, 뒤에 작가의 말과 해설에도 나오는데 역시나 '다락방에 미친 여자' 수전 구바의 페미니스트 문학 이론서의 제목에서 따왔다고 한다. 분노와 광기가 투영된 통제되지 않은 인간에 대한 혐오, 비인간적인 존재 흡혈귀의 탄생은 이렇게 연결된다. 


혐오의 존재 '화장실에 미친 여자'에서 탄생한 통제 가능하지 않은 인간도 기계도 아닌 비인간의 존재 흡혈귀는 '장애를 지닌' 인간으로도 볼 수 있다. 울기까지 하면서 저 로봇 아니고 사람인데요라고 주장하는 인조인간은 퀴어로 연결해 볼 수 있다. 이렇듯 등장하는 이름 없는 것들은 사회적 약자들에 대한 시선으로 해석하고 연결해 볼 수 있다. 시스템을 교란시켜서 오류를 만들어 내는 귀신같은 존재들. 3부에서는 이런 비인간적인 귀신같은 존재들이 모여 폭력의 굴레를 멈추기 위해 사투한다. 


시작은 분명 기계 vs 인간의 구도였으나 그 안에서 폭력과 차별로 점차 분열되는 인간과 비인간의 경계를 소설은 물으며 현재를 비춘다. 인간을 규정한다는 것은 어떤 것이며 이름 없는 귀신같은 차별 받고 소외받는 비인간으로 취급되는 이들이 서야 할 자리는 어디인가. 어떻게 그것을 규정할 것인가, 모든 인간이 평등하게 되는 세계는 어디에서 오는가에 대한 질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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