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양치기의 편지 - 대자연이 가르쳐준 것들
제임스 리뱅크스 지음, 이수경 옮김 / 북폴리오 / 201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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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이 주는 일반적인 어감과는 다르게 책의 내용은 TV프로그램 '극한직업'에 가깝다. 잉글랜드 서북부의 고지대에서 목축업에 종사하는 작가가 묘사하는 양치기의 일상은 한마디로 고되다. 대지에 방목한 많은 수의 양을 여우로부터 보호하고 이웃의 양들과 섞이지 않도록 간수해야한다. 생산성을 위한 양의 혈통을 높이려는 노력은 전문성까지 필요로 한다. 또한 겨울을 나기위해 풀을 건초로 만들고 경계에 돌담을 유지보수는 필수이다. 먼 거리에 점점이 떨어져있는 목장들을 오가며 이 모든 일에 육체와 정신을 쏟아부어야 한다.  

작가는 지역의 토박이다. 의무교육기간 5년을 시간낭비라고 느끼고 양치기가 운명이라고 생각했음에도 책을 읽으며 현학적인 세계에 매력을 느꼈다. 그래서 뒤늦게 시작한 공부로 옥스퍼드에 진학했고 도심 생활에 적응해보려 노력했지만 결국 고향으로 되돌아와 가업을 이었다.  

흥미로운 지점은 작가가 순수하게 고향을 그리워했다는 점이다. 지역공동체에서 이례적으로 가방끈이 긴 그가 기업농이 아니라 홀로 노동하고 공동체의 도움을 주고받는 선대의 방식을 이어받아 살아가고 있는 것이 증거이다. 

양치기의 일상과 포개어진 3대에 걸친 집안의 스토리는 소박하면서도 작가의 성실하고도 자부심 실린 글에 의해 내적 질문을 파생시킨다. 새로운 영역으로의 도전과 최신기술을 찬양하는 현대적 삶이 과연 모두가 지향해야 할 목표인가? 그렇다면 작가를 포함한 그곳의 목동들은 불편함과 적은 소득에도 불구하고 고인물처럼 썩어가고 있는 시대착오적이고 도태된 계층에 불과할 것이다. 물론 이는 물신주의에 물든 천박하고 건방진 생각이다.  

작가의 고향은 잉글랜드 서북부의 레이크 디스트릭트이다. 워즈워스는 시를 통해 자신의 고향인 그곳을 칭송했다. 그리고 현대에 이르러 호수와 산이 어우러진 아름다운 땅은 국립공원으로 지정되었고 현재에는 엄청난 숫자의 관광객들로 붐빈다. 작가는 서문에서 관광지로 변모한 곳에서 살아왔고 살아갈 토착민의 조명되지 않은 삶을 이야기해보고 싶었다며 글의 의도를 밝힌다.  

책의 마지막을 덮은 지금 작가의 서문은 훌륭히 달성되었음을 느낀다. 웅장하고도 불멸한 자연에 터를 잡은 이들이 공통적으로 느끼는 최종단계는 인간이 보잘 것 없는 존재라는 깨달음이다. 작가는 세속적 성공에 매력을 느끼지 못한다. 할아버지와 아버지의 삶을 반복하는 순환에 순응하는 행복을 만끽한다. 겸허한 태도가 토대가 되는 삶은 얼마나 매력적인지. 

글을 읽고 새로운 각오를 다지는 호들갑은 내 성격에 맞지 않는다. 다만 지구 반대편에서 양을 치는 아저씨의 일상은 내 머리 속에서 남아 삶의 경로에서 지속적인 영향을 미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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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혜의 아홉 기둥 - 미국을 움직이는 숨은 저력, 연방대법원!
밥 우드워드 지음, 안경환 옮김 / 비즈니스맵 / 200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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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연방대법원은 사법기관의 정점에 서있다. 우리로 치면 대법원과 헌법재판소의 기능을 수행하는 연방대법원은 재심이 불가능한 최종판결을 내려야하는 막중한 책임을 진다. 연방대법원의 판결은 판례가 되고 행정부의 정책과 역사의 물길을 바꿔놓을 수 있다. 

책은 1969년에서 1975년까지의 연방대법원을 살펴본다. 당시의 미국은 변곡점을 지나고 있었다. 안으로는 증폭되는 인권운동이 구체제와 충돌을 일으켰으며, 밖으로는 명분없이 개입한 베트남에서 군사적 성과마저 거두지 못하고 지리멸렬했다.  

법알못임에도 불구하고 두꺼운 본 책을 재미있게 읽었던 데는 연방대법원이 정치사회의 이슈의 장이라는 특성이 잘 드러나 있기 때문이다. 언론보도에서부터 포르노까지 이르는 표현의 자유, 낙태를 금지하거나 혹은 허용한다면 태아의 어느시기부터 해야할지에 대한 논란, 닉슨을 사임으로 몰아넣은 워터게이트 판결 등 일련의 중대하고 예민한 사안들이 솔로몬의 지혜를 기대하며 연방대법원으로 다다른다.  

역사적으로 흥미로운 사안들의 선악으로 양분할 수 없는 복합성에 주목했다. 수많은 사람과 집단의 이익이 상충되는 쟁점을 옳다 그르다식으로 확답하기 힘들다. 도덕적인 기준이라면 어떤가. 모세의 십계명을 길잡이로 삼기엔 현대사회는 너무 고도화되고 거대해졌다.  

예를 들면 인종차별에 대한 사안들이 그렇다. 인종분리를 고수하거나 즉각 철폐를 원하는 양측만 있지는 않다. 인종분리철폐에 수긍하면서도 속도조절을 원하는 중도파 역시 존재한다. 연방대법원의 대법관들 역시 인종차별에 반대하면서도 그들이 내리는 판결이 주정부의 자치성을 훼손하는 판례로 남을지 고민한다.  

책을 읽는 또 하나의 재미는 9인의 대법관이다. 법관 커리어의 정점에 서있는 그들은 언뜻 신처럼 군림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건조일색일 것같은 법조계에서도 드라마를 짚어내는 작가의 관찰로 묘사되는 대법관들 역시 인간일 뿐이었다. 평범한 나로서는 도저히 절충시키기 힘든 양극단 사이에서 대법관들 역시 고뇌한다.  

판결에 이르는 과정은 책의 백미이다. 대통령의 추천과 의회의 승인을 거쳐 채워진 대법관은 진보와 보수가 적절히 배분되어 있다. 이들이 저마다 신념을 앞세우거나 법의 논리에 꺽이며 합종연횡하는 광경은 그 자체로 정치다. 그러면서도 연방대법원의 판결은 여론을 담아내고 미국사회를 보다 정의롭고 열린사회로 인도했다. 적어도 책에서 그리는 1970년대 초중반의 연방대법원은 그러했다.  

나아가서 군사력과 GDP로 수치화할 수 없는 미국 국력의 근원을 발견한다. 연방대법원의 9인이 절묘한 균형을 이루고 작동하는 데에는 외부로부터의 압력에서 초월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가 절묘하기 때문이다. 또한 판결로 시민에게서 부여받은 도덕적 자신감 덕분이다. 최종적으로 신뢰받는 국가에 대해 생각해본다. 신뢰를 잃어 막대한 비용을 치루고 있는 사회에서 살고 있기 때문일까. 기관 혹은 국가는 시민의 신뢰를 얻어내야만 진정 막강해질 수 있음을 많은 이들이 본 책을 읽고 깨닫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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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라 온다 (무선)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152
알베르토 푸겟 지음, 엄지영 옮김 / 문학동네 / 201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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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티아스는 수학여행으로 떠났던 브라질에서 칠레로 돌아오자마자 숨막혀한다. 자신을 둘러싼 모두에 시큰둥해하며 때론 증오한다. 특권층 자제끼리 뭉친 칠레판 오렌지족에 끼여서 클럽과 바를 오가며 코카인과 섹스와 알코올에 의존한다. 한국적 시각으로 사춘기의 방황이라기엔 수위가 쎄지만 마티아스가 속한 계층과 남미 특유의 개방적인 문화를 떠올리면 납득이 된다. 

밤거리를 쏘다니고 개학한 학교에서 공부를 지속할 의미를 찾지 못하며 저마다 막장 사연을 가진 가족들과 충돌을 일으키는 일주일를 보노라니 기시감이 든다. 다름아닌 '호밀밭의 파수꾼'과 판박이다. 이는 작가의 의도이다. 마티아스가 매료된 몇안되는 책이 샐린저의 그것이었고, 책의 주인공 홀든 콜필드를 열렬히 사랑하기에 가출해서 그의 행적을 따라하기에 이른다. 이는 확고한 자아가 자리잡지 못해 외부의 영향에 취약한 사춘기 소년의 내면을 잘 보여준다. 가족 구성원 중 존경하고 조언을 구할만한 롤모델이 없는 소년의 비극이다.  

그래서 '말라 온다'가 단순히 '호밀밭의 파수꾼'을 오마주한 성장소설인가. 그렇진 않다. 9개의 단락마다 1980년 X월 X일을 명시하는 제목은 의미심장하다. 방황하는 마티아스의 뒤로 당시 칠레의 시국은 언뜻 과다할만큼 묘사된다. 쿠데타로 집권한 피노체트는 두번째 임기를 위해 요식행위일 뿐인 선거 캠페인을 전개한다. 기득권에 속한 마티아스의 가족들은 당연히 피노체트를 지지하지만, 8년 전 쿠데타에 대항해 장렬히 사망한 아옌데를 그리워하는 이들도 간간히 등장하며 아물지 않은 사회갈등을 추측케 한다. 또한 친미적인 피노체트 정권 하에서 칠레 고유문화라는 것을 적어도 소설 내에서는 찾아볼 수 없다. 다들 미국을 동경하고 영미권의 문화에 종속되어 있다.  

때문에 마티아스를 중2병에 걸린 비행청소년으로 규정할 수는 없다. 소년의 기저에는 성호르몬의 과다분비 뿐만 아니라 어딘가 단단히 잘못된 체제에 있었다는 것이 작가의 생각이다. 통금시간을 고수하는 억압적인 사회이면서도 매춘과 마약이 공공연하게 거래되는 위선적이고 타락한 1980년의 칠레는 전체주의 독재 국가의 전형이다. 소설에 흐르는 시대정서를 공감하는 한국독자들이 많을 것이다. 같은 시기에 같은 처지에 있었던 우리의 과거를 떠올려보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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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갈 김원일 소설전집 9
김원일 지음 / 강 / 201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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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재필은 소년원을 다녀온 후 절도와 폭력에 익숙해졌다. 더구나 무기력과 자살충동을 동반한 발작은 그나마 남아있던 그의 내면을 주기적으로 휩쓸었다. 감방에 있던 강재필에게 만난 적 없는 할아버지의 목소리가 찾아오지 않았더라도 근원적인 물음에 이를 수 밖에 없었다. 저주받은 정신과 육체는 어디에서 비롯된 것일까.  

강재필의 회상으로 그의 아버지 강천동 역시 다를 바 없었다. 그리고 독립투사로 알려진 그의 할아버지 강치무 역시 강재필과 같았다. 거구와 괴력과 능수능란한 언변, 그리고 강재필을 괴롭히는 파괴적인 발작은 세 남자의 공통점이었다. 신념과 신의 따위는 저버리고 생존에 집착하는 그들을 통해 한국의 20세기가 펼쳐진다. 할아버지 강치무의 눈으로 만주에서의 무장독립투쟁과 익히 알려진 731부대의 천인공노할 전쟁범죄가 묘사된다. 아버지 강천동 역시 인간의 존엄성을 짓밟고 이룩된 고도성장기의 희생자였다. 

3인에 시대가 응축되어 있다. 소설에 굉장히 몰입할 수 있었던 이유는 그런 기능을 떠나 인물들 자체가 생생했기 때문이다. 예측 불가능한 성격의 남성들을 살면서 몇몇 목격했다. 견디기 힘든 그들을 어쩔 수 없이 곁에 두고 바라볼 때, 좌절감과 슬픔이 간간히 드러나며 뒤섞여 풍기는 냄새는 뭐라 한마디로 정의할 수 없는 복잡한 것이었다. 김원일의 글은 그런 기억을 깨운다. 

같은 패턴을 반복하는 3대를 지켜보며 운명에 대해 생각해 본다. 근대의 철학자들은 존재하지 않는 운명의 족쇄에서 벗어날 자유의지를 촉구했다. 하지만 DNA 속의 유전자가 발견된 지금에 보면 어떤가. 부모로부터 이어받은 유전자정보는 우리 삶을 지배하고 있다. 선천적인 특질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돌연변이의 탄생과 후천적인 환경의 도움이 필요하다. 오로지 개인의 의지로 생의 질곡에서 벗어나기란 굉장히 어려운 일이다.  

강인한 육체와 외부로 투사되는 폭력적 성격이 할아버지 대에서부터 물려받았음을 알게된 강재필의 결론은 무엇이었을까. 책의 결론은 보기에 따라서 생뚱맞다고 볼 여지가 많지만, 결론에 이르는 심적변화와 인물들의 인상만으로도 책과 함께한 시간이 의미있었다.  

'전갈'은 김원일이라는 작가가 다시 보이는 책이다. 과거를 배경으로 한 역사소설에는 걸출한 능력을 발휘했음에도 현시대의 묘사는 어색하고 무리한 구석이 많았었다. 그러나 누아르와 역사소설의 형식을 섞어 혈통의 뿌리를 추적해가는 한 인간의 투쟁으로 귀결되는 방식은 신선하고 흥미로웠다. 특히 강재필의 입을 빌려 하류인생이 펼쳐지는 부분들은 소설의 백미이다. 즉흥적이고 그래서 더욱 생생한 글의 흐름과 리듬은 돌이켜봐도 놀랍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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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의 시대
존 쿳시 지음, 왕은철 옮김 / 들녘 / 200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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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리카에 이주한 네덜란드인의 후손이며 네덜란드어의 변형인 아프리칸스어를 모국어로 두면서도 영어로 교육받은 존 맥스웰 쿳시는 제국주의의 잔재에서 자랐다. 남아공의 역사를 상기시키는 작가의 복잡다단한 태생은 문학으로 승화되었다. '포'에 이어 '철의 시대'에서 작가의 일관되고 확고한 무엇을 대강이나마 확인하게 되었다. '포'와 마찬가지로 지배계층의 가장 약한 고리에 위치한 인물의 눈과 입을 통해 쿳시의 세계로 접근한다.  

소설의 주인공은 은퇴한 것으로 보이는 노년의 여성이다. 반정부행위로 미국으로 추방된 딸을 보내고 홀로 남은 엘리자베스 커런은 외로움과 암으로 서서히 죽어가고 있다. 그러던 그녀 앞에 등장한 부랑자 행색의 퍼케일은 커런에게 위안이 된다. 과거를 알 수 없고 과묵하지만 남자에게 속에 담긴 말을 건넨다.  

동시에 고요해야 할 커런의 일상을 흐트리는 일련의 사건들은 소설의 시대적 배경을 짐작케 한다. 살림을 돌봐주는 가정부의 딸이 흑인들의 소요와 무력진압 사이에 휩쓸려 사망한다. 흑인 소년을 숨겨주지만 추적한 군인들이 가차없이 검거하는 광경을 무력하게 지켜볼 수 밖에 없었다. 이는 그녀가 여성이고 노인이며 병자인 탓이라기보다 근본적으로 커런이 지배층에 속해 살아온 한계를 벗어나지 못함을 보여주는 장면이라 하겠다.  

이 모든 상황들은 아파르트헤이트를 고수하던 남아공 정부의 발악이 정점에 달했던 1980년대의 그곳의 혼란을 짐작케 한다. 그러나 명확하고 단번에 보여주지 않는다. 커런이 복용하는 항암제와 진통제는 정신을 몽롱하게 한다. 커런의 인식 자체인 소설은 쿳시 특유의 함축적인 문장에 힘입어 명백해 보이는 것들 마저 실재하는 것인지 의심하게 된다.  

그 예가 퍼케일이다. 임박한 죽음을 인식하는 커런은 딸에게 전하지 못한 말들을 미국으로 붙이지 못했다. 심리를 완전히 짐작하지는 못하겠으나 이야기를 들어줄 가상의 존재가 필요했던 게 아닐까. 어차피 이 모두가 딸에게 보내는 편지이니 어떤 것이 정말이고 허구인지는 중요하지는 않을테다.  

소설의 제목 '철의 시대'는 죽어가는 커런이 역시 함께 무너져가는 체제의 틈으로 삐져나오는 새로운 세대를 말한다. 쓰러져있는 커런을 구하기는 커녕 입 안에 금니가 있는지를 살피며 폭행하는 아이들을 낯설어 한다. '철'이 주는 일반적인 느낌, 차갑고 단단하며 비인간적인 존재로 보는 인식이 진실인지는 중요해 보이지는 않는다. 핵심은 한 시기가 끝나가고 있다는 점이다. 같은 맥락에서 소설을 단순히 어머니와 딸의 관계로 국한시킬 이유는 없다. 끝나가는 시대의 목격자이자 한 부분이 후대에 전하는 마지막 기록이랄까, 보다 거대한 인상을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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