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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의 시대
존 쿳시 지음, 왕은철 옮김 / 들녘 / 2004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아프리카에 이주한 네덜란드인의 후손이며 네덜란드어의 변형인 아프리칸스어를 모국어로 두면서도 영어로 교육받은 존 맥스웰 쿳시는 제국주의의 잔재에서 자랐다. 남아공의 역사를 상기시키는 작가의 복잡다단한 태생은 문학으로 승화되었다. '포'에 이어 '철의 시대'에서 작가의 일관되고 확고한 무엇을 대강이나마 확인하게 되었다. '포'와 마찬가지로 지배계층의 가장 약한 고리에 위치한 인물의 눈과 입을 통해 쿳시의 세계로 접근한다.
소설의 주인공은 은퇴한 것으로 보이는 노년의 여성이다. 반정부행위로 미국으로 추방된 딸을 보내고 홀로 남은 엘리자베스 커런은 외로움과 암으로 서서히 죽어가고 있다. 그러던 그녀 앞에 등장한 부랑자 행색의 퍼케일은 커런에게 위안이 된다. 과거를 알 수 없고 과묵하지만 남자에게 속에 담긴 말을 건넨다.
동시에 고요해야 할 커런의 일상을 흐트리는 일련의 사건들은 소설의 시대적 배경을 짐작케 한다. 살림을 돌봐주는 가정부의 딸이 흑인들의 소요와 무력진압 사이에 휩쓸려 사망한다. 흑인 소년을 숨겨주지만 추적한 군인들이 가차없이 검거하는 광경을 무력하게 지켜볼 수 밖에 없었다. 이는 그녀가 여성이고 노인이며 병자인 탓이라기보다 근본적으로 커런이 지배층에 속해 살아온 한계를 벗어나지 못함을 보여주는 장면이라 하겠다.
이 모든 상황들은 아파르트헤이트를 고수하던 남아공 정부의 발악이 정점에 달했던 1980년대의 그곳의 혼란을 짐작케 한다. 그러나 명확하고 단번에 보여주지 않는다. 커런이 복용하는 항암제와 진통제는 정신을 몽롱하게 한다. 커런의 인식 자체인 소설은 쿳시 특유의 함축적인 문장에 힘입어 명백해 보이는 것들 마저 실재하는 것인지 의심하게 된다.
그 예가 퍼케일이다. 임박한 죽음을 인식하는 커런은 딸에게 전하지 못한 말들을 미국으로 붙이지 못했다. 심리를 완전히 짐작하지는 못하겠으나 이야기를 들어줄 가상의 존재가 필요했던 게 아닐까. 어차피 이 모두가 딸에게 보내는 편지이니 어떤 것이 정말이고 허구인지는 중요하지는 않을테다.
소설의 제목 '철의 시대'는 죽어가는 커런이 역시 함께 무너져가는 체제의 틈으로 삐져나오는 새로운 세대를 말한다. 쓰러져있는 커런을 구하기는 커녕 입 안에 금니가 있는지를 살피며 폭행하는 아이들을 낯설어 한다. '철'이 주는 일반적인 느낌, 차갑고 단단하며 비인간적인 존재로 보는 인식이 진실인지는 중요해 보이지는 않는다. 핵심은 한 시기가 끝나가고 있다는 점이다. 같은 맥락에서 소설을 단순히 어머니와 딸의 관계로 국한시킬 이유는 없다. 끝나가는 시대의 목격자이자 한 부분이 후대에 전하는 마지막 기록이랄까, 보다 거대한 인상을 남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