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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믐, 또는 당신이 세계를 기억하는 방식 - 제20회 문학동네작가상 수상작
장강명 지음 / 문학동네 / 2015년 8월
평점 :
10대 소년의 우발적인 살인에서 시작된 소설의 이야기는 지긋지긋한 일상의 구질구질함을 통과해 비극으로 맺는다. 나는 갈수록 동시대의 아픔을 직시하기가 꺼려진다. 즐겁지 않은 현실을 고통을 굳이 찾아봐야하나 싶은 심정인 것이다. 그러나 '그믐..'은 고개를 쉽게 돌리지 못하게하는 힘이 있다. 단순히 비참하고 끔찍하고 동정을 불러일으키는 스토리여서가 아니다.
'그믐..'은 시각적으로 강력한 장면들이 있다. 살인 전과가 있는 남자와 남자를 지겹게 쫓아다니는 피해자의 엄마. 시대를 살아가며 우리가 공유하는 일상의 클리셰 위에서 남자와 아주머니가 서있는 광경은 기묘하게 부조화를 이룬다. 그들 사이의 사연과 관계를 알기에 짠하고 슬프지만, 포기가 불가능한 모성애에 섬뜩하기도 했던 것이다. 소설을 다 읽고 나서도 마치 영화를 본 것처럼 남자와 아주머니가 같이 등장하는 장면은 시각적인 잔상으로 남는다. 그들을 '남자'와 '아주머니'로 칭하고 외모를 특별히 묘사하지 않았는데도 말이다.
많은 장점에도 '그믐..'을 가장 특별하게 해주는 소품은 '우주 알'이다. SF 문학을 탐독했던 남자가 여자에게 알려준 우주 알은 지구의 생명체가 가진 패턴에 매력을 느끼면 들어온다는 이야기다. 나만 그런지 모르겠다. 남자의 몸에 있던 우주 알이 남자를 죽인 아주머니에게 다가오고 받아들이는 부분에서 왜그렇게 먹먹하던지. 아마도 속죄니 복수니 증오니 하는 속세의 것들을 한꺼번에 덮어버리는 절대적 존재의 힘에 감응했다는 생각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아주머니의 한을 풀어줄 거짓말로 죽음을 택한 남자의 무엇이 우주의 알과 연관되어 있다고 느꼈던 것일까.
어쩌면 남자가 소년일 적 좋아했던 잭 피니의 소설 '바디스내처'의 외계생물이 인간의 내부를 점령하는 방법대로 우주 알이 아주머니에 들어와 평안에 들게한다는 의미였을까. 물론 우주 알은 '바디스내처'와는 달리 착한 외계존재 일테다. 어쨋든 우주 알은 대단히 효과적인 소품이며 장치이다. 덕분에 일상과 가상의 존재의 조우로 '그믐..'의 화룡점정을 찍는다. 이러한 작법은 테드 창의 단편을 생각나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