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만의 시간을 탐닉하다 - 때로는 노골적이고 때로는 기쁜
프란체스카 스펙터 지음, 김나연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1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혼자만의 시간을 탐닉하다



 



이 책을 살펴보기 전에..


                                        

저자 : 프란체스카 스펙터
FRANCESCA SPECTER

영국 런던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저널리스트. 시티 런던대학교에서 매거진 저널리즘 석사 학위를 받았다. 영국 일간지 〈데일리 익스프레스(DAILY EXPRESS)〉에서 기자로 일했으며, 〈야후 라이프스타일(YAHOO! LIFESTYLE)〉에서 부편집장으로 근무한 경력이 있다. 그녀는 〈가디언(THE GUARDIAN)〉, 〈텔레그래프(THE TELEGRAPH)〉, 〈그라치아(GRAZIA)〉에 글을 기고했으며, PPA 디지털 라이징 스타상을 포함하여 다수의 미디어상에 지명되기도 했다. 7만 명이 듣는 팟캐스트 ‘얼론먼트(ALONEMENT)’의 진행자로, 매주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 중인 게스트를 초대해 자신만의 시간을 보내는 방식과 그것이 소중한 이유에 대해 묻는다.

저자의 첫 번째 책 《혼자만의 시간을 탐닉하다》는 혼자 지내는 시간에 대한 긍정적인 측면을 주제로 다룬다. 고독 속에서 즐거움과 가치를 찾으며 스스로에게 의미 있는 시간을 할애하는 법을 제공한다.

WWW.ALONEMENT.COM

역자 : 김나연
영미문화와 영문학을 공부하고 번역에 처음 뜻을 품었다. 서강대학교 영어영문과에서 20세기 현대 미국소설을 전공하여 석사 학위를 취득하였다. 이후 전문 번역가로서 첫 발을 내딛었으며, 현재 출판번역 에이전시 베네트랜스에서 리뷰어 및 번역가로 활동 중이다. 옮긴 책으로는 『사람은 어떻게 생각하고 배우고 기억하는가』, 『최강의 일머리』, 『부의 해부학』이 있다.

[인터넷 교보문고 제공]







함께 살아가지만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하다.


관계에 있어서 너무 가까운 것보다

때론 적당한 거리가 필요함을

여러 차례 시행착오를 겪으며 느끼게 되는 바이다.


막상 혼자가 되면 그 시간을 어떻게 보내야할지

낯설고 불안해하는 이들을 종종 본다.


외향적인 성격이 아닌 나에겐

그나마 혼자 있는 시간이 재충전의 시간이기도 하기에

크게 어려워하기보다는 좀 더 편안하게 느껴진다.


지금 이 시국에 더더욱 사회적 거리두기와

관계의 단절이 주는 어려움과 불편함이 크게 느껴지긴 하지만

적응되어가는 나 자신을 보면서

내향적인 성격이 좀 더 나에게 집중하기엔 더 많은 강점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게 된다.


혼자만의 취향에 좀 더 집중하게 되고

여러 행사나 모임에서 떨어져나와 혼자라는 외로움보다

내가 행복할 수 있는 것들을 찾는 연습을

더 안으로 나를 모으는 시간이라고 생각하니까 말이다.


"안전한 장소, 오랜 휴식과 자기 발견을 위한 장소로서 고독이 없다면,

우리는 자기 통제를 잃어버린 개인으로서 중요한 감각을 상실하는 것이다."

그렇다. 우리가 만약 혼자 있을 수 없다면 우리는 늘 타인에게 기대게 될 것이다.

고독과 친구가 되는 것은 우리 삶에 대한 소중한 자율성을 얻고 나와의 관계에 최선을 다한느 길이 된다는 뜻이다.

p69


혼자라는 시간은 지루하고 무료한 시간만이 아니다.


새로운 나를 발견할 수 있는 시간이자,

감정을 재배열하고 에너지를 나에게 좀 더 모아보는 시간이다.


여전히도 관계의 테두리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의존적으로 살아가는 이들에겐 이 시간이 두려울 것이다.


모든 관계의 단절이 아니라

분리된 하나의 개체로 내가 더 나로 살아가는 오롯한 시간이자

가치있는 시간이란 걸 생각하면 좋겠다.


이 시간이 주는 더 나은 방향성을 난 긍정하고 싶다.


그래서 혼자있는 시간이 더 소중하게 느껴지는지도 모르겠다.


우리 자신의 공간을 위해 더 많이 싸워야 한다는 것을 의미하지만,

나만의 공간은 물리적 공간만큼이나 심리적인 공간일 수 있다.

구석에 있는 안락의자든 연예인이 사는 것 같은 커다란 저택이든

내 공간을 의도적으로 만들고자 하는 의지가 모든 차이를 만들어 낸다.

p279


네 식구가 사는 이 집에서도 각자 자신의 공간을 원한다.


큰 아이는 이제서야 혼자만의 방을 가지게 되었고,

아직 분리되지 못한 막내는 엄마, 아빠와 함께한다.


부엌이란 공간이 엄마의 공간 같아 보이지만

사실 사적인 공간이진 않다.


그렇기에 작은 책상 하나라도 오롯이 내가 쓸 수 있는

작은 평수의 공간을 가지고 싶었다.


불어나는 책과 책장 때문에 서재방에 대한 고민이 많았는데

이또한 공동의 사유가 아닌가 싶어

혼자만 혼자 점유할 수 있는 그 어떤 공간이 절실하게 필요하다는 목마름이 있었다.


그래서 당장에 작년까지 쓰던 큰 아이의 책상을 내가 쓰고

더 큰 책상으로 갈아타게 된 새 책상은 아이방으로 옮겨놓고

거실 한쪽 구석에 예전 책상을 내가 쓰게 되었다.


좁은 공간 안에서 심리적 안락의자만큼 커다란 위안과 쉼을 얻는다.


이곳에서 책을 읽기도 글을 쓰기도 가끔 혼밥을 먹으면서

나로 살아가는 시간을 만들어가고 있다.


이따금 의도적으로라도 혼자만의 공간을 만들어야 함을 절실하게 느낀다.


적어도 나에겐 분리된 시간 안에서

나로 맘껏 살아갈 수 있는 시간이기도 하기에 더더욱 그러하다.


책의 제목부터 나에게 확 끌어당기는 무언가가 있었는데

혼자됨이란 그 쓸쓸함과 두려움, 고독감을 넘어선

스스로 자유할 수 있는 온전한 만족을

배우고 느낄 수 있었던 의미있는 시간이었다.


혼자됨은

가장 나로 살아가는 시간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이토록 몸이 좋아하는 순간 - 하찮은 체력, 우울증을 넘어서는 운동 힐링 에세이
박윤정 지음 / 리더북스 / 2021년 6월
평점 :
품절




이토록 몸이 좋아하는 순간





이 책을 살펴보기 전에..


박윤정

깡마르고 비실비실. 볼품없는 허약한 체력. 고등학교 조회 시간에 자주 쓰러지던 약골. 기절을 밥 먹듯이 경험하며 ‘평생 하찮은 체력으로 살아야 하는구나’ 하며 자포자기했다. 20대 후반에 결혼후 젊은 나이에도 연이은 출산과 양육은 너무 버거웠다. 하찮은 체력과 무기력이 인생을 벼랑 끝으로 몰고 갔다. 이혼 후 불면증, 불안장애, 우울증에 시달렸다. 몸과 마음이 병들어서 희망을 품을 수 없었다. 생활고에 인생은 바닥을 치고 있었지만 사춘기 두 아들을 혼자 키워야 했기에 정신을 차리고 홀로서기를 했다.

우연히 경험한 운동이 삶에 활력소가 되었다. 걷고 달렸다. 집 앞 헬스장에서 근육을 키우고 요가를 하면서 몸이 유연해졌다. 운동이 일상의 루틴으로 자리 잡았다. 자전거로 출·퇴근하고 1주 1산을 목표로 산에 올랐다. 지금은 균형 잡기의 끝판왕 패들보드를 타고, 마라톤 대회에 참가해 10km를 거뜬히 완주하고, 지리산 천왕봉에도 가볍게 오르는 강철 체력이 되었다.

밝은 표정에 힘차고 군살이 전혀 없어 40대 중반이라고 하면 아무도 믿지 않는다. 긍정 에너지가 삶을 지배하니 힘들었던 아이 교육과 경제문제도 술술 풀리고 있다. 체력 하나만 좋아져도 자존감, 성격 등 많은 게 달라진다는 것을 실감하고 있다. 2021년에 대한육상연맹 생활체육위원회 위원이 되었다.


[예스24 제공]







운동이 생활 루틴으로 자리잡을 수 없을 것만 같은

금방 방전되는 체력과 조금만 게으른 습성 때문에

잘 뛰거나 잘 걷는 편이 못된다.


올해 예상치 못한 수술을 받게 되어

이전보다 운동에 대한 절실함과

파고드는 무기력함을 극복하기 위한

몸을 움직이는 습관의 필요를 더욱 깨닫는 시간을 보내기도 했다.


그런 다짐들이 처음엔 없던 에너지도 끌어 쓰는 것처럼

열심을 다해 소화해 내지만,

금방 열기가 사그라드는 걸 보면

이번 운동도 맘 먹은 만큼 오래 가지 못하겠구나 싶은 마음에 늘 제자리 걸음이었다.


최근 들어 산책이라는 뜻하지 않은 신체 활동에

발을 디디게 되면서 걷는 것에 대한 매력과

햇빛을 쬐며 걷는 유익함을 맛들여가고 있다.


화단을 가득 메우고 있는 꽃들부터

곳곳에 피어있는 초록의 식물들이 소소한 즐거움을 더해준다.


오래 걷진 못하지만 동네 한 바퀴 걸을 수 있는 체력이

조금씩 붙으면서 다리의 힘도 길러지는 걸

몸소 느끼면서 체력 부족을 호소만 할 게 아니라

운동과 가까워질만한 요소와 필요를 가까이 두기로 마음 먹게 되었다.


등산의 기쁨은 정상에 올랐을 때 가장 크다.

그러나 최상의 기쁨은 험악한 산을 올라가는 순간에 있다.

길이 험하면 험할수록 가슴이 뛴다.

'인생에서 모든 고난이 자취를 감췄을 때를 생각해보라!

그 이상 삭막한 것이 없으리라.'

니체가 한 말의 의미를 나는 안다.

p129


더우면 더워서 추우면 추워서 하기 싫은 핑계거리가 왜 그렇게 많은지.


잔뜩 움츠려들어 내 체력의 한계와

하지 못할 거란 생각 안에 갇혀서

한발짝 내딛는 것조차도 겁을 내고 두려워했다.


그런 나에게도 니체의 말이 좋은 깨우침이 되는 듯하다.


늘 마주치는 한계와 고난이 있어

어쩌면 극복하겠다란 의지를 가지고 사는지 모르겠다.


아주도 책임져 주지 않는 삶이고

얼마나 두려움을 느끼고 살지도 내 몫이다.


그러나 그 속에서 부딪혀 한계를 뛰어 넘고

극복하는 의지를 보여주는 이들의 삶은 놀라울 정도로 발전이 있다.


움직이는 만큼 정직하게 표가 나는 게 운동인데

겁이 많고 귀찮다는 이유로 늘 포기하고 살아왔다.


이젠 막다른 골목까지 온 기분이라

다른 선택지와 핑계를 찾는 게 아니라

당장 좀 움직여보는 수 밖에 없다.


체력이 좋아지면 성취감도 상승한다.


무기력과 우울감 개선에도 도움이 되는 건

약물적인 것보다 운동만큼 효과적인 것이 없다고 거듭 강조한다.


중년의 나이에 접어들면서 급격하게 떨어지는 체력과 노화를

점점 몸으로 느끼고 있다.


체력이 좋아지면 일의 능률도 마음 상태도 좀 가지런해질 것같다.


체력이 뒷받침이 안되서 짜증을 자주 내기도 하고

몸이 아파서 자주 누워있었던 게 떠오른다.


너무도 명백한 운동 부족임을 알고 있기에

더 절실한 마음으로 해도 모자랄 상황에

누워서 떡 먹을 못된 심보를 가지고 있으니 참 어리석었다.


정말 이런 강철 체력으로 거듭날 수 있다는 것도 놀랍고

그게 내가 될 수도 있다라는 가능성을 열어놓고 생각하니

뭔가 모르게 운동할 의지가 솟구친다.


가볍게 즐기는 산책도 좋지만,

어제보다 몇 걸음 더 걸어보자는 마음으로

과식한 배를 이끌고 동네 한 바퀴 걸으러 나가보자 싶은 마음에 신발 신고 나가는 내가 더 신나 있다.


남은 인생의 반절은 좀 더 우아한 근육과

제법 탄탄한 몸으로 살아볼 것을 꿈꾸며

매일 조금씩 운동이라는 걸 해보자!






​​[이 글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협찬받아 주관적인 견해에 의해 작성했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거울 앞 인문학 - 아름답지 않아도 정말 사랑할 수 있을까
장 프랑수아 마르미옹 엮음, 이주영 옮김 / 윌북 / 2021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거울 앞 인문학





이 책을 살펴보기 전에..


저자 : 장프랑수아 마르미옹 (엮음)
심리학자, 과학 저널리스트. 2011년부터 심리학 잡지 『르세르클 프시』 편집장으로 일하고 있으며 2007년부터 『시앙스 위멘』에서 활동했다. 『내 주위에는 왜 멍청이가 많을까』, 『바보의 세계』를 비롯해 여러 책을 기획하고 출간했다.

역자 : 이주영
한국외국어통번역대학원 한불과를 졸업했고, 현재 출판번역가 모임인 바른번역의 회원이다. 외모를 테마로 한 이번 프랑스 인문서를 번역하면서 일본의 유명한 인형 전문점 ‘요시토쿠’의 기업 이념인 ‘인형은 얼굴이 생명’을 떠올리기도 했다. 『내 주위에는 왜 멍청이가 많을까』, 『인간 증발』, 『기운 빼앗는 사람, 내 인생에서 빼버리세요』 등을 우리말로 옮겼다.


[인터넷 교보문고 제공]







외적인 아름다움에 대한 집착이 개인의 문제에서

사회적인 문제로까지 이어지면서

일희일비할 일들이 주변에서도 심심치 않게 일어나고 있다.


외모를 평가하는 사회의 불편한 시선과

상대적으로 소외받는 이들이 받게 되는 사회적 외면과 불평등.


여전히도 내면의 아름다움이 중요하다고 말하면서도

정작 폄하되고 있는 외모주의적 사고방식에서

얼마나 자유롭게 벗어날 수 있을까.


아름다움을 하나로 정의 내려 판단할 수 없으므로

우리의 생각도 시선도 내적인 아름다움을 바라볼 수 있는 안목을 키워나가야 하지 않을까.


그런점에서 대체 아름답다는 것의 정의는 무얼까.


원론적인 생각과 고정관념을 탈피하는

좀 더 나은 지적 통찰을 이끌 수 있는

이 책을 보며 그 정의를 다시 생각해보게 된다.


"예쁜 여자에게서 해방되고 싶다면

예쁜 여자와 결혼해봐야 한다."

-샤샤 기트리,<그녀와 너>(1946)-


여성이 외모로만 주목받게 되면

가진 재능과 능력이 다소 묻히게 되는 경향이 있다.


외모로 억압받는 현실과 미의 기준이 사회, 문화적으로도 큰 비중을 차지하면서

자존감 문제로까지 이어지고 있다.


여성의 미모가 남성의 물질적 성공의 잣대처럼 보여지는

사회적 모순 속에서

예쁜 여자일수록 잘생긴 남자와 결혼할 가능성이 높은 현실이 씁쓸하기만하다.


관계가 깊어질수록 과연 외모가 그 관계안에서

더 많은 영향력을 발휘할까.


결혼 생활을 하고 있는 나 역시 상대의 외모가

지속적으로 좋은 관계를 유지시켜주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생각지 않는다.


나이가 들면 외모는 시들게 마련이다.


상대를 배려하고 대화가 잘 통하며

심적인 안정감과 서로의 정신적인 교감이

무엇보다 더 중요하다란 생각이 든다.


그렇기에 외모보다 내면의 장점을 가진 사람으로

더 스스로를 근사하게 성장시킬 수 있다면 그 사람이야말로

근사하고 멋진 사람이 아닐까 생각한다.


눈에 보이는 외모의 기준으로

차별 행위와 처벌이 사회에 미치는 영향은 여전하지만

건강한 아름다움의 기준을 개인 또는 사회적으로도

획일화되지 않도록 아름다움과 건강함의 연결이 바로 설 수 있었으면 좋겠다.


"우리가 괴물이라고 부르는 사람들은 신의 입장에서 보면 괴물이 아니다.

그야말로 지혜로운 신은 선하고 균형 있는 존재만 만들어낸다.

다만 우리 인간이 괴물이라는 존재 뒤에 숨어 있는 질서와 비율을 보지 못할 뿐이다.

-<수상록>,2권 30장-


프랑스 철학자 미셸 에켐 드 몽테뉴는

두렵고 혐오스러운 괴물을 실제로

신이 만들었다고 생각 안에서

불완전하고 정상에서 벗어난 모습이 괴이해 보일지 몰라도

어쩌면 가장 완벽한 균형의 미가 살아있음을 생각했던 사람이 아닐까.


어쩌면 과학이 발전하고 모든 생물의 모양이

일관적인 법칙과 표준에서 조금만 빗나가도

옳지 못하다는 검열의 대상이 되어버린 것 같아 안타까워진다.


그 안에 놀라운 창의력과 가치를 폄하하게 된다는 걸 생각해야 한다.


여전히 외모 때문에 수치심과 열등감을 느끼는 이들에게서

괴물이라는 편견이 죄의 산물처럼 취급받게 되는

그 시선과 편견이 줄지 않고 있다.


외적인 문제가 정신적인 문제로 이어지니 더 큰 문제이기도 하다.


파괴해야 할 가치 기준과

획일적인 아름다움의 가치 기준을 깨부수고 나아가야 할 필요가 분명 있다.


예술에서도 비판하는 가치를 작품 속에서 불어 넣고 있는 방식이

사회를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가치 체계를

관점 안에서 재해석해야 함을 시사하고 있으므로

중요하게 고민하고 깨어져야 할 사안이 아닌가 생각한다.


이처럼 아름다움을 둘러싼 인식의 변화가

나 자신부터 시작될 수 있길 바라며

대체할 수 없는 자신만의 매력이

외적인 아름다움보다 그 우위에 있음을 명심하자.


아름다움의 가치 기준을 당신은 어디에 두고 있는가.


한번쯤 그 내막과 실체에 대해 고민해보시길.





​​[이 글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협찬받아 주관적인 견해에 의해 작성했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상실의 언어 -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심리치료사가 쓴 회복과 치유의 기록
사샤 베이츠 지음, 신소희 옮김 / 심심 / 2021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남아 있는 유족들의 고단한 삶을 회복해 가는 모습을 보고 애도의 과정들을 살펴볼 수 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상실의 언어 -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심리치료사가 쓴 회복과 치유의 기록
사샤 베이츠 지음, 신소희 옮김 / 심심 / 2021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상실의 언어





이 책을 살펴보기 전에..


저자 : 사샤 베이츠
SASHA BATES

공인 심리치료사이자 트라우마와 자기 통제 전문가. BBC와 채널4 텔레비전 방송국에서 18년간 작가, 디렉터, 프로듀서로 일하며 〈옴니버스〉, 〈그랜드 디자인〉 등의 프로그램을 만들었다. 이후 인간의 마음과 감정을 깊이 이해하고자 런던의 더 민스터 센터THE MINSTER CENTRE에서 심리치료 석사학위를 받고, 상담 및 통합 심리치료 과정을 수료했다.

치료사를 위한 셀프케어,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치료를 위한 요가 등 다양한 주제로 워크숍을 열었고, 특히 요가 강사로서 쌓은 몸과 마음에 관한 깊은 이해를 토대로 치료사로서 명성을 얻었다. 6년째 상담 치료사로 일하며 사람들의 마음을 치유하고 있다.

이 책은 저자가 사랑하는 남편의 갑작스러운 죽음 후에 ‘유족으로서 나’와 ‘치료사로서의 나’를 오가며, 상실과 애도, 비탄의 심리를 밑바닥까지 파헤치는 과정을 담은 기록이다. 그는 이 경험을 바탕으로 비탄에 잠긴 사람과 심리치료사 들을 위한 다양한 워크숍을 진행하고 있다.

역자 : 신소희
서울대학교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하고 출판 편집자 및 번역가로 일해왔다. 《야생의 위로》, 《내가 왜 계속 살아야 합니까》, 《여자 사전》, 《피너츠 완전판》, 《개와 고양이를 키웁니다》 등을 번역했다.


[인터넷 교보문고 제공]





#심리

#상실의언어


사랑하는 가족을 잃은 상실감을

어떻게 치유할 수 있을지 생각만해도 너무 막막해진다.


책으로 읽고 있으면서도

터져버릴 것만 같은 감정이 솟아오르고

너무도 포기하고 싶은 삶을 붙들고 살아가야 하는

남아 있는 유족들의 고단한 삶을

회복해 가는 모습을 보고 있는 것으로도 힘겨웠다.


이런 생생한 모습들이 상담자에게서 애도의 과정들을

설명되어지고 심리치료라는 측면에서

독자에게 전해지는 접근 방식이 새롭게 받아들여지기도 했다.


우리 모두가 이 같은 상실을 언젠가는 받아들이면서 살아갈테지만

닥치고보면 너무도 큰 고통이지 않을까.


부정할 수 없는 현실과

그 현실을 살아가야하는 사이에서 오는 괴리감을

어떻게 좁혀나갈 수 있을지 막막하지만

그 여정을 담담히 읽어 내려갔다.


이처럼 고통스러운 상실의 경험을 공유하고 나서,

나는 매 순간 충실하려 노력했던 우리의 삶에 이젠 나 홀로 찾아야 할 교훈이 존재함을 새삼 깨달았다.

일상에서 순간적인 기쁨을 발견하는 일의 중요성과,

확실한 행복에 집중함으로써 슬픔과 그리움과 상실감을 조금이나마 달래는 방법을.

하지만 그런 마음가짐이 빌을 잃어버린 내게 머지 않아

그토록 큰 도움을 주리라는 것을 미처 몰랐다.

나 혼자서 그렇게 살아간다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이 될 것인지도 알지 못했다.

p103


이런 상태는 영원히 끝나지 않을 듯 느껴진다.

실제로도 끝이 없다.

다만 그 형태가 바뀔 뿐이다.

애도를 하나의 길로 생각하는 것은 잘못된 일이다.

p192


잠잠해졌다 해도 이따금 감정에 침입하는

고통을 어떻게 하면 적게 통제하며 살아갈 수 있을지

그것 또한 신경써야 할 부분이지만,

영원히 끝나지 않는다는 씁쓸함이 참 애석하다.


비탄이란 말이 더 큰 사람으로 성장시키는 매개체가 될런지 모르겠지만

그 과정들을 충분히 겪고 있는 유족들에겐

이 절절한 감정을 얼마나 더 인식하며 살아가야 하는지 정말 막막하게 느껴진다.


시간이 흐르면 좀 나아지겠지 생각하지만

다른 감정들로 불쑥 다가온 여러 기분들을 또 어떻게 받아들이며 살아가야 할지 말이다.


안정감에 타격을 입은 것도 극도의 외로움도

얼마나 더 고독해지고 무력해질지

그런 공허함의 꼬리를 계속 달고 살아가야할 짐을

조금 덜 가볍게 생각하는 법을 차차 배워가는 것일테지만 말이다.


실존주의 심리치료가 의미를 찾도록 연결 통로를 만들어가고

요가나 명상 등으로 내적 감각과 건강을 회복할 수 있는 안전기지를 찾는 법도

좋은 감정을 찾기 위한 방법으로 이런 저런 시도들을 제시하기도 한다.


가장 위로가 되는 말은

고인을 가슴에 묻을 필요는 없다는 것이다.


그들과 그저 함께 살아간다고 생각하는 것으로

모든 여정을 끝을 찾으려하기보다

그저 함께해도 괜찮다라는 것.


내가 살아갈 삶에 고인과의 유대를 억지로 끊어내지 않는 것.


지속적인 유대 이론이 건전하고 정상적이며

애착 반응도 자연스럽고 상실을 견뎌내기 위한 필수적 반응이라 하니

지속 가능한 유대 형성이 긍정적으로 보이기도 한다.


삶과 죽음의 굴레 속에서

사랑하는 관계 안에 있는 모든 이들이 겪게 되는

기쁨과 슬픔 모든 아픔까지도 끌어안고 살아감에도

희망을 찾아가는 책 속에서

살아감에 대한 또다른 성찰로 이어지는 고민을 해보게 된다.


살아가는 모든 과정들 속에서

우린 영원히 함께 할 유대관계를 이어가는 것이 당연할테니까.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