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슨
이언 매큐언 지음, 민승남 옮김 / 문학동네 / 202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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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이언 매큐언 작품으로 <속죄>를 읽고서

섬세한 묘사와 반전에 푹 빠져 그가 빚어가는 이야기에 대한

무한 신뢰를 맛본 뒤엔 팬이 되어 버렸다.

촘촘하게 얽힌 그의 완벽한 작품을 읽어내려 갈때의

짜릿한 쾌감을 이 책 속에서도 느낄 수 있을지 궁금하면서도 기대가 되었다.

말 못하는 무력한 인간에겐 극단적 감정 변화가 무기였다.

서툰 방식의 독재.

현실 세계의 독재자가 유아에 비유되는 경우가 많았다.

로런스의 기쁨과 슬픔은 얄팍한 거즈로 나뉘어 있는 걸까? 그조차 아니었다.

기쁨과 슬픔은 한데 단단히 감싸여 있었다.

p46

스스로 선택하지 않은 삶에서 일련의 사건에 반응하며 표류하듯 살아가는 건 얼마나 쉬운 일인가.

그는 중대한 결정을 내려본 적이 없었다.

학교를 떠난 걸 제외하면. 아니, 그것도 반응이었다.

p442

사랑이 과거로 사라질 때 모두가 잊어버리는 본질이 있었다.

함께했던 순간, 시간, 나날 속에서 느끼고 맛보았던 것.

당연시되었던 모든 것이 버려지고.

그것이 어떻게 끝났는지에 대한 이야기로 덮이고.

그후에는 부끄러울 정도로 불완전한 기억에 의해 다시 덮이기 전의 그 모든 것.

천국이든 지옥이든, 많은 기억이 남진 않는다.

p650



롤런드라는 한 사람의 일대기를 이야기하면서

이 작품 속에서 작가는 자신의 삶을 빗대어 말하고 싶었을까.

레슨이라는 배움의 형태가 가히 유쾌하지 못한 불편함이

마음을 짓누르는 듯 롤런드라는 인물이 겪어왔던 일련의 사건들이

뇌리에 오랫동안 남아 머릿속을 휘젓는다.

어린 소년에 불과한 그에게 피아노 교사 미리엄과의 만남은

삶을 파괴적인 국면으로 이끄는 시작점이 된다.

성적학대라는 쓰디 쓴 상처가 앞으로의 그가

사랑과 폭력으로 틀어진 인생의 경험치를 감당하게 될 그림들을 전혀 예상치 못했다.

이어 아내 알리사가 쪽지만 두고 집을 나가게 되자

아들 로런스를 키우며 살아가는 상처와 배신의 경험을 보면서

어쩜 이렇게도 실패에 실패를 거듭하고

그럼에도 버티며 살아가는 롤런스 인생이 어찌나 애처로운지..

게다가 여러 세계사적 사건들

세계대전, 체르노빌 사고, 독일 베를린 장벽 붕괴, 브렉시트, 코로나 19..

개인사와 광대한 역사적 사건이 뒤엉켜 있는 모습이

거대한 중심축을 바꿔놓을

유기적인 관계 안에 놓여 인생의 시간이 흘러가는 걸 지켜보며

나의 지나온 과거와 현재를 문득 떠올려 보게 된다.

팬데믹에 휩싸였던 지난 시간 속에서

내가 잃었던 아픔과 상실이 떠올라

그 시간을 보상받을 수 없지만,

현재를 살아가는데 있어서 다른 삶의 자세를 되찾게 된 점을 보면

나에겐 또한 또 한번의 레슨을 경험한 바가 아닐까.

여러 교훈들을 통해 배움이라는 질적인 만족감이 아닌

뼈아픈 고통의 경험일지라도

경험과 사건의 합이 이어져 온 개인의 서사가 완성되어가는 것이니 말이다.

자의적인 선택이 아닌 의도와 상관없이

흘러가는 무기력함 속에서 선택의 항로는 무수히 변경되고

바뀌어 나갈 수 있어서 인생을 참 알 수가 없다.

삶 속에서 부딪히고 충돌하며 깎이는 무수한 시간들이

남기는 장엄한 결과값을 우린 마주하게 될 것이다.

그 모습이 어떠하든 실패와 얼룩진 상처가

인생을 좀먹지 않도록 무수한 선택 속에서

거대한 중심축을 붙잡고 살아갈 수 있는

개인의 촘촘한 인생기가 완성되어질 수 있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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