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요한 결심 - 내 삶의 언어로 존엄을 지키는 일에 대하여
이화열 지음 / 앤의서재 / 202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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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내 삶의 언어로

존엄을 지키는 일에 대하여




죽음 앞에서 나는 자유로울 수 있을까.

여전히 쉽게 받아들이기 힘든 문제이지만

죽음과 삶의 경계가 맞물려 있다는 점에서

어느 것 하나 떼어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좀 더 자유롭고 싶은데, 어쩜 좋을까..



죽음을 어떻게 맞이할 것인가는, 그 결정을 누가 하느냐보다

어떻게 평온하게 받아들이느냐의 문제다.

죽음은 삶의 반대가 아니라, 삶의 또 다른 그림자다.

언제든 찾아올 수 있는 손님을 맞이하듯, 우리는 죽음을 준비하며 살아야 한다.

지그문트 바우만의 사상을 빌리자면, 죽음을 받아들이는 일은

'죽음의 가시에서 독을 빼는 일'과 같다.

죽음을 받아들이는 방식은 결국, 자신이 살아온 삶의 태도와 닮아있다.

p83

내 삶의 언어로 받아들이게 되는 죽음을 준비할 수 있는

자세와 태도가 난 어떠할까.

나이 들어가는 부모님을 보면 살아갈 날보다

죽음을 향해 더 가까운 거리로 속도를 좁혀 나가며 산다.

그럼에도 그 분들이 삶을 괴롭거나 걱정 속에 휩싸여 살지 않는 걸 보면

그저 오늘 이 순간 살아 있음에 감사할 뿐이라고 늘 말하신다.

감사하는 범주가 속물적이고 조건적인

내 편협한 생각을 깨뜨리는 부모님의 말 한마디는 나에게

너무 가볍고 큰 가치로 여겨지지 않는 당연함이었다.

넉넉하지도 부유하지 않아도

그저 평온한 일상을 오늘 하루를 살 수 있어서 감사하다는 말이

어처구니 없이 들리던 지난 날의 내가 떠오른다.

젊은 때의 난 영원히 살 것처럼

마지막의 때를 염두하거나 생각지 못하고 살아왔다.

지금이라고 얼마나 다를까 싶지만

꺾어진 중년의 때를 맞이하면서

앞으로 내 인생의 남은 시간이 얼마나 될까를

그저 안심할 수 없어서 초조한 기분이 들때가 많다.

전보다 더 조문하는 일이 많아지면서

삶의 마지막이라는 엄숙하고 단호한 끝의 때를

잊고 살아왔던 나의 철없음을 뒤로 하고, 아침에 눈을 뜰 수 있어 감사해하는

부모님의 삶의 태도가 눈에 들어왔다.

"잘 지내니 걱정마라.

여긴 별 일 없다."

큰 일을 치르고도 별 탈 없이 잘 지낸다고 이야기하는 당신들의 삶이

정말 별거 없이 무탈한 것이 아님에도

그럼에도 감사함을 찾아 오늘 하루를 살아가는 모습에

요즘은 마음이 시리고 애처롭고 큰 마음을 동경한다.

살아있는 동안 우리는 죽음을 알 수 없다.

죽음이 평온한지, 고통스러운지 결코 알지 못한다.

하지만 죽음을 생각할 때, 삶의 풍경은 더 또렷해진다.

파도를 타려는 본능적 몸짓을 멈춘 순간, 비로소 물결 위로 반짝이는 햇살이 눈에 들어오듯이.

p121

죽음을 떠올리며 살아있는 이 순간이 눈부시게 반짝인다.

수술대 위에 누워있던 그 순간

두려움보다 더 큰 감정이 솟구쳤던 건

지나온 시간동안 내가 누리지 못했던 후회들.

대부분이 더 많이 사랑하지 못해서라는 후회가 컸다.

다시 몸이 회복되면 지금의 순간을

더 즐기고 사랑하며 살리라 다짐했으나

현생을 사느라 모든 것을 뒤로 몰아내고 있는 아찔한 기분을

책장을 넘기며 찌릿하고 뻐근하게 느껴지는 감각으로 다시 일깨워준다.

'금새 잊고만 거냐고..'

죽음이라는 주제의 책들을

일부러 피하던 두렵고 겁많던 나에게

죽음을 마주할 용기와 필요성이

삶을 더 긍정할 수 있는 좋은 마음가짐으로 성장할 수 있게 만드는 건

나보다 더 인생을 먼저 사신 나의 부모님과

살아갈 이유와 삶의 가치를 더 풍성하게 만든 책 덕분이다.

그런 의미에서 살아가는 삶의 태도와

죽음에 대한 수용의 필요를

조용한 사색과 혼자만의 고요한 시간 속에서 묻고 답할 수 있어서 의미있는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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