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의 행복 - 버지니아 울프와 함께 정원을 걷다 열다
버지니아 울프 지음, 모명숙 옮김 / 열림원 / 202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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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버지니아 울프의 사색을 다룬 잔잔하고 차분한 문장들이 담긴

자연과 정원의 이야기의 책을 만나보았다.

다양한 형태의 형식이 모두 담겨있는데

에세이, 시, 소설, 편지가 조화를 이루어 감상의 묘미를 더해준다.

그녀만의 내면 이야기를 조용하고 담담히 이야기하면서도

정원이라는 버지니아 울프가 아끼고 사랑하는 공간 속에서

치유와 회복을 느낄 수 있는 특별함이 느껴져서 더 아름답게 느껴진다.




시간이 흐르면 기억을 캐낼 수 있는 장비를 개발하는 것도 가능하지 않을까? 나는 기억-과거-을 내 뒤에 있는 하나의 도로로, 장면들, 즉 감정들로 이루어진 하나의 긴 띠로 본다. 거기, 그 도로의 끝에는 여전히 정원과 아이들방이 있다.

p17

세인트아이브스는 내가 이 순간 염두해 두고 있는 저 “순수한 기쁨”을 우리에게 주었다. 느릅나무의 레몬색 잎들. 과수원의 사과들. 잎들이 속삭이고 바스락거리는 소리는 나를 여기에 멈추게 하고, 인간의 힘이 아닌 얼마나 많은 힘들이 우리에게 계속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를 생각하게 만든다.

p31

꽃들은 인간들의 열정을 상징하고, 인간의 축제를 장식하고, 죽은 자들의 베개 위에 (슬픔을 아는 듯이) 놓여 있다. 놀랍게도 시인들이 자연에서 종교를 발견했다고 전해준다. 사람들이 시골에 살면서 식물들에게서 미덕을 배운다고 말해준다. 식물은 무심함으로 위안을 준다. 인간이 밟아본 적이 없는 영혼의 저 설원에 구름이 찾아오고 떨어지는 꽃잎이 입을 맞춘다. 마치 다른 영역에서 밀턴과 포프 같은 위대한 예술가들이 그러하듯, 그들은 우리를 위로한다. 우리를 생각해서가 아니라 우리를 잊었기 때문에.

p254-255

짙고 옅은 구름들이 지나가며 그 아래에 깔린 풀밭의 빛깔을 흩뜨린다. 해시계는 하루의 시간을 익숙한 수수께끼 같은 방식으로 기록한다. 마음은 한가하게 바로 이런 삶에 대한 이런저런 질문을 제기하기 시작한다. 그는 이렇게 노래하거나 흥얼거린다. 난로 선반 위의 냄비 같은 인생, 인생, 인생, 그대는 무엇인가? 빛일까, 아니면 어둠일까, 급사의 플란넬 앞치마일까, 아니면 풀밭에 있는 찌르레기의 그림자일까?

p266-267

계절을 변화를 만끽할 수 있는 정원에서 식물을 가꾸며

삶의 숨겨진 지혜를 찾아볼 수 있는

낭만 넘치는 사색의 공간이 바로 여기가 아닌가 싶다.

갈란투스, 히아신스, 목련, 장미, 백합, 과꽃, 달리아,

사과나무, 벚나무, 배나무 등이 상록수가 자라나는 꿈의 정원처럼

수채화를 연상시키는 듯한 디테일한 묘사가

감상을 너머 눈부시게 아름다운 그 너머의 세계로 이미 가 있는 듯하다.

황무지를 지나 짙은 보랏빛 언덕의 걸어가다 지푸라기를 힘겹게 끌고 가는

메뚜기를 보며 인생의 고난을 떠올리기도,

저녁이면 헤더 꽃들 사이로 나방들이 전신선들로부터 들리는

말도 안되는 기이한 웃음 소리가,

녹색 동굴에 오랫동안 홀로 살아 온 물고기들이

인간의 말을 들어 온 자연 만물의 모두와 인간이 얽혀 살아가는 인생이 참 묘하게 아름답다.

어쩜 이렇게 작고 작은 미물들에 관심을 가지며

그 마음을 들여다보고 보여지는 그 너머의 마음을 생각하며 글을 쓸까 싶다.

그녀가 내내 글을 쓰는 것처럼 존재의 모든 것들도

그 자리에서 영영토록 그 흐름을 이어가고 있는 것이

너무도 자연스럽게 하나로 이어지는 듯 보인다.

대체 얼마나 더 섬세해야 이런 글을 쓸 수 있을까 싶어 놀랍고

간간히 책장을 넘기다가 내가 있는 이 곳이

울프의 정원 한가운데 서 있는 기분마저 느끼게 만든다.

삶을 풍요롭게 채워가는 법을 알았던 그녀의

안식처럼 요새가 되어 준 정원 속에서

외로움과 친밀함과 안전함을 느꼈던 것에 안도감이 든다.

그 안에서 부디 모두의 행복을 발견할 수 있길 바라는 그 마음을 들여다 볼 수 있어 행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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