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곳에서의 석 달은 여행이라기보다는 체류고, 써야할 이야기와 정리해야 할 삶의 갈음이 있다.
즉, 나는 이곳에서의 알상을 살아 나가야 한다.
이곳은 한국의 문학관도 아니고 나만의 작업실도 아니며 이번 가을의 거처일 따름이다.
이곳을 베이스로 글도 쓰고 돈키호테도 쫓아야 하고 일상도 견뎌내야 한다.
p59
나의 돈키호테를 찾기 위한 여정은
스페인의 여행길에 오른 시간에서부터 시작된다.
작가는 이 모험에서 어떤 희망을 찾게 되었을지 궁금한 마음으로 책을 읽어내려갔다.
세비야의 감옥에서 출소한 뒤 세르반테스는 마드리드로 간다.
그리고 마드리드에서 본격적으로 <돈키호테>를 집필하게 된다.
나 역시 내일 맏리드로 돌아간다. 그리고 뭐라도 쓰겠지.
그처럼 나도 소설가이기 때문이다.
숙명, 쓰는 자의 숙명을 믿으며 나는 스스로를 가뒀다.
에어컨이 나오는 감옥은 서늘했고, 꿈꾸기에 좋았다.
p142
작가의 삶이란 결국 표현하는 것이고 인내하는 것이자
가난과 행복으로 기운 옷을 입고 글을 쓰는 것에 다름 아니기 때문이다.
p187
생각은 늘 작품 속에서 맴돌고 그렇게 다져진 작품들이 모여 인생이란 모자이크가 완성된다.
고로 도망치지 않고 작품이란 링 안에서 삶을 수행하는 것만이 작가가 살아가는 방법이다.
p193
창작자가 벗어날 수 없는 숙명을 받아들여야만 하면서도
벗어나고자 애써보기도 하며
다시 벗어난 경로만큼 되돌아오게 되는 모든 과정들이
서글프면서도 찬란하게 느껴진다.
2019년 여행길에 올랐던 무명작가가
한없는 고뇌와 갈림길 위에서
하루 하루 여행이란 미명 아래에
써야만 하는 보이지 않는 사투를 벌이면서
얼마나 지치고 힘들었을지가 느껴져 마음 아팠다.
세르반테스를 쫓으며 느낀 건 생을 향한 불굴의 의지와
어떤 상황에도 포기하지 않는 집필욕이었다.
사람들은 보이지 않는 것을, 손에 잡히지 않는 이익을 믿지 않으려 하지만
결국 <돈키호테>에 담긴 수많은 무형의 가치들은 우리를 뒤흔들었다.
그래서 그 책은 인류의 고전이 됐다.
나는 스페인에 와서 그 가치들을 온몸으로 받아들였고 다시 모험할 용기를 획득했다.
p236-237
이 여행에서 다시 이야기 속으로 모험을 시작하게 된
그의 신념과 의지를 회복해 나가는 과정이 꽤나 인상 깊었다.
우린 누구나 살면서 번아웃을 경험한다.
고뇌하고 갈등하게 되는 머릿속 복잡한 문제들을
나만 떠안고 살아가나 싶어 더 괴롭기도하다.
그렇게 스스로를 한참 괴롭히다가도
죽으란 법은 없는지 우연한 기회와 시간 속에
다시 걸음을 걷게하는 동력을 얻게 된다.
포기하지 않으면
결국 만나게 되는 맞닿게 되는 무언가는
결국 나를 만들어 나간다.
현실에 굴복하고마는 산초로 전락하겠지만
마음만큼은 돈키호테의 신념과 의지와 꿈으로 가득 차 있는
모순덩어리의 나를 생각해보면
묵묵히 한 길을 걸어가는 작가님의 신념이
마치 돈키호테를 닮아있는 듯 싶다.
모두의 삶에서 찬란하고 빛나는 돈키호테를 마주하며 살아갈 수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