옮기는 것은 낫게 하는 것과는 달랐다.
사라지는 것이 아닌 그대로 타인에게 넘어가는 것.
당시 찬의 몸은 온통 신자들에게 옮겨 받은 상처와 흉터로 가득했다.
걸치고 있는 옷가지마다 피와 고름이 묻어났다.
모두가 기적에 감복할 때 찬은 홀로 고통을 견뎠다.
란은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자신을 원망했다.
p114
능력은 반드시 악용된다.
거대한 부담감이 란의 어깨에 올라탔다.
공포, 두려운, 책임감과 같은 감정들이 줄줄이 따라왔다.
그것들은 갓난아기처럼 내달린 채로 떨어지지 않았다.
p151
그럴 리가. 그토록 기적을 찾아 헤맸는데 돌아온 건 차갑고 괴이한 진실뿐이다.
자신의 목숨을 담보로 걸어야만 겨우 이룰 수 있는 것이었다.
대가 없는 기적, 정말 그런 게 존재할리 있냐고 온 세상이 자신에게 다그치는 것만 같았다.
지금의 이창을 채우고 있는 것은 허탈함과 관성, 산발적인 분노와 무기력, 그리고 체념에서
싹을 띄운 아주 약간의 희망이었다.
기적이 요구하는 건 담백했다.
하나를 원하면 다른 하나를 내놓아야 한다.
p228
첫 장편 소설인 <시프트> 고통을 옮기는 자는
주인공 '란'이 가진 기이한 능력을 말한다.
환자의 아픔을 덜어주는 치유의 능력이 아닌 고통을 옮겨
옮겨받은 이는 죽게 되는 저주받은 능력을 가진 란.
사실 그 능력은 형 '찬'에게서 옮겨 받은 것이다.
형의 과거에 숨겨진 배후의 사건을 알고 있는 란은
형을 죽음으로 내몰았던 집단들을 향한 복수의 칼날을 갈고 있었다.
마침 조카 채린의 불치병을 고치고자 전력을 다하는
또다른 주인공 형사 '이창'이 등장한다.
불치병을 낫게 해주는 기적을 행한다는 사이비 교주와 교단을 쫓다가
란의 행방까지 추적하게 되는데
알고보니 교주가 이들 형제 찬과 란에게 행했던 범햄과
부고한 아동들의 납치와 살인이 수면위로 들어나게 된다.
교주에게는 사실 기적적인 치유의 능력은 전혀 없었고,
특별한 능력을 가진 형 찬을 통해
돈벌이 수단으로 악이용 하고 있다는 것이 밝혀지게 된다.
분노가 치밀어 오르는 그 이상으로
추악한 인간의 탈을 쓴 악마같은 존재를 보며
선과 악의 대립 속에서 기필코 드러날 진실이 밝혀지길 간절한 마음으로 바라면서
쉴새없이 페이지를 넘기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악인들의 욕심이 불러일으킨 거대한 폭풍은
과연 어떤 결과로 이어지게 될까.
처참한 최후를 맞이하고 란의 복수는 성공할 수 있을까.
사건 뒤에 숨겨진 어두운 그림자를 향해
복수의 향방을 따라가는 빠른 전개 속에서
숨가쁘게 미스터리의 전말들을 풀어헤쳐보며
긴장감을 놓칠 수 없는 재미있는 책이었다.
'기적이 아닌 거래라면 다른 선택지가 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