착하지 않아도 돼.
참회하며 드넓은 사막을 무릎으로 건너지 않아도 돼.
그저 너의 몸이라는 여린 동물이 사랑하는 걸 사랑하게 하면 돼.
너의 절망을 말해봐, 그럼 나의 절망도 말해주지.
그러는 사이에도 세상은 돌아가지.
그러는 사이에도 태양과 투명한 조약돌 같은 비가 풍경을 가로질러 지나가지,
초원들과 울창한 나무들,
산과 강들 위로.
p23
메리 올리버 시인의 <기러기>의 작품에서
가장 첫 구절인 "착하지 않아도 돼"에서 눈길이 멈추었다.
살아가면서 부던히도 애를 썼던 것에
힘을 빼고 살아도 괜찮다고 말해주는 것 같아서였다.
패배감에 나를 잃어버리고 비참하게 살지 않아도
절망을 조용히 날려버릴 듯한
작은 해방감을 느낄 수 있었다.
누구에게도 비추지 않았던 나의 속마음을
조금씩 털어놓고 싶어진다.
이 시의 목소리가 날 그렇게 유연하게 만들어주는 것만 같다.
아이들은 봄이 무슨 말을 하는지 알지.
살아라, 자라라, 꽃 피워라, 희망하라, 사랑하라,
기뻐하라, 새싹을 튀워라,
몰두하라. 그리고 삶을 두려워하지 마라.
늙은이들도 봄이 무슨 말을 하는지 알지.
늙은이여, 네 몸을 땅에 묻어라.
활기찬 소년들에게 자리를 양보해라.
몰두하라. 죽음을 두려워하지 마라.
p143
헤르만 헤세의 <봄의 말>은 생명의 역동적인 움직임이 느껴지는 시 같아서
잔뜩 움츠린 마음에 힘을 불어 넣어주는 듯하다.
나이가 드니 좀처럼 생기있게 지낼 수 없는
세월의 무색함을 온 몸으로 느낄 때가 많아서 서러울 때가 있다.
꿈꾸던 것들을 이루며 살기에 제약이 많다고 생각되는
나이와 환경이 나를 초라하게 만들 때도 있다.
그런 나에게 '몰두하라'라는 말은
젊은이나 늙은이나 상관없이 삶과 죽음을 두려워하지 말것을
아주 힘있게 강조하고 있는 것 같아 주춤하는 마음에 힘이 생긴다.
뭔가를 잊어버리고 주변만 맴돌며 살아온
기력없는 내 모습이 눈에 보이니 더 애처로웠다.
이젠 좀 더 자유롭게 살아가고 기뻐하며
뛰는 가슴으로 세상을 마주하며 살아봐도 좋을 것 같다.
읽다가도 멈추게 되는 시의 문장 속에
여러번 브레이크를 걸면서
천천히 삶에 스며드는 좋은 문장들을 기억하고 필사하면서
하나 둘 감각들이 열리는 경험을 한다.
역시나 좋은 시가 건네주는 말은
좋은 친구와 나누는 기분 좋은 대화처럼 이어진다.
그런 경험을 시와 함께,
<삶에 시가 없다면 너무 외롭지 않을까요>와 함께 시작해보면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