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다려 엄마, 친구랑 약속했다고. 빛이 있는 데, 빛이 있는 곳에 있어야 돼.
하지만 빛은 이미 사라졌다. 엄마는 평소보다 더 빠른 걸음걸이로 걸어서 손을 놓으면
나를 그냥 두고 뛰어 가 버릴 것만 같았다.
그래도 괜찮다, 마음속의 내가 말한다.
엄마가 나를 두고 간다면 카논이 있는 데로 돌아갈 수 있다.
함께 황록이를 묻고 카논과 놀아야지. 어두워져도, 내일이 돼도, 쭉.
하지만 엄마는 내 손을 세게 잡은 채 놓지 않았고 나는 엄마에게 반항하지 않았다- 늘 그렇듯.
p69
유즈와 카논, 다른 듯 닮은 그들의 동성간의 사랑을 다룬 이야기.
어린 시절부터 엄마와의 유대관계가 좋지 못했던 유즈.
카논 역시 평범함과는 조금은 다른 사고를 가진 엄마 밑에서 자라왔고
어려운 가정형편에서 힘겹게 살아가는 아이다.
유즈와 카논은 유년시절 굉장히 긴박한 상황을 목격하게 되면서
짧고도 강렬한 첫 만남 후 얼마되지 않아 또 이별을 하게 된다.
그리고 고등학교에 들어가서 다시 둘은 또 뜻하게 않게 재회하게 된다.
꽤나 긴 시간동안 많은 성장이 있었던 카논.
외모도 성적도 뛰어난 아이로 변해 있었지만,
그녀를 둘러싼 삶의 배경은 여전히 가난에서 벗어나지 못해보였다.
서로가 가진 아픔과 결핍들을 채워주려
서로의 빛이 되어준 두 사람.
빛이 있는 곳에 있어줘, 라는 말로 나를 붙들어 매고 가버린 그 아이.
나는 지금도 나의 일부가, 그 부슬비가 내리던 밤중에 남아있다는 기분이 든다.
아직 익숙지 않은 거리의 야경이 엷게 고인 눈물로 번진다.
가로등을 지날 때마다 나를 두고 달려가 버린 카논의 뒷모습을 찾았었다.
카논이 없어지고 나서, 그 단지에 딱 한 번 간 적이 있다.
p220
둘은 짧은 만남과 긴 이별을 반복한다.
결혼 후 두 사람의 기억 속에 서로의 존재를 잊혀진 걸까 싶지만
여전히도 그들에겐 반짝이는 존재로 남아 있다.
함께 한 시간보다 떨어져 있던 시간이 많음에도
이토록 가슴 시리게 그리움 가득한 사람이 있다는 것이 참으로 놀랍다.
뭔가 다시 재회해서는 큰 접점을 통해
둘의 만남이 더 끈끈해지고 발전적인 방향으로 나아가
헤어짐이 없는 영원한 만남을 기대하게 만든다.
어쩌면 마음 속에 새겨진 깊은 사랑의 길이
보여지는 표면적 사랑보다도 더 진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보이는 이로 하여금 더 아프고 슬프게 느껴지니 그저 애처롭다.
우리는, 계속 이런 식일지도 모른다. 잠깐의 소소한 행복과 이별을 되풀이하는 <캐논>.
그렇다면 다음 음표의 위치는 이미 정해져 있다.
앞서가는 차의 타이어가 바닷물을 내뿜듯 물을 튀겼다.
도희의 네온과 신호등은 얕은 강이 된 노면에 색을 떨어뜨렸고, 그 무질서한 색채를 보며
예배당의 스테인드글라스와 미사 시간을 떠올린다.
하지만 신을 향해 딸이 무사하기를 기도할 마음은 안 든다.
왜냐하면 기도하면 할수록, 그게 이뤄지지 않을 거라는 생각이 들어서.
p427
긴 텀과 시간을 두고서도 서로를 그리워하고 애틋함을 느끼는
그런 사람이 있다면 어떨까.
서로의 멈춰버린 시간 안에 그 사람이 영원토록 머무는 유일무이한 존재.
소설을 통해 느껴지는 이 감정이 낯설지만 낯설지 않게 느껴진다.
사랑은 완전하지 않아 더 아름답다고 해야할까.
서로의 불완전함 속에서 완전함을 찾아가는
긴 시간동안 서로가 쌓아온 깊은 감정이 참 아름답게 느껴진다.
삶의 빛처럼 반짝거리며 꺼지지 않을 것만 같은
희망으로 다가온 사람에 대한 연민의 감정이 너무 슬프게 다가오는 책이다.
동성간의 사랑 이야기가 낯설긴 했다.
두 사람의 좁혀질 듯 좁혀지지 않는 간극만큼이나
서로의 별이 되어 멀리서 지켜보게 되는 먼 발치의 사랑이
안타까우면서도 사뭇치게 아름다운 하나의 사랑 이야기로 기억될 것만 같다.
[ 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