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캐와 부캐 사이를 살아가면서
어려운 상황을 잘 모면하면서 환경에 적응하며 살았던 카프카를 떠올려본다.
낮에는 직장인으로 밤이면 심연 깊은 어둠 속에서 방황하며 글을 썼다.
"오늘부터 일기를 꼭 쓸 것! 규칙적으로 쓸 것!
포기하지 말 것! 설령 아무 구원도 오지 않더라도, 나는 언제라도 구원을 받을만한 가치가 있다."
p55
일기 쓰기는 스스로에 대한 다짐이자
삶의 압박 속에서 참아내야 하고 살아내야 하는 숨구멍이었다.
나 역시도 내 삶이 그리 맘에 들지 않을 때가 많다.
현타가 온다고 해야 하나
씁쓸한 현실 속에서 껍질만 남은 나를 만지는 기분이 헛헛해질 때가 있다.
그럼에도 지켜야 할 삶의 질서가 있기에
피곤함을 다른 곳으로 털어버리고 일상을 지키려 노력한다.
카프카도 어쩌면 하기 싫은 일을 그만두는 법, 게으르게 사는 법 같은 조언이 필요했을지도 모른다.
그의 작품만 본다면 자신이 속한 사회에 적응하지 못한 채 평생 경계인으로 산 것 같지만,
실제 그는 현실에 잘 적응해서 산 편이었다.
다만 그런 자신이 마음에 안 들었고, 이를 <변신>에서 한 마리 벌레가 되는 기분으로 표현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소설 속에서도 그는 자유로운 영혼이 되지 못했다.
p57
어른의 책임과 몫을 다하기 위해 살아가는 엄마로서의 사명감이
때론 나의 정체성을 혼란스럽게 만들기도 한다.
경력이 단절되어 살아온 지난 삶을 보면서
우울할 수 있었던 그 시간마저도
아이들과 가족의 행복을 바라보며 살아왔다.
독서하는 즐거움을 찾지 못했다면 방황하는 시간을 가졌을 법도 한데
현생과 잘 타협하며 살아가는 법을 배울 수 있었던
이 안전한 반려 취미가 독서라 다행이란 생각이 든다.
현실이 힘들어 술의 힘을 빌어 도파민 중독에 빠져
쉼이란 처소의 소중한 영역을 낭비하지 않고
책의 사유하는 시간 속에서
기존 질서를 따르는 소시민으로 살아가는 삶도 그리 나쁘진 않다.
'카프카스러운' 저마다의 인생 속에서
고뇌를 풀어가는 삶의 방법들의 다양성을 존중한다.
"무엇보다, 당연하게도, 가장 먼저 할 일은 쓰는 것이다.
그런 다음에는 쓰는 것을 계속하는 것.
누구의 흥미를 끌지 못할 때조차.
원고가 서랍에 쌓이고 다른 것들을 쓰느라 쌓인 원고를 잊어도."
p170
가족과 모국어를 잃고 공허와 무기력, 우울로 살아가며
고립과 외로움을 달래기 위해 글을 썼던 헝가리 출신의 작가 아고타 크리스토프.
가슴의 상처를 나눌 누군가가 없다는 건
세상에 홀로 남겨진 기분이 아닐까 싶다.
그에게 일기장은 누구보다도 다정한 친구였고
태풍을 피할 안전한 피난처였다.
커다란 슬픔이 엄습하더라도 피할 처소가 그곳이라면
어디든 달려가 위로를 얻어도 좋을 것이다.
아픔이 길이 되는 그 역사가
내 삶에서 일어나고 있다는 걸 조금씩 느끼고
새로운 역사를 쓰기 위해 건강한 삶의 습관과 사유를 놓치 않고 살아가고 싶다.
그들이 버티며 살아왔던 삶의 용기가
오늘의 힘듦을 물리칠 수 있는 힘을 얻게 만드니
제법 살아갈 맛이 난다.
오늘도 기댈 어딘가의 은신처를 두고
그곳에서 숨고르기하며 내일의 소망을 잃지 말자.
[ 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