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로운 일상은 한순간에 뒤집히고 만다.
독일의 침공으로 네덜란드의 고요한 일상을 즐기던
이 두 자매 역시 삶의 소용돌이 속에 휘말리게 된다.
여러 유대인들과 나치의 저항속에서 요새처럼 숨어지낼 수 있었던
하이네스트에서의 생생한 삶의 모습들이
가슴이 조려지면서도 알 수 없는 평온을 오가며 긴장과 이완의 연속이었다.
결국 이 최적의 위치이자 중간 거점인 요새가
나치에게 발각됨으로서 가족들과 흩어지고 이어지는 고난과 수모는 말로 다 형용하기 힘들다.
나치가 보여주는 무자비함 속에서
네덜란드 내 유대인들이 아우슈비트로 다시 암스테르담으로까지
생환되어지는 과정들을 이 책 속에서 새심하게 그려내고 있다.
이유가 뭐냐고요? 내가 유대인이란 겁니다.
유대인은 눈이 없나요? 손도, 오장육부도, 몸뚱이도, 감각도, 감정도, 정열도 없나요?
기독교인과 똑같은 음식을 먹고, 똑같은 무기에 상처를 입고, 똑같은 병에 걸리고,
똑같은 약을 먹으면 낫고, 겨울에는 똑같이 춥고 여름에는 똑같이 덥지 않나요?
당신들이 우리를 찌르면 우리는 피도 안 난답니까?
당신들이 우리를 간지럽히면 우리는 안 웃을 것 같나요?
당신들이 우리에게 독을 먹이면 우리는 안 죽을 것 같습니까?
그리고 당신들이 우리에게 잘못을 저지른다면 우리가 응당 복수하지 않겠습니까?
p299
"너무 슬프고 피곤하고 춥고, 며칠간 아무것도 먹지 못해 쓰러지기 일보 직전이었어요.
아니, 배가 고픈지 안 고픈지도 알 수 없었지요. 아실지 모르겠지만 한계치를 넘고 나면...
그 고통은 겪지 않고는 절대 모를 겁니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그 고통을 그 누구도 겪을 일 없게 하소서."
인간의 존엄과 자유를 잃어버리고
삶의 목적까지도 추락시키는 그 곳.
강제수용소에서의 비참한 생활.
도무지 믿어지지 않는 현실.
나치의 잔혹한 게임에 속절없이 당해야 했고
비현실적이고 잔혹함이 치가 떨리는 그 곳.
그 속에서 더 끔찍한 것은
희망을 버리게 되는 무력감이 아니었을까.
그건 삶을 거부하는 것과 마찬가지이기 때문에 말이다.
그럼에도 사회적 유대감을 잃지 않고
생존을 위한 걸음이 희망이라는 성벽이 무너지지 않도록
인류애를 저버리지 않는 그들의 결속력이 놀랍기도 했다.
히틀러가 만든 비인간적인 처사속에서도
그들의 존재감은 단연코 빛났다.
삶을 이어 가게 만들어주는 것은 결국 서로가 존재하고
서로 연대하려 살아가려는 끈끈한 신뢰와 사랑이 아니었을까.
비참했던 한 개인의 서사라기보다
삶과 죽음을 두고 생을 살아갔던 장대한 여정이
새로운 가치와 존재의 이유를 일깨워주는 대단한 역사서를 보는 듯했다.
부디 이 아픔을 그 누구도 겪지 않기를.
모두의 삶이 존엄하게 살아갈 수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