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안에 당신의 수명이 들어 있습니다
니키 얼릭 지음, 정지현 옮김 / 생각정거장 / 202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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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 죽을지를 알고 살아가는 기분은 어떨까.

쉽사리 유한한 삶의 끝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며

매일의 현실을 행복으로 마주하긴 힘들 것만 같다.

여기 정체불명의 작은 상자가 22살 이상의 성인에게 배달된다.

이 상자를 받게 된 이들은 과연 어떤 선택을 하게 될까.

상자 안에는 각기 길이가 다른 끈이 담겨있는데

이 끈의 길이가 남은 수명을 뜻한다.

“이 안에는 당신의 수명이 들어 있습니다.”

열어본다는 걸 가정하에 결과가 어떻든 수용하겠다란 마음이

현실과의 괴리감 속에서 평온한 상태로 머물 수 있다면 열어보라 하겠지만

개인적으로는 열지 못할 것 같다.

분명 받아들일 고통이 상당히 클 것이 분명하고

앞으로 야기될 대단한 혼란을 겸허하게 받아들일 용기도 없어서이다.

이 책의 다양한 등장인물들이 어떤 선택과 결정 앞에 있는지를 마주하면서

끈 하나로 얽힌 다양한 인간 군상을 살펴본다는 것이 참으로 흥미로웠다.

그들이 처한 상황들을 세밀하게 표현한 심리묘사에 금새 빠져들어 단번에 읽었다.

수수께끼 상자와 고통스러운 짧은 끈이 버젓이 존재하는 배신과 골칫거리로 가득한 세상에서

어떻게 그럴 수 있단 말인가.

내려놓는 순간 그녀가 지키려고 애쓰는 모든 것이 위험해질 것이다.

어린 시절의 자신이든 모라와의 미래든.

그녀가 손쓸 수 없게 되어버릴 것이다.

상자는 이제 삶의 일부가 되었다.

그것은 니나가 바꿀 수 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그녀는 주도권과 명료함을 되찾기로 마음먹었다.

p63

니나와 모라는 함께 상자를 열어보며

상대의 짧은 끝을 보며 현실의 아픔이 그대로 스며드는 듯

유한한 인생이란 걸 알지만 그 끝을 알고도 담담히 받아들이긴 굉장히 힘겨워 보인다.

그 누구도 상자의 의미를 완전하게 설명할 수 없고 그냥 우리가 원하는 의미가 되는 건지도요.

신의 뜻이라고 생각하든 운명이라고 생각하든 마법이라고 생각하든.

길이에 상관없이 각자가 원하는 의미가 될 수 있을지 몰라요.

p165

정부와 대다수 사람들이 짧은 끈들은 자격이 없다고 입을 모아 외치면서

상황을 더 어렵게 만들고 있네요.

긴 끈 친구들에게 연락이 끊긴 지도 몇 주째예요.

긴 끈들이 짧은 끈들을 완전히 분리해서 다른 범주에 넣으려는 이유도

스스로 행복해질 자격이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겠죠.

우리를 보면서 죄책감을 느낄 필요 없이 멀찌감치 떨어진 거리에서 그 행복을 느끼고 싶겠죠.

짧은 끝들의 불행이 옮겨붙지 않도록.

p305-306

삶을 비관하여 총기 난사, 자살 등으로 사회적 혼란이 야기되고

정치적 상황 또한 분열과 갈등이 심화되기도 한다.

죽음을 혐오하는 시대에서

짧은 끝을 가지고 고통에 신음하는 이들에겐

과연 행복은 영영 달아나 버린 것일까.

등장 인물들의 선택과 처한 상황들이 제 각각이기에

끈의 길이에 따른 혼돈과 심리적 대립과 갈등,

그리고 숨어볼 수 있는 희망 등을 선물하는 상자.

유한한 삶의 소중함과 일상의 가치로움과 다양한 사유를 이끌어내는

삶의 가치에 대한 성찰을 조용히 떠올려보게 만드는 의미있는 책이란 생각이 든다.

끝이라는 상황을 맞닥뜨림은

균형이 깨어지기 마련이겠지만

한편으론 삶의 유한함을 알고 서로 긴밀하게 연대해 살아가는

생의 아름다운 일상이 곳곳에 샘솟기를 소망하고 싶어진다.

[이 글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협찬받아 주관적인 견해에 의해 작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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