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몬 케이크의 특별한 슬픔
에이미 벤더 지음, 황근하 옮김 / 멜라이트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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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지 못한 대단한 능력을 가지게 된 소녀 로즈.

따뜻한 봄날의 오후, 엄마가 만든 레몬 초코 케이크를

한 입 베어 물어 목구멍을 타고 넘어 갔을 때

미묘한 움직임을 감지하게 된다.

음식을 먹게 되면 사람의 감정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는

이 엄청난 능력이 어린 소녀에겐 상당히 감당하기 버거움으로 다가온다.

가까운 사이라도 공유하고 싶지 않은 것들이 많다.

아무리 가족끼리라 해도 많은 부분 숨기고 나누지 못하는 것들이 많으나

어린 나이일수록 내가 느끼는 감정과

전혀 다른 상대의 마음을 알게되었을 때의 충격과 상실감은 이루 말할 수 없었으리라.

로즈에게는 엄마의 케이크가 아마도 그랬을 것 같다.

이 비밀을 혼자서 간직해야 한다는 부담감과

묵묵히 삶을 아무렇지 않은 듯 살아내야 한다는 괴리감 속에서

로즈는 늘 경계를 허문 관계 안에서 수용하며 사는 법을 배워야했다.

분명 초콜릿 맛이었지만, 그 맛이 퍼지며 흔적을 남기는 동안 동시에

내 입 안에 가득 차는 것은, 하찮음과 위축된, 화가 난 느낌의 맛,

어쨌든 엄마와 연관이 있는 듯한 거리감의 맛, 엄마의 복잡한 소용돌이 같은 생각의 맛이었다.

p20

상대의 감정을 필터없이 그대로 느낄 수 있다는 게

대게 반가운 일이 될 수 없다.

유쾌한 일이 아닐뿐더러 온전히 받아들이기엔 로즈 역시 너무 어리기도 하고

다 큰 어른이라고 해도 수동적으로 수용해야 할 감정처리는

너무 복잡하고 혼란스러운 문제이다.

차라리 아무것도 몰랐으면 좋았겠지만

이같은 능력을 가지고 살게 된다는 사실이

나의 선택이 아닌 받아들여야 마땅한 현실이기에 더 감정적으로 벅찰만도 하다.

집에서 직접 만든 햄치즈 겨자소스 샌드위치로, 흰 빵 중간에는 얄따란 양상추가 끼어져 있었다.

음식으로서는 나쁘지 않았다. 좋은 햄, 정상적인 공장에서 만들어진 일반 겨자.

보통 먹는 빵. 피곤한 양상추 수확자. 그러나 샌드위치 전체에서는 거의 절규하는 듯한 맛이 났다.

샌드위치가 내게 소리를 지르고 있는 것 같았다.

사랑해달라고, 자기를 사랑해달라고, 아주아주 큰 소리로.

p96

늘 혼자 벅차해야 할 문제이고

이같은 비밀 능력을 누구에게도 꺼낼 수 없는 것인 줄만 알았는데

가족 구성원이 가지고 있던 숨겨진 비밀이

하나씩 꺼내질 때마다 한편으론 외롭지 않을 수 있어 다행이다 싶었다.

가족들의 비밀과 아픔을 알게 되는 과정에서

또 다른 나로 깨쳐나가는 로즈를 뒤에서 묵묵히 응원할 뿐이었다.

싫음도 좋음도 전혀 지나칠 수 없는 감정을

왜 자신이 마주해야 하는지 얼마나 수긍하기 힘들었을까.

굉장히 혼란스러웠을 로즈를 보면서

그런 성장과정에서의 단단해지는 모습들을 발견하며

대단히 안타까워하면서도 대견한 마음이 들었다.

일찍이 먹는 즐거움을 알았다기보다

먹는 슬픔을 먼저 맛보게 되는 끔찍한 경험을

이젠 일상에서 자연스럽게 받아 넘길 수 있을 정도로

성숙해져 가는 모습에 더 놀랐다.

다시 그 똑같은 알 수 없는 공장.

음식 안의 커다랗고 분명한 외침. 내가 식별해낼 수 없는 옅은 기계 맛.

그리고 돌아가고 싶다는, 아무것도 모르던 때로 돌아가고 싶다는 어린 소녀의 목소리.

돌아갈래. 그 꼬마는 말했다. 묵묵부답.

p330

맛보고 싶지 않은 맛이 얼마나 많았을까.

더욱이 끔찍히도 받아들이고 싶지 않은 사실을

알아채버린 맛의 실체를 얼마나 수용하기 힘들었을까 싶다.

그러다가도 음식을 만든 사람이 음식에 열중하고 있다는 마음을 얻게 되면

비교할 수 없는 기쁨을 느낄 수 있었고,

그 음식을 음식으로 대할 수 있어서 행복할 수 있었다.

먹는 걸 먹는 자체로 즐거울 수 있는 당연하면서도 당연하지 않은

일상의 감각들이 새삼 감사함으로 느껴진다.

서글픈 감각의 능력을 홀로 감당해야 했던 한 소녀의 이야기가

무언가 먹을 때 문득 떠오를 것만 같아 마음이 아파온다.

다시 수용과 사랑을 배울 수 있는 내면의 울림이

찬란한 아름다움으로 느껴지는 건 참으로 놀라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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