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흔이 넘은 지금 이 때에 와서야 비로소
내 이름을 찾아서 떠나는 여정에 시간과 정성을 들이고 싶어졌다.
가족이란 형태에 들어서기 전엔 젊음이란 열정을 밖으로 다 소진해버리고
결혼이란 제도에 묶여 두 아이의 엄마로 살아가면서는
성실하고 부지런히 묵묵하게 그 길을 별 말없이 보내는게 옳은 줄 알았다.
제법 커가는 아이들의 성장을 보면서 흐뭇함을 느끼면서도
알 수 없는 공허함에 사로잡혀
깜깜한 밤이면 침묵 속에서 이유 모를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도대체 난 누구지?
‘전업주부’라는 타이틀이 나를 지칭하는 듯
걸맞은 모습으로 꽤 열심히 살아왔던 시간들을 뒤로하고
나로 살아갈 시간을 다시 정비해보고 싶은 마음에
책으로 걸어들어갔던 시간들이 조금씩 나를 새롭게 마주할 힘을 주었다.
그런 용기를 가지고 매순간을 엄마와 나 사이에서
줄다리기하는 엄마들에게 이 같은 자서전은
지치고 힘들 때 다시 일어서서 나를 마주할 용기를 배우게 만든다.
자의로 또는 타의로 일하지 않는 삶을 살고 있는 많은 주부들에게 묻고 싶다.
가족을 위해 당신이 포기한 일이라는 것이 어떤 의미였는지,
그 일이 사라진 자리에는 무엇이 차지하고 있는지,
그리고 일하지 않는 당신은 이대로 정말 괜찮은지 말이다.
p22
아이들이 제법 큰 시점에 와서야 일을 구하려니 경력 단절과 나이에 걸린다.
주변에선 새로운 자격증 공부와
늦은 나이이지만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는 이들도 있다.
가족들은 단 한번도 나에게 나의 꿈을 포기하라고 말하지 않았음에도
오히려 엄마로서의 역할과 책임에 대한 성실함이
당연한 의무이자 내 일이라는 각인을 스스로 짊어지고 살아왔다.
덩그러니 엄마로 살아가는 삶에 익숙해진 나머지
워킹맘이라는 수식어는 나와는 먼 이야기처럼
일과 나 사이는 점점 멀어지게 되었다가
문득 다시 일을 필요로하는 나를 발견하게 되었다.
억눌려왔던 나의 정체성에 대단한 지각변화를 온몸으로 맞을 땐
밖으로 뛰쳐나가고 싶어 안달이 난다.
그러나 받아주는 곳 하나 없는 씁쓸한 현실을 맞닥뜨리면
안주할 곳이 여기뿐이라는 것에 괜히 울컥해지고만다.
난 이대로 괜찮지가 않았다.
우리는 여전히 책을 읽고, 글을 쓴다.
세끼 밥만 짓던 엄마들이 이제는 글도 짓는다.
맛있게 먹어줄 사람이 없어도 괜찮다.
한 줄 한 줄이 쌓여갈 때마다 우리의 생각도 한 뼘씩 자라고,
마음도 한 평씩 넓어질 테니까.
p175
내가 없으면 안되는 줄 알았던 집안 일과 육아도
느슨히 내려놓으면 더 좋을 일이었음을 깨닫게 된 지금은 너무 늦은 때란 말인가.
공평하게 흘러가는 시간 속에서
나의 열심이 달려왔던 대부분의 시간은 육아였지만
정말 다행으로 생각드는 건 아이들이 잠든 밤 몰래 나와 읽던
꿀맛같은 내 시간을 책과 부대낄 수 있었던 건 정말 신의 한 수였다.
별 성과없이 이뤄내는 매일의 무보수 활동이
쓸데없는 일로 치부될지 몰라도
가장 힘든 시간에 내가 부서지지 않고
온전한 모습으로 나를 되돌려주었던 독서에 지금도 자발적인 수고와 정성을 들인다.
이전보다 더 마음을 다해서 말이다.
워킹맘이든 전업맘이든 공정하게 만날 수 있는 책이란 산물을
모든 엄마들이 만나야 할 필요가 있음을
요즘은 더욱 분명하게 느끼고 실감한다.
엄마라면 느끼게 되는 여러 이유의 죄책감들로
내가 설 자리를 조금씩 양보하며 발을 동동 굴리는 것보다
내 체질에 맞는 것 내 적성에 맞는 것을
좀 고집부려봐도 큰 탈이 나지 않는다는 걸 난 이제야 깨닫게 되었다.
주부로 살아가는 모든 여성들이
좀 더 나다움을 뽐낼 수 있는 자존감이 회복되고
희생과 봉사만 따르는 집안 일에서 완벽하지 않지 않아도 괜찮음을 기억하자.
내가 좋아하는 것에서 활력을 되찾고
좁아진 행동 반경을 넓혀가면서
엄마라는 이름으로 포기하며 살았던 것들을
조금씩 해내는 재미와 흥미로움으로 나를 창조해가는 작업에 이젠 안심해도 좋다.
초보 엄마 딱지를 영예롭게 떼고서
호기롭게 다시 내 이름을 찾아가는 시간은
좀 더 담대하고 의연하게 흘려보낼 수 있기를 바란다.
엄마로 나로 살아가는 혼돈의 카오스 속에서
나의 정체성을 상실하지 않도록 오늘도 자기만의 방에서
새로운 발견과 기쁨으로 채워지는 하루를 보내시길.
[이 글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협찬받아 주관적인 견해에 의해 작성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