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이 있었으면 좋겠다 - 삶의 여백을 사랑하는 일에 대해
김신지 지음 / 잠비 / 202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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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 있었으면 좋겠다





일상의 순간 순간들이 이처럼

많은 여백을 남기고 사랑할 마음이 물씬 솟아나게 하는 건

글을 쓰는 작가의 필력인건가.

대단히 감사했던 시간을 가졌던 터라

책을 덮고도 한동안 멍하니 자리에 앉아 있었다.

왜 이토록 고마웠던 게 많았던건지.

여백마저도 아름다운 것들로 가득 채워져있었다는 것에

놀랍고도 가슴 찡해진다.

그 이야기가 이 책 속에 가만히 담겨 있어서 얼마나 다행인지 모르겠다.

문학이 뭔지는 정확히 몰라도, 쓰고 싶어지게 만드는 장면들을 안다고.

그 앞에서 나는 항상 마땅한 말을 찾지 못한 채 허둥거리다가 돌아서서 웃거나 울지만,

제때 하지 못한 말들이 모여서 나를 책상 앞으로 이끈다고.

여태까지 내게 흰 봉투를 건넸던 다정하고 결함 많고 고유하게 평범한 이들에게

언젠가 설명할 수 있다면 좋겠다.

'우리 같은 사람들'과 상관없다고 여겨지는 바로 그 곳에 제자리처럼 깃드는 것.

그게 내가 아는 문학이라고.

p46-47

끝도 없고 닿을 수도 없이 넓은

문학의 바다에 침잠해 있는 편을 좋아하는 일인으로

하루의 아늑한 휴식과 쉼을 이것에서 얻는 유익이 꽤 흥미롭다.

삶에 기대어보기도 하고 처소를 이곳 저곳으로

옮겨다니는 약간의 홀가분함을 가지고

내일 손에 들고 있는 책 한 권이면 충분하다고 조용히 만족할 수 있는 나란 존재.

오래도록 이 문학이라는 세계 안에 머물며

사랑하고 사랑하며 살고 싶다.

자식은 언제나 부모보다 늦게 도착할 수 밖에 없는 사람들이다.

이제야 조금은 의지가 되는 자식의 자리에 서서 나는 할 수 있는 게 이것밖에 없다는 듯

장바구네 무얼 주섬주섬 주워 담는다.

꿈에서도 없는 시간이 현실에서 넉넉할 리 없고, 올려다본 하늘은 꼭 해 질 녘처럼 노랗다.

서둘러도 삶에 자꾸만 지각하는 사람에게 유일한 위로가 되는 것은,

시간이 없다는 자각 속에서만 비로소 제대로 하게 되는 일에 사랑이 포함되어 있다는 사실.

p133

놀랍도록 정확하고 공감되는 말이었다.

그렇지, 사랑하는 데 남은 시간 말이다.

넉넉하면 넉넉한데로 부족하면 부족한데로

둔하리만큼 사랑 표현에 서툴고 더딜까.

참 아리송하면서도 속상하다.

맘껏 다 사랑하지 못한 걸 알아서 더 속상하고

이젠 너무 늦은게 아닌가 싶어 뒤로 주춤거리는 꼴이라니.

난 여전히 사랑하는 일에서만큼은 어설프고 서툴다.

속 깊은 마음 안을 그대로 보여줄 수만 있다면

내가 사랑했던 방식과 표현을 상대가 이해할 수 있을까.

복잡하기만 한 사랑의 언어가

너무 베일에 쌓여만 있어서 깨닫지 못하고

지나칠 때가 많거나 오해하기 십상인 나의 서툰 사랑이 지독히 싫어질 때가 많다.

남은 시간을 사랑하는 데 아낌없이 써보자고

그래야만 한다는 걸 알면서도

마음이 가는 일을 왜 행동과 말로 따뜻하게 잘 옮기지 못했는가.

끝까지 자삭 노릇 제대로 못하며 살았다는 후회가 남지 않으려면

조금이라도 더 사랑하고 사랑할 것을.

여전히 뒤따라 걷는 느린 나를

끝까지 사랑과 희생으로 감싸준 건 부모님의 사랑은

값을 도리가 없는 걸까.

자꾸만 문장 속에서 긴 여운에 사로잡혀

느린 속도로 천천히 책을 읽어 나가야만 했다.

단숨에 읽어버릴 수 없는 곱씹게 되는 말들이

지금의 나와 지난 날을 쉴새없이 떠올리게 만든다.

김신지 작가의 서정적이고 새밀한 감성을

사랑하는 이들이라면 이 책에 금새 매료되어 버릴지도 모르겠다.

이 한 권의 책에서 무한한 사랑과 겸손, 경쾌한 삶을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볼 수 있어서 더없이 소중한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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