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와 함께 자라는 엄마를 위한 힐링 육아 에세이
엄마인 나는 제대로 내 시간을 살아가고 있는 것인지
문득 요즘 생각이 많이 든다.
많이 지쳐있는 건 아닌지 모를 요즘
나에게 집중할 수 있는 주변 환기를
책 속에서 가만히 들여다보았다.
압력솥을 열고 수증기를 잔뜩 머금은 흰 쌀밥을 퍼올린다.
기름을 두르고 밥을 지은 듯 윤이 났다.
흰 쌀밥한 수저에 브로콜리 나물을 올려 한 입 꾸울꺽.
'아베마리아!'. 카스트 제도 밑바닥에 납작 엎드린 불가촉천민 같던 지난날들이 떠오른다.
아무리 열심히 해도 티나지 않는 집안일은 잘 보이지 않는 누군가의 희생으로 유지된다.
밥벌이가 삶의 고단함이라면 집안일은 보이지 않는 희생과 사랑이다.
p56
집밥을 준비하는 마음.
차린 건 많이 없어도 가족이 모여 앉아있는 부엌의 공간이
나에겐 노동의 행복의 땀과 희생을 절인
묘한 감정이 휘몰아치는 곳이다.
이 곳에서 우리가 서로 마주보며
서로의 일상을 주고받는 삶은 매일이 새롭다.
사실 매일 매끼 고민을 하게 만드는 이 곳에서
몸과 마음이 분주하다가도
손수 차린 밥상의 결과물을 보면 크고 작든 나의 수고를 칭찬해주고 싶다.
그런 잔잔한 기쁨을 나에게 허락하고
비워진 그릇들을 보면서 흐뭇하고 뿌듯함을 느끼는 나는 빼도박도 못하는 전업맘인걸까.
숙명인지 몰라도 난 이 부엌에서
내가 중심잡고 서있을 때 스스로가 빛나다고 생각하기도
대견스럽다고 생각하기도 한다.
어둠이 오면 생각이 많아지는 이유는 뭘까?
아마도 혼자라는 고독함 때문일 것이다.
어둠이 밝은 시야를 막고 시끄러운 소음도 적막해지면 몸은 그제야 긴장감을 푼다.
캄캄한 적막 속에서 감각기관들도 휴식시간을 갖는다.
도로 위에 소움이 멈추면 작은 풀벌레들이 우는 소리가 크게 들려온다.
하루 종일 들리지 않던 마음속의 이야기도 들려온다.
종알종알 말들이 머릿속에 차오른다.
다크 초콜릿처럼 고독하고 적막한 이 시간을 사랑한다.
p255
오롯이 혼자가 되는 고요한 밤시간을 난 정말 사랑한다.
부엌에 불이 꺼지고
각자 아이들은 자기 방에 들어가 잠이 들고
적막 속에 어둠이 내려앉은 깜깜한 거실에 혼자 우두커니 앉아
밖을 한참 쳐다보고 있다가 평온한 마음에 휩싸이는 이 시간이 난 너무 좋다.
잠깐의 명상과 함께
좋아하는 책을 읽는 밤독서의 시간은 기가 막힌다.
얼마전에도 읽고 싶었던 책들을 장바구니에서 골라
결제창으로 넘긴 책들이 집 앞에 도착해
혼자 조용히 택배를 조심히 뜯으면서도 심장이 두근거려 설렜다.
밤이 되면 다시 활력이 끌어오르는 건
오롯이 내 시간을 혼자 만끽한다는 것에서 오는 힘이 커서일까.
이 시간은 무조건 사수해야 할 엄마만의 시간,
내가 되어가는 시간이기에
절대 포기할 수도 협상할 수도 없는 소중한 내시간이다.
엄마가 되고보니 나에게 내어주는 시간이 적었다.
이젠 가족을 위해서라도
내 마음의 행복을 살짝이 먼저 챙겨보는 것도 괜찮은 방법이라 생각한다.
가만히 엄마의 삶이 괜찮은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는지
그 안에서 나는 어떻게 표류하고 있는지
글 속에서 나를 떠올려보고 가만히 점검해보게 된다.
누구 하나 알아주는 것 같지 않아
섭섭하기도 한 엄마이지만
나조차도 나를 제대로 봐주지 않으면 안될 것 같아서
조용히 내 마음을 살펴보는 시간 속에서 다시 나를 발견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