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묵을 보다 - 불안을 다스리고 진정한 나를 만나는 침묵의 순간들
마크 C. 테일러 지음, 임상훈 옮김 / 예문아카이브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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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묵을 보다



이 책을 살펴보기 전에..

저자 : 마크 C. 테일러

미국 컬럼비아 대학 종교학과 교수. 종교철학자이자 문화비평가이며 대표적인 포스트모던 신학자. 시카고 대학 출판부에서 발행하는 ‘종교와 포스트모더니즘’ 시리즈의 창간 편집자이며, 《키르케고르의 가명: 시간과 자아에 대한 연구》를 시작으로 《이탈: 포스트모던 무/신론》, 《속도 제한: 시간이 어디로 갔으며 우리에게 남은 시간은 왜 거의 없는가》 등을 비롯해 다양한 분야에 관한 책을 다수 집필했다. 〈뉴욕 타임스〉, 〈로스앤젤레스 타임스〉, 〈블룸버그 뉴스〉 등에도 기고하고 있으며 구겐하임 펠로십 인문학상을 수상했다. 《침묵을 보다》는 인간의 경험, 예술, 언어의 기원에 대한 독창적이고 매혹적인 명상에 관한 이야기로, 여러 철학자나 문학가, 예술가, 작가 및 작곡가들의 작업을 인용해 침묵의 다양한 형태를 탐미했다.

역자 : 임상훈

서강대학교 영문과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원에서 영문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동료 번역가들과 ‘번역인’이라는 작업실을 꾸려 활동 중이다. 《재즈로 시작하는 음악여행》을 집필했고, 옮긴 책으로는 《데일 카네기 인간관계론》, 《데일 카네기 자기관리론》, 《더 어글리: 추의 문화사》, 《10% 적은 민주주의》, 《트라우마 사전》, 《자본주의 대전환》, 《건축 다시 읽기》(공역) 등이 있다.

[인터넷 교보문고 제공]




눈에 보이지 않는 실체를 보고 느낀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굉장히 감각적으로 집중해서

존재 유무와 상관없이 동요되지 않는 마음으로 듣고 봐야 한다.

침묵하면 떠오르는 것이

영상으로 접해서 알고 있는 케이지의 <4분 33초>가 떠오른다.

그 의도와 목적이 아직도 불분명하게 느껴지지만

작품 안에서 여러 소리로 가득차 있었다.

"세상에 침묵이라는 것은 없다."

의도되지 않은 소리로 가득 채운 우연성을 보면

침묵의 불가능성을 이해시키려 한것인지 고민해보게 된다.

어쨌든 이 책 안에서 여러 형태 속에서의 침묵을 보고 느끼면서

실체가 없는 무형의 존재를 내 안으로 기꺼이 받아들이면서 이해할 수 있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회화는 '침묵의 말'이다.

뉴먼의 가장 중요한 작품을 이보다 잘 설명하는 표현은 없다.

숭고는 형식이 없고, 비결정적이고, 비분화되어 있기 때문에

예술가들은 상상 불가능한 것을 상상하고, 말하기 불가능한 것을 맗고,

분절될 수 없는 것을 분절하는 불가능한 도전에 직면하게 된다.

아주 낯선 방식으로, 뉴먼의 작품이 거둔 성공은 그 실패다.

그 실패가 바로 침묵을 볼 수 있게 해 준다.

p143

뉴먼의 마지막 조각 <짐줌>이라는 드러나는 공간을 보면

내부 공간에 들어서면,

주변 세계가 확장하는 동시에 수축하는 것처럼 느껴진다고 한다.

헤스는 작품의 해석 중에

현관을 빛으로 가득 채워진 공간으로 들어오면서

'세상이 창조되기 전'과 '창조된 첫날' 사이에 일어난 걸 재연한다고 말했다.

짐줌이란 공간이 그 기원을 말해주는데

기원은 말의 침묵을 들을 수 있는 곳에서 시작된다한다.

뉴먼의 집이나 카발라의 짐줌과 같은 예술 작품의 기원이

침묵을 울리는 말하기를 그린 것으로 볼 수 있다.

침묵과 언어와의 관계를 놓고서 하이데거는

"언어는 침묵에 기반을 둔다"라고 주장했다.

침묵은 특수한 기반이라고 볼 수 있는데

언어나 말에 시간적으로 선행되지 않기에

언어는 침묵을 잠잠하게 만들 수 없기도 하다.

"말이 현존하고 있을 당시의 침묵은 단순한 침묵일 수 없다.

침묵은 말의 목소리로 말하고, 자신의 타자성 속 안에 있는 자신을 구현하는

자기부정의 타자성 속에서 말하기 때문이다."

p157

침묵으로서의 침묵은 말에서는 부재한다고 한다.

침묵은 말의 '타자'로 현존한다고 말한다.

좀 더 심오한 침묵은 자발적인 침묵의 무언의 장과 그 침묵이 열림을 만들어내는 말이라고 한다.

꼬리에 꼬리를 무는 듯한 철학적인 메시지가

침묵을 둘러싼 행방들을 따라가기 버거울 정도로

이해하기가 좀 난해하긴 했다.

단순히 침묵의 실체를 대면하고자 했던 마음과는 달리 말이다.

스노우가 돌담을 쌓는 것이 노동의 일이라기 보다는

묵상의 한 형태라고 본다면

몸과 마음을 조율하는 하나의 방법으로서 예술적 행위가 될 수 있겠다라는 점에서 흥미로워보였다.

돌담이 묵상으로 초대하는 공간이라고 했다면

내가 일상의 소음을 멈추고 집중하고

침묵과 함께 살아가는 법은 무얼까 생각해보게 된다.

나 역시 그 고요를 찾아서

너머의 세상에 이르는 기쁨의 길을 걷고 싶다.

침묵..

이토록 심오하고 매혹적이었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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