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덧 만 2년이 지났다.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해 지독히도 힘든 시간을 보내오면서
혼돈 속에서 희망을 붙들고자 여러 형태로 많은 애를 썼다.
팬데믹을 겪게 되면서 질병에 대한 위협과 공포,
이로 인해 파생되는 정치적, 사회적 문제들이
수면 위로 떠오르는 걸 보면서
인류의 절멸에 대한 걱정과 염려가 끊이질 않는다.
환경이 주는 폐쇄감으로 인해 우울증 환자가 급증했고
재앙이 지속되는 가운데 사람과의 대면 관계가 더 어려워지고 마음은 각박해져 가고 있다.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그 옛날 역병이 창궐하고 혼란스러웠던 상황을 더듬어 살펴보며
지금의 팬데믹 상황과도 비교해보고 싶어 책장을 펼쳤다.
1707년에 이어 1708년에도 홍역이 조선 내에서 유행했고 특히 호남 지역에서 심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한양이나 평안도 지역의 홍역이 확산되어 삼남 지방을 중심으로 전파되어 가는 상황을 보여준다.
홍역과 염병을 구분하고 있는 것도 주목되는데, 염병은 장티푸스일 가능성이 높다.
3월 3일의 기록에는 "한양과 지방을 통틀어 홍역, 어역으로 죽은 자가 거의 수만 명에 이르렀다."는 내용이 보인다.
전국적으로 홍역이 전파되어 이에 따른 사망자도 수만 명에 이른 것이다.
p223
조선 후기에 들어와 본격적으로 유행하게 된 홍역.
이 주된 요인이 한양의 인구 증가로 보는 견해가 많다.
<한중록>에도 사도세자가 이로 고생한 사례가 있었고,
<숙종실록>에는 왕자의 홍역에 관한 내용이 실려있다.
<영조왕조실록>에는 홍진이 두루 번져 한양이나
지방에 앓지 않은 사람이 없을 정도라고 기록하고 있다.
영조 대에 홍역이 전국적으로 확산되어 대유행하고 있었다는걸 알 수 있다.
또한
홍역의 회복 주기가 12~15일이라는 걸 인원왕후와 경종이 회복된 사례에서 확인할 수 있었다.
17세기 말에서 18세기에는 조선을 가장 위협한 전염병이 홍역이었다.
오늘날 코로나19 예방 및 치료 수칙처럼
정조 대에도 홍역이 유행하였는데 이 때 의약을 관장하는 관청에서
홍진을 치료할 절목을 만들어 올린다.
현종, 숙종, 영조에 이르는 왕실도 피해갈 수 없었던 전염병의 치명적이고 참혹한 일들이
혼란스러운 상황이 머릿속에 그려진다.
이때 팔도에 전염병이 크게 퍼져 죽는 자가 잇달았는데,
천연두와 홍역으로 죽은 자가 더욱 많았다.
서울의 5부에서 보고한 사망자가 900며 명이었는데,
실제로는 이루 헤아릴 수조차 없이 많이 죽었다.
의원으로 하여금 약을 가지고 가서 구원하게 하라고 명하였다.
p276
두창 바이러스로 인해 발생하는 감염병 천연두.
발진과 합병증으로 사망에 이르게 하는 무서운 질병이 조선전기부터 시작된 것을
<조선왕조실록>에 기록된 것으로 알 수 있다.
태종을 시작으로 세종도 아들을 천연두로 잃게 되는 비극을 겪는다.
천연두의 유행이 병자호란의 종식에 큰 변수가 되기도 했다.
조선 침략 시 천염두의 위험성을 고려하는 점에서 보았을 때 충분히 그런 수 있다는 것이
<청태종실록>에서 청나라에도 천연두가 전파된 것으로 보아 짐작할 수 있다.
본격적인 유행은 조선 후기였는데
현종 대는 유독 질병과 기근이 극심했다.
조선 전국에 천연두, 홍역으로 많은 사망자가 발생했고
그 위력은 조선 왕실도 피할 수 없었다.
이 무서운 전염병은 당시 공포의 대상이으나
정약용의 선구적 연구에 이어 지석영에 의해 종두법이 보급되어 극복할 수 있었다.
시대적 배경은 달라도 비슷하게 닮아있는
전염병으로 인한 혼란한 시국의 모습들을 되짚어보며
지금 우리가 맞닥뜨린 상황을 어떤 시선으로 바라보며 좋을지 생각하게 된다.
조선시대의 전염병을 다루고 있는 이 책 안에서
이를 극복하고 새로운 시대를 맞이할 수 있길 희망하며
앞으로의 우리 사회가 단단해지길 바라는 마음을 품고
지금의 팬데믹도 잘 극복할 수 있길 소망한다.
[이 글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협찬받아 주관적인 견해에 의해 작성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