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견디는 시간을 위한 말들 - 슬픔을 껴안는 태도에 관하여
박애희 지음 / 수카 / 2021년 5월
평점 :
견디는 시간을 위한 말들

이 책을 살펴보기 전에..
박애희
헤매고 흔들리는 사이, 결코 젊다고는 할 수 없는 그러나 많다고도 할 수 없는 나이가 되었다.
인생은 마음대로 되지 않는 것이란 진실을 마주한 후부터 기쁨보다 아픔, 높은 곳보다 낮은 곳, 강한 것보다 약한 것, 눈부신 것보다 스러져가는 것들을 더 많이 사랑하리라 다짐하며 살고 있다.
사랑하는 것들에 대해 연약하지만 다정한 마음으로 쓴 글이 읽는 이의 마음에 작은 물결처럼 일렁이길 소망한다.
기대와 다르게 언제나 조금씩 어긋나는 삶 속에서 어떻게 생의 의지를 지켜가야 하는지, 울고 화내고 방황하면서 어떻게 조금씩 앞으로 나아가야 하는지, 그 답을 찾기 위해 이 책을 썼다.
13년 동안 KBS와 MBC에서 방송작가로 활동했으며, 사랑하는 엄마를 보내고 다시 행복해지기 위해 쓴 책 『엄마에게 안부를 묻는 밤』 등 세 권의 책을 펴냈다.
누군가 당신은 어느 편인지 묻는다면
준비해놓은 답이 하나 있다.
“슬픔의 편.”
슬퍼본 사람만이 알 수 있는 삶과 인간에 대한 속 깊은 헤아림, 슬픔을 알고 있는 사람이 품은 연민과 진정성. 이런 것들이 삶을 버티게 하는 힘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인생이 기쁨보다 슬픔에게 자주 자리를 내어준다는 것을 깨달은 어느 날부터 슬픔과 관계를 맺고 있는 고통, 불안, 상실, 좌절에 대해 자주 생각하고 읽고 쓰고 있으며 그 안에 숨겨져 있을 생의 기쁨과 의미들을 찾느라 날마다 고군분투 중이다.
[알라딘 제공]


슬픔을 껴안는 태도에 관하여
나이가 들수록 더 위축되는 마음의 크기는
내가 불안을 이겨내는데 있어서 큰 도움이 되지 못했다.
그저 작은 구멍만 보이면 들어가 쉬고 안주하길 좋아했고
전보다 더 사람과의 관계를 멀리하고 숨어 지낸다.
자기 방어 측면에서 부딪히지 않으려 나름 고심하는 방법이라지만
꽤나 고독하고 지독하게 외로운게 큰 흠이다.
슬픔과 아픔을 대하는 나의 소극적인 태도가
이따금 답답하게 비춰질 수 있겠다 싶어
이 사람 저 사람에게 하소연도 해보지만 크게 나아지지 못하는 걸 경험해 본 바 있기에
여전히 존재하는 이 고통 속에서 앞으로 살아가는 데 필요한
슬기로운 태도와 생각을 책 속에서 찾아보았다.
인생에 대한 기대와 실망을 반복하는 시간이,
받아들이고 싶지 않았던 실패와 시련의 순간들이, 상실의 서러움과 그리움에 먼 곳을 바라보던
외로운 나날들이 결국에는 다시 생의 선물로 돌아온다는 진실을 확인하며 느릿느릿 걸어가는 할머니를 그려볼 때면
다큐멘터리 영화 <인생 후르츠>가 생각난다.
p138
오래 살수록 인생은 더욱 아름다워진다고 믿고 싶었다.
내가 중년에 접어들면서 지나가는 노인들의 모습도
나이 들어가는 내 부모님의 모습도 그냥 훑어보지 않고 유심히 관찰하게 되는 건
마음이 많이 기울어져 있어서인가보다.
당신들의 시간 속에 더 많은 아픔과 이별과 상실과 슬픔을
경험했을 것이 분명하기에
그 생을 버틴 그들을 보면서 참 아름답고 성숙해지는 것에 대해
다시금 나이듦에 대해 곱씹어보게 된다.
주름이 깊어지고 몸이 예전과는 다르지만
살아온 삶과 버텨낸 정신을 바라보면
그저 존경의 마음을 보낼 뿐이다.
조용히 그런 내 노년을 생각해보면
그리 나쁘지 않을거란 기대와 희망 속에서 나도 늙어가리라 믿고 싶다.
빛을 잃어가는 듯 보이지만
전과는 다른 색으로 더 주변을 아늑하게 품어주는 온기만으로
충분히 아름다워진다고 굳게 믿고 싶으니까 말이다.
견딜 수 없을 것 같은 힘겨운 시간이 저 멀리 오랜 시간부터 계속 이어지고 있다는 걸
확인할 때마다 궁금해진다.
그런데 어떻게 세상은 무너지지 않고, 생은 또 생으로 이어지고 있는 걸까.
음악을 들으면서 그런 생각을 했다.
그것은 어쩌면 인간의 선의와 연대 덕분일지도 모른다고.
p204
이번 생은 망한 것 같은 낙심과 좌절과 분노 속에 빠져있을 땐
딱히 다른 길이 보이지 않는다.
그렇게 한참을 침참하고 혼자 고독을 씹으며
나만 이토록 힘겨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여지껏 혼자 잘 먹고 잘 사는 게 아니었다는 말을 실감하는 건
항상 나를 지켜주는 주변의 애틋한 시선과 마음이 늘 함께 있었다는 것이다.
그들 덕분에 그들 때문에
지금의 시간들을 무사히 지킬 수 있었던게 아닌가 싶다.
기쁜 일에 더 내 일처럼 기뻐하는 그 사람들.
끊어질 수 없는 연대 속에서 내가 아직도 그들과 살아가고 있다는 게
참 다행이란 생각이 들어
인생은 아직도 살아볼만하고 살아가야 할 이유가 많이 존재하는 것 같다.
뼈를 때리는 듯한 아픔도 흘러간다.
더 침착하지 못하게 행동하고 좌절했던 그 시간을 부끄럽게 생각하지 않는다.
그럴만도 했고 그렇게라도 해야했기에.
잘 살아가는 법을 지금도 배우고 있고
늘 시행착오를 겪는다.
지금의 불안과 두려움도 분명 잘 버텨 나갈 거란 확신과 기대를 버리지 않는다면
그만하면 충분하다고 말하고 싶다.
앞으로도 불안과 행복을 오가며 냉탕과 온탕을 왔다 갔다 할테지만
살아갈 날들에 대한 희망은 늘 내 안에서 빛날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