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는 게 고통일 때, 쇼펜하우어 - 욕망과 권태 사이에서 당신을 구할 철학 수업 서가명강 시리즈 18
박찬국 지음 / 21세기북스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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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 게 고통일 때, 쇼펜하우어





이 책을 살펴보기 전에..


박찬국

서울대학교 철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석사학위를, 독일 뷔르츠부르크 대학교에서 철학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서울대학교 철학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니체와 하이데거의 철학을 비롯한 실존철학이 주요 연구 분야이며 최근에는 불교와 서양철학을 비교하는 것을 중요한 연구 과제 중의 하나로 삼고 있다.

저서로는 『원효와 하이데거의 비교연구』(청송학술상), 『니체와 불교』(원효학술상), 『내재적 목적론』(운제철학상), 『초인수업』(대만, 홍콩, 마카오 번역 출간), 『그대 자신이 되어라―해체와 창조의 철학자 니체』, 『들길의 사상가, 하이데거』, 『하이데거는 나치였는가』, 『현대철학의 거장들』, 『들뢰즈의 《니체와 철학》 읽기』, 『에리히 프롬의 《소유냐 존재냐》 읽기』 등이 있고, 역서로는 『헤겔 철학과 현대의 위기』, 『마르크스주의와 헤겔』, 『실존철학과 형이상학의 위기』, 『니체 I, II』, 『근본개념들』, 『아침놀』, 『비극의 탄생』, 『안티크리스트』, 『우상의 황혼』, 『선악의 저편』, 『상징형식의 철학 I, II, III』가 있으며, 논문으로 「유식불교의 삼성설과 하이데거의 실존방식 분석의 비교」(반야학술상) 등 다수가 있다.


[예스24 제공]





욕망과 권태 사이에서 당신을 구할 철학 수업


염세주의 철학자인 쇼펜하우어의 철학적 신념을 쉽게 받아들이도

이해하기도 어려운 부분이 많았다.


세상을 지나치게 불행하다고 해석하는 것 같아

사실 불편한 부분이 없지 않아 있었지만,

책을 보면서 더 면밀하고 촘촘하게 그의 생애와 사상과 배경을 살펴보면서

극단적이긴 하지만 일리가 없는 말이 아니란 사실을 받아들였다.


인생이 고통이라는 그의 말에 쉽게 긍정도 부정도 어려웠다.


삶 자체가 고통이라고 생각하면 너무 우울하고 낙심된다.


고통의 연속 선상에 있는 삶을 부정하기도 힘들다.


우주의 근원적인 실재가 끊임없이 결핍감에 시달리는 맹목적인 욕망의 성격을 띠고 있기에,

거기서 비롯되는 모든 개체도 맹목적인 욕망에 사로잡혀 서로 투쟁할 수밖에 없다.

바로 이것이 '왜 세계에 악이 존재하는가'라는 물음에 대해서 쇼펜하우어가 제시한 답이다.

이와 함께 쇼펜하우어는 고통과 악을 완전히 극복하는 길 역시 욕망의 불길을

완전히 꺼버리는 것, 즉 욕망을 극복하고 부정하는 데서 찾는다.

p39


이 세계는 인간을 욕망으로 가득 차 있다.


쉽게 만족을 얻지 못하며

부족한 결핍에 대해 스스로 고통을 느끼며 산다.


이성이 욕망을 통제해야 하는데

욕망을 충족시키기 위해 주인 노릇하지 못하는 경우도 허다하다.


제대로 제어하며 살 수도 있다고 보지만

여러 사례들을 보면서 이성이 욕망의 도구로서 사용되는 걸 부정할 수 없었다.


쇼펜하우어가 말하는 의지, 곧 욕망은 행복과 연결 선상에 있기도 하다.


좀 더 나은 행복은 비교적 가벼운 불행 속에 살면서

고통을 최소화하며 살아가는 것이라고 본다면

욕망과 행복이 구분지어 다룰 것이 아니란 생각이 들었다.


이 같은 삶은 계속 반복되고 있다는 걸 알기에

욕망과 쾌락 속에서 좀 더 균형을 맞춰 살기 위해

지금도 안감힘을 쓰는 나에겐 여전히 쉽게 이해하긴 어려웠다.


욕망의 눈으로 보면 세상은 고통이지만, 욕망에서 벗어난

순수한 관조의 눈으로 보면 세상은 아름다움이다.

p162


순수한 관조의 눈은 사물을 아름답게 보는 것이라 말한다.


사물과 세계의 아름다움을무심한 눈으로 바라보는 시선이 필요하다.


끊임없이 결핍과 불만에 가득 차 있으면

욕망을 충족시키려 분주하기 때문에

감각적인 쾌락에서 벗어나 욕망을 최소화하며

자족하게 되면 이 순수한 관조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볼 수 있다는 것이다.


정신적 평화의 상태에 좀 더 머물며 사는 건

자연을 바라보는 평온한 마음을 허락하는 것 같다.


나의 정신적 수준이 어디쯤 와 있고

무엇이 지배하고 사는지 조금씩 파악하게 되면서

숭고한 아름다움을 바라볼 수 있는 눈을 기르는 것에

더 강한 끌림을 느끼는 건 그렇게 살고 싶다는 것이 아닐까 싶다.


인생의 강한 두려움도 이겨낼 회복의 힘을 말이다.


쇼펜하우어가 말하는 '모든 욕망이 사라진 무의 상태'는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

공허의 상태라기보다는 신비주의적 환희의 상태를 가리킨다.

p226


욕망에 기생되는 행복이 아닌

근절된 완전하고 순수한 행복을

욕망이 무인 상태라고 말하는 쇼펜하우어는

이를 신비주의적 환희의 상태라고 말한다.


고결한 종교 철학자들의 가장 승화된 정신이 이와 같을까 싶어

종교가 추구하는 이상과 본질이 이것인가 싶기도 했다.


이와 함께 죽음을 축복이라 함은

생과는 반대되는 상태라 좀 아이러니했다.


살면서는 고역을 치르고

죽어서는 소멸되지만 완전한 종말로 볼 수 없는 상태라니.


죽음을 혼연한 마음으로 받아들이기 힘든 나는

삶에 대한 미련과 욕망으로 가득 차 있어서 그럴 것이기에

여전히 죽음은 두렵고 어렵다.


죽음 앞에서 허망하기 그지 없는 사실들이 허다한 걸 알면서도

살아가는 내내 그것들로 속 상해 하며 사는 꼴이 참 아이러니하다.


생의 시작과 끝을 다 훑어보면서

쇼펜하우어의 사상에 기초한 철학적 신념과 이야기를

좀 더 깊이 이해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지배받고 있는 욕망에 대한 끊임없이 반복되는 고통스러운 삶을 살면서도

밤이 아닌 낮으로 나와 살고자 몸부림치는

나의 내면 세계에 대해 좀 더 투명하게 살펴볼 수 있는 시간이기도 했다.


 삶의 본질적인 해석을

명쾌하게 풀어낸 강의로 유익한 즐거움을 찾아보길 바란다.





​​[이 글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협찬받아 주관적인 견해에 의해 작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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