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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의 문장 - 흔들리는 마흔에 참 나를 되찾게 해 준
길화경 지음 / 유노라이프 / 2021년 1월
평점 :
엄마의 문장

이 책을 살펴보기 전에..
저자 : 길화경
수술실 8년차 간호사에서 엄마가 되었다. 경력이 단절된 채로 살다가 아이 둘을 키우며 워킹맘으로 일했다. 치열한 육아의 끝에 마흔이 되었고, ‘엄마’만 남고 부재한 ‘나’를 발견했다. 나를 찾기 위해 달리기, 독서, 글쓰기를 하면서 깊이 사색했고, 그 과정에 인생 문장을 만났다. 《엄마의 문장》은 그렇게 만난 문장이 삶을 어떻게 바꿨는지 치열하게 써 내려간 첫 번째 에세이다.
현재는 논술 교사로 아이들의 꿈을 키우는 일을 하고, SNS에서 사람들과 소통하는 작가로 행복한 나날을 보내는 중이다.
인스타그램 instagram.com/gleeum_writer
[인터넷 교보문고 제공]


자정에 가까운 시간.
불면으로 잠을 이루지 못하는 밤을 맞았다.
막내가 먼저 잠자리에 들고 큰 아이까지 잠든 걸 확인하면
보일러 가동을 멈춘 차가운 거실로 나와
혼자만의 늦은 밤 독서를 시작한다.
새벽형 인간과는 거리가 멀어서일까
조용하고 적막하리만큼 고요한 이 시간은
온전히 엄마가 아닌 나로 존재하는 것만 같다 좋기만하다.
마음 같아서는 저녁 9시부터 애들이 잠들어 줬으면 하지만
두 녀석 모두 저녁이면 더 에너지가 뻗힌다.
독박 육아의 길고 긴 시간을 홀로 묵묵히 견디는 데 일등 공신의 팔 할은
엄마의 정신력이었다기 보다는
육아서를 시작으로 잡다한 책으로 보낸 시간이 아니었나 싶다.
엄마와 나 사이에 벌어진 균열을 막고
균형을 잡기 위해 부던히 애를 쓰던 시간 속에서
책은 나에게 적어도 삐뚤어지지 않는 엄마로 살아가는 법과
좀 더 나를 바로 살아가기 위한 좋은 연습의 시간들을 허락했다.
지금도 책을 놓치지 않고 읽는 건
매일의 삶에 채워야 할 부분들이 많다는 걸 알기에
가장 부지런히 가장 오랫동안 할 수 있는 나만의 유희활동이기 때문이다.
사색하는 시간동안 더 분명해지는 건
엄마와 나의 경계가 좀 더 분명하고 명확해지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경계가 없어서 촛점이 흐려진 렌즈처럼
제대로 식별하지 못하는 삶은 위태롭기만 했다.
그런 점에서 책은 나를 찾는 길을 내어주고
좀 더 넉넉히 살아갈 방법을 알려주는 꽤 괜찮은 도구가 된다.
저비용 고효율성을 가진 책만큼은 엄마의 오랜 취미 활동으로 여겨볼만한 이유가 충분히 많다.
그래서 오늘도 읽고 쓴다.
나를 잊고 지낸 시간 속에서 느끼는 불안과 두려움은 아이를 공부시키며 채우려 들기 쉽다.
그럴 땐 단호하게 자신에게로 다시 눈을 돌려야 한다.
불안과 두려움을 응시하고 그것을 달래고 응답하기 위해 나를 읽자.
그것을 해결하기 위한 책 읽기여야 한다.
아이들을 키우느라 좁고 뻔해진 삶의 반경을 조금씩 넓히는 일이다.
/p104
어쩌면 엄마인 내가 꿈을 꾸고 그것을 향해 묵묵히 나아가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전부일지도 모른다.
/p204
아이가 어릴땐 아이의 눈높이에 맞춰
놀아주고 몸을 맞대며 함께 살아왔었다.
커가면서 학업에 뛰어드는 아이를 보며
곁에서 응원만으로도 충분했을테지만
더 큰 욕심을 앞세워 아이와 다투던 시간들을 보내며 많이 후회도 했었다.
혼자 보내는 시간들이 늘면서
이따금 찾아드는 공허함과 무기력함에
그동안 엄마로 열심히 살아온 나에게 다시 되묻게 되는 물음 앞에서 답을 내리지 못하고 우두커니 앉아만 있었다.
지오디의 <길>을 무수히 반복 재생해 들으며
'내가 가는 이 길이 어디로 가는지
어디로 날 데러가는지 그곳은 어딘지'에 대한
가삿말에서 그 길을 헤매고만 있는 나를 발견했다.
엄마로만 살고 싶었던 건 아니었음에도
나로 살기엔 더 자신없어진 전업주부로서의 삶이
나에게는 권태로움과 나태함을 더 나른하게 느끼게 한다.
잘 커가는 아이들과는 달리 엄마는 혼자서 꽤나 방황하고 있었다는 건 몰랐을테지만
간혹 갈피를 잡지 못하는 모습을
게으른 끼니와 늘어진 세간살이로 눈치 챘을지도 모르겠다.
이만하면 다행이지 싶다가도
이대로 안되겠다 싶기도 하고.
어느 박자에 놀아야 할지 모르겠어서
엇박을 타며 지내던 무수한 시간들을 보내왔다.
그 시간들을 흘려보내던 중에 삶을 궤도를 바꿔놓는 읽고 쓰는 삶은
그동안 내가 그토록 놓치고 정의 내리지 못했던 답에
시원한 해답을 제시해주었다.
마흔이란 나이가 쌓여야 가능한 걸까.
저자 역시 고심하며 살았던 비로소의 나로 대면하는 시간을
육아와 책을 읽는 시간으로 발견될 수 있었음에 크게 공감한다.
엄마라면 공감할 수 있는 에피소드 속에서
함께 연대하며 살아가는 느낌을 이어갈 수 있었다.
또한
나 역시 수많은 문장들을 만나고 수집하면서
내 삶을 새로 꾸리는 연습을 하는 중이다.
꿈을 꾸라고 아이에게 말하지만 정작 엄마의 꿈이 무언지도 모르는 나였으면서
쓸데없는 권위를 세우는 꼰대로 살아가지 않도록 나를 경계하며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찾아 오래도록 즐기며 살고 싶다.
엄마로 살아보니 더 내 시간이 소중하다는 걸 알게 된다.
매일 매 끼니 걱정은 여전하지만
밥을 거르지 않는 것처럼 책을 읽고 기록한다.
올 한해도 내 인생에 쏘아올릴 문장들이
노트에 한 가득 쓰여지길 기대하면서
매일의 책 속에서 내 삶이 여물어가길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