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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불구하고 - 공지영의 섬진 산책
공지영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20년 10월
평점 :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을 살펴보기 전에..
공지영
1990년대에 가장 두각을 나타낸 여성 작가의 한 사람으로, `좋은 세상`을 꿈꿨던 1980년대 젊은이들의 문제의식과 가부장제의 잔재를 털어버리지 못한 우리 사회의 여성 현실을 끌어안고 그 특유의 진지함으로 작품 활동을 해왔다.
한글을 깨친 후 처음 읽은 건 화장실 벽에 써 있던 소월의 시였으며. 어릴 때의 꿈은 고아원 원장이었다. 시와 소설을 써서 혼자서 문집을 만들면서 사춘기를 보냈을 만큼 문학적으로 `조숙`했다.
대학 시절에는 학생운동에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면서도 동정적이던 `동조파`였고, 졸업 후에는 민족문학작가회의의 전신인 자유실천문인협의회에서 전화도 받고 문인들에게 커피 대접도 했다. 출판사 생활을 거쳐 1986년 가을 `시나 쓰는 교수가 되어 삶을 편안하게 보낼 요량`으로 대학원에 진학, 그러나 고전에 치우친 강의만 듣고 앉아 있을 수 없다는 생각으로 그만 뒀다. 그리고서 뛰어든 것이 노동운동.
1년간의 `재교육`을 거쳐 1987년 11월 구로공단 인근의 한 전자부품제조회사에 취업했으나, 1일 2교대의 고된 작업 끝에 한 달 만에 프락치에게 걸려 강제 퇴사. 이어 12월 대통령 선거 때는 구로을구 개표소의 부정개표 반대시위에 참가했다가 용산경찰서로 끌려가 구류 1주일을 살았다. 이 때의 경험을 토대로 쓴 중편 「동 트는 새벽」이 「창작과비평」88년 가을호에 실리면서 문단의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공지영의 소설들은 문학평론가 김윤식이 `후일담 문학`이라 이름 붙였던 80년대 회고문학, 그리고 박완서에서 이경자를 거쳐 내려온 여성소설의 전통이라는 두 개의 커다란 흐름에 젖줄을 대고 있다.
작가의 80년대에 대한 태도는 세월이 흐르면서 일정한 변화를 겪었다. 초기 작품에서는 당시의 `혁명적 열정`을 그대로 받아안고서 문학적으로 형상화하는 태도였다면, 그 후로는 차츰 비판적 거리를 유지하게 된다.
그러나 그의 소설에는 여전히 가난한 서민들에 대한 애정이라든지, 중산층의 허위의식에 대한 폭로라든지, `좋은 세상`에 대한 꿈을 버리지 않는 면면이 유지, 발전되고 있다.
공지영 소설들의 또 다른 축은 여성문학의 전통 위에 서 있다. 그의 글들은, 스스로의 표현에 의하면 `적어도 교과서에서는 남자와 여자가 평등하다는 것을 배운 세대`의 교과서적 지식과 현실의 괴리를 아프게 다뤄 나간다. 그러한 괴리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는 동 세대 남녀들에게 공지영 문학은 때로는 폐부를 후비는 칼끝이요, 때로는 상처 받은 영혼을 위로하는 따뜻한 위무의 글들이다.
[알라딘 제공]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념을 가지고 삶을 지켜나가야 할 도리를 다하는게
나를 사랑하는 법이란 걸 알게 하는 공지영의 책을 만났다.
그녀 역시 심연의 아픔들을 끌어안고 우는 밤이 많았기에
긴 길로 담담히 책 안에서 그동안의 울음을 토해내는 듯 보인다.
현실을 선명하게 직시하는 일이 결단코 필요하다.
어렴풋이 보이는 환상에 쫓을 것이 아니라
비참해질지 몰라도 좀 더 외로움, 공허함 속으로 깊이 들어갔다 나오는 것도 방법일테다.
나 역시 그런 아픔들로 허덕이던 날이 많아
누군가가 추락하는 삶을 살고 있으면 돕고 싶은 마음이다.
글 안에서 함께 끌어안고 연대하며
마음 한구석에 무시해왔던 감정, 오래된 상처를 좀 더 보듬고 싶다.
"그런 사람들한테 둘러싸여 나 자신을 폄하하는 말들과 괴로워하며 싸우느니 차라리 혼자 있는 것이 나아요."
"듣기 싫을지 모르겠지만 내가 다 너를 위해 이러는 거야."
라는 사람은 "듣기 싫은 이야기를 왜 굳이 해야겠니? 나는 성녀가 되고 싶은 게 아니야."
라는 말도 없이 그냥 차단했고,
"저기 내가 좀 심한 말을 해야 할 텐데 괜찮겠니?"하고 접근해오면
"아니 괜찮지 않으니까 절대 하지 마세요!"라며 응수했다./p162
입밖으로 불편한 현실을 털어놓기보다
속으로 삼키는 편을 택하며 살았다.
어색한 분위기와 공기가 싫어서
그저 나하나 참으면 괜찮겠지라고 넘어가는 나이지만
속은 정말 뭉그러져 나를 소중히 지켜나가지 못했단는 패배감을 맛본다.
가까운 사이라도 함부로 말할 수 없다.
그 말을 더욱 거부할 권리도 단박에 차단해야할 호기로움도 필요하다.
그럴 수 없다면 거리두기는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 같다.
그들보다도 내가 더 소중하기에
좀 더 내 마음을 지키는 것을 우선순위로 둔다면
내가 어떻게 보이는게 중요하지 않을 것이다.
내가 맘에 안드는 부분을 신경 써준다고 지적하는 지적질에
당당히 응수할 수 있는 말 한마디.
"괜찮으니 그맘 좀 하시죠."
나도 좀 속시원히 내뱉고 싶다.
어차피 고칠 생각도 없고 고칠 필요도 못느끼며 산다.
그냥 좀 내버려두라고 세상에 더 크게 소리치고 싶다.
겸손은 "나는 이제 직업도 없고 아이들도 떠나보내고 목에 주름이 자글자글한 50대 아줌마일 뿐이에요"라고
자기를 한껏 낮추어 말하고 스스로도 그렇게 생각하는 게 아니라
"나는 사회생활을 정리하고 이제 늙어감을 배우며 앞으로 무슨 일을 해야 할까
의미 있는 고민을 해보려고 하는 50대 여성입니다"하는 것이 더 겸손한 말이라는 것이다.
그것이 사실이기 때문이다.
늘 하는 말이지만 오늘 행복하지 않으면 영영 행복은 없는 거다./p261
나에게까지 도가 지나친 겸손은 사양한다.
내가 비참해지지 않는 선에서
나를 좀 더 괜찮은 사람쯤으로 대접해줘도 좋다.
영원히 살 것도 아니고
잠깐 살다가는 이 생에서 뭐 그리 비참한 영화의 주인공이 될 필요가 있을까.
지금 당장의 행복을 찾지 않으면
영원히 찾지 못할 행복처럼
오늘 달달한 사탕 하나 까먹고 즐겁고 재미나게 살아봐도 괜찮을 우리 인생이다.
침울 속으로 들어가지 말고 좀 더 햇볕을 쐴 수 있는 양지로 올라와
쉬엄쉬엄 머물며 놀고 먹으며 살란다.
복잡한 오늘의 삶도 고단하지만 잘 살아줬으니
칭찬받아 마땅한 나이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행복은 내가 사수하며 산다.
그런 세상 속에 오래 머물다 가길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