괜찮아, 안 죽어 - 오늘 하루도 기꺼이 버텨낸 나와 당신의 소생 기록
김시영 지음 / 21세기북스 / 2019년 3월
평점 :
품절


괜찮아, 안죽어





이 책을 살펴보기 전에..


저자 : 김시영
글·사진: 김시영

그때 남자아이가 대부분 그렇듯, 고장 나지도 않은 가전제품을 분해했다가 엄마한테 등짝 뚜드려 맞는 일을 수없이 겪으며 공학자가 될 줄 알았다. 실제로 고등학교 시절 전국 모의고사를 볼 때마다 항상 모 대학 기계공학과에 모의 지원했는데, 어느 날 문득 ‘차가운 쇠뭉치를 평생 끼고 사는 게 행복할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어설픈 고민에서 빠져나와 보니 의과대학에 입학해 있었고, 평생 마실 술과 평생 외워야 할 단어의 절반 이상을 6년 동안 위와 뇌에 들이부었더니 의사가 되어 있었다. 사람을 살리는(살아나는 것을 목격하는) 최전선에 머물고 싶어 응급의학과를 전공했고, 그 바람대로 중환자실과 영안실 사이 어디쯤에서 한참을 일했다.

이런저런 상황과 기회와 운명이 맞물려 10여 년 전쯤, 5일마다 장이 열리는 장터 근처의 동네 의원에 들어오게 되었다. 더 이상 등짝을 때리는 엄마도, 눈앞에서 죽고 살아나는 사람들도 없는 평화로운 곳에서 갑자기 심심해진 탓에 이것저것 기웃거렸지만, 하루 종일 붙어 있어야 하는 진료실 책상에서 할 수 있는 딴짓거리는 그리 많지 않았다. 급기야 어릴 때부터 써 오던 일기를 낮에 쓰기 시작했는데, 하다하다 이런 잡다한 글이 책으로 묶여 나오다니 세상엔 별 희한한 일이 많다.

할매들의 거친 손을 잡으며 ‘손이 이게 뭐냐! 일 좀 그만해라, 이제’라는 잔소리를 하는 것이 현재의 전공이며, 어차피 퇴근하면 만날 두 여자와 두 마리의 강아지를 매일 보고 싶어 하는 것이 특기이고, 이 심심하고 평범한 일상에서 느끼는 간헐적 행복을 잊지 않도록 기록하는 것이 취미다.

쓰다 보니 이렇게 사는 것도 나쁘지 않다는 생각이 들어 앞으로도 비슷하게 살아 볼 예정이다.


[인터넷 교보문고 제공]





오늘 하루도 기꺼이 버텨낸

나와 당신의 소생 기록



멀지 않은 시간에 친정 엄마가

더 허리가 굽고 흰머리가 희끗해질 모습이 떠오르면서

병원을 내 집처럼 다닐 서글픈 뒷모습이 떠오른다.


환자와 의사와의 관계가

그리 서먹하지도 어렵지 않은

뭔가 따뜻한 온정이 남아 있는 글속에서

느껴지고 떠오르는 그림이 있다.


혼자서 그 모습을 상상하면서

웃어보기도 하고 눈시울이 시끈해지기도 한다.


단골 할매의 시크한 모습 속에서 느껴지는

따뜻한 정에 또 한번 감동을 느끼고

소소한 기록이 누군가에게는 삶에 피어오르는

또 하나의 희망과 기쁨이 될 수 있기에

책을 보며 더욱 그 하루에 몰입해본다.


환자한테 이거 하지 마라 저거 하지 마라 그러지 마.

하고 싶은 거 하고 먹고 싶은 거 먹고 재밌게 살다 죽는 게,

먹고 싶은 거 힘들게 참으면서 오래 사는 거보다 백배는 더 좋아.

그니까 나 맥심도 마실 거고 떡도 먹을 거야.

커피 달달하게 타서 백설기하고 먹으면 얼마나 맛있는지 모르지?/p65


살면 얼마나 산다고 내 몸을 너무 귀하게 여기다

오히려 가슴 조리며 이것저것 다 경계하는 게

스트레스이다 보니 그냥 맘 편히 다 내려놓고 사는 편이 낫다란 생각이 든다.


믹스 커피가 좋지 못하다고

다들 원두를 먹는다고 하지만

가끔 달달한 믹스커피를 내 입은 그리워한다.


그 향과 그 맛을 내 혀는 기억하고 있다.


힘들게 참으면서 오래도록 사는 것보다

얼마를 살게 될지 모르겠지만

하고 싶은 것도 마음 껏하면서 신나게 살고 싶다.


스스로에게 한계를 긋고 뭔가 염격한 잣대를 두고 사는 것이 지겹다.


이젠 좀 더 그런 경계를 다 접어두고

맘 편히 자고 먹고 싶다.



아무도 없는 진료실 책상 앞에 앉아 아무 일 없는 척,

관심없는 척하지만 나는 두 사람이 병원 문을 열고 다시 계단을 내려가는 소리가 사라질 때까지

그들의 모습을 상상하고 있다.

할배는 당연히 성큼성큼 먼저 계단을 내려가 1층 약국으로 쌩하니 들어갈 것이고,

할매는 또 당연히 계단 난간을 붙잡고 한 계단씩 천천히 내려가시겠지.

새삼 고맙다. 1분 만에 다시 들어온 전기도, 50여 년을 같이 산

노부부가 눈이 채 녹지 않은 이 미끄럽고 험한 길을 걸어 내게 와준 것도, 그저 고마운 일이다./p141


노부부의 뒷모습을 보고 있는 의사의 시선이

굉장히 따뜻하게 그려진다.


밥을 먹지 않아도 배부른 느낌이 바로 이런걸까.


늘 잊지 앉고 찾아와준다는 것도 감사하지만

험한 길을 달려오는 노부부의 모습은

말하지 않아도 느껴지는 끈끈한 사람과의 관계속에 따스함이 있다.


더 좋은 병원 더 편리한 시설을 찾아 갈 수도 있겠지만

그런 생각조차 없어보이는 건 왜 일까.


요즘 젊은 사람들은 참 마음이 금새 바뀐다.


심지어 나조차도 이게 좋다고 하면 이곳으로

저게 좋다고 하면 저곳으로

뭔가 대세를 찾아 휩쓸려 가기 마련인데도

심지가 굳은 모습으로 꿋꿋히 자기 길을 가는 뚝심이 부족하다.


대단히 든든한 지원군이 내 곁에 있는 것처럼

사명을 가지고 일할 맛도 나겠지만

더욱 이 분들을 보면서 살 맛이 날 것 같다.


그렇게 인생이 더 달큰하고 더 향기롭다.


나에게도 이와 같은 묵은지처럼 푹 익은 듯한

깊은 관계를 맺고 사람 냄새 나는 이들과 내 하루를 보낼 수 있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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