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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자, 노동이 존중받는 사회를 꿈꾸다
김승석 지음 / 북코리아 / 2021년 12월
평점 :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종교학자 카렌 암스트롱은 기원전 900 ~ 기원전 200년 사이를 '축의 시대'라고 명명했다. 이 시기에는 인류 문명사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철학과 종교와 사상가들이 등장하고 찬란한 정신적 유산의 결실들을 만들어 냈다. 우리 시대의 철학과 종교와 사상은 그들이 설파한 것들에 연을 대고 지금까지 가지를 뻗어왔을 뿐이다. 21세기가 되었음에도 여전히 인류는 '축의 시대'와 완전히 무관하거나 결별할 수 있는 획기적인 정신적 결과물을 생산해내지 못하고 있다. 인류는 축의 시대로부터 배울 것들이 여전히 남아있다.
서양에서도 많은 사상가들이 등장했지만, 동양 특히 중국 땅에서는 제자백가라는 인물들이 일어났다. 춘추전국시대는 시기적으로는 기원전 779년 경 주나라가 동쪽으로 천도한 뒤, 기원전 221년 진에 의해 중국 최초의 통일 제국이 건국될 때까지의 시기를 말한다. 우리에게 익숙한 공자를 비롯하여 이 책에서 다루는 묵자도 제자백가로서 유명세를 떨친 인물이다. 다만 묵자는 비밀에 쌓인 부분이 많다. 묵자의 성과 이름에 대해서도 이견이 있고, 생존시기에 대해서도 이견이 있다. 분명한 것은 그가 노나라에서 주로 활동했었고, 수공업과 축성 기술자로 살았다는 점이다. 그리고 진시황의 중국 통일 이후 국가의 이념으로 자리 잡지 못한 그의 사상은 탄압을 받고 자취를 감추게 된다는 사실이다.
묵자의 사상이 탁월했던 점은 강력한 지배 논리를 마련하고자하는 권력자들이 바라는 국가 이념으로서의 사상들과 차별화되어 있다는 점이다. 묵자는 성선설과 성악설의 이원론적인 틀로부터 벗어나 노동을 통해서 사람을 바라보았다. 이는 동서양을 막론하고 노동을 천시하던 근대 이전의 경향과도 차별화를 이룬다. 그리고 무엇보다 묵자는 백성들의 입장에 서서 그들의 이익을 대변했다. 노동하지 않고 그 과실을 향유하는 사람들, 곧 대표적으로 지배계층을 향한 뼈있는 그의 가르침은 내가 살아가는 시대에도 여전히 유효하고 울림이 있다. 비노동에 의한 소유, 타인 노동의 무상점유로 발생하는 구조화된 폭력을 향해 그는 저항의 목소리를 내었다. 그리고 이런 저항 의지는 곧 실용주의로 연결된다.
" 농부, 공인, 상인이라 할지라도 능력이 있으면 등용하여 높은 직위를 주고, 많은 녹봉을 내리고, 일을 맡길 때도 결단할 수 있는 권한을 주어야 한다."
탁월한 안목이다. 오늘날에는 명목상의 신분제가 존재하지 않기에 당연한 말로 들릴 수 있겠지만, 당시 묵자가 살았던 시대를 생각한다면 도전적이고 획기적인 발언일 것이다. 그의 실용주의적 태도는 오늘날에도 관철되어야할 가치다. 묵자가 인간을 바라보는 관점과 그로부터 도출되는 실용주의적 태도는 분리될 수 없다. 그것은 또한 이 책을 통해 내가 얻게 된 값진 수확이기도 하다. 나는 지금까지 인간을 노동의 관점에서 생각해본 적이 별로 없었는데, 이 책을 통해서 생각해볼 수 있게 되었다. 또한 나는 선악, 빛과 어둠같은 이분법적인 안목에 갇히지 않기 위해 발버둥치며 사는데, 묵자처럼 실용주의적 태도를 유지하며 상황을 바라볼 수 있다면 그런 이분법 프레임에 쉽게 갖히진 않을 것이라는 통찰을 얻을 수 있었다.
이 책에는 묵자에 대한 더 많은 이야기들이 담겨 있다. 무엇보다 이 책을 읽어가는 재미는 저자가 묵자에 관심을 가지게 된 배경과 이유에 대한 독자의 공감에서 나온다. 사실 묵자에 대한 정보를 얻을 수 있는 책은 이 책말고도 많지 않은가. 이 책의 저자는 경제학자다. 경제학자가 묵자에 관심을 가지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왜 저자가 묵자와 그의 사상과 그가 활동하던 시대와 노동 가치의 존중을 함께 논하는지 생각해본다면 풍부한 의미들을 찾을 수 있다. 묵자가 살아가야 했던 시절과 우리가 살아가는 시절은 세부적으로는 다르다. 하지만 맥락적으로는 닮아있다고 생각한다. 오늘날은 묵가가 살았던 시대와는 달리 명문화된 계급과 차별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나 눈에 보이지 않는 차별, 여전히 사람들의 의식 속에서 작동하고 있는 계급과 서열, 수저론 그리고 보이지 않는 벽까지 우리는 매순간 느끼며 산다. 묵가가 목도해야 했던 전쟁은 또 어떤가. 철기의 보급으로 농업생산량이 증가하여 잉여 생산물을 저장할 수 있게 되면, 인간은 다른 활동들을 본격적으로 시작할 힘을 비축할 수 있게 된다. 그 결과 전쟁은 남는 자원을 바탕으로 더욱 치밀하고 강력하게 발생하게 되었다. 소수가 가진 정치적 야욕을 따라 희생되어 갔던 사람들, 묵가는 전쟁의 참혹상과 백성들의 굶주림을 직접 경험했던 사람이다. 그리고 끝이 보이지 않는 무한 경쟁 사회 속의 우리들 역시 그런 전쟁과 같은 스트레스 상황을 인내하며 살아가는건 아닌지. 그리고 효율성을 위해 분업화된 우리의 일들은 전체적인 시스템을 위해 움직이는 기계의 부속품처럼 작동하게 만든다. 그 바삐 돌아가는 시간 속에서 자신과 타인의 노동 가치에 대한 존중과 감사의 마음은 일어날 겨를이 없다. 이런 시대 상황 속에서 묵자가 제시한 겸애의 정신 곧 무차별적인 사랑의 태도는 인간의 가치를 상실해가는 우리에게 긍정의 에너지를 심는다. 그리고 이 시대의 정신과 그것을 분별없이 좇아가던 우리를 다시금 반성하게 만든다.
"노동이 존중받는 사회는 인간이 존중받는 사회다"
공감한다. 묵가는 피지배당하던 시대의 약자인 백성의 이익을 대변한 사상가이다. 그리고 그들에 대한 존중은 곧 그들의 노동에 대한 존중과 구별해서 생각할 수 없음을 그는 일깨워 주었다. 사유가 부족한 시대에, 이 책을 통해 우리의 빈곤한 정신을 겸애사상과 자타인의 노동에 대한 존중으로 다시 채워 가면 좋겠다.
-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작성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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