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관 위기 - 라이트 노벨 라이트 노벨 도서관 시리즈
아리카와 히로 지음, 민용식 옮김 / 대원씨아이(만화) / 2008년 11월
평점 :
품절


 아리카와 히로(有川浩)의 대표작. 도서관 시리즈가 어느새 마지막을 향해 달려간다. 외전 두 권을 포함하더라도 여섯 권 중 벌써 반을 읽은 셈이니 아쉬운 감정이 솟아오른다. 작가의 유쾌한 필력이 그려나가는 도서대원들의 좌충우돌한 이야기에 소리 내어 웃고 그 가벼운 이야기의 이면에 담겨있는 사랑과 감동. 그리고 강제 미디어 검열법을 두고 항쟁하는 도서관의 모습에서 드러나는 사회 비판이 이루 말할 수 없이 훌륭한 작품이다. 그러나 그만큼 몰입하여 재미있게 읽고 있는 책이기에, 더없이 사랑하는 책이기에 더욱이 바판을 빼놓을 수는 없다.


 평소처럼 주인공인 이쿠의 주변에서 일어나는 가볍고 유쾌한 이야기들로 시작하는 도서관 시리즈는 어느새 자연스럽게 항쟁의 중심으로 옮겨가 총탄이 날아다니고 피가 튀는 전장의 모습을 그려낸다. 사법 제도가 존재하는 민주주의 국가 내부에서 일어나는 도서대와 양화대의 전쟁. 미디어 검열에 대한 이념의 충돌은 손에 땀을 쥐게 만든다.


 그러나 '도서관 전쟁'이라는 제목이 표현하는 이 세계관 자체가 이 작품의 가장 큰 약점이자 커다란 모순으로 다가온다. 사법 제도는 그대로 살아있으면서 법률과 절차를 무시하고 통과된 미디어 검열법, 그리고 그에 대항하기 위하여 역시나 좋을 대로 통과되어버린 도서관법 또한 모순적이지만, 직접 총탄이 오고가는 전쟁 상황으로 들어가면 비약은 더욱 심해진다. 서로 '사상자는 내지 않는다'는 관례를 가지고 있기에 저격을 망설이고, 도서관 내부에 침투한 적군을 포로로 잡았음에도 '병원에서 치료를 받게 하면 양화대가 알아서 회수해 갈 것이다'라는 등 특공대가 조직되어 강도 높은 훈련을 받는 비장함 속에 허술함이 담겨있어 아쉬움을 남긴다. 이 모순점은 1권이었던 '도서관 전쟁'부터 계속해서 지적해왔는데, 3권인 도서관 위기(図書館危機)역시 이를 해소하지는 못한다.


 도서관 위기에서 주인고인 이쿠와 주변 인물들은 도서관 내부의 치한문제로 골치를 썩인다. 그리고 치한을 잡기 위하여 그들은 미인인 시바사키와 이쿠를 미끼로 삼는 '미끼 수사'를 계획한다. 법률에는 분명히 미끼 수사를 금지하는 조항이 있지만, 이 소설 속의 가상 법률인 도서관법 제4장에는 '시행령으로 보칙된 수사관에 대해 도서관에 관한 문제에 한해 이들을 인정한다.'라는 대단히 포괄적이고 애매한 법률이 존재한다. 이것은 다시 말하자면 '도서관 내부에서 일어나는 일이라면 아무래도 좋다.'라고 확대해석이 가능한 애매하고, 포괄적이며, 말도 안 되는 법률인 것이다. 실제로 "미끼 수사는 법률위반이야!"라고 외치는 범인에게 "그건 경찰의 경우지. 도서대에서는 뭐든 다 되는걸."이라고 대답하는 내용이 등장한다. 아무리 정의를 위해서라지만, 법률의 취약점을 파고드는 그릇된 방법으로 해결해도 되는 것일까? 2권이었던 '도서관 내란'에서 안겨준 '그릇된 방법'에 대한 시사점과 교훈에 정확히 위배되는 일이 아닌가. 이런 모순점은 단순히 치한 문제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금칙어에 대한 재판이나 도서대와 양화대의 직접적인 전투에서는 더욱 심화된다. 미디어 양화법으로 제정된 금칙어에 대해 소송을 걸어 한 잡지의 출판에만 예외로 한다던지, 도서대와 양화대의 전투 시작시간을 현에서 정해준다던지... 애초에 이런 허술한 법률로 검열이 유지될 수 있는 것일까? 사회 비판과 읽는 재미를 위한 작품의 가장 큰 요소가 가장 치명적인 약점으로 돌아오다니. 실로 아이러니한 일이다.


 그것에 더해 이 '도서관 전쟁' 시리즈에서는 너무 한쪽의 의견에만 치중되어 있다는 느낌도 받는다. 이 작품에는 그 가벼움과 유쾌함과는 상반되게도 '미디어 검열'에 대한 직설적이고 무거운 사회 비판이 깔려있다. 이는 곧 작품 자체의 주제의식이자 작가가 독자에게 말하고자 하는 바일 것이다. 나 역시 이 작품의 그런 면에서 많은 공감과 시사점을 얻었으나 이 작품은 조금 한쪽에만 치우쳐있는 경향이 있다. 작가가 독자에게 무언가를 전달하려는 말은 별 수 없이 작가의 개인적 사상과 의지가 들어갈 수밖에 없다. 그러나 그렇다 할지라고 작가라면 독자가 스스로 생각하고 판단할 수 있게끔 객관적인 요소를 집어넣어 중립적인 태도를 지켜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것이 실제로는 어렵다고 할지라도 작가는 중립적인 태도를 지키기 위해서 노력해야한다. 그러나 이 작품은 너무 '미디어 양화법'으로 대표되는 미디어 검열을 비판하고, 그들의 악독한 행위(침략과 약탈) 등을 강조한다. 그런 부정적인 면을 그린다고 할지라도 미디어 검열법의 긍정적인 면과 필요성을 어느 정도 담아냈어야 하지 않을까?


 "계급장을 결정할 때 의장에 카밀레를 넣기로 정한 사람도 사령관님이다. 카밀레의 꽃말을 알고 있나."

 "아니요."

 이쿠가 알고 있는 카모마일ㅡ카밀레는 마거릿을 닮은 하얗고 귀여운 꽃으로. 허브나 아로마의 대표격. 사과 비슷한 달콤한 향기가 나고 허브티를 끓이면 초심자에게 잘 맞는 부드러운 맛이 난다.

 "수줍음이나 첫사랑?"

 카밀레의 사랑스러운 꽃 모양에 어울릴 법한 말들을 아무렇게나 말해본 이쿠에게 도조는 진지한 얼굴로 대답했다.

 "'고난 속의 힘'."

 가슴을 꿰뚫린 듯 일순 숨이 멎었다.

 그것은ㅡ대체 그 얼마나 도서대의 결의에 어울리는 말인가.


 이러한 (작품이 끝날 때까지 해소될 수 없는)모순점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 책을 너무나 사랑한다. 책을 읽으면서 소리 내어 웃을 수 있는 유쾌함을 받은 것은 오랜만이고, 그 유쾌함 속에서 우러나오는 깊은 감동은 가슴을 뒤흔든다. 이번 이야기의 주인공은 1권부터 강력한 카리스마를 뽐내던 이나미네 사령관이 아닐까 싶다. '히노의 악몽' 사건에서 한쪽 다리와 아내를 잃어버리고 도서대를 조직한 장본인. 그리고 그 아내가 좋아하던 꽃인 카밀레. 그 꽃말을 들었을 때 주인공인 이쿠는 물론 나 역시 전율과 같은 감동을 받으며 등줄기가 곧게 펴졌다. 그리고 이번 사건을 통해 이루어지는 마무리는 아쉬움과 여운을 안겨준다. 항상 가장 뒤편에 있던 등장인물임에도 그 누구보다 영향력이 강했다.


 더욱이 그 속에 담겨있는 사회 비판은 어떤가. 이번 이야기에서 작가는 약자를 골라 끔찍한 짓을 저지르는 치한을 규탄하기도 하고 무분별한 금칙어의 선정을 비판하기도 한다. 그 무엇보다도 이번 이야기에서 가장 중요했던 것은 도서대와 양화대의 전쟁을 통하여 이루어낸 '무저항주의'에 대한 논의이다.


 이바라키 현에서 미디어 양화법을 비판하는 미술작품이 최우수 작품으로 선정된다. 이에 이바라키 현에서는 미술전에 양화대원들이 침투해 미술작품을 손상시키는 것에 대비하여 특수부대에 지원을 요청한다. 이바라키 현립도서관의 방위대를 쓰지 않고 어째서 특수부대에서 지원을 나가야하는지 의문인 상태로 이바라키 현에 도착해보니 그곳에는 무저항주의 시민단체가 도서관의 상층부를 장악하고 있었다.


 이를 통해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전쟁이 시작된 오래 전부터 지금까지 해결되지 않은(애초에 정답이 존재하지 않는) 항쟁과 테러리즘에 대한 고민과도 맞닿아있다. 비폭력인가, 폭력인가. 폭력이라면 사물에 대한 폭력인가, 사람에 대한 폭력인가, 집단에 대한 폭력인가. 물론 이는 답이 존재하지 않는다. 작가는 작품에서 '무저항주의는 숭고하지만, 무저항이 통할 때에나 가능한 일이다.'라고 말하지만 우리나라 광복에 가장 큰 힘이 되었던 무저항운동. 3.1운동의 역사와 힘. 세계에 끼친 영향력을 알고 있는 우리로서는 쉽게 대답할 일이 아니다. 그러나 적이 우리를 유린하고자 총과 칼로 무장하고 들이닥치는데 무작정 생각 없이 무저항운동을 펼친다면 그것은 분명 미련한 짓일 것이다. 무저항운동인 이 '도서관 전쟁'처럼 대다수의 국민이 무관심한 세상이 아니라, 다수의 사람들이 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대응할 수 있을 때. 모두가 힘을 합쳐야 가능한 것이며, 그것을 무작정 지지하는 사상은 어리석을 뿐이라는 것이 작가가 말하고 싶었던 것이 아닐까.


 이번 이야기에도 역시 '무저항주의 시민단체의 흑막' 등에서 드러나는 작가의 치우친 의견 표현은 다소 아쉽기도 했지만, 그렇다고 하더라도 이만큼 유쾌한 작품 뒤에서 드러나는 본질에 대한 질문과 시사점은 이루 말할 수 없이 깊다. 감탄하고 싶을 정도로 깊고, 아름다운 작품임에 분명하다.


출처 : http://tlqtown.blogspot.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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