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코토피아
아스카 후지모리 지음, 이주희 옮김 / 문학동네 / 2006년 4월
평점 :
절판


 아스카 후지모리는 이 <네코토피아>를 출판할 당시만 하더라도 1978년 도쿄에서 태어나 25살의 어린 나이에 프랑스어로 직접 써 프랑스에서 극찬을 받았다는 소개를 했지만 이후 자신은 프랑스인 남자로서 지금 도쿄에 살고있다는 사실을 밝혔다. 프랑스에서 조차 정체불명인 복면 작가이다.

열 살도 안 된 꼬마 아스카의 취미는 고양이 죽이기다. 그것도 평범하게 죽이는 것이 아니라 나폴레옹, 찰리 맨슨, 피노체트, 에바 페론 등 유명한 살인범이나 정치인, 작가의 이름을 붙인 후 거기에서 영감을 받아 죽인다. 찌르기, 태워 죽이기, 감전시키기, 갈아 마시기, 술 먹여서 교통사고 유발하기, 때려죽이기, 하이힐로 밟기, 녹슨 커터로 배 가르기 등등 한니발 렉터는 저리 가라할 정도로 온갖 기상천외한 방법을 써서 고양이를 죽이는 실험에 몰두하는 아스카. 이런 딸의 모습에 적응하지 못해 나날이 폐인이 되어가는 아스카의 부모는 결국 아스카를 정신분석가에게 데려간다.

한편 아스카가 살고 있는 성지는 지도자 때문에 골치를 앓고 있다. 신처럼 추앙받던 지도자가 백혈병에 걸려 시한부 판정을 받게 된 것. 성지의 계승 문제 때문에 지도자는 평범하게 죽어서는 안 된다. 그의 권위에 맞는 ‘유니크한’ 죽음이 무엇일지 고심하던 신하들은 결국 고양이 킬러 아스카를 생각해낸다. 기소 당할 나이도 안 된 열 살짜리 여자애라면 마음껏 주무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 이들은 이제 함께 모여 아스카가 지도자를 죽이게 하기 위한 획책에 들어간다. 지도자를 죽이면 어떨까, 사탕을 주며 살살 구슬리고, 학교에서는 갑자기 ‘지도자는 고양이다’라는 주제로 백일장이 열리고, 성지 전체에 “지도자는 고양이를 닮았다!”라는 대대적 선전문구가 나붙는다. 아스카의 범죄 본능이 살아 있도록 온 성지에 있는 고양이들을 잡아 공급해주기까지 한다. 비정상적이고 엽기적인 살인마라고 모두의 걱정을 사던 아스카는 한순간에 모두의 구세주가 되고, 이 당돌한 꼬마 앞에서 허위에 찬 어른들의 모습이 까발려지는데……

 미스테리나 그로테스크한 소설로서 기대하고 읽었던 것과 달리 이 <네코토피아>는 정치를 풍자한 소설이었다. 놀라운 작명센스로 역사에 존재하는 온갖 범죄자 등의 이름을 고양이에게 붙여서 기발한 방법으로 죽이고 떼쓰며 가끔은 깜짝 놀랄정도로 철학적인 말을 하는 귀여운 꼬마 아가시 아스카를 볼때면 재미있기도 했지만 그 외에는 솔직히 지루한 책이었다.
 고양이를 죽이는 아스카와 지도자, 지도자 자문위원회 등을 통하여 권력에 물들어 지도자를 죽이고 멋대로 조종하려는 모순된 자문위원회와 언론, 성경, 법정 연령, 사회 구조 등을 놀랄 정도로 직접적으로 비판했다. 법을 '제대로 돌아가지 않는 어른들의 발명품'이라는 말로 신랄하게 까댄다던지, 표현의 자유라는 이름을 내건 근시안적 시각을 가진 지식인들을 규탄하고, 가난한 자는 노동을 얻고 부유한 자는 돈을 얻는 사회구조를 어린아이인 아스카의 눈으로 표현해냈다. 그리고 마지막 구절이 가장 인상깊었다. '도쿄, 2001년 10월 ~ 2002년 5월'.
 많은 사람들이 '고양이를 죽이는 모습이 너무 역겹다'라고 평하지만 이 책은 고양이를 죽이는게 주제가 아니다. '어떤' 고양이를 '어떻게' 죽이고, 고양이라는 소재를 어떻게 이용하여 정치를 풍자했는지가 주제인 것이지 책의 본질을 흐리면 곤란하다. 게다가 아스카의 행동에 웃음을 지었으면 지었지 실제로 그다지 역겹지 않다. 실로 재미없다는 것이 치명적이지만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가슴 깊히 와닿았다. 그 정도로 충분하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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