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마스 테롤 - invisible × inventor
사토 유야 지음, 박소영 옮김 / 학산문화사(단행본) / 2008년 11월
평점 :
절판


 사토 유야(佐藤友哉)가 <수몰피아노(水?ピアノ)>에 이어 발매한 <크리스마스 테롤(クリスマス·テロル)>이라는 소설은 놀랍기도 하지만 어처구니 없는 책이다. 이건 문학적으로 평가할 수 있는 소설이라기보다는 독자와 비평가들에 대한 사토 유야(佐藤友哉)의 거대한 절규라고 보는게 옳다. 소설로서의 재미는 조금도 없었고 문학적으로 평가하자면 정말 저질스러운 작품이다.


충동. 오늘처럼 그 필요성이 절실했던 날은 일찍이 없었다.
코바야시 토코는 수험을 코앞에 둔 중3 여학생. 여름방학이 끝나고 가을 신학기에 접어들었지만, 왠지 머릿속은 계속 여름방학에 머물러 있는 상태다. 그러던 어느 날, 토코는 ‘진짜 충동’에 이끌려 학교를 땡땡이치고 토마코마이 항구로 향하게 된다. 거기서 우연히 화물선을 발견한 그녀는, 어디로 향할지 알 수 없는 화물선에 올라타게 된다. 그렇게 해서 그녀가 충동적으로 도착한 곳은, 미지의 외딴섬―. 무인도는 아니었지만, 구멍가게밖에 없는 작은 섬이었다.

이곳에서 그녀는 스물다섯 살 청년, 쿠마가이 마사토를 만나 그의 집에 얹혀살게 된다. 그는 폐품을 모아 파는 일을 하는 조금은 특이한 청년으로, 공짜로 빌붙어 사는 것은 허락할 수 없다며 토코에게 폐품 묶는 일 따위를 시킨다. 하지만, 뭐 하나 만족스럽게 하는 일이 없는 토코. 그러다 마지막으로 마사토가 토코에게 명령한 것은, 벼랑가 오두막에 사는 남자 하나를 감시하는 일이었다. 그렇게 해서 토코는 오후 3시부터 이튿날 아침 8시까지 쌍안경을 통해 남자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게 된다. 그가 누구인지, 감시 이유가 무엇인지는 일절 알지 못한 채….

밥을 먹거나, 배설할 때 외에는 오로지 노트북 앞에 앉아 뭔가를 계속 치기만 하는 남자. 그렇게 한결같이 같은 일을 반복하는 남자를 감시하는 지루한 일상이 계속될 것만 같던 어느 날―. 남자는 한시도 눈을 떼지 않고 감시하는 토코의 눈앞에서 갑자기 사라지고 마는데….
소실된 남자를 찾는 소녀의 추격이 시작된다.

 소개만 읽자면 나름의 스토리가 있는 것 같지만 사실 이야기라고 할 것도 없다. 섬이라는 큰 의미에서의 밀실이나 데뷔작인 <플리커스타일(フリッカ?式)>에서 짧게 등장한, 엑스트라라기엔 기억에 깊게 남은 캐릭터인 '코바야시 토코'라는 캐릭터를 이용하여 만들어낸 <카가미가 사가(鏡家サ?ガ)> 시리즈의 사이드 스토리는 구실에 불과하다. 이 모든 이야기는 그저  사토 유야(佐藤友哉)가 자신의 글과 책을 알아주지 않는 독자와 비평가들에게 날리는 징징거림을 적기 위한 구실일 뿐이다.
 처음에는 왠지 코토가 충동에 의해 가출하여 섬에 갇혀버리고 그 섬에서 일어나는 사건을 토대로 이야기가 잘 진행되는 것 같지만, 중간에 갑자기 사토 유야(佐藤友哉)라는 화자가 직접 등장하여 이야기를 부숴버린다. 밀실 미스테리를 표방하던 이야기는 몰락해버리고 미스테리의 해답은 어이가 없다.


'플리커 스타일', '에나멜을 바른 혼의 비중', '수몰 피아노'. 내가 세상을 파악하려 하던 과정에서 태어난 기형의─그러나 예정대로의 산물들. 그것은 엔터테인먼트라고 단언하기에는 어렵고, 미스터리로 칭하기에는 고개를 갸웃거리지 않을 수 없는, 고단샤 노벨즈의 독자가 원하는 것과는 한참 거리가 먼 것들뿐이었다. 하지만 나는 당신들의 강도强度를 믿고 작품을 세상에 내놓았다. 아무리 그래도 전해질 곳에는 전해지겠거니 생각했다. 

그 결과가 이거다. 

예측이 너무 순진했었나? 아니면 세상이 정말 거지 같은 것인가? 지금에 와서는 도무지 모르겠고 확인할 마음조차 들지 않는다. 분노니 슬픔이니 허무함이니 하는 단순한 감정조차 품지 않게 된 지금에 와서는.

 이 책은 소설이라기보다는 사토 유야(佐藤友哉) 자신의 이야기를 그린 자서전이다. 자신의 한탄과 절규를 위하여 하나의 이야기를 만들어 내버린 점이 과연 사토 유야(佐藤友哉)답다. 계속해서 문학적으로는 저질이라는 등, 소설로서의 가치가 없다는 등의 이야기를 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 책이 굉장히 재미있었다. '토코'의 이야기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사토 유야(佐藤友哉)'의 이야기를 말하는 것이다. 사토 유야(佐藤友哉)의 애독자인 나로서는 사토 유야(佐藤友哉)가  '이미 패배한 자의 뒷북이지만 어째서 세상은 내 책을 알아주지 않는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라고 말하며 독자들에게, 그리고 비평가들에게 독기를 쏟아내는 모습이 굉장히 귀여웠다. 마지막 종장에 가서는 '카가미가 시리즈는 더 이상 쓰지 않습니다. 사토 유야의 작가 생활은 이제 끝났습니다. 부디 이렇게 떠나는 저를 비웃어주십시오'라고 쓰지만 지금은 영화화까지 이루어내고, '돈을 벌지 않는 작가'에서 '돈을 버는 작가'로 변신하고, 자신보다 유명한 작가와 결혼해 지금도 왕성히 작품 활동을 하고있는, 성공한 인생을 살고있지 않은가? 인생 정말 아이러니다.
 이 책에는 <크리스마스 테롤(クリスマス·テロル)>를 쓸 당시의 사토 유야(佐藤友哉) 본인의 상황이 그대로 담겨있다. 플리커스타일, 에나멜을 바른 혼의 비중, 수몰피아노 등을 출판했지만 세상이 알아주지 않아 한번도 중판이 되지 않았다는 이야기.(당시 일본에 살았던 것도 아니라 얼마나 안팔렸는지도 모르고 이렇게 재미있는 책이 왜 중판이 되지 않았는지 나는 이해할 수 없지만) 그래서 담당에게 '중판동정'이라고 불려 진심으로 살의가 솟아났다는 등의 실화는 정말 재미있었다. <에나멜을 바른 혼의 비중>을 쓸때는 카도노 코헤이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거나, 자신의 문학의 멘토는 J.D 셀린저라는 등 알고있는 이야기도 나왔다.

"그래도 멋지긴하네요. 저는 코바야시거든요. 이런 평범해 빠진 성은 어떻게 해야돼요?"
"결혼을 하면 또 모를까, 별 수 있나. 사토에 비하면 그래도 낫잖니."

 이야기에서 직접적으로 자신의 이름을 디스하는 사토 유야(佐藤友哉).
 세간의 평가에서 이 <크리스마스 테롤(クリスマス·テロル)>은 <카가미가 사가(鏡家サ?ガ)> 시리즈가 아닌 '토코'라는 등장인물을 이용한 다른 작품이라고 말하지만 전혀 아니다. <크리스마스 테롤(クリスマス·テロル)>은 엄연히 <카가미가 사가(鏡家サ?ガ)> 시리즈라고 생각해도 좋다. '토코'만 등장한다면 모르겠지만 이야기 내에서 토코의 미스테리 해결에 도움을 주는 '케토인 히로유키'와 '케토인 유이카' 남매가 등장하기 때문.

소를 둘러싼 끔찍한 기억이라도 있는걸까?

이런 문장으로 묘사하는 케토인 유이카에 대한 이야기는 <플리커스타일(フリッカ?式)>을 읽어보지 않았더라면 이해가 불가능했으니라. "카가미가 사가는 이제 쓰지 않는다. 작가 생활도 접는다."고 말하면서 카가미가 사가 시리즈에 대한 미련이 엄청나게 넘치는 사토 유야(佐藤友哉)는 굉장히 매력적이었다. 아마 그도 지금와서 과거 출판한 이 책을 읽는다면 부끄러움과 창피함에 얼굴을 들지 못하겠지.
 사실 읽다보니 살짝 오싹하기도 한것이 이 책에서 말한 그대로 사토 유야(佐藤友哉)가 작가 생활을 접었으면 어떻게 되었을까? 결국 이 <크리스마스 테롤(クリスマス·テロル)>이 중판되면서 중판동정을 졸업하고 기적적으로 살아났지만 상상하기도 싫다.

 이 책을 만약 소설로서 구입하려고 한다면 뜯어 말리고싶다. 사토 유야(佐藤友哉)를 모르는 이상 이 책은 재미도 없고 희망도 없다. 당신이 사토 유야(佐藤友哉)의 애독자라면 구입해도 좋다. 이야기를 넘어 세상에 직접적으로 절규하고 증오를 드러내는 그의 뿌리깊은 분노를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사실 이 책에서 가장 미스테리했던 부분은 어째서 이 <크리스마스 테롤(クリスマス·テロル)>이 기적적으로 중판되었나 하는 점이다. 카가미가 사가 시리즈는 중판이 되지 않았으면서 말이지. 중판이 되려면 많이 팔려야할텐데 이 책은 도저히 팔릴 책이 아니다. 소설이라기보다 <사토 유야(佐藤友哉) 인터뷰>나 <사토 유야(佐藤友哉) 팬북> 정도가 옳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