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나멜을 바른 혼의 비중 - 카가미 료코와 변화하는 밀실
사토 유야 지음, 주진언 옮김 / 학산문화사(만화) / 2007년 7월
평점 :
절판


 사토 유야(佐藤友哉)는 2001년 <플리커 스타일(フリッカ-式)>로 제 21회 메피스토 상을 수상하며 데뷔했다. 병신같은(좋은 의미로) 소설에게만 주어지는 메피스토 상 수상 작가답게 그로테스크한 소재와 일그러진 세계관이 특징으로 기존의 미스테리 등의 소설과는 다른 새로운 엔터테인먼트 소설을 창조해낸다. 너무나 특이한 필력을 자랑하여 발매되는 소설마다 호불호가 크게 갈린다. 대표작으로는 <플리커 스타일>을 시작으로 카가미가 7남매의 일그러진 이야기를 다루는 <카가미가 사가(鏡家サ?ガ)> 시리즈가 있다.

 오랜만에 <플리커 스타일(フリッカ-式)>을 다시 한번 읽었다. <플리커 스타일(フリッカ-式)>의 마지막 구절을 읽고나서 패닉에 빠졌었던 어린 중학생 시절을 생각하니 웃음이 난다.  다시 읽고 나서 새삼스럽게 느끼는 것이지만 이 <플리커 스타일(フリッカ-式)>만으로 사토 유야(佐藤友哉)의 현재 모습을 말하는 것은 상당히 안타까운 일이라는 것이다. <플리커 스타일(フリッカ-式)>은 너무나 미숙하고, 이야기의 구성이 탄탄하지 못하였다. 선정적인 소재와 뿌리깊은 증오, 그로테스크한 표현, 넘쳐나는 에너지만큼은 사토 유야(佐藤友哉)의 소설들 중 최고로 평가받지만 그만큼 방향성이 없어 많은 독자들에게 제대로 평가받지 못했던 소설이다. 처음이 좋지 못해 <카가미가 사가(鏡家サ?ガ)> 시리즈가 세일즈면으로 성공하지 못했던게 안타깝다.

 지금에서야 읽게 된 이 <에나멜을 바른 혼의 비중(エナメルを塗った魂の比重)>은 기대 이상으로 훌륭한 소설이었다. <플리커 스타일(フリッカ-式)>에서 보여주지 못했던 방향성과 탄탄한 이야기가 단기간내에 훌쩍 진화했다. 그의 글이 대부분 그렇지만, 미스테리물과 라이트노벨의 요소를 섞어놓은 듯한 신감각 소설은 호불호가 굉장히 갈린다. 제대로 된 미스테리물이라고 보기 어려운 허술한 진행을 비판하는 사람도 있고, 사토 유야(佐藤友哉)가 다루는 정신나간 소재에 거북함을 느끼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나는 오히려 일그러진 세계관에 어두운 분위기, 그로테스크한 묘사, 그리고 후반부에 밝혀지는 충격적인 반전과 예상치 못한 전개, 거기에 더해지는 정신나간 캐릭터들의 개성이 너무나도 좋았다. 예상을 아득히 뛰어넘는 놀라운 전개와 단편 형식의 이야기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시리즈물이라는 것을 잊지 않듯이 카가미가의 비밀까지 빠뜨리지 않는 탄탄하고 짜임새 있는 이야기가 너무나도 재미있다. 마지막에 느낀 전율은 아마 당분간 잊혀지지 않을 듯 하다.

 <에나멜을 바른 혼의 비중(エナメルを塗った魂の比重)>에서는 <플리커 스타일(フリッカ-式)>에서 주인공인 카가미 키미히코의 누나로 등장했던 카가미 료코가 등장한다. 시간적으로는 <플리커 스타일(フリッカ-式)>의 사건보다 이전의 일이라고 생각된다.-료코가 쿠단의 비밀을 모르고 있었기 때문에- 하지만 카가미 료코가 주인공은 아니었다. 료코 시점에서 서술된 부분은 조금도 없었고 료코는 그저 사건을 방관하다가 마지막에 사건의 비밀을 밝히는 열쇠 역할 정도만 해냈을 뿐이다. <에나멜을 바른 혼의 비중(エナメルを塗った魂の比重)>에는 인육 이외에는 먹을 수 없게 된 식인 소녀 사나에, 반 전체에서 엄청나게 학대당하고 있는 치즈루, 어느 순간 전학을 와서 반의 중심이 된 아야카, 그리고 카가미 료코 등 2-B반에 있는 정신병자같은 캐릭터들이 등장한다. 그리고 각 캐릭터들의 시점에서 묘사되다가 후반 부분에서 이 많은 캐릭터들의 이야기가 하나로 모여 지금까지의 사건의 비밀을 밝혀낸다. 특히 마지막 결말에서는 지금까지의 모든 미스테리를 이해하고는 온몸에 소름이 돋을 정도의 전율을 얻었다. 간단히 보여지는 결말이 아니라 독자가 한층 생각해야 하는 결말을 가지고 있었기에 받을 수 있었던 감동이다. 사토 유야(佐藤友哉)는 독자가 추리해낼 수 있는 힌트와 장면을 그려내놓고 정작 결말을 직접적으로 말하지 않았다. 이 작가는 천재다! 이해하기 어려운 소설이 아니었다는 것이 더욱 놀랍다. 어떻게 이런 이야기를 생각해 낼 수 있었는지 감탄스러웠을 뿐이다.

 후반부에 많은 비밀이 밝혀지는 소설이다보니 내용을 조금도 이야기 할 수 없다는것이 안타깝다. 감상을 적기 전부터 많은 고민을 했지만 결국에는 이런 흐지부지한 감상이 되어버렸다는 것이 안타깝다. 사실 표현하고 싶은 말과 책에서 느낀 감동은 더욱 많지만 가슴 속에 묻어버릴 수밖에 없었다. 정말 아까운 일이다.

 데뷔 이후 계속해서 <카가미가 사가(鏡家サ?ガ)> 시리즈를 발매하던 사토 유야(佐藤友哉)는 재판조차 되지 않는 <카가미가 사가(鏡家サ?ガ)>와 다르게 네번째 작품인 <크리스마스 테롤(クリスマス·テロル)>로 재판에 재판을 거듭하는 상업적인 성공을 거두어 그 이후 "카가미가 시리즈는 돈이 되지 않기 때문에 속편을 내지 않을 예정이다."라고 말했어서 눈물을 흘릴뻔 했으나 <크리스마스 테롤(クリスマス·テロル)>에서 독자들에게 독기와 증오를 뿜어낸-삐진-이후 굉장한 성공을 거두고-삐진게 풀리고- 카가미 자매의 나는 교실 등을 발매 한 후 <나인 스토리즈>라는 후속작을 쓰고있다고 한다.

 <에나멜을 바른 혼의 비중(エナメルを塗った魂の比重)>을 읽고 나서야 아마 내가 좋아하는 건 '라이트노벨'이 아니라 라이트노벨의 캐릭터성이 들어간 자조적이고 어두운 소설이 아닌가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 책을 읽고나서 가장 안타까웠던 점은 상대적으로 다른 라이트노벨들이 죄다 재미없어졌다는 점이다. 그러니까 결론은 이 책이 정말 재미있었다는 이야기일 뿐이다.

 감상을 쓰다보니 든 의문점인데.
 어째서 시험관은 27개밖에 없었을까?
 예상은 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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