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의 시간 2008-2013
이명박 지음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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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에이치코리아의 수준.... 앞으로 살 일은 없겠다. 출판사 이름이나 바꾸지 말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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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손으로, 발리 BOOK + 내 손으로 NOTE 세트 - 전2권 (도서 + 노트) - 일러스트레이터 이다의 카메라 없는 핸드메이드 여행일기 내 손으로 시리즈
이다 지음 / NEWRUN(뉴런) / 201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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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백하자면, 최근에 책을 거의 읽지 않고 있다. 그게 두달은 넘은것 같은데, 겨우겨우 독서 모임 때문에 한달에 책 한권을 읽는 정도였다. 당연히 오랜만에 독서 모임과 무관하게 읽은 책이며, 올해의 첫 책이다. 또 우연하게도, 어제 <창문을 넘어 도망친 100세 노인>이란 영화를 봤는데, 거기에 발리가 나온다. 마치 그 느낌이, 꼭 쇼생크 탈출에서 마지막 장면처럼 낙원같은 분위기를 풍겼다. 난 발리에 대해서 잘 몰랐고, 인도네시아도 몰랐고 관련책도 거의 읽지 않았다. 생각해보니 동남아시아에 대해서 전혀 아는게 없었다. 게다가 나는 기행문을 좋아하지 않았다. 물론 우연히 <열하일기>를 읽고 단숨에 기행문에 매료되었다. 전에는 기행문이라는 건 내가 거기에 가지 않으면 읽어볼 필요가 없는 책 정도로 취급했다. 난 여행을 많이 안하니깐 당연히 기행문을 읽을 생각을 안해봤다. 아마도 내가 여행을 좀 즐긴다고 해도 기행문을 읽지 않았을 것이다. 왜 전자제품 사면 설명서 안읽어보고 일단 몰라도 무작정 써보는 타입이라서 그럴지도 모르지만, 근데 좋은 기행문은 그런 생각을 변하게 했다. 기행문이란 여행에서 느낀 것들, 그것이 이성적이든 감성적이든, 그것을 산문 형식으로 쓴 것인데, 꼭 여행의 기록으로만 얘기할 수 없다. 그 안엔 더 많은 것이 담겨 있었다.

물론 모든 기행문이 내 구미에 맞는 건 아니였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일부를 제외하곤 요즘 기행문이라는 것이 그렇게 좋아보이질 않았다. 요즘엔 블로그에 올라오는 기행문조차도 너무 사진이 많다. 한마디로 디지털 사진의 과잉 시대라서 그런지, 생각해보면 나도 포스팅 하기전에 늘 사진없이 글을 올리는 건 좀 뭔가 허전해서, 어떻게든 사진을 준비한다. 마치 짤방없이 글을 올리면 큰일 나는 것처럼, 최근 여행의 기록들을 보면 온통 사진뿐인데, 사진은 참 편하고 사실적이긴 하지만, 그 만큼 재미는 없다. (사진 자체가 재미없다는 말이 아니다.) 왜냐하면 사진이 너무 흔해서 그럴꺼다. 영국의 근대회회사를 읽다보면 풍경화가 발전한 것이, 그때는 사진이 없었기 때문에, 풍경화가 상업적으로 발달했다고 한다. 낯선 곳의 이국적인 풍경, 주로 자연풍광을 사실적으로 그린것에 사람들이 흥미를 느꼈기 때문이다. 근데 따지고 보면 여행의 기록을 동영상으로 남기든 사진으로 남기든, 글로 남기든 그림으로 남기든, 각각의 방식의 차이가 있을 뿐, 기록적인 면에선 다 똑같다. 물론 여기서 조금씩 차이는 있다. 각각의 형식에서 저마다 구사하는 능력도 다를것이고 그림을 통해서 포착해내는 것이 사진보다 뛰어난 사람도 있고 그 반대도 있을것이고 기록하지 않고 오히려 그냥 갔다와서 사람들에게 재미나게 이야기하는 것을 더 잘하는 사람도 있을것이다. 방식은 사실 상관없다. 단지 요즘에 기행의 기록이 사진이 너무 많아서 흔해빠지고 지루하다는 것일 뿐이다. 그 안에서도 물론 옥석은 있을 것이다. <내 손으로 발리>를 펴 들었을 때 놀란 점은 모두 손으로 쓴 책이란 점이다. 마치 중세시대 부자들을 위해 기도서 같은것과 비슷하다. 거기에는 손으로 쓴 글씨와 정교한 장식이 그려졌고 더 비싼 책에는 화려한 채색화까지 그려져 있다. 예전에 딱한번 작가의 전시를 본 적이 있는데, 거기서 몰스킨 노트에 그려진 홍콩 풍경들을 본적이 있는데, 나는 완전히 거기에 매료되었다. 하필 나도 전에 홍콩을 갔다왔는데, 수백장의 흑백사진을 갖고 돌아왔고, 생각해보면 나는 사진을 잘 찍는 사람이 아니였다. 만약 그 때 내가 짧은 홍콩 여행의 기록을 남겨야 겠다고 진지하게 생각했다면 사진을 포기하고 글을 썼을지도 모르겠다. 그 이유는 단순하게도 내가 사진보다 글을 더 잘 쓰기 때문이다.(물론 잘쓴다라는 뜻은 상대적인 의미다.) 어쨌든 이 책은 글자가 번진것까지 인쇄되어 있어서... 책을 계속 읽다보면 마치 내가 길을 걸어다가다 우연히 길에 떨어진 <발리 여행의 기록을 상세하게 적은 노트>를 줏어서 나도 모르게 읽어본 그런 느낌이 든다. 이것은 사실 책의 본질이라고 할만한다. 작가는 글이든 사진이든 그림든, 그런 방식을 통해서 내가 느낀것을 남들에게 보여주고자 노력하는 사람이다. 그것은 캔버스나 필름, 혹은 원고에 담겨지고 다시 그것은 가공된다. 수정을 하고 보정을 보며, 전시를 위해 액자에 넣어지고 조명을 설치한다. 인쇄를 하기 위해 타이포작업을 하고 편집을 하고 갖가지 과정을 통해서 사진들에게 보여진다. 그러나 이 책은 후반부에 어떤 작업이 생략되어 있는것처럼 느껴진다. 그러나 생략되었을까? 꼭 그렇지만은 않다. 일종의 속임수라고 하면 속임수인데... 작가가 작성한 노트의 원고의 초고 상태를 수정없이(수정없는 것처럼) 펼쳐 보는 착각을 불러 일으킨다. 이것은 언뜻 새로울것이 없지만, 요즘 같은 시대엔 또 굉장히 새롭게 느껴진다.

글을 쓰는 형식적인 면에서도 편안하다. 종종 나는 블로그 포스팅을 할때도 늘 형식적인 면에서 어려움을 느낀다. 단순히 잡담하는게 아니라 좀 더 형식을 갖추고 써야 할 때는 어려움을 느끼는데, 아무래도 글쓰기라는게 좀 그런면이 있다. 소설을 쓸 때도 소설의 형식에 벗어나지 않지만 좀 더 참신하고 매끄럽게 쓰려고 노력한다. 서평도 그렇고 모든 글에는 그런게 있다. 책 앞 페이지의 지도 그림을 보면, 기행문의 형식을 지킨것 같지만, 곳곳에 산문들은 굉장히 자유롭다. 발리 역사 요약이나 정보 요약, 쇼핑한 물품들, 음식 소개, 등등.. 일기 형식 중간중간에 자유롭게 배열되어 있는데, 읽기 편하다. 기행은 사실 대부분의 시간의 경과에 따라 서술하는게 보통이고 이 책도 그 형식을 따른다. 다만 중간 중간 다양한 주제들을 끼워넣었다. 재미난건 열하일기도 이와 비슷하다는 점이다. 열하일기도 일기처럼 기록들을 서술하다가 갑자기 책목록이 나오고 소설이 나오고 골동품 리스트가 등장한다. 이런건 사실 기행의 기록과 큰 상관은 없지만 매우 흥미롭다. 그런게 빠졌다면 왠지 아쉽지 않았을까? 어쩌면 기행산문의 독특한 형식일지도 모르겠다.

 

불과 몇년전만 해도 나는 기행문을 읽지 않았다. 예컨데 발리에 대한 기행문을 읽는것보다 발리에 대한 역사책을 읽는걸 더 선호했다. 근데 잘 써진 기행문을 읽고 나서 내가 느낀점은 기행문이 단순히 여행의 기록이 아니라는 점이다. 그래서 같은 여행을 준비하는 사람들이나 읽는 책이 아니라, 그 여행에서 작가가 뭘 보고 뭘 느꼈는지 이야기하는 책이라는 점이다. 이 부분에서 다른 산문이나 소설과 맥이 통하는 부분이 있다. 소설도 그렇지만, 작가가 허구를 통해서 자신이 뭘 보고 뭘 느꼈는지 간접적으로 이야기하는 것이 똑같다. 좋은 기행문을 읽으면 나도 기행문을 한번 써보고 싶다. 문제는 기행문을 쓰는 문제라기보다는 여행, 즉 낯선것을 보고 느낄 수 있는 능력? 그런 노력을 기행문에선 요구하기 때문에, 그건 쉽지 않을 것같다. 앞서 내가 요즘 여행의 기록은 디지털 사진의 과잉이다라고 한것은 단순히 사진이라는 매체로 기행을 기록한 것을 비판한것이 아니라 그 기록에는 작가가 뭘 봤는지 뭘 느꼈는지 와닿는게 없기 때문이다. <내 손으로 발리>라는 책은 글과 드로잉을 통해서 작가가 발리라는 낯선 여행지에서 뭘 보고 뭘 느꼈는지 간접적으로 느낄 수 있다. 그리고 또 그 방식은 작가가 원했던 방식이라는 점이 받아들이는 독자에게도 특별하게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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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희재의 청춘투쟁 - 돌직구로 승부한 슬램덩크 세대의 좌충우돌 성장기
변희재 지음 / 도전과미래 / 201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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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가 아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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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책] 환상의 여자 동서 미스터리 북스 9
윌리엄 아이리시 지음, 양병탁 옮김 / 동서문화동판(동서문화사) / 201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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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3대 추리소설이라는 것은 책 속의 환상의 여자처럼 그 실체가 존재했는지조차 의심스럽다. 왜냐하면, 누가 그걸 선정했는지, 그 이유도 어떤 기준도 없기 때문이다. 어느 글을 보니 일본에서 나왔다는 설이 있었는데, 추리소설만큼 일본 중역이 넘쳐 났던 번역이 없었기에 충분히 그럴만하다.
 
이 번역본도 일본판 중역이 아닌가 읽으면서 끊임없이 의심했다. 몇몇 문장에서 그런 느낌이 들었다. 요즘에야 속 시원하게 어떤 것을 텍스트로 삼아 번역했다. 라고 당당하게 밝힌다. 근데 그런 당당함은 제대로 번역한, 즉 중역이 아닌 원본 텍스트를 번역한 책의 자랑이다. 아무래도 뒤가 구린, 번역은 굳이 밝힐 필요가 없었다. 그래서 이 번역이 무얼 텍스트로 삼았는지 알 수는 없다. 다만, 나는 처음 해문 출판사의 종이책으로 읽었는데, 중간에 포기할 정도로 번역이 엉망이었다. 번역이 엉망인 건 참을 수 있지만, 중간마다 무슨 뜻인지 도무지 모를 문장을 발견하자. 도저히 읽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전자책을 하나 살까 하고 검색을 해보니, 그 당시에는 유일한 번역본은 '솔' 출판사의 <환상의 여인>밖에 없었고 PDF여서 망설이게 되었다. 더더욱 번역을 보니 절대 살 만한 책이 아니었다.
 
아이리시의 문장은 꽤 별난 구석이 있다. 첫 문장만 봐도 이 작가가 문장이 꽤 비범하다는 걸 알 수 있다. 최근에 좋은 번역으로 다시 나온 '엘릭시르'의 "밤은 젊고 그 또한 젊었다."로 시작된다. 꽤 별난 문장이다. 본서 동서의 첫 시작은 "밤도 젊고 그도 젊었다."이다. (이건 해문 판도 똑같다.) 그러나 '솔' 출판사의 시작은 남다르다. "그의 젊음과 잘 어울리는 밤이었다." 이 번역본을 보면, 역자가 의역을 넘어 스스로 창작을 하는 느낌을 받는다. 앞서 말했듯이 아이리시의 문장을 유별나다. 좋은 문장이 가득하다. 그걸 살리지 못하는 번역이라면, 아니 최소한 동서와 해문 판은 그걸 잘 살렸다고는 못하겠지만, 나름의 노력이 엿보이지만, 자신이 아이리시보다 문장력이 뛰어나지 않은데도 그걸 고쳐 쓸 필요가 있을까? 아니 그렇다 할지라도 그걸 고쳐서는 안 된다. 그건 번역가의 일은 아니다.
(물론 '밤도 젊고 그도 젊었다'는 국어에 맞지는 않는다. '~도는' 비교의 대상이 있어야 하므로 '밤은 젊고 그도 젊었다'라고 번역한 엘릭시르의 번역이 더 유려하다.)
 
그런 이유로 '창'의 번역은 추천하지 않는다. 가능한 엘릭시르의 번역을 추천해야겠지만, 나는 그 번역으로 읽지 않았으므로 함부로 추천할 수가 없다. 내가 읽은 건 반쯤은 해문 판이었고 그걸 포기하고 동서의 번역으로 다 읽었다. 그래서 동서의 번역을 추천해야 맞을 것 같다.
동서의 번역이 좋다는 건 아니다. 적당하다. 이 표현은 좀 웃기지만, 적당한 것 같다. 특히 책 가격을 생각한다면, 적당하다 보다 좀 더 후한 점수를 주고 싶다. 또 '창'의 번역은 최악이고 '해문'의 번역은 영별로고 결국 남은 건 엘릭시르와 동서뿐이다. 이 둘은 출판 시기도 다르고 책 가격도 두 배나 차이 나기 때문에, 나의 추천은 그런 걸 살폈다.
 
내가 일반적으로 고전 추리 소설보다, 최근의 추리 소설, 그것도 대부분 하드보일을 더 좋아하는 이유가 있다. 나는 고전 추리 소설의 일종의 속임수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기 때문이다. 속임수는 대체로 완벽하다. 3대 추리소설 얘기도 나왔지만,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나 'Y의 비극'을 보면 '환상의 여인'보다 훨씬 속임수가 많이 나온다. 훨씬이 아니라 이 추리 소설은 속임수가 가장 중요한 주제다. 결국, 속임수는 작품 전체를 좌지우지하고 있다. 근데 그 속임수에 큰 흥미가 없다면, 과연 그런 소설에 열광할 수 있을까? 물론 앞서 언급한 3편의 소설을 나는 좋아한다. 꽤 재미있게 읽었다. 그러나 더는 그런 방식의 추리소설은 읽고 싶지 않은 게, 엘러리 퀸의 국명 시리즈를 2권쯤 읽다가 포기했는데, 그 이유는 나는 사건 자체나 인물 자체에 집중하고 싶지, 말 그대로 추리에는 별 재능이 없는데다가 속임수는 전혀 재미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환상의 여자는 뭔가 좀 다르다. 여전히 속임수는 소설의 큰 주제다. 우리는 범인의 깜짝 등장과 반전을 목격하고 중간마다 속임수가 있었다는 걸 눈치챈다. (물론 나는 둔해서 그런 걸 몰랐다.) 그런데 이 소설은 그게 전부는 아니다. 아내가 살해당하던 날 동행했던 의문의 여인, 그러나 누구도 그 여인을 알지 못한다. 그의 친구와 연인, 형사와 동료는 그 여인과 엮인 사건을 풀고자 동분서주하는 게 이 소설의 주된 내용인데, 여인을 찾기 위한 과정이 꽤 흥미롭다. 엮인 실타래를 풀어가는 것이 마치 필름 르와르의 느낌마저 풍긴다. 감히 추리소설은 잘 모르지만, 속임수를 중심으로 둔 작품에서 미스터리로 옮겨가는 과도기적 작품을 옮겨가는 전환점이 아닐까? 라고 생각하는데…. 사실 30년대와 40년대 추리 소설 작품을 읽은 게 너무 빈약해서 이런 평가는 어설프다. (환상의 여자는 42년 작품이다.)
어쨌든 개인적으론 속임수에만 치중한 고전추리보다 훨씬 흥미로웠다. 그건 읽는 내내 범인은 도대체 누구지?라는 어려운 질문보다. 이 흥미로운 사건과 인물이 어떻게 흘러갈까? 그런 의문에 나는 책장을 빨리 넘겼다. (물론 이 표현은 관용구이다. 전자책이라 책장은 없다.ㅋㅋㅋㅋ)
 
그렇다고 이 소설이 완전히 현대 추리소설의 전형을 갖췄다고는 말하기 어렵다. 여전히 속임수는 큰 주제고 무엇보다 우연한 일치가 꽤 많다. 그럼에도, 동시대의 추리소설과 분명히 차이점이 있다. 근데 이렇게 따져보니 더 오래된 매그레 시리즈는 정말 대단하다.
 
또 한가지 무척 놀란 것은 중역이 의심되는 매끄럽지 못한 번역이지만 중간중간, 그것도 자주 아이리시의 문장은 놀랄 정도로 아름답고 흡인력이 강하다. 눈을 떼지 못하게 하는 그런 힘이 있다. 한마디로 탁월한 문장가다. 번역된 이 작가의 작품이 몇 작품 안 되고 그게 하필 다 해문의 번역으로 나왔고 환상의 여자만 끔임 없이 나오고 있으니 씁쓸하다. 장르소설은 늘 이렇다. 해가 거듭하면 거듭할수록 만날 똑같은 유명작가의 대표작만 출판사와 역자만 바꿔서 나오고 또 나오고 또 나오고를 반복한다. 출판사 입장에선 팔라지 않는 장르소설이니 안전장치를 두는 것이겠지만, 독자 입장에선 세끼 반찬이 똑같고 어제도 내일도 심지어 십 년이 지나도 똑같으니 지겹고 답답하다.
 
어쨌든 추운 겨울날, 따끈한 아랫목에 배 깔고 누워 군고구마라도 먹으며 읽기에 안성맞춤이다. 가격도 저렴하니, 번역도 나쁘지 않다. 무엇보다 이 소설을 속임수에만 맞춰서 읽지 않는다면, 좀 더 사건과 인물 속으로 들어가서 읽는다면 훨씬 즐거운 독서가 될 것 같다. 동서미스테리북스 책이 계속 나오고 있어서 겨울 동안은 심심하지 않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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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세의 사랑과 미술 아트 라이브러리 8
마이클 카밀 지음, 김수경 옮김 / 예경 / 200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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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이 책을 읽는데, 시간이 조금 걸렸다. 처음 시작할 때 저자가 약간 어려운 말을 마구 쏟아내는 바람에 약간 주춤했던 건 사실이지만, 그 뒤론 비교적 순탄했다. 책은 도서관에 빌려 읽다가 반납하고 사서 읽었다. 미술책은 한번 읽고 끝이 아니라, 모든 분야와 연관되어 있기 때문에 자주 들춰보게 된다. 그때마다 도서관을 가는 건 귀찮은 일이고 책도 맘에 들어서 샀다. 이 책도 그렇다. 이 책은 단순한 중세 시대에 사랑을 주제로 한 그림을 설명하는 책이기도 하지만, 그 시대의 생활방식, 사회현상까지 사적인 것부터 공적인 것까지 모두 다루고 있다. 이것은 단순히 미술에 국한된 건 아니다. 이런 역사적인 어떤 흐림은 사회 전반에 걸쳐 영향을 끼쳤고 거기에 미술도 포함되어 있다.

 

중세 그림이 다른 시대의 그림보다 훨씬 매력적인 이유는 숨은 의미가 있기 때문이다. 마치 암호화되어 있는 편지를 읽는 느낌인데, 타로를 탁자에 펼쳐 두고 그 그림에 그려진 여러 상징을 읽고 해석하는 것과 비슷하다고 보면 된다. 그런 일이 처음엔 나도 귀찮고 어렵게 느껴졌는데, 사실 지금도 중세의 알레고리라던가 상징에 대해서는 모르는 게 많지만 조금씩 알아갈수록 재미있다. 마치 타로를 그냥 예쁘장한 그림 정도로 알았을 때와는 다르게 그 안에 그림을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지 조금 알았을 때와 느낌이 다른 것처럼 중세의 그림도 그 비슷하다.

 

이 책의 주제는 중세의 사랑이다. 중세 사람들은 어떤 사랑을 했을까? 흔히 우리가 아는 중세의 사랑은 중세풍 사랑이라고 해서 기사도를 쉽게 연상한다. 그래서 기사 윌리엄 같은 영화를 보면 중세의 기사나 귀족은 사랑하는 연인의 손수건이나 물건을 품에 간직한 채 거친 마창시합을 즐기곤 했다. 사랑하는 여인을 위해 모든 걸 받치고 목숨을 내거는 그런 것이 중세풍 사랑일까? 그러나 중세를 다룬 책을 좀 더 읽다 보면, 중세는 지독히 가부장적인 사회이고 또 지독히 여성혐오적인 사회라는 걸 알게 된다. 기사도니 중세풍 사랑이니 혹은 궁정풍 사랑은 사실 중세의 사랑을 설명하지 못한다. 동성애적, 좀 더 정확히 말하면 중세는 나르시즘에 빠진 남성의 가부장적 사랑으로 얘기하면 좀 더 이해가 쉽겠다. 물론 이 서평에서 그 이야기를 다 할 순 없고 나중에 시간이 나는 데로 이 주제를 한 번 더 다뤄보려고 한다. 오늘은 서평이니깐….

간단한 이야기만 하자만, 이렇다.

 

여기 유니콘이 등장하는 그림이 하나 있다. <시각>이란 그림이고 굉장히 유명한 그림인데, 보면 유니콘이 자기 얼굴을 거울로 보고 있다. 전설에 의하면 유니콘을 유인할 수 있는 것은 순결한 처녀이다. 유일한 조건인데, 여성은 신체적인 조건, 즉 처녀성을 잃지 않은 여성만이 유니콘을 유인할 수 있다. 유니콘은 남성성을 강하게 상징한다. 유니콘은 일반적으로 남성의 성기를 상징하는데, 그것은 이마에 뿔로 대변된다. 그런데 잘 보면 유니콘은 단지 그녀의 순결한 처녀성에 유인된 것일까? (유치한 처녀성 이야기는 좀 썰렁하지만,) 사실 유니콘은 그런 처녀의 유혹에 빠진 것이 아니라 거울 속에 비친 자신에게 빠진 것이다. 중세 시대에 시각은 무척 중요하게 다뤄진 감각이다. 지금이야 시각은 그냥 가시광선이 반사되어 눈에 들어오는 시각적인 정보에 불과하지만, 그 당시는 그 이상이었다. 시각은 회화를 상징하기도 했다. 그래서 자기 모습에 반해서 수면을 물끄러미 바라보는 나르시스는 회화의 첫 발견이라고 할 수 있다. 그것은 왜 그럴까? 중세 인들은 완벽한 육체와 이성을 남성 자신으로 봤기 때문이다. 이것은 여성이 감히 도전할 수도 다가설 수도 없는 어떤 이상이다. 지금 보면 유치했지만, 그 당시는 꽤 진지했다. (요즘 시대에서 여성이 담배를 피우는 행위를 어떤 대단히 부정적인 행위로 불쾌하게 생각하는 남성이 있다는 걸 상기해보자. 그다지 이해가 어려운 문제는 아닐 것이다.)


즉 고결하고 완벽한 남성을 상징하는 유니콘을 유혹하는 것은 처녀가 든 거울이다. (이것을 동성애로 해석하면 안된다. 이 부분은 설명이 필요한데... 암튼 우리시대의 동성애와는 성격이 다르다.) 딱히 유럽의 중세가 아니더라도 비슷한 시기에 동양도 이 비슷했다. 여성은 글을 잘 쓰거나 그림을 잘 그리면 비난을 받기 일쑤였다. 그건 중세도 마찬가지다. 왜냐하면, 회화는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것이고 그 아름다움은 나르시스처럼 자신의 완벽한 모습을 보는 것을 발견한 최초의 회화를 근본으로 삼기 때문이다.

 

이런 시대에 사람들은 어떻게 사랑을 했을까? 그 이야기가 이 책에 담겨 있다. 내용은 무척 흥미롭다. 초반에 약간 어려운 용어가 좀 많이 나오는데, 저자의 글쓰기 방식이 그런 것 같다. 여기에 좀 적응하면, 사실 그렇게 어려운 내용은 아닌데, 아주 이해하기 쉽게 쓴 건 아니지만, 그렇다고 지루하게 중세 그림의 알레고리를 무수히 나열하고 암기를 시키는 그런 지루한 책은 아니다. 물론 내가 중세나 그 시대 때, 꼭 서구가 아니더라도 동양도 비슷할 테니 더 다양한 지식이 있으면 이해하는 폭도 더 넓을 것 같다. 이게 내가 책을 산 이유다. 몇 년 있다가 필요한 부분이 있으면 찾아볼 수 있으니깐 말이다.

 

이 책은 예경의 <아트라이브러리> 시리즈인데, 미술사조나 이렇게 미술과 관련된 주제를 폭넓게 다룬다. 이게 3번째 읽는 책인데…. 이 시리즈의 다른 책도 한권 한권 읽어봐야겠다. 간만에 읽는 미술책이고 내용이 좋아서 푹 빠져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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